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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78화 (178/266)

〈 178화 〉 외전 2.술에 취한 천마님 #03

* *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눈을 뜨니 처음 보는 낯선 천장이다.

“여기는 어디야...? 으, 머리야.”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어제 술이라도 마셨었나?

일단 익숙한 재질의 천장으로 봐서는 기숙사 같은데, 누구의 기숙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게다가 몸을 살피니 상태가 가관이었다. 알몸으로 자고 있는 것도 모자라 어제 엄청 섹스를 해댄 것인지, 정액과 애액이 말라붙은 자지가 더러운 상태였다.

‘아니, 그 보다 나는 왜 바닥에서 자고 있지...?’

몸을 간신히 일으키자 주변에 나뒹구는 술병들이 보였다. 게다가 어제 섹스를 어지간히도 해댔는지 비릿한 냄새들이 진동을 한다.

‘분명 누군가랑 격렬하게 섹스를 한 것 같긴 한데...누구 방인지를 모르겠네.’

이상하게 누군가랑 술을 진탕 마시고 섹스는 한 것 같은데, 주변에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시르카나 알‘미라즈랑 한 건가?

‘모르겠다. 일단 씻고 나서 생각하자.’

씻고 나와서 주변을 좀 둘러보면 될 일이지. 라고 생각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벌컥 열었다.

“...어?”

문 안쪽의 광경을 본 나는 이 상황이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손가락 하나를 거칠게 꺾어봤다.

─우득!

이런 씨발, 존나 아팠다. 꿈이 아닌가 보다. 안 되는데. 이거 꿈이어야 하는데.

“히으윽…호오옥…♡”

욕실에서 밧줄에 묶인 채, 양구멍에 바이브가 꽂혀서 신음을 흐느끼는 천마를 보며, 나는 지금 순간이 간절히 꿈이길 바랬지만, 역시 180도로 꺽여서 부러진 손가락의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좆됐네. 시발.’

동시에, 나는 어제 밤의 기억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

정신을 차린 내가 다급하게 천마의 밧줄을 풀어주고 바이브를 인벤토리에 우겨넣자, 천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

“…”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고 해서 이 상황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자 우리 둘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각자 샤워를 하며 어제의 기억을 정리했다.

‘와 씨발. 개 좆됐네 이거.’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생도복을 꺼내 갈아입으며, 방 한구석에 갈기갈기 찢어진 생도복을 바라본 나는 격렬한 섹스를 억지로 되새김질 해야 했다.

­“하앙♡ 하앙♡ 좀 더엇♡ 잔뜩 자지주세요오♡”­

내 허리에 올라타, 기승위 자세로 내 옷을 움켜쥐고 허리를 흔들던 천마의 모습. 결국 손아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내 생도복이 걸레짝이 되어버렸지 아마.

허나 그걸 천마를 탓할 수는 없었다.

­“좋아, 이제야 좀 암캐답게 자지를 조르잖아? 이래서야 암캐천마잖아 암캐천마!”­

시발. 기승위를 가르쳐 준 뒤에 격렬하게 허리를 흔들라고 시킨게 나였으니까.

‘내가 시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천마랑 그렇게 섹스를 해댄 거지...?’

어제 이 기숙사에 도착한 시간이 7시쯤이었다. 그런데 기억 상으로는 동이 트기 직전까지 해대다가 겨우 뻗었으니, 못해도 8시간은 가볍게 넘길 정도로 했다는 뜻이 아닌가?

1번이라면,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고주망태 천마의 키스 탓에 나도 술에 취했었고, 얼마 전에 맞은 몽마섹스빔의 후유증인지는 몰라도 성욕이 들끓었다. 대충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생각나는 사정만 10번은 가볍게 넘는데, 이걸 술김에 한 실수라고 봐야 할까? 그건 그냥 발정난 원숭이의 교미나 다를 바가 없지 않나?

‘샤오메이 얼굴은 어떻게 보지...? 아니, 그 보다 당장 천마님한테 뭐라고 해야 하지...?’

─벌컥!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욕실의 문이 열렸다.

문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글래머하면서도 밸런스 있는 몸매를 수건으로 간신히 가린 채 촉촉히 젖은 천마가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푹 젖은 수건은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해 부드러운 살결과 풍만한 가슴, 매끄러운 복근과 박음직한 골반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 이쪽을 보지 말거라.”

“아, 죄송합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천마의 몸을 다시 야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분명 술김에 했을 텐데 저 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의 촉감, 살결이 부딪힐 때의 부드러움, 은은한 향기가 풍기던 체취까지 전부 기억난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천마는 옷장 쪽을 향해 걸어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 이제는 고개를 돌려도 좋다.”

천마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천마는 평상시 입던 차이나 드레스보다 천의 면적이 조금 더 많은 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후 고개를 푹 숙이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도 어제의 일이 기억은 나는 건지, 정작 나를 앞에 두고도 아무런 말은 하지 못한 채 내 눈치를 살피며 우물거리고 있었다.

“크흠, 일단 어제의 일은…”

“자, 잠깐! 아직 말하지 말거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노라!”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천마는 도리어 내 말을 끊으며 이미 사과처럼 붉게 물든 얼굴을 더욱 빨갛게 붉혔다.

확실히, 나도 나지만 남편이 죽어서도 100년 넘게 정조를 지키며 살던 천마에게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겠지. 나는 말없이 조용히 기다려주기로 했다.

조금 기다리자, 천마는 숨을 고르며 평정심을 되찾은 듯 나를 힐끔 보며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일단, 어제는 술에 너무 취한 상태였다.”

“그,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 보고 쉔이라고 부르기도 하셨고.”

“그, 그건 그냥...! 닮아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절대로 너를 유혹하거나 하려던 행위는 아니었다!”

“유혹 당했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까 진정하세요!”

아니, 평정심을 찾은 게 아니라 그냥 찾은 척 한 것 같다. 바로 빼액 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확실하다.

“어, 어제의 일은 실수다! 본, 본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죽은 서방님을 배신한 적도 없고 배신할 생각도 없었느니라!”

“알고 있습니다. 어제도 저를 보고 계속 쉔이라고 부르면서 착각하셨으니까요.”

“...그, 그렇다. 정말로 서방님으로 착각해서 그런 행동들을 해줬던 것이다. 그, 그, 짐승 같은 행위들을...!”

말을 하다가 어제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간신히 평점심을 되찾았던 천마는 나를 째릿 노려보더니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애, 애초에 네 탓이 크다! 어째서 술도 안 마신 녀석이 아내의 증조모를 건드린단 말이더냐!그, 그것도 그렇게 음란하고 짐승처럼!”

“네? 먼저 저를 덮친 후 강제로 키스를 한건 천마님이었잖아요? 게다가 얼마나 독한 술을 마셨는지, 저도 그 키스만으로 취해버렸다고요?”

“키, 키스만으로 사람이 어떻게 취한단 말이더냐!”

그러고는 도리어 역정을 내오는 천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충격적인 것은 알겠지만, 먼저 덮쳐진 나를 가해자로 모는 것은 너무하잖아. 아무리 잘 쳐줘도 쌍방과실이 아닌가?

“게다가 너는, 상대가 나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지 않았느냐! 나를 샹페이라고 부르면서 강, 강제로..!”

“...강제로는 좀 다르죠. 성감대를 찾아주니까 좋다고 헐떡이던 것은 천마님이잖아요? 게다가 나중에는 제 위에 올라타서 허리를 먼저 흔든 것도...”

“그, 그렇게 치면 성기를 빨게 한 것도! 짐승처럼 뒤에서 성기를 박아댄 것도! 성감대를 개발해 준다며 본녀에게 어디가 기분이 좋은지 말하게 한 것도 네가 아니더냐!”

“네? 먼저 제 자지가 더러워졌다고 입에 문 건 천마님이었죠! 게다가 자궁에 한 가득 사정해 달라고 계속 졸라대서, 아랫배가 빵빵해질 정도로 정액을 받아댄 건 천마님이 바래서 아닙니까!?”

갑자기 시작된 천마의 이니시를 시작으로, 우리는 진흙탕 싸움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진흙탕 싸움을 하면서 어제의 일을 복기할수록, 나는 왠지 모르게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교배프레스가 너무 좋다면서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키스해달라고 조른 것도 천마님 아닙니까?”

“여자의 가치는 유두절정으로 정해진다며 1시간 동안 자지를 삽입한 채로 유두를 괴롭히던 것은 네 녀석이다!”

“…아랫배가 너무 빵빵해 져서 정액을 빼냈더니, 자궁을 다시 채워달라고 아양을 떤건 천마님이잖아요.”

“그, 그렇게 치면 자고 일어날 때 까지 애를 태운다면서 밧줄로 나를 묶고 이상한 도구로 괴롭힌 것도 그대 잖느냐...”

“…”

“…”

어쩐지 나와 천마는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니, 분위기 자체가 묘하게 바뀌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서로를 이성으로 보는 남녀의 관계? 그 정도라면 괜찮을 지도 모르지만, 이건 그런 풋풋하거나 쑥스러워 하는 분위기 정도가 아니었다.

방금 말로만 언급했을 뿐인데, 서로가 서로의 체온과 살결, 입술의 촉감이나 성기의 형태를 아주 생생하게 떠올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잔뜩 해댄 탓에 우리의 머리는 몰라도 우리의 몸이 그 감각을 추억하듯 다시 떠올리고 마는 것이다.

──꿈틀.

“…!!”

그 기억 탓일까, 나도 모르게 자지가 발기하자, 천마의 시선이 정확하게 내 바지로 향하는 것이 느껴진다.

동시에, 나는 천마의 유두가 무언가를 기대하듯이 꼿꼿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어제 유두절정을 알려준 탓에 조건반사적으로 천마의 육체가 반응한 게 아닐까?

“…”

“…”

어느 순간 천마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내 눈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나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없이 바라봤다.

*

그날 우리는 점심시간이 되고나서야 기숙사를 나와, 오늘 있던 일을 비밀로 하여 죽을 때 까지 입을 다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기억에서 지우자고 약속했고, 나는 그 약속에 따라 최대한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샤오메이의 증조모잖아. 이건 정말 아니야. 하렘에다가 말 하는 순간 나는 쓰레기 확정이라고.’

다행히 3일이 지난 오늘, 나와 천마는 개인 훈련을 위해 다시 만났지만 생각보다 멀쩡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면 서로 어색하지 않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안도한 나는 천마님의 초고강도 훈련을 간신히 따라갈 수 있었다.

오늘은 카이엔도 없던 탓인지는 몰라도 저번보다 집중도 더 잘되는 것 같아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있는 힘껏 몸을 굴렸다.

“흐아, 흐아! 죽겠다!”

역시 잡념을 없앨 때는 몸을 움직이는 일이 최고다. 이게 옳게된 개인 훈련이지!

“저기, 아르틴. 오늘 훈련은 버틸만 하느냐...?”

“네? 뭐, 버틸만 한 것 같은데요.”

그 때, 갑자기 천마가 내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했다. 늘 광오한 모습이던 천마와는 다른 태도에 나는 매우 의아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본가에서 좋은 영약을 받아놨는데. 훈련이 끝나고 받아가지 않겠느냐?”

“영약...말인가요? 갑자기요?”

“그, 그래. 수제자가 열심히 노력하니 스승이 상을 줘야하지 않겠느냐? 네녀석은 우리 집안의 사위기도 하고 말이다.”

“뭐,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공짜 영약을 마다할 성격은 아닌지라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천마는 얼굴을 붉히며 내게 다가오더니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 그럼...수업 끝나고 달맞이관으로 따라 오거라. 알겠지?”

“…”

내가 놀라서 천마를 바라보자, 천마는 내가 알던 고고한 강자의 표정을 짓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천마가 아니라, 한 마리의...

*

그 후로 반년이 지났다.

─벌컥.

기숙사에서 연인들과 시간을 보내던 나는, 갑자기 문을 부술 듯이 박차고 들어오는 샤오메이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크, 큰일이에요. 오라버니. 바, 방금 본가에서 편지가 왔는데.”

“편지라니? 그보다 큰일이라니? 무슨 큰일인데?”

샤오메이는 내게 설명하는 대신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태산도장에서 온 편지는 아주 급하게 휘갈겨 쓴 한 줄의 문장만이 적혀있었다.

[증조모님께서 얼마 전부터 입덧을 시작 하신 것 같으니, 속히 본가로 돌아 오거라. 태산도장의 가주 린 샤오팽]

“뭐?”

“즈, 증조모님이 임신을 하셔서, 가문의 직계는 전부 본가로 돌아오라고 하는데...그 때문에 이번 빌런 사냥에서 저는 빠져야 할 것 같아요.”

머리가 아득해졌다. 증조모? 천마님이 임신을 해?

“그나저나 너무 깜짝 놀랐어요.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으시던 분이 어디서 남자를 만나셔서, 임신을 하신 걸가요...?”

“…”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갑자기 안색이 나빠지셨는데...”

샤오메이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나는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당장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것으로도 죽을 만큼 힘든일이었으니까.

시발

좆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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