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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79화 (179/266)

〈 179화 〉 연애는 글로 배우는 게 아니에요 카이엔군

* * *

요 며칠간 카이엔이 이상해진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스스로 자습을 하겠다며 나랑 수업을 듣는 것을 피하질 않나.

조르바에게 반한 클레어 때문에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을까봐 챙겨줘도 갈 곳이 있다며 거절하질 않나.

‘저 새끼 갑자기 왜 안하던 짓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연인들하고 애정행각을 할 때 스토커처럼 노려보는 녀석이 없어져서 편하기도 했다.

그래. 저 녀석도 드디어 내게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는구나.

‘진심으로 응원해주마, 카이엔.’

정말 진심으로 카이엔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했다.

내가 요즘 행복한 만큼 카이엔 저 녀석도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은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씹새끼는 어떻게 된 게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뒤통수를 후려칠까?

“천마님, 저한테 뭐 말할 것 없습니까?”

“…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구나. 왜 그러느냐 아르틴?”

“씨발.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아까 전부터 저 새끼가 천마님 눈치 살피는 거, 제가 모를 줄 알아요?”

감정이 너무 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왔지만, 욕설을 들은 천마조차 나를 꾸짖지 못하고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설마 했는데. 이 사단이 일어난 게 천마님의 탓이 맞나 보다.

“저, 정말이다. 나는 저 녀석이 왜 저러는 지 도대체 모르겠으니 말이다.”

“뭔가 알고 있는 건 분명하잖아요! 최소한의 선은 지키던 새끼가 도대체 왜 저러냐고요!”

나는 천마를 향해 눈을 부릅뜨며, 똑똑히 보라는 듯 카이엔을 향해 손을 들어 삿대질을 했다.

“저, 저쪽을 가리키지 말거라! 아무리 고금제일인인 나라고 해도 저런 것을 보는 것은 큰 심력을 소비하니 말이다!”

“씨발. 그럼 왜 카이엔이 수영복 차림으로 아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지 제대로 설명해 보라고요!!”

내 손가락의 끝이 가리키는 곳, 그곳에서는 절대로 존재해선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분명 훈련용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오라는 천마의 말에,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왔어야 할 카이엔이 수영복을 입고 와서는 훈련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아주 좆같은 광경이지만, 나라고 해도 최소한의 이해심은 있었다. 저 새끼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저질렀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성용 사각팬티를 입고 와야지, 여성용 수영복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거냐고요!!!”

“나, 나도 모른단 말이다! 내가 저리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아니란 말이다!”

비키니 차림의 카이엔이 훈련으로 인해 땀을 뻘뻘 흘리며, 동시에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것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박살내는 행위였다.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천마의 멱살을 붙잡았지만, 천마는 계속 내게 시선을 피하며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울부짖기만 하였다.

**

“천마님! 효과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효과가 있다니?”

카이엔이 달맞이관에 찾아와 무릎을 꿇은 다음날.

또 다시 갑자기 찾아온 카이엔이 한껏 밝아진 얼굴로 무릎을 꿇자 천마 샹페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카이엔을 바라봤다.

“천마님이 어제 밤에 제게 전수해주신 지식. 그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벌써부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뭐? 지식? 효과가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천마는 혹시 자신이 술김에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곰곰이 떠올려봤지만, 도저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분명 자신이 어제 밤 카이엔을 어떻게든 해주겠다고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이 불합리한 난이도에는 천마조차 멀쩡한 해결책을 떠올리는 것이 무리였기 때문이다.

‘여자를 동시에 셋이나 둔 녀석을 어떻게 남자를 좋아하도록 만들라는 거지..?’

카이엔의 이야기를 들은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라고 천마는 확신했다.

자신이 분명 불합리한 여성들의 공세에서 쉔과의 순애를 지켜낸 것은 사실이나, 자신은 쉔과 소꿉친구라는 유리한 포지션, 거기에 쉔의 이상형인 볼륨 있는 몸매를 지닌 것. 무엇보다 자신이 이미 약혼을 했다는 사실이 중히 작용했다.

허나, 카이엔이라는 이 녀석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본인이 사정을 직접 설명할수록 답이 없는 미래만 보이고 있던 것이다.

“저도 천마님처럼 접근하는 암캐들을 막기 위해, 아르틴을 24시간 감시를 한 적도 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아르틴이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노, 노력이 참 대단...하구나...아, 아르틴이 그런데 껄끄러워하지 않겠느냐?”

24시간 감시라니, 온갖 라이벌들이 쉔의 주변에서 시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절의 샹페이조차 24시간 내내 감시했던 적은 없었다.

“네? 하지만 이건 전부 아르틴을 위해서입니다. 몸에 좋은 약이 쓰다고도 하고, 아르틴 본인을 위해서라도 여자들에게서 거리를 두게 해야...”

“...카, 카이엔 너 이리도 말이 많은 아이였느냐? 진중한 아이인줄 알았는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애초에 이것은 순애가 아니라 스토커에 가까운 발상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당장 이 녀석을 내쫓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천마는 진지하게 고민해야했다.

“그, 궁금하구나. 어쩌다가 그리도 아르틴을 좋아하게 된 것이냐? 그...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궁금하구나.”

하지만 단 한번,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카이엔을 내쫓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천마는 조심스럽게 카이엔에게 물어봤다.

만약 이것도 변변찮은 이유라면, 자신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카이엔을 내쫓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야,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허나, 카이엔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천마의 예상보다도 무거운 것이었다.

“아르틴이 제게 먼저 손을 뻗어준 날, 너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해준 그 날. 저는 아르틴이 뻗은 손을 잡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같이 마왕을 토벌하자고,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에서 함께 행복하자고 맹세를 했습니다.”

“저는 그 맹세를 위해서라면, 제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천마님.”

“…”

천마는 문뜩, 마왕을 해치우고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던 자신의 남편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걸 이뤄낼 힘은 부족했지만, 이상만큼은 누구보다 높았고, 마음은 누구보다도 선량했던 자신의 죽은 남편.

“…나, 나쁘진 않구나. 음. 크흠. 그래. 행복해지기 위해서라.”

“…혹시 우셨습니까? 천마님?”

“울긴 뭘 운다고 그러냐! 그냥 환절기에는 눈물샘이 촉촉해지는 법이다!”

어쩐지 이 남자놈들의 사이에서 자신과 남편의 모습을 봤던 천마는, 카이엔에게 가벼운 조언을 몇 가지 해줬다.

확실히 별거 아닌 조언이었다. 너무 섣부르게 다가가지 마라. 상대방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해주지 마라. 평소와는 다른 너를 보여줘라.

그 이상의 조언들을 몇 개 알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 자신을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은 상대에게 먹힐 것은 아니었고, 아주 평범한 조언이었기에 천마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다음, 다음 조언이 필요합니다. 천마님! 아르틴이 제게 먼저 식사를 권유하는데,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으, 으음. 연애는 밀당이 중요한 법이다! 일단 참도록 하거라!”

허나 천마는 자신을 찬양하는 것에 꽤나 목말라 있었고, 그 날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충성도가 올라가는 카이엔을 보며 조언을 해주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기억하거라 카이엔, 가끔은 상대방을 자신에게 매료시킬 큰 한 방이 중요한 법이다. 물론 지금의 너로는 무리일 것 같지만, 남자들은 뇌쇄적인 여인에게 흠뻑 빠지는 법이란다. 나처럼 말이다.”

*

천마는 억울했다. 그건 그저 단순히 자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제자에게 뽐내고 싶었던 것뿐이었지, 다른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카이엔에게는 천마의 모든 조언이 보석처럼 귀중한 것이었다. 허나 뇌쇄적이라니? 카이엔은 본인조차도 자신이 어떤 복장을 해야 뇌쇄적으로 보일 수 있는지 알기 힘들었다.

그런 카이엔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던 것은, 얼마 전 아르틴이 보고 눈을 번쩍이던 『다양한 가슴들』이었다.

­“천마님, 이 책들을 좀 빌려가도 될까요?”­

­“그건 여자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보는 것 아니더냐? 가져가도 좋다만...”­

그저 장식용으로 총장의 비밀 서재에서 뺏어온 천마는 몰랐지만, ‘다양한 가슴들’은 여성들의 가슴그림 외에도 다양한 글들이 투고되어 있었다.

가령, 남자가 가장 흥분하는 여성의 복장 같은 것들이 말이다.

‘수영복...? 그것도 비키니라는 새로운 형태를 가장 좋아한다고...? 뜨거운 눈빛으로 남자를 유혹하라?’

그것이 이 모든 원흉의 시작이었다. 천마가 준 이 책을, 카이엔은 교과서라 여기고 아주 격렬한 고민 끝에 책에 적힌 조언들을 사용해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해명하십시오! 천마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요!”

“모른다…! 나는, 나는 정말로 모른다!”

그러니까, 천마는 진짜 억울한 셈이다. 어떤 미치광이가 남자 보고 여성용 수영복을 입고 남자를 유혹하라고 권유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천마에게 중요한 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에게 눈을 까뒤집은 채로 소리치는 아르틴의 분노를 피하는 것이었다,

물론 아르틴에게는 눈에 뻔히 보이는 발뺌인지라 아르틴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었지만, 천마에게는 이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틴! 지금 스승님에게 뭐하는 짓이야!”

아르틴이 천마의 멱살을 잡는 것을 본 카이엔은, 깜짝 놀라 아르틴을 말리기 위해 두 사람을 향해 황급히 뛰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무려 연애를 가르쳐주는 하늘같은 스승님에게 무례라니! 아무리 파트너라고 해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끼야아악! 그 차림을 하고 뛰어 오지 마! 꺼져! 저리 꺼지라고!”

“끄앙!”

여성용 수영복을 입은 카이엔이 쫓아오자, 아르틴은 천마를 바닥에 내던진 후 전력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해 아르틴! 스승님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너 때문이라고! 너 때문이니까 제발 꺼지라고!”

허나, 아르틴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이대로 가면 자신보다 신체능력이 우월한 카이엔에게 붙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신이시여 제발...!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결국 카이엔에게서 벗어나고자, 아르틴은 평상시에는 찾지도 않던 여신에게 기도하며 울부짖었다.

“진정해 아르틴! 갑자기 어디로 뛰어가는 거야...!”

허나 그런 기도가 무색하게도, 카이엔의 손이 아르틴의 허리를 낚아채고 말았다.

여성용 수영복을 입은 변태에게 덮쳐진다. 아르틴이 삶의 의지가 꺾이는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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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의 알림창과 함께, 아르틴의 등 뒤쪽에서 밝은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물컹!

동시에, 카이엔에게 붙잡힌 아르틴은 어째서인지 느껴져선 안 될 감촉을 느끼고 말았다.

‘...뭐지? 이 낯선데 익숙한 감각은?’

언젠가, 느껴본 것 같은 말랑한 감촉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르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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