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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81화 (181/266)

〈 181화 〉 Tag : gender bender #02

* * *

사실은 카이엔 본인도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여성용 수영복을 입어도, 관심을 끌기 위해 아르틴의 주변에서 기웃 거려도.

아르틴은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지 않는 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카이엔은 했다. 바보 같은 행동이지만, 그래도 했다.

방법이 없으니까.

16년을 참아온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도,

16년을 꿈꿔온 아르틴과의 진실 된 사랑이 열매를 맺는 방법도.

...아니, 사랑은커녕 다른 여인들처럼 아르틴의 곁에서 연인으로 있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무의식중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천마가 준 책을 따라하고 천마가 해준 말을 따라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이대로 아르틴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보자고 결심했으니까

──그렇지만 우습게도, 기회는 노력과는 별개로 갑자기 찾아왔다.

처음에는 폴리모프가 실수로 풀린 줄 알고 정신이 붕괴될 것 같은 깊은 좌절감에 빠졌다.

‘내 본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데, 본모습을 들키면, 아르틴에게 쓸모없는 민폐 쓰레기가 되어 버릴 거야!!’

용사인 자신이 사라지면, 16년간 아무런 가치 없이 자신을 속여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르틴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카이엔은 그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다행히도, 아르틴이 달래준 덕에 자신은 진정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상태창은? 상태창이 정말 사라졌다면 어떻게 하지?

‘...어라? 상태창이 아직 남아 있어...?’

상태창 뿐만이 아니라 퀘스트도 그대로였다.

퀘스트 창을 보면 여전히 자신은 타인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째서?

“천마님, 일단 이 녀석 좀 진정시키고 올게요. 잠깐만 훈련 쉬어도 괜찮죠?”

“그냥 따라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머리가 복잡해져 멍하니 상태창을 보고 있던 그 때, 언제나처럼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건 자신의 미래의 반려자, 아르틴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변한 건 상태창이 벌인 일이라는 거야. 무슨 마왕군의 저주나 빌런의 습격 같은 게 아니니까 안심해도 돼.”

설명을 들은 카이엔은 그제서야 상황이 판단이 가기 시작했다.

폴리모프가 풀린 것이 아니라, 상태창에서 자신을 ‘변신’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카르엔이 본 모습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강제로 이벤트에 휘말려 여인의 모습이 되었다고 ‘착각’하게 만든 셈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카이엔은, 아니, 카르엔은 문뜩 머리에 한 줄기의 영감이 떠올랐다.

“상태창에 나온 메시지 내용 말인데... 상태창의 사용자가 기뻐할만한 이벤트라고 했잖아?”

설명에 따르면, 상태창은 분명 이 상황을 아르틴이 좋아할만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럼, 아르틴은 내가 이런 모습으로 변한 게 기쁜 일이라는 거네?”

상태창은, 지금이라면 자신이 본모습을 내보여도 괜찮다고 일시적으로 허가를 내려준 셈이다.

...정말 바보 같은 일이지만, 16년간 바래왔던 절호의 기회가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힐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아르틴이 좋아할만한 풍만한 몸매, 예전에는 싸우기 불편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아르틴이 좋아해준다면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외모가 못생긴 것도 아니다. 스스로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아르틴은 분명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했으니까.

지난 번 교단에서 머물 때도, 아르틴은 분명 자신과의 입맞춤을 좋아해줬다. 그러니까 이 모습으로는 아르틴에게 스킨쉽을 해도...거부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카이엔? 생도복을 갑자기 왜 벗어?”

“...후후.”

바보 같은 일이다. 간신히 잡은 기회가 자신의 노력이 아닌, 그저 갑자기 벌어진 헤프닝으로 찾아오다니.

허나, 카르엔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을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남녀 관계에는 분위기와 빌드업이 중요한 거야!”­

...수영복의 상의를 벗으려던 카르엔은, 천마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기회를 그저 성별이 바뀐 나와 아르틴의 헤프닝 따위로 끝낼 수는 없어.’

일시적이라고 하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 자신이 해야할 건 불쾌한 경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밤 마다 떠올릴 법한, 아련한 추억. 남자인 카이엔으로 돌아가도 카르엔인 자신이 계쏙 떠올릴 법한 일!

“...후후후.”

“카, 카이엔? 나 좀 무서운데...?”

두려워하는 아르틴을 보며, 상냥한 눈웃음을 지었다.

걱정 하지 마 아르틴.

그 더러운 암캐들의 곁에서, 내가 너를 꼭 구해줄게.

...그리고 알게 해줄게. 16년 간 너를 사랑해 온 정실은, 바로 네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

“오라버니, 이건 정말 아닌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반려여, 이건 좀...많이 역겹구나.”

연금술 동아리 부실, 오랜만에 동아리 부원들 중 핵심 멤버를 호출한 나는 부조리한 일을 겪고 있었다.

유니코르와 샤오메이가 나를 보며 혀를 차며 고개를 젓다니, 평상시라면 샤오메이와 유니코르의 바보 같은 행동을 보며 내가 하던 행동인데.

“...아르틴, 저희가 분명 다른 여인들을 최대한 이해하겠다고 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아그네스 까지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자, 나는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주변의 인물들을 바라봤다.

“아니, 지금 다들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난 아직 아무런 말도 안 꺼냈어!!”

“그럼 내가 잘못 파악했는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옆에 있는 거...카이엔 실버소드냐?”

당황한 내가 소리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클레어에게서 해방되어 즐거운 표정을 짓던 조르바 녀석이 내 옆에 다소곳이 서있는 카이엔을 보며 물었다.

그 말에, 몸에 달라붙는 생도복으로 갈아입어 자신의 여성적인 굴곡을 과시하던 이국적인 미녀가 된 카이엔이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였다.

“...카이엔은 맞지만, 도대체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너희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거든!”

“...그, 그렇구나. 물론 난 너를 믿지 아르틴.”

내가 다급히 추가로 해명하자, 조르바 녀석까지 나를 혐오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뒤로 물러나더니 샤오메이의 뒤로 숨기 시작했다.

“샤, 샤오메이. 아르틴 녀석이 나도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아니겠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태닝 글래머 누님으로 만드려고 기회를 엿보고 계실지도.”

시발, 대놓고 들으라는 듯 속삭이는 조르바와 샤오메이를 보며 나는 주먹을 부들거렸다.

정말로 아직 한 마디도 안 하고, 그냥 옆 교실에서 기다리던 카이엔을 데려와서 보여줬을 뿐인데, 내 평소 이미지가 어떻길래 이런 반응들이 나온단 말인가?

“수인 혼혈, 유니콘, 마족, 악마, 선생님, 스승님, 원수 같이 여기던 여기사를 건드린 방탕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조용히 해 시르카, 전혀 알고 싶지 않던 생각이었으니까.”

이곳에 내 편은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부들거리는 내 손을 꼭 잡아줬다.

“애들아, 일단 아르틴이 설명하고 싶다고 하니까, 다들 조용히 하고 아르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먼저 아닐까?”

“바, 바이올렛...”

“괜찮아, 나는 아르틴을 믿어. 그러니까 차분히 설명해보자, 알았지?”

나를 보며 괜찮다고 말해주는 바이올렛을 보며, 나는 흥분한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정실의 품격이지...!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반대쪽 손도 누군가 부드럽게 감싸 잡는 게 느껴졌다.

‘역시, 내 편은 바이올렛만 있는 게 아니구나!’

누구일까, 아그네스? 알‘미라즈? 기대감에 부풀어 고개를 돌린 내 눈이 차게 식었다.

“...? 너 지금 뭐하냐?”

“...나, 나도 파트너를 믿으니까. 응.”

내 손을 꼭 잡으며 얼굴을 붉히던 카이엔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애는 지금 이 행동이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걸까?

“...아, 아르틴? 설마...?”

“아니야! 아직 아무 짓도 안했어! 정말이야!”

“...아직? 아직이라면 설마?”

옆에서 그 걸 지켜본 바이올렛마저 동공과 목소리를 떠는 것을 보자, 내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이 빌어먹을 게이 녀석은, 여자로 변해도 내게 도움이 되는 게 없구나.

*

“그러니까, 상태창 때문에 카이엔이 갑자기 모습이 변한 거라고?”

“...아르틴도 참, 정말로 오해할 뻔 했잖아요? 진작 말을 하시지.”

“믿고 있었슴다, 오라버니! 하긴 오라버니가 설마 TS에 눈을 뜨시진 않으셨겠죠!”

“당황해서 말투도 섞였으면서,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 해.”

내가 아까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그제서야 나를 미혹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바라보던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행히군, 아르틴 네가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내가 회귀를 100번 쯤 해도 너를 그런 눈으로 볼 일은 전혀 없으니까 닥쳐 조르바.”

조르바의 뻔뻔한 태도에, 나는 이를 갈며 유일하게 나를 믿어준 바이올렛을 팔로 꼭 끌어안았다.

“옳지 옳지. 오해 받아서 많이 힘들었지? 다들 말로는 장난 쳐도 속으로는 아르틴을 믿고 있었을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아르틴.”

“바이올렛 마망...”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내가 아무리 여성을 밝힌다고 해도, 설마 남자를 TS 시키면서 까지 여색을 밝히겠는가!

...물론, 상태창에 떠오른 내가 기뻐할만한 일이라는 문구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어서 말하지 않았다.

[카이엔, 혹시나 해서 말하는 데. 상태창에 떠오른 문구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정말로 절교한다?]

[...후후후, 내가 말할 리가 없잖아. 무슨 오해를 하는 거야?]

이 새끼 시발 말하려고 했네. 미리 텔레파시로 못 박아두길 잘했다.

“그러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나 방법은 모르는 건가요.?”

“으음, 그 부분은 안 적혀 있어서 나도 모르겠는데...”

“엘릭서를 먹이거나, 저번에 만들었던 폴리모프 해제 용액 같은 것을 써보면 어떻겠느냐?”

“물론 여기 데려오기 전에 해봤는데, 전혀 바뀌는 게 없더라고. 마법적인 변신이나 권능 하고는 전혀 다른 매커니즘인 것 같아.”

저 두 가지 외에도 내가 알고 있는 변신 마법을 푸는 방법은 이것저것 시도해 봤는데, 전부 실패했다.

만약 내가 카이엔의 본모습을 몰랐다면 이게 본 모습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로 정교하고 강력한 변신이라니. 상태창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지?

“일단 그렇게 돼서, 한동안 카이엔은 이 상태로 지내게 될 것 같아. 돌아가는 방법도 찾아봐야지, 시간이 지나면 풀릴지도 모르고.”

“확실히 엘릭서가 안 먹힌다면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기는 하겠네요...”

그 말이 끝나자, 모두의 시선이 카이엔을 향해 집중 되었다.

...카이엔은 자신이 무슨 상황인지 아는지 모르는 지, 여전히 내 옷깃을 붙잡고 꼼지락 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아...일단 제가 학사처에는 말 해둘게요, 용사의 시련이나...그런 걸로 대충 둘러대면 되겠죠. 성녀랑 의논해봐야겠네요.”

“고마워 아그네스. 그 동안은 내가 데리고 다녀야지 어쩌겠어.”

“...학생들에게는 뭐라고 둘러대시게요?”

그러게, 애를 도대체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카이엔, 그냥 변신이 풀릴 때 까지 방 안에 있는 건...?”

“그건 싫어. 나도 시험 준비는 해야 하는 걸. 게다가 어차피 시험을 보려면 출석은 필수라고. 파트너.”

16년 차인 네가 무슨 시험 준비를 해 시발련아!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나를 보는 카이엔의 눈은 너무나도 의지가 굳건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나랑 같이 다니는 걸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구만. 시발년.

“...혹시, 파트너는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럽거나 창피한 거야?”

“응, 아주 많이. 도대체 밖에다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도 감이 안 잡히거든.”

“너, 너무해 아르틴...”

또륵, 카이엔이 그 가느다란 속눈썹에서 눈물 한 방울을 흘리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순간 두근거렸다.

허나 속지 말자, 분명 외모는 절세미인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지만, 이 녀석은 미녀가 아니라 카이엔이다.

“그렇게 우는 척 해도 소용 없어. 내가 너랑 몇 년을 지낸 줄 알고 있는 거냐?”

“...칫.”

내 단호한 말에, 카이엔 녀석은 방금 전까지 슬픔에 가득 찬 미녀를 연기하는 것을 관두고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이 새끼, 원래 이렇게 감정 표현이 많은 녀석이었나...?

“그래도 이렇게 된 거, 한동안 잘 부탁 할게, 아르틴!”

“야, 잠깐, 떨어져! 기분 나빠! 기분 나쁘다고!”

갑자기 팔짱을 껴오는 녀석의 가슴은, 어쩐지 꿈속에서 느꼈던 그 감촉과 질량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반사적으로 내 얼굴이 살짝 붉어지자, 나를 바라보던 여인들과 조르바의 시선이 급격이 싸늘해지는 것도 같이 느껴졌다.

돌겠네 진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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