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화 〉 Tag : gender bender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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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과장을 좀 보태서 전교생의 이목을 끄는 인기스타가 되었다.
“아, 아르틴이 또 미녀를 데리고 왔는데?”
“…애들아, 나 첫사랑에 빠진 것 같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어…!”
이유는 당연히, 갑자기 나타난 도내S급미소녀(처녀)인 카이엔(사실 남자임) 때문이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아카데미에 있었다니. 왕국의 귀족 중에는 저런 아이가 없었는데?”
“제국에서도 저런 아이는 없었어. 검은 머리로 봐서는 공화연방에서 온 전학생이 아닐까?”
“아냐, 공화연방에서 저런 미녀가 있었다면 진작 소문이 났을 거야. 혹시 펠카스 가문의 사생아 같은 게 아닐까?”
“바보야. 펠카스 가문은 붉은 머리가 특징이잖아! 재는 검은 머리라고!”
수많은 웅성거림과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지랄났네 병신들 이라는 생각을 꾹 억누르고 있었다.
“애들아, 저기 있는 아이는 전학생이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잠시 여자로 변하게 된 카이엔이란다? 착각하지 마렴?”
“네??”
오늘도 세르게이 선생님을 대신해 아침조회를 들어온 세니아 선생님이 카이엔의 정체를 알리자, 반 아이들에게서 경악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그래, 이 반응을 기다렸다고, 천장까지 찍은 기대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분위기!
너무 짜릿하다. 마치 내가 떡상을 노리고 구매한 코인처럼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구나.
뭐, 사실 저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도 내 옆자리를 슬쩍 볼 때 마다, 옆에 앉은 녀석이 카이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가슴이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니까.
‘본판이 카이엔이라 그런가, TS를 해도 외모가 깡패긴 하네...’
아그네스의 제복을 빌려와 입혔는데도 가슴이 꽉 차, 단추 2개를 열어 가슴골을 내보여야 하는 몸매, 거기에 우수에 찬 것처럼 퇴폐적이면서도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눈빛,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까지.
개인적으로 내 다른 연인들이 카이엔에게 꿀리는 외모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여자 카이엔의 외모는 여태 내가 봐온 미녀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후후,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아르틴?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없어, 그냥 신경쓰여서 그러니까 좀 떨어져.”
게다가, 내가 자신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잔망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살짝 몸을 숙여 가슴골을 보여주는 것 까지.
내 이성은 이 녀석을 역겹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본능은 어째 이 녀석을 자신의 암컷으로 만들라고 충동질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충동질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릴리트의 유혹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들 장난이지. 참아낼 수 있다.
“괜찮으세요, 오라버니? 힘들거나 피곤하진 않으세요? 여차하면 제가 자리를 바꿔드릴까요?”
“아냐, 괜찮아...어찌 보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내가 책임져야지.”
정작 충동을 억제하느라 입을 꾹 다문 내 모습이 어지간히도 안색이 나빠 보였는지, 샤오메이가 나를 도우려 했지만 나는 그 도움을 거절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이 비겁한 새끼, 자신하고 붙어 다니지 않으면 상태창의 메시지 내용을 애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다니.’
어제, 카이엔이 상태창의 비밀을 지키는 조건으로 내게 목줄을 건 탓에, 앞으로 이 녀석이 남자로 돌아갈 때 까지 옆에서 데리고 다니며 챙기기로 약속했다.
게다가 인식개변 마법이나 변신 마법조차 거부하는 탓에, 오후가 지나자 나는 ‘아카데미에 처음 보는 미소녀를 데리고 온 수수께끼의 1학년’으로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 카이엔이 용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입지가 높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괴상망측한 해석들이 나왔다.
악마의 저주라는 둥, 저주받은 아티팩트를 손댄 탓이라는 둥, 사실 카이엔의 본모습이 여자라는 둥, 심지어는 내가 TS가 취향이라 변했다는 소문까지.
물론 그런 헛소문으로 내가 아카데미에 불려가거나 학생회의 주의를 받는 일은 없었다.
‘어제 미리 일을 전부 처리해놔서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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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로 용사인 카이엔 학생이 여자로 변하지 않았습니까?”
“여신님 맙소사,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아그네스의 보고에 따라,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나온 교수님들은 카이엔의 변한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얼마 전 성녀의 인증을 받아 카이엔이 진짜 용사가 된 것은 아카데미의 교수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늠름한 1학년이 교내S급미소녀가 됐으니 당연히 놀라는 게 이상한 일이겠지.
솔직히,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야, 멀쩡히 학교생활을 하던 용사가 여자로 변해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카이엔 학생이 여성으로 변한 것이...?”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몽마 릴리트의 권능에 저항하는 수련을 위해서 지도하는 특별 수련이라고.”
그런 내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준 것은...다름 아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칫덩어리였던 천마였다.
“실력이 부족한 너희들도 집중하면 느낄 수 있지 않느냐? 카이엔의 몸에서 풍기는 이 몽마의 기운, 내가 특별히 공수해 온 특수한 수련도구이니라.”
그 말에 카이엔의 기운을 살피던 교수들은 깜짝 놀랐다. 정말로 몽마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당연하지, 내가 시르카의 힘을 써서 일부러 카이엔에게서 몽마의 흔적이 남도록 처리했으니, 대마법사인 학장이 와도 이건 몽마의 힘으로 느껴질 거다.
“저, 정말로 몽마의 기운이 느껴지긴 합니다만, 이게 도대체 무슨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아티팩트 입니까?”
교수의 질문은 확실히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수련을 해야지 여성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친단 말인가?
“무술가의 기초는 음과 양의 내공을 확실히 다루는 것! 수제자 중에 양의 내공이 너무 넘치는 녀석은 이 수련을 통해 음의 내공을 다루는 법을 익힌다. 물론 카이엔은 무술가가 아니지만, 얼마 전에도 몽마여왕 릴리트와의 싸움에서 곤욕을 치루지 않았나?”
“화,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용사라 하면 몽마들의 습격은 피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은 것! 피할 수 없다면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혹여나 여성의 몸이 되어도 온전한 전투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천마의 말에 교수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몽마의 권능은 막거나 해제하는 쪽이 빠르지, 어느 미친 사람이 몽마의 권능에 걸리는 상황에 대비해서 정말 여자로 변신해서 생활한단 말인가?
“그, 그건 좀 이상한 훈련 아닙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신성력으로 권능을 이겨내는 훈련을 하는 게…?”
“그래? 너희들 중에 릴리트하고 목숨을 걸고 싸워본 적 있는 사람?”
“…그런 적은 없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 너희들 중에 릴리트하고 직접 대면해본 적 있는 사람? 아니면 그 권능에 걸려본 적 있는 사람은?”
“어, 없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천마였다.
이미 천마는 아카데미에 괴짜로 소문이 퍼져있는 상황, 게다가 나를 따라다니며 교수들에게 온갖 꼰대질을 해댄 탓에 꼰대로도 유명했다.
심지어, 아카데미의 실무진 중에 누가 마왕군의 간부나 군단장과 만나본 적이 있겠는가?
당장 4대 권속이나 군단장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영웅이 되는 세계다. 실무진 중에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대마법사인 학장이나 3대 검성 중 한명인 부학장, 아니면 아주 소수의 교수정도는 경험이 있겠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는 천마의 경험에 입각한 커리큘럼에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수련은 이미 교단에게 허가를 받은 수련인 만큼, 그대들이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 더 이상의 반박은 받지 않겠노라!”
“교, 교단에서 말씀입니까?”
“그래, 여기 교단에서 보낸 서류가 있다. 한 번 보겠느냐?”
“이, 이건 확실히, 성녀님과 교황님의 허가 하에 진행되는 중이라고 적혀있군요.”
마무리로 성녀과 교황의 인장이 찍힌 교단의 서류를 보여주자, 아카데미를 대표해서 이번 일을 살피러 온 교수들은 물러가야 했다.
참고로 저 인장, 둘 다 올가가 찍어준 거다.
어차피 교황은 이미 허수아비고 자신이 실질적인 지배자라, 교황의 인장을 복사해서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역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권위가 최고구나…’
교수들이 물러간 직후,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천마는 이제 됐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천마님. 이렇게까지 도와주실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흥, 나야 무슨 일인지 모른다만, 무슨 여신께서 내린 시련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수제자가 여자로 변하는 것을 눈앞에서 봤는데 믿지 않는 것이 우습지.”
사정을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적당한 설명만 하며 천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천마는 의외로 더 캐묻지 않고 도와줬다.
물론, 한 가지 약속은 해야했지만 말이다.
“대신 약속한 대로, 나중에 나랑 같이 태산도장에 들려서 얼굴을 비춰야 한다. 알겠느냐?”
“물론이죠,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이전에 나를 데리고 태산도장으로 끌고 가겠다던 약속을 기억하는 천마님을 위해, 나는 이후에 공화연방의 태산도장으로 가겠다고 약속을 잡아야 했다.
‘뭐, 여름방학 때 애들 데리고 가서 바캉스를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안 그래도 이전에 연인들을 데리고 해변에서 놀러 가자고 결심했는데, 이 정도면 수지타산에 맞는 거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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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 수영복차림이라, 확실히 좋겠는데.’
어제 여자 카이엔의 비키니 차림을 봐서 그런가, 내 연인들의 수영복 차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니 아르틴?”
“아, 아뇨. 그냥 선생님하고 오랜만에 실험할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좋아서요.”
“어머, 애, 애도 참! 어쩜 그렇게 부끄러운 말을 다하고...! 서, 선생님이 재료 가져올 게! 잠깐만 기다려!”
나와 연금술 동아리에서 실험을 준비하던 세니아 선생님은,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호다닥 교실을 빠져 나가셨다.
“파트너, 내가 옆에 있는 데 꼭 그런 대화를 해야겠어?”
“뭐래, 지금 이 실험을 왜 하는데, 네 변신 풀어 볼 방법 찾으려고 과외시간 까지 쪼개서 하는 거 아니야?”
“흥. 아르틴은 배려가 너무 부족해. 나에게도 상냥하게 대해주면 좋잖아?”
카이엔은 모르는 걸까? 남자가 여자로 변했다고 흥흥 거리는 걸 보고도 주먹이 날아가지 않는 것이 내 최대의 자비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봐주기로 했다. 이 녀석이 여자로 변한 후에 묘하게 여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도 조금 익숙해지기도 했으니까.
절대, 카이엔이 실험에 앞서서 하얀 가운 하나만 입은 차림으로 갈아입은 탓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아르틴, 아까부터 내 몸을 계속 훑어보던데...혹시 관심이 있는 거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있어줄래? 실험 준비 해야 하거든?”
“끔찍한 소리라니, 나 정도면 어지간한 미인보다 예쁘지 않나...?”
그 말과 함께, 카이엔은 나를 향해 다리를 쭉 뻗어 발끝으로 내 허벅지를 툭 건드렸다.
‘이런 비겁한, 다리를 쭉 뻗으면서 허벅지와 각선미를 자랑하고 가운 아래 가려진 몸매를 상상하게 만들다니!‘
...내가 진짜 어떻게 됐나? 점점 카이엔의 행동에 과민반응 하게 되는 것 같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나는 이번에 쓸 실험 방식이나 체크하기로 했다.
“흐응…이제는 반응도 안 해주네, 아니면 반응을 참는 거야? 참지 않아도 괜찮은데...♡”
“...너, 자꾸 그런 식으로 굴면 정말로 본 때를 보여줄 수──”
──콰앙!!!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아리실의 앞문이 박살이라도 날 기세로 열려 나와 카이엔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마, 마리안느 누님?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문을 열고 교실 안에 힘이 담긴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걸어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마르안느 누님이었다.
“…아르틴.”
“왜 그러세요? 화가 나신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전신에 힘이 잔뜩 들어간 누님의 모습에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누님의 시선은 내게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그 시선의 끝이, 내 옆에 있던 카이엔을 향하자, 누님의 주먹이 눈에 보일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아르틴 네가 아그네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여자를 들였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니.”
“네? 누님? 지금 그게 무슨‥”
내가 무어라 더 말을 하려는 순간.
─퍼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내 바로 뒤쪽에 있던 창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이 바람둥이! 호색한! 나, 나랑 아그네스로는 부족했던 거야!? 네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겠어!”
이 순간, 나는 상황이 무언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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