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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86화 (186/266)

〈 186화 〉 중간고사

* * *

“으어...죽겠네, 지금 몇 시지?”

눈을 뜨자, 죽을 것 같은 피로가 몰려왔다. 마치 침대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일어나기가 힘들었지만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느냐, 아르틴?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그래, 좋은 아침이야 유니코르. 내가 늦잠 잔 건 아니지? 오늘도 시험인데.”

“하아, 아직 여유가 있으니 조금 더 누워 있거라, 아니면 시온에게 말해서 목욕물을 준비해줄 수 있다만.”

내 안색의 상태를 본 유니코르는, 무척이나 걱정된다는 눈으로 나를 보라보며 내 몸을 꽉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감촉, 전신을 짓이기는 피로를 잊게 만드는 따뜻함에 나는 유니코르를 품에안고 토닥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전문가인 시르카가 도와주고 있잖아?”

“그렇지만...”

“저도 유니코르님 의견에 동의해요. 이건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라고요?”

“아, 안녕 시르카.”

그 때, 내 꿈을 통제해주고 있던 시르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통제라고 말하면 조금 이상할 지도 모른다. 정확하게는 특훈이라고 하는 게 맞을 지도 모르니까.

“주인님, 오늘 밤부터는 그만두시지 않겠어요? 잠을 자는 것도 포기하고, 무의식을 활용해 공부를 하다니, 정상적인 인간이 할 만한 방법이 아니라고요?”

“그래 맞다. 아무리 대단한 인간이라도 잠은 자고 휴식은 취해야 하는 법인데, 자양강장제만 마신다고 해결될 부분이 아니지 않느냐?”

유니코르와 시르카의 걱정 어린 표정에, 나는 반박할 말이 궁색해 그냥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요 며칠, 공부와 수련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는 잠을 포기하고 수련에 매진했다.

단순히 잠을 안 자고 공부한 것이 아니다. 지난 번 장미관 사건에서 바이올렛의 무의식의 공간, 현실과 의식의 시간의 차이를 이용한 수련법...

까놓고 말해서, 예전에 애니메이션에서 본 시간이 느려지는 공간에서의 수련법을 차용한 것이지.

‘솔직히 처음 떠올렸을 때는 왜 이걸 여태까지 생각 못했나 싶을 정도로 감탄했는데 말야.’

남들과 같은 시간을 사는데, 남들보다 몇 배나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이건 안 하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르카는 그런 나를 말렸었다.

그리고 말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몸과 정신이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것이 확연히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만약 유니코르랑 계약하지 않았다면 진작 몸이 못 버티지 않았을까? 시르카가 없었다면 무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회귀했을지도 모른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니까? 정 몸이 죽을 것 같으면 엘릭서라도 결제해서 마시면 되니까. 너희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거야.”

“피로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 이상으로 무의식에 빠져들면 육체와 정신의 괴리가 심해질 거예요. 정말로 못 일어날 수도 있어요...아니, 지금 까지 버티는 주인님이 이상한 거라고요?”

육체와 정신의 괴리라, 분명 이 훈련을 시작할 때 시르카에게 잔뜩 들었던 말이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해놓고 여자들하고 시간을 보낸 만큼, 보충은 필요했다.

물론 이전의 수준으로도 내기를 이기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나는 가능성보다 확신을 가질 정도로 수준을 높이고 싶었다.

게다가, 가장 큰 부작용인 육체와 정신의 괴리는 내게는 전혀 문제가 없는 부작용이다. 그런게 문제 됐으면 진작 회귀 직후에 죽었겠지.

‘이것도 상태창에 있던 회귀자의 특전이겠지?’

뭐, 아무래도 좋았다. 이 수련법 덕분에 요 며칠간 필기시험에 대해서는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완벽하게 볼 수 있었으니까.

“남은 건 실기시험 뿐이니까, 실기시험이 끝나면 푹 쉬면서 너희들하고 시간을 보낸다고 약속할 게, 그러니까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다?”

“...흥, 본좌와 약속하는 거다? 또 무리해서 상처입거나 다치면 정말로 화낼 것이니까!”

“정말, 아그네스나 바이올렛양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하하, 그때는 싹싹 빌어 봐야지 어쩌겠어?”

이 수련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세 사람 뿐이다. 아니, 사람 하나랑 이종족 둘이라고 해야 하나?

신체의 회복을 도와주는 유니코르, 무의식의 통제를 도와주는 시르카, 그리고 특훈 기간 내내 수발을 도와준 그 녀석.

“어머, 일어나셨나요 도련님? 식사랑 목욕, 갈아입을 옷 까지 전부 준비해뒀습니다.”

방을 나오자, 요 근래에 사용인의 일을 전부 대신 도맡아 해주는 시온이 공손하게 인사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음, 매번 고마워 시온. 하녀도 아닌데 하녀가 할 일을 전부 부탁해서 미안해.”

“후후♡, 무슨 소리를요. 도련님이 원하시는 거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걸요? 원하신다면 메이드복장으로 도련님의 수발도...”

“그건 나중에 부탁 할 테니. 일단은 식사부터 부탁해.”

“네! 스프랑 빵, 그리고 가벼운 샐러드를 내오겠습니다. 도련님~♡”

내 말에 시온은 한결 기쁜 얼굴로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사라졌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씻어볼까?

‘처음에는 저 얀데레를 어떻게 달래야 하나 걱정이 컸는데, 장미관 사건이후로 많이 얌전해 졌단 말이지.‘

정확히는 4P이후로, 간간히 내가 ‘보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시온은 만족하며 내 그림자처럼 부탁하는 일들을 충실히 수행해줬다.

아니, 만족하는 척을 한다고 말하는 게 옳겠지. 매번 내 눈치를 살피며 ‘이상적인 측근’이 되도록 노력하는 게 대놓고 보이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괴롭힌 죄책감 때문일까? 이렇게 숙이지 않으면 하렘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시온의 하렘에서 위치는 최하위에 가까우니까.

어쩔 수 없다. 아르틴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샤오메이가 내가 빙의되기 전 아르틴이 망가지는 과정을 모두에게 알려준 탓에, 바이올렛조차 시온을 꺼려하고 있으니.

물론 내가 용서하라고 부탁한다면 그런 시늉이라도 내겠지만...아르틴 당사자도 아닌 내가 함부로 그녀를 완전히 용서하는 것도 웃긴 노릇이다.

“도련님, 목욕물 온도는 괜찮으신가요?”

...뭐, 본인도 이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고.

*

“오늘 부터는 드디어 실기시험이네요! 필기의 지옥은 끝이라고요!”

“하하, 그렇게 좋아 샤오메이?”

“그럼요! 오라버니에게 보충 수업까지 들었는데 점수가 낮으면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연습했는데!”

기쁨에 방방 뛰는 샤오메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아빠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가 온 시간을 다해 공부를 하는 동안, 샤오메이도 필기를 잘 보려고 바이올렛과 아그네스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정도일 줄이야.

“아르틴, 너도 준비는 완벽해? 너는 샤오메이처럼 점수를 잘 내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

“하, 조르바 너한테 걱정을 끼칠 정도로 약하지는 않으니까 괜찮아.”

“2달 전까지만 해도 방에 틀어박혀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녀석이라 안 믿겨지는 데 말야.”

“아니요, 정말로 아르틴 오라버니보다 조르바 도련님이 걱정이라고요? 시험 잘 본거 맞아요?”

샤오메이의 엄격한 눈빛에, 조르바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르틴이 열심히 노력하는 동안, 내 하렘의 여인들과 합숙 공부를 해뒀지. 마법도 무려 2써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뭐? 정말로?”

“검술하고 무술도 너희를 따라다니면서 배운걸 토대로 기본기는 익혔어. 예전의 조르바 펠카스라고 생각하면 섭섭해.”

자신 있게 외치는 조르바를 보며, 나는 어째서인지 억울한 감각이 들었다. 나는 마법을 처음 익혔을 때 마나를 다루는 법도 이해 못해서 얼마나 몸을 비틀었는데. 몇 주 만에 2써클에 도달해?

‘빌어먹을 재능충 같으니, 아르틴의 몸도 너처럼 재능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억울한 마음에 노려보자, 조르바는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 건지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억울해하지 말라고 아르틴, 네 주변에 진짜 천재는 내가 아니라 따로 있잖아?”

“...진짜 천재?”

“그래, 저 녀석, 아니, 저 여자라고 해야 하나?”

드르륵.

조르바의 손길에 문이 열리자, 시끄럽던 교실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아니, 녀석의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조용해졌다고 해야 할까?

“크, 크흠, 그럼 다음에 우리 모임에 참석할 때 알려줄게!”

“흥, 평민인 네가 우리 티타임에 초대받은 걸 감사히 여겨도 좋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눈치를 보던 녀석들은 슬금슬금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말이지.

...저 녀석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아! 왔구나! 좋은 아침이야, 파트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다는 듯 무표정한 표정을 짓던 카이...아니 카르엔은, 나를 보며 반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외모에 환한 웃음이 더해지자,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달빛에 비친 빛나는 꽃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느낌이 이런 걸까?

옆에서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클레어의 존재감이 그 빛에 묻혀서 사라질 정도로, 이 교실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일 내비치는 모습이었다.

“이윽...질리지도 않나 봐요? 아니, 카이엔인걸 다들 알면서 어떻게 꼬시려고 드는 거죠?”

“성별의 굴레보다, 여자로 변한 카이엔의 외모가 더 뛰어난 걸 어쩌겠어? 나는 취향이 아니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야. 그렇지 아르틴?”

“..으, 으응. 그렇지. 이해할 수 없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카르엔의 옆자리에 천천히 앉았다.

“오늘부터는 실기네, 황태자 전하의 콧등을 눌러줄 준비는 끝난거야?”

“으, 으응. 뭐, 그 천마님이랑 마리안느 누님이 코치도 해줬는데, 신기록은 세워야 하지 않겠어?”

“...우엑, 가증스러워. 언제부터 밝은 성격이었다고 저렇게 밝은 척이야?”

샤오메이의 말대로, 카르엔은 내가 옆에 앉자 이전의 카이엔은 도저히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내왔다.

...본질이 변한 걸까? 아니, 다른 남자애들에게 보이는 반응을 생각하면 본질인 성격은 그대로가 아닐까 싶다.

‘역시, 그 날 있었던 일 이후로 성격이 밝아진거지..?’

나도 모르게 그날의 일을 떠올리는 그 순간.

말캉♡ 말캉♡

“...?”

“쉿.”

샤오메이가 모르게, 책상 아래로 카르엔이 내 다리를 검정색 스타킹의 발끝으로 찔러왔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가슴을 내게 밀착하며 요염한 미소를 짓고는 내 허벅지를 손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쓰다듬으며...위로...

“...!”

번쩍, 내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샤오메이와 조르바, 클레어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아, 아냐. 갑자기 벌레가 날아와서...”

“벌레? 오라버니 벌레 별로 안 무서워 하잖아요?”

“다른 생각하다가 달려들면 놀라거든...미안...”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대충 둘러대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나를 골리며 즐거워하는 카르엔을 째릿 노려봤다.

“후후후♡ 가벼운 장난에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잖아?”

“...”

방금 전 손끝으로 느낀 ‘감촉’을 음미하듯 검지를 자신의 입안으로 가져가는 카르엔.

허나 나는 그런 카르엔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카르엔과의 관계는 아주 묘하게 뒤엉켜 큰 소리를 내기 껄끄러운 상황이 되었으니까.

“이건...내 가벼운 응원이라고 생각해줘, 알았지 파트너?”

“악취미는...”

...그래, 저 요염한 눈웃음을 짓는 카르엔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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