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88화 (188/266)

〈 188화 〉 중간고사 #03

* * *

“흐아압!! 낭아풍살권!!!”

호쾌한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정권에, 가격당한 허수아비가 반짝이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네, 계측결과 2단계인 주황색입니다. 측정이 끝났으니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네? 2, 2단계라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희 가문에 대대로 전해지는 무술...”

“네, 다음 학생!”

나설 때만 해도 자신 있게 나섰던 남학생은, 조교의 단호한 외침에 고개를 푹 숙이며 실망한 걸음으로 관중석으로 향했다.

관중석이라는 표현이 맞을까? 아마 맞을 것 같다. 시험을 끝낸 녀석들과 시험도 안 보면서 구경 온 사람들, VIP의 인파들이 야외 시험장 한 구석에 몰려 시험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때문인지, 안 그래도 부담감에 긴장하던 학생들은 점점 사람이 몰려 들수록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하거나 제 실력을 내지 못해 여태까지의 성적은 현저히 낮았다.

‘슬슬 사람이 빠질 법도 한데, 절대 안 빠지고 이악물고 구경하는 모습 좀 보라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저 사람들이 이번 시험에서 기대감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은 우리 셋밖에 없을 테니까.

태산도장의 차기 장문인 샤오메이, 현 시대의 용사 카이엔, 그리고 기대의 유망주인 나.

“자, 다음 학생은...린 샤오메이. 나와서 진행해주세요!”

“음! 벌써 제 차례네요! 한 방에 끝내고 올게요. 오라버니!”

그리고 그 3명 중, 객관적으로 봤을 때 무술 실력이 가장 뛰어난 샤오메이의 차례가 가장 먼저 찾아왔다.

“샤오메이, 살살해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전력으로 나설 필요는 없어.”

“히힛, 무슨 소리에요! 드디어 제 멋진 모습을 보여줄 차례인데! 박살낼 기세로 노력할 게요!”

그러니까 박살내면 안 되니까 만류하는 건데 말이지.

“하하, 기세가 좋으시네요. 역시 무신의 따님답게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

옆에서 그런 샤오메이를 본 조교는 마치 어린 천재를 보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담당 교수인 시마다 류스케라고 해도, 아니면 거인살해자인 헬릭 교수님을 데려와도 저 ‘허수아비’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만...

‘샤오메이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나?’

샤오메이는 5번의 회귀동안 매번 내 곁에서 같이 지냈다. 당연히 나랑 관련될수록 기억을 많이 되찾은 기억회귀의 특성상, 샤오메이가 찾은 과거의 기억을 꽤 많을 테지.

...육체는 이미 이 시점에서 반쯤 완성형인 샤오메이가 전성기의 기술을 담아 ‘허수아비’를 때린다면?

‘진짜로 내 차례가 안 올지도…‘

그런 내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오메이는 당당하게 걸음을 내딛으며 시험장의 중앙으로 갔다.

“..그런데, 샤오메이 정말 천재는 맞는 거야? 나 진짜로 싸우는 건 본적이 없는데.”

“그러게? 매번 대련도 패스하니까 체력이 좋은 건 알겠는데 진짜 강한지는 모르겠네.”

“생각보다 약한 거 아니야? 그도 그럴게 근육 같은 것도 하나도 안 보이잖아? 마리안느 왕녀님은 근육도 튼튼하신데 말야!”

“아무리 그래도 무신의 딸인데, 설마 그 정도겠어..?”

샤오메이에게 시선이 쏠리자, 대기하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샤오메이가 실전 대련 같은 것에 참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내게는 그런 수군거림이 너무도 같잖아서 코웃음이 나올 정도였지만.

‘하여간 이 병아리 놈들아, 샤오메이는 교수들이 직접 나서도 상대가 안 되는데 그런 애한테 대련을 왜 시키겠어.’

당장에 허수아비 앞에서 시마다 교수에게 주의사항을 전달받는 지금도, 샤오메이를 보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은 학생들뿐, VIP들의 반응은 오히려 경악이 가득했다.

“태산도장은 무신에 이어서 또 한명의 괴물을 탄생시켰군요, 저 나이에 저 정도의 강함이라니..”

“재능의 부조리인지, 아니면 태산도장의 교육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네요. 무술만 따지면 어지간한 기사단의 단장을 뛰어넘는 수준이잖아요?”

“...후훗.”

저 봐라, 옆에서 몰래 엿듣는 천마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이해는 된다. 멀리서 엿듣고 있는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증조모인 천마님은 오죽할까.

‘뭐 당연하지, 샤오메이는 전투에 있어서는 카이엔의 동료 중에...’

──콰아아아앙!!!

내 독백이 끝나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굉음이 일대를 장악했다.

동시에 샤오메이의 시험과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던 관중들, 특히 병아리들 사이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어떠한 보법도 없이, 잠시 숨을 고르고 정신을 집중하며 내지른 정권이, 일대를 뒤흔들 정도의 위력을 품고 있던 것이다.

“7, 7단계? 측정의 최대치인 보라색이라고...?”

“휴, 그래도 간신히 부수지는 않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시마다 교수님!”

옆에서 그 자세와 과정을 지켜보던 시마다 교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그야 보법도 없이, 허리힘도 제대로 살리지 않은 펀치만으로 이 정도의 위력을 낼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겠지.

‘역시 언제봐도 정신이 이상해지는 강함이라니까.’

늘 내게는 귀여운 모습만 보이려고 하고, 활약할 타이밍이 없어서 알기 힘들지만, 샤오메이는 1학년에도 5학년에도 미친 성장을 지닌 카이엔을 웃돌거나 대등한 전투능력을 지닌, 전투한정 치트키에 가까운 존재다.

실제로 원작에서도 후반쯤에는 작가가 처리하기 힘든 적은 적당히 샤오메이와 싸워서 졌다고 묘사하고 어물쩡 넘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1회차보다 더 강해진 게 확실해 보인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허수아비’에 문제가 있나 확인 이후 다음 사람을 진행하겠습니다!”

결국, 샤오메이가 관중석으로 돌아간 뒤 허수아비를 점검하고 나서야 시험이 재개되었다. 다행히도 고장나진 않은 것 같았다.

“3단계! 1단계! 1단계! 2단계!”

“아~이런, 마지막에 허리에 힘이 잘못 들어갔네. 허리에 힘을 주는 건 그쪽이 아니면 안 익숙한데.”

2단계의 성적을 낸 후, 투덜거리는 입과는 다르게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조르바가 관중석으로 돌아갔다. 곧 이어 조교는 우리를 보며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이름을 호명했다.

“다음! 아르틴 루드비히! 앞으로 나오세요!”

“흐음, 아무래도 마지막은 내가 될 것 같네, 그치 아르틴?”

“아무래도 용사니까 최대한 마지막에 보여주고 싶나 보지. VIP들도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클 걸?”

“농담도 참, 저 사람들이 누구를 보러 왔는 지 너도 잘 알잖아. 파트너?”

요망한 미소를 짓는 카르엔, 진짜로 여자로 변하고 나서는 이 녀석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는 게 너무 힘들어,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긴장하지 마. 파트너는 노력도 열심히 했고, 재능도 있으니까...분명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거야.”

나를 달래주려는 카이엔의 아무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적당히 좋은 성적이 아니라 최고의 성적을 거둬야 하는데 말야. 그걸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만약 최고 성적을 내면, 내가 소원 하나를 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제발, 그런 거 말하면 힘 빠지니까 제발 조용히 해...”

꼭 뒤에 사족을 붙여 힘을 빼는 카이엔을 뒤로하고, 나는 조교의 안내를 받아 시험장의 중심으로 걸어 나갔다.

허수아비 앞에서 대기 중인 시마다 교수는, 다음 차례가 나라는 것을 알자 나보다도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휴우...시, 시험 준비는 됐나, 아, 아르틴 루드비히?”

‘제가 아니라 교수님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요.’

나에 대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교수님은 샤오메이가 나왔을 때 보다 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 미리 말해두지만, 아까 전 샤오메이 학생 정도로만 해도 최고점을 줄거라네, 그러니까 굳이 과도하게 힘을 줄 필요가 없어. 알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저는 샤오메이나 카이엔처럼 괴물이 아니니까.”

웃기게도, 교수님은 내 말을 믿지 않는 건지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그런 교수를 달래는 입장이 된 나는 오히려 긴장감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기분이 들자, 정신을 가다듬은 나는 ‘허수아비‘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보니까 최대한 강하게 때려도 5단계 정도가 한계일 것 같은데...’

침착하게 전력을 분석했다. 이제 막 각성의 초입인 내가 허수아비에게 최대 점수를 얻으려면 마나를 쓰는게 기본이다.

문제는, 이번 시험은 마나의 사용이 금지라는 점. 정확히는 왕국 전투술의 마나근이나 마법의 보조, 성법으로 인한 강화같은 꼼수가 전부 막혀있다.

‘그냥 마나를 통째로 주먹에 담거나, 내공을 쓰라는 건데..2단계를 어떻게 넘지?’

매 단계를 넘으려면 담아야 하는 위력이 배로 증가하는 ‘허수아비’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주먹에 담아야 하는 양은 꽤 만만치 않았다.

만족할만한 수준을 위해 마나를 담기에는 마나의 양이 아직 부족했고, 내공은 아직 미숙하다. 이제 2달 배웠는데 내공심법에 익숙해졌으면 내가 카이엔이지.

[아르틴, 본좌의 힘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유니코르?]

그때, 내 머릿속의 속삭임에 고개를 돌리자 유니코르가 관중석과 떨어진 곳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대를 응원하기 위해 왔는데, 꽤 고민이 깊더구나! 바보 같이 굴지 말고 우리의 힘을 마음껏 쓰면 되지 않겠느냐?]

동시에,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마나의 양은, 내가 알던 유니코르의 힘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었다.

[유니코르? 언제 이 만큼 강해진 거야...?]

[후후, 놀랐느냐! 아르틴이 열심히 훈련하는 동안, 본좌도 열심히 훈련했지! 우리는 영원한 계악자가 아니더냐? 그대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조금 감동이었다. 그 철부지 유니코르가 나를 위해 이 만큼이나 힘을 보태주다니.

[좋아, 한 번 해볼게. 고마워 유니코르]

그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최대기록을 세우기 위해 한 번의 정권 찌르기에, 내 전력을 더하기 시작했다.

**

‘보기 좋구나 아르틴, 그래. 그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그대의 매력이란 말이다!’

시험에 집중하기 시작한 아르틴을 보며, 유니코르는 그제서야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아르틴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약간의 머뭇거림이 느껴졌지만, 지금 이순간의 아르틴은 마왕군을 도륙할 때처럼 망설임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 유니코르! 스승님에게 힘은 제대로 전달해주고 왔습니까?”

“물론이다 알‘미라즈! 우리 셋이 모은 힘은 제대로 아르틴에게 건네줬노라!

유니코르가 수정구로 그 모습을 촬영중이던 알‘미라즈에게 돌아가자, 알’미라즈는 잘됐다는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사실 방금 아르틴에게 전달한 힘은 단순히 유니코르의 힘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아르틴과 계약했던 세 명이 힘을 적당히 모아 전력을 낼 수 있게 도와준 거였다.

시르카는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고, 알‘미라즈는 공식적으로는 바이올렛의 패밀리어인 만큼, 유니코르가 대표로 나눠줬을 뿐.

‘후후, 아르틴의 호감은 본좌가 전부 챙겼지만 말이다. 나중에 덤으로 설명해주면 되겠지!’

물론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르틴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욕구는 유니코르에게도 있었으니까. 나중에 들켜도 큰 소란이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맞다, 조심히 써야 된다는 말도 스승님께 전달했습니까? 스승님이야 알고 계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요!”

“...응? 조심히 써야한다니? 그게 무슨 소리더냐?”

“응? 아까 말했잖아? 내가 건네준 힘에는 메피스토님의 권능도 미약하게나마 담겨있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알‘미라즈?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다만? 그냥 스승님을 대신 응원해 달라고 얼굴을 붉히며 부탁한 게 전부였잖아?”

유니코르의 말에, 알‘미라즈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스승님에게 무슨 말을 전해달라 할지 고민하느라, 그 부분을 잊고 있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더냐! 잠깐, 그럼 아르틴이 지금 대악마의 권능을 넘겨받은 것이냐?”

“그야 그렇겠죠? 메피스토님에게 특별히 부탁받은 것이라, 틀림없이 스승님에게 건네줄 힘에 담아놨습니다.”

“그걸 아르틴은 모르고?”

“...그렇죠?”

───쾅!!!!!!

유니코르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순간, 마치 마왕의 권속인 블랙드래곤의 브레스라도 터진 것 같은 강렬한 폭파음이 아카데미 전역에 강타했다.

“...”

“허, 허수아비가….”

그 폭음의 중심지에 서있던 아르틴과 시마다 교수는, 터져 나온 충격파에 입고 있던 옷이 갈기갈기 찢겨질 정도였음에도, 그것을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운석이라도 맞은 것 같이 생긴 거대한 크레이터의 중심부에 있어야할 아주 비싼 시험용 관측장비 ‘허수아비’가, 가루가 되어 완전히 박살이 나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허수아비’의 주재료인 용암거북의 외피는 아주 비쌌다. 시마다 교수의 1년치 봉급을 전부 더해도 방패하나 만들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꼬르륵.”

“교, 교수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 교수님!”

눈앞에서 학과의 1년치 예산이 증발하자,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시마다 교수가 쓰러졌다. 결국 조수들이 교수를 업은 후 병동으로 뛰어나간 탓에 시험은 중지가 되었다.

“알‘미라즈.”

“네.”

“내 생각에, 우리 셋은 지금 망한 것 같구나.”

그 광경을 지켜보며, 유니코르는 깊은 후회에 빠졌다.

그냥 욕심내지 말고 아르틴에게 사실대로 말해둘 걸.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