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89화 (189/266)

〈 189화 〉 천사를 찾아라!

* * *

아카데미의 학생회실의 평상시의 분위기는, 여신이 내린 천재라는 평판과 동시에 괴짜로 유명한 리처드 학생회장이 주도하는 편이다.

리처드가 이상하고 괴상망측한 제안을 꺼내면, 동생이자 부학생회장인 아그네스가 이를 만류하고, 마리안느와 오지에가 그걸 재밌다는 듯 구경하며 의견을 더한다.

다른 간부들은 이들에게 대등하게 의견을 낼 배경도 재능도 없기에, 그렇게 매번 같은 방식으로 회의가 진행되고, 그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던 곳이 바로 리처드 학생회장의 학생회였다.

그런데 지금 학생회실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학생회장, 들었어? 우리 아르틴 보고 다들 천재라고 난리인거?”

“...”

“1학년 중간고사에서 전 과목에서 최고 점수! 그래 이건 어쩌면 당연한 거지, 당장 이번 학생회 간부 중에 이걸 못한 녀석이 어디 있어? 그 멍청한 리가르도도 1학년에는 전과목 A+이었잖아?”

“...”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이미 아르틴이 세운 점수들이 대부분 역대 최고점이더라고! 특히 실기에 있어서는 학생회장에 이어서 또 하나의 천재가 나왔다고...”

“그, 그만. 그만해 마리안느 왕녀.”

본래라면 중간고사 이후 진행될 행사들의 재정을 확인하기 위한 가벼운 소회의에 불과했을 터인데, 리처드 황태자는 아주 끔찍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이가 대단한 건 알겠어, 마리안느 왕녀. 하지만 이건 너무...”

“대단? 하! 대단? 대단으로는 부족하지! 안 그래? 아그네스?”

“...뭐, 그렇죠, 다른 사람도 아닌 제 약혼자인걸요. 후후후.”

울컥, 리처드 학생회장은 순간 튀어나온 짜증을 억눌러야 했다.

평상시에 학생회에 벌어지는 일들을 관망하며,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던 마리안느 왕녀가 계속해서 호들갑을 떠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천마와의 내기 때문에 아르틴 루드비히를 직접 가르쳤다고 하니, 자신이 가르친 아이가 전무후무한 대단한 기록을 세웠으면 저 정도 기뻐할 수는 있지 않은가?

“다들 봤지? 응? 그 단단한 ‘허수아비’가 터져나가는 거? 물론 나도 1학년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아르틴 그 녀석은 무술을 배운지 3달도 안 됐잖아? 푸흐흐.”

아니, 저 정도로 기뻐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푸흐흐라니? 늘 왕족의 카리스마를 유지하여 왕국의 암사자로 불리던 마리안느가 푸흐흐?

“저기, 아그네스? 회의를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왜요? 듣기 좋은데 조금만 내버려두죠, 학생회장님. 어차피 평소처럼 회의는 금방 끝내고 잡담이나 할 거였잖아요? 이상한 코스프레 찻집 같은 그런 거.”

“...”

거기에 평소라면 브레이크 역할을 맡았을 아그네스도 오늘 만큼은 말리기는커녕 마리안느의 이야기를 기분 좋게 들으며 맞장구까지 치고 있다.

‘얼굴에 홍조까지 띄우고... 귀여운 아그네스가 어쩌다가 저렇게...’

마음에 안들었다.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며 키워온 아그네스가 외간 남자에게 얼굴을 붉히다니?

허나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혼자의 격을 증명하라는 자신의 내기에, 아르틴 루드비히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그 격을 모두의 앞에서 증명한 셈이니까.

‘나를 보고 다들 왜 그렇게 놀라나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것 같단 말이지.’

서류상으로는 분명 낙제만 면해도 다행이었을 재능 없는 마법사였던 아르틴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직후 보여준 행보들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눈부셨다. 마치 같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혹시 마족이 아르틴 루드비히로 변장하고 잠입한 게 아닐까 싶어, 개인적으로 조사도 해봤지만 교단에서는 틀림없는 아르틴 루드비히 본인이라는 답변만을 전해 올 뿐이었다.

‘평생을 남들을 속이고 산걸까? 그것도 아니면, 가문에서 억눌렸던 천재성이 아카데미에 와서 폭발하듯이 개화한 걸까?’

...절대로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 아이를 두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을 생각한다 면 더더욱.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볼게! 아그네스는 같이 아르틴을 축하하러 갈거지?”

“음~그럴까요, 마리안느 왕녀님?”

회의가 끝난 직후, 하하호호 웃으면서 아그네스와 마리안느가 떠나자 다른 학생회 임원들도 그녀들을 따라 나가자, 학생회의 회의실은 고요해졌다.

“자, 언제까지 숨어서 이 희극을 지켜볼 셈인가요?”

“어머, 알고 계셨습니까? 바쁘신 것 같아서 일부러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배려는 감사하지만...영 내키지는 않는 배려군요. 대군주의 전령.”

“하핫! 알‘미라즈라는 이름이 제대로 있다고요? 리처드 황태자.”

리처드의 말과 함께, 커튼의 어둠 뒤에서 정장을 입은 노란 토끼가 깡총하고 튀어나왔다. 그 목에는 반짝이는 구슬이 달린 목걸이를 한 채.

“그래서, 무슨 의도입니까? 저를 이용해서 아르틴 루드비히에게 시련을 줘놓고, 그런 식으로 도와주다니?”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도와주다니?”

“모르는 척 하지 마십시오, 지옥의 악마. 아르틴 루드비히의 그 주먹에서 흘러나온 힘에는, 분명 미약하지만 지옥의 마력과 마족의 마기가 섞여있었습니다.”

“어머, 그런가요? 혹시 교단에서도 그런 것 같다고 인정했나요?”

눈앞에서 재간을 떠는 악마의 말에, 리처드 황태자는 침묵으로 대신 대답했다.

일전에 대악마와 그의 하수인의 요청에 따라, 아르틴 루드비히에게 내기를 제안한 리처드는 그 두 눈으로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남자를 확인하려고 움직였다.

그리고, 기척을 죽이고 확인하던 도중, 무술 시험에서 리처드는 똑똑히 마기와 마력을 동시에 느꼈다.

인간에게서 마기나 마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단 한 가지를 의미한다. 아르틴 루드비히가 악마나 마족을 사역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그게 동시에 느껴진다면?

아르틴 루드비히는 마족과 악마와 동시에 계약하고 있다. 그건 마왕군이 세상에 나타난 이후로 절대로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었다.

악마와의 계약은 오직 마녀에게만 허락되고, 마족과의 계약은 절대로 금지한다. 분명 북부교단과 남부교단 양쪽에서 정한 절대적인 금기였을 테지만...

“아니었죠? 천사박사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죠?”

“...”

“남부교단은 또 어떤가요? 유니콘의 계약자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초원의 사제들이 그가 수상하다고 하던가요?”

“...그러지 않아서 문제 아닙니까. 당신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물며, 당신에게 보고했던 친위대들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지 않습니까. 리처드 황태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을 텐데요?”

아픈 곳을 찔러오자, 늘 여유를 잃지 않던 리처드 황태자의 표정이 조금 무너졌다.

실제로 평소라면 자신과 아그네스를 위해 시키지 않았어도 움직였을 친위대와 백합기사단은 어색하다 못해 수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버님이, 황제폐하가 윤허하신 일이라는 겁니까?”

“쿠쿠쿡! 화, 황제? 제국의 황제 따위가 이런 일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요?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다시 한 번 리처드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제국의 만인지상이며, 제 나름대로 존경하는 모든 인류를 수호하는 위대한 황제, 에드워드 에르멘가르트는 겨우 악마가 조롱할 수 있는 암군이 아니었으니까.

[그만, 제국의 황제는 아그네스 에르멘가르트의 아버지기도 한 것을 모르느냐? 경거망동하지 말거라, 짐의 귀여운 토끼야.]

“...?! 이 목소리는?”

뿔달린 노란 토끼 악마가 차고 있던 목걸이의 구슬에서, 기분 나쁜 검은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 검은 광채는 형체가 없었지만 동시에 이 자리에 있었다. 아마 목소리의 주인이 지닌 진정한 힘에 비하면 티끌보다 작은 사념에 불과할 터.

그럼에도, 리처드는 자신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먼 옛날, 인류를 타락으로 이끌었다는 악신이 부활이라도 한 것일까?

“메피스토, 당신이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그냥 구경하기에는 무척 재밌어 보이더구나, 고작해야 짐의 토끼가 그 이름을 헛되이 불러서도 안 될테고 말야.]

“히익, 제, 제가 무슨 실수라도..?”

노란 토끼가 겁에 질려 부르르 떨자, 검은 광채는 마치 그녀를 쓰다듬는 것처럼 반짝였다. 그 직후 검은 광채 속에 붉게 빛나는 안광이 리처드를 향했다.

[그래, 네 생각이 맞다. 황제의 아이야. 너의 아버지는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럼...”

[그 충직한 기사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것, 그리고 아르틴의 존재를 윤허하고 네 고지식한 아버지가 아그네스의 약혼자라고 칭하는 아르틴을 벌하지 않는 이유. 그건 황제의 의사가 아니다.]

검은 광채의 끝자락이, 천천히 위를 가리켰다. 그 뜻은 더없이 명확했다.

[최초의 황제, 살아있는 초월자, 현 인류의 유일한 승천자이자, 제국의 인간신.]

──제국의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만인지상 황제, 그 위에 존재하는 더욱 위대한 존재.

인류를 지탱하는 등불이자 희망, 제국의 방파제이며 정신적 지주인 살아서 곁에 남은 신.

[──천제?? 에드워드. 그 남자는 이번 일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노라.]

[이 우스울 정도로 불합리한 게임판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나의 친우인 아르틴 루드비히라는 것을.]

그 직후, 악마들의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학생회실을 가득 채웠다. 지성에 있어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천재라고 여겨지는 황태자가 바보처럼 난색을 표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던지.

*

중간고사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나는 오히려 기분이 불쾌하기만 했다.

유니코르가 내 애정을 독점하려다가 사고가 터져서? 아니.

천마님이 내가 태산 도장으로 돌아갈 때 까지 아카데미에 남겠다고 선언하셔서? 조금.

또 빌런들 처리하는 일상이 지겨울 것 같아서? 그건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가장 큰 이유는 되지 못했다. 지금 내가 꿀꿀한 기분을 곱씹는 이유가 2개나 되는데도 말이다.

“시온, 다시 말 해봐, 내가 잘못 들은 거지?”

“아뇨, 도련님...교내에 오라버니가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누이인 뮤리스 루드비히 양..아니, 그 년에 의해서 말이죠.”

굳이 양이라고 부른 것을 다시 년이라고 정정하다니, 보통은 반대로 정정하지 않나?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뮤리스 그 망할 년의 이름이 왜 내 귀에 들어오게 되는 건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이름에 기분이 많이 나빠졌지만, 그보다 더 좆같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백작이..뭐라고?”

“레오날드 와이즈 백작이, 도련님을 직접 만나 사과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와이즈 백작 말고, 와이즈 백작이 누구랑 온다고?”

“아...그게 저...”

시온은 무척이나 떨리는 눈으로 말을 더듬었다. 허나 내가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으로 계속해서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도련님의 아버지인 루드비히 남작이 가신단의 자격으로, 같이 아카데미로 향했다고...”

“하, 씨발.”

이런, 나도 모르게 쌍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시온은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린 것처럼 몰을 파르르 떤다.

“저, 도, 도련님...죄송...”

“아니야, 너 때문에 욕한 거 아니야, 미리 알려줘서 고마워, 나중에 알았으면 좆같아서 뒤집어 엎을 뻔 했으니까.”

여하간, 다시는 듣고 싶지 않던 이름들이었다. 만약 기습적으로 들었다면 렉스턴한테 했던 것처럼 돌발적으로 욱해서 미친 짓을 저질렀을 테지.

루드비히 가문, 그 곳에 좋은 추억이라고는 진짜 단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저, 그, 그 대신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

“...좋은 소식? 뭐?”

“그, 파란 머리 천사에 대한 소문을 조금 들은 것 같거든요!”

천사! 중간고사 기간 내내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한 탓에 골치가 아프던 내게는 정말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 말에 호응하듯 동시에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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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지상에 강림한 천사

위대한 천사, 사르디엘이 인간들을 위해 지상행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은 계시를 받은 천사박사 토마스의 부탁을 받아 사르디엘을 찾아야합니다!

특히 용사의 대리인은 사르디엘을 꼭 잘 챙겨줘야 합니다!

퀘스트 조건 : 천사 사르디엘을 찾으세요!

퀘스트 보상 : 천사 사르디엘의 동료화.

현재까지 발견한 흔적 : 0개.

­발견한 단서­

단서1 : 천사 사르디엘은 파란머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남은 퀘스트 완료 시간 : 14일

TIP : 이번 퀘스트는 정말 중요합니다! 최대한 클리어를 위해 움직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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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 녀석도, 기묘할 정도로 이 퀘스트의 클리어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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