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마왕군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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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성의 최심부. 왕의 알현실.
마왕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 건설된 이 곳은, 언젠가 다시 깨어날 마왕을 위해 세워진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대한 공간이다.
그러나 마왕이 잠든 긴 세월동안, 알현실은 제 목적을 상실했다. 마왕과 대면할 유일한 공간은, 인간세계를 어떻게 파멸시킬지 의논하는 회의실과도 같은 자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 처음 발을 들인 보리스 타타르기르 대주교는 피부로 오싹오싹 느껴지는 중압감에 전율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압도적인 기운...마왕은 분명 아직 봉인된 상태라고 들었는데, 봉인된 상태로도 이만한 존재감을 뿜어내다니...역시, 인류가 마족에게 대항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북부교단의 대주교이자 차기 교황후보, 위대한 여신의 대리인이자 자비로움으로 이름이 드높았던 그는, 동시에 검은 태양 교단이라는 이름으로 300년간 북부 교단을 뒤에서 은밀히 조종했던 이단의 수장이기도 했다.
300년 전, 마왕이 도래한 이후 그들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힘을 찾던 중 발견한 고대의 인신공양의 주술.
이를 이용해 제물을 바치고 육체를 갈아타며 끊임없이 교단을 먹어치운 결과 보리스는 제국의 황제가 부럽지 않은 권력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니, 황제보다도 나았다! 결국 살아있는 초월자인 천제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황제에 비해, 자신이 겉으로나마 모시던 여신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천벌을 내린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 그 빌어먹을 성녀만 아니었어도 지금도 그 절대적인 권위를 손에 쥐고 있었을 텐데..!’
스스로를 여신의 화신이라고 칭하는 성녀들은, 이전까지만 해도 무척이나 쓰기 좋은 도구에 불과했다.
다루는 방법도 간단하다. 적당히 착실한 성직자들을 붙여 교육 시키고, 적당히 선행을 베풀게 하고, 적당히 머리가 크면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감언이설로 꼬득인다.
이렇게 어두운 세상이니만큼, 성녀야 말로 올바른 모습으로 신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적당한 말로도 그녀들은 의심하지 않고 종단의 보기 좋은 인형이 될 것을 자처했다.
어쩔 수 있겠는가? 평생을 교단에서 나고 자랐으니, 멍청할 정도로 순진하게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 가끔 머리가 영특한 녀석이 나와도 깨달을 쯤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속박해놓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번 성녀 올가 비르투스는 달랐다. 분명 자신의 새장에 가둬놨을 터인 망할 탕부는, 어느새 새장을 벗어난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자신이 누구인지, 수족은 누구인지, 어느 방식으로 교단을 집어삼켰는지 전부 알고 있는 듯 철저하게 약점만을 노려 공격해왔다.
보리스 대주교가 그녀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검은 태양 교단은 전부 박살이 나있는 상태였고, 교단의 흑기사들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직전이었다.
‘젠장, 평생을 모아놓은 보물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쳐야 하다니, 기습만, 기습만 아니었다면 간부들을 움직여 흑기사 따위는 전부 쳐죽일 수 있었을 텐데!’
제국의 삼검성, 공화연방의 오신장에 비하면 교단의 정예는 강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당연하다, 정말 강력한 북부교단의 정예들은 보리스가 전부 자신의 수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정예들도 기도 중에 갑자기 등 뒤에서 날아오는 칼날이나 빵에 들어있던 독은 견디지 못했다. 맹독이라니, 설마 성녀가 직접 건네준 빵에 독이 들어 있을 줄 누가 예상이나 하겠는가?
그렇게 보리스는 자신의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서방님의 복수’라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분노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마왕의 땅으로 허겁지겁 도망쳐왔다.
그런 그가 지성이 없는 마수가 아닌 리치 하몬의 눈에 먼저 발견되어, 군단장이 될 것을 제안 받은 것은 틀림없는 행운이었다. 완전히 몰락하여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복수의 기회를 얻은 셈이니까.
‘반드시, 반드시 나는 이곳에서 힘을 길러 돌아갈 것이다. 내 왕국을 되찾고, 올가 비르투스, 그 망할 탕녀를 살점을 도려내어 고통스럽게 죽게 해주마!’
쿵! 보리스가 탁자를 내려치자 그 모습을 본 릴리트가 미소를 히죽였다.
“어머, 새로 온 신입이라 그런가? 의욕이 엄청 넘치는데~♡ 하몬은 어디서 이런 보잘 것 없는 늙은이를 데려왔데?”
“..뭐? 늙은이!?”
“왜? 맞잖아 신입? 혼은 말라비틀어져서, 젊은 영혼를 탐해야지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니 너무 추하지 않아?”
“남자의 추잡한 욕망과 더러운 정기로 젊음을 유지하는 몽마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하찮군.”
“...너어! 카르지오네!! 그따위로 말 하지 말랬지!”
자신을 비웃은 흑발의 여인을 향해 살기를 내뿜는 릴리트, 그러나 오만한 표정의 여인은 그런 릴리트의 살기에도 눈도 깜짝 하지 않고 오히려 비웃음을 터트렸다.
“겨우 인간에게 권속과 권능의 일부를 잃은 네년이, 감히 나와 대등하다고 여기는 건가? 착각하지마라 릴리트. 너와 나는 종의 그릇부터가 다른 존재니까.”
“이. 이익...! 너도 당해보면 말도 안 나올걸, 카르지오네!”
몽마여왕에게 이토록 오만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것은, 한때 모든 용들을 지배하여 신과도 같은 권능을 누렸던 분노의 권속, 카르지오네 뿐이었다.
“누가? 내가? 인간에게? 웃기지 마라, 전대 드래곤 로드가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반푼이 같은 그 딸년이 로드를 자처하는 지금, 감히 내게 대항할 수 있는 필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화연방의 천마조차 내게 패배하여 은거해야 했거늘. 학생 따위가?”
“아 그래? 네 비늘에 상처를 냈던 과거의 용사를 권능 하나로 자멸시킨 건 바로 나였거든? 아니면 정말 전력으로 붙어볼까? 노처녀 파충류?”
“나쁘지 않지, 마왕의 창부를 내 손으로 죽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겠어?”
“자, 잠깐!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왕님의 알현실 아닙니까!?”
단신으로 마왕성을 무너트릴 수 있는 두 존재가 투기를 드러내자, 보리스가 다급하게 외쳤으나 주변에 있던 간부들은 하나 같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네가 말릴거야? 권속 끼리 싸우는 데 군단장이 끼어들면 좋은 꼴을 볼 리가 없잖아?”
“맹인 검객 카이사쿠! 무신과 대등한 강자였던 당신이라면 말릴 수 있지 않겠소?
한 때는 무신을 뛰어넘을 젊은 천재라고 불렸지만, 무신과의 결투에서 두 눈을 잃고 힘줄이 잘려 마왕군에 의탁한 카이사쿠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의 육신은 마왕의 권능이 깃들어 전성기 그 이상, 지금은 무신조차 적수가 안 된다고 자신했지만 마왕의 직속 간부인 권속과 칼을 겨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군단장 중 가장 강력하다는 망령왕도 저 녀석들과 싸우면 죽을 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괜히 나설 필요는 없지.”
“그, 그럼 어쩌란 말이요?! 저렇게 내버려두다간 정말로 우리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요!”
“재잘재잘 시끄럽기는, 그냥 조용히 지켜보기나 해.”
──기이이익! 알현실의 문이 굉음을 울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왔잖아?”
카이사쿠가 손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로브를 입은 해골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알현실의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보리스는 그 즉시 고개를 숙인 채 들어온 해골을 향해 예를 갖췄다. 아니, 보리스 뿐만 아니라 릴리트와 카르지오네, 싸움을 구경하던 다른 간부들도 가볍게나마 그 존재에게 예를 갖춰야만 했다.
허나 아무도 이 광경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리치 하몬’, 마왕군의 2인자이며 현 마왕의 대리인인 그라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이기도 했으니까.
[유쾌하지 않군. 마왕님의 알현실에서 지금 무엇을 하는 중이지?]
“그, 그게...카르지오네가 나한테 시비를 걸었다고! 나보고 더러운 정기를 빠니, 하급한 종이니 뭐라 하잖아!”
“나는 인간에게 패배한 패배자가 새로운 신입 군당장을 멸시하길래 주의를 준 것 뿐이다만.”
“봐! 지금도 나를 보고 패배자라고!...”
[그만.]
순간, 과할 정도의 정신파가 리치 하몬에게서 퍼져 나오자 두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떨고 말았다.
[우리는 그런 사사로운 싸움을 하려고 모인게 아니다. 마왕님의 직속 권속인 릴리트의 권능에 맞서 싸운 새로운 용사에 대해 논하기 위해 모인 것이지.]
“...끄응.”
아픈 곳을 찔려 앓는 소리를 내는 릴리트를 지나쳐, 하몬은 마왕이 앉아야 할 옥좌에 오만한 자세로 앉아 이 자리에 모인 마왕군의 간부들을 내려다봤다.
그 불순한 태도는 오만의 권속이라는 말을 그대로 표현한 모습이었으나, 아무도 그에 대해 큰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 또한 당연했다. 과거 7대 권속이 멀쩡하던 시절에도 마왕에게 도전할 권리와 힘을 동시에 지닌 자는 오로지 하몬이 유일했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더더욱 힘이 강해져 3인자인 카르지오네조차 그 힘의 끝을 알 수 없었으니까.
“그게 간부들을 전부 모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가? 그저 릴리트가 장난을 치다가 벌레 같은 인간에게 패배한 것이라면, 군단장을 보내서 처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생각이 짧군 카르지오네, 비록 지금은 애송이라고 하나, 반대로 애송이의 몸으로 릴리트의 권능을 일부나마 견뎌낸 자들이지.]
카르지오네의 발언에 리치 하몬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방심, 그 방심이 그토록 수많은 패배와 교착상황을 가져왔음을 아직도 모르는가?]
“...벌레를 상대할 때 진심을 내보이는 얼간이라도 되라는 건가?”
[되어야지. 그것이 우리의 왕을 위한 것이라면. 그 벌레가 왕을 죽일 독을 가진 벌레라면 더더욱.]
하몬은 용사라고 불리던 인간들을 떠올렸다. 그들중 진짜로 마왕님과 견줄만한 강함을 지닌 존재는 단 한명도 없었으나, 그들은 언제나 마왕님을 해할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용사인 카이엔 실버소드와 릴리트를 몰아넣은 아르틴 루드비히. 두 사람이 여신의 대리인으로 임명받았다고 하더군.]
“그게 뭐...”
[마왕님이 깨어나시기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이상 귀찮은 벌레가 계획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되지.]
카르지오네의 말을 끊은 하몬은, 손가락을 3개 펴보이며 간부와 군단장들을 눈으로 살폈다.
[본래 아카데미에 보낼 기동대에는 상급 마족을 보낼 참이었다만, 계획이 바뀌었다. 3명, 군단장과 간부 중 3명을 뽑아 아카데미를 습격하마]
“...뭐? 3명? 지금 장난하는 거냐?”
이 말에 만큼은 카르지오네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하몬을 바라봤다.
마왕군의 간부가 3명이나 움직인다는 것은, 나라를 멸망시킬 만한 전력을 3개나 투입하겠다는 소리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간부가 3명 이상 투입된 전선은 지난 수백 년간 늘 제국의 전선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국을 향하는 전선을 텅텅 비울 셈이냐? 지금도 교착상황에 빠진 전선에 간부가 셋이나 빠지면, 제국의 천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그럴 가치가 있다고 나는 말하고 있는 거다. 카르지오네.]
하몬의 태도는 단호했다. 카르지오네는 그런 하몬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대다수의 간부들도 카르지오네와 같은 반응이었으나 하몬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아르틴 루드비히, 그리고 카이엔 실버소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절대로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여흥으로 만들어낸 가축의 행보를 마법으로 지켜보던 하몬은, 일찍이 아르틴 루드비히와 카이엔 실버소드를 관측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위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가축은 초원의 왕의 권능을 도둑질해서 강하게 보였을 뿐, 본래는 중급 마수따위 같은 버러지 괴물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당시에 권능도둑을 겨우 처리했던 두 사람이 1달이 지나기도 전에 릴리트의 계획을 방해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점이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다. 그대로 뒀다가는 정말로 마왕님에게 해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 지금 박살내는 것이 유효할 터.’
특히, 아르틴 루드비히. 그 어린 인간에게는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지금 죽이지 못하면 죽일 기회를 영영 놓쳐버릴 것만 같은 직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계획에 변함은 없다. 아카데미의 습격은 간부 셋을 보내겠다. 목적은 하나, 용사들을 확실하게 죽이도록.]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두 인간은 상상하기도 힘든 속도로 강해지고 있을 것이라고 리치 하몬은 확신하고 있었다.
***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욕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얌전히 계세요 도련님, 자꾸 얼굴근육이 움직이니까 화장이 어긋나려고 하잖아요?”
“...그으...래애...윰즌흐...이쓸그...”
나를 타박하는 시온의 말에, 나는 이를 악 물고 최대한 얼굴 근육이 꿈틀 거리지 않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역시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나는...
‘시발, 여장이라니, 천사 하나 찾겠다고 여장까지 해야 한다고?’
내가 왜 여장을 해야 하는 지, 도저히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어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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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 좀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는 속눈썹을 좀 더 높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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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미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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