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92화 (192/266)

〈 192화 〉 천사를 찾아라! #03

* * *

나의 굳건한 의지는, 상태창의 무한 알림소리에 결국 꺾이고 말았다.

─1순위 : 천사 사르디엘 찾기 / 세니아 선생님 보호하기.

‘내가 하다하다 상태창에게 굴복을 하게 되는 알이 오다니...’

차라리 저번처럼 패널티를 걸고 협박했다면, 배째라고 당당하게 나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들을 위해 천계에서 내려왔다는 천사 사르디엘, 그리고 그런 천사를 수상할 정도로 찾길 바라는 상태창의 집요한 집착은 이기지 못했다.

참고로, 절대 사진이랑 쓰리 사이즈를 보고 굴복한 게 아니다.

진짜로.

“크흠, 뭐. 아무튼 찾기로 정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천사님을 찾는게 중요한데..”

문제는 이 천사 아가씨를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냐는 문제였다.

그냥 찾아보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냥 발품만 조금 팔아서 찾을 수 있다면 북부 교단에서 이미 사르디엘을 찾아서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는 건, 어디 숨어있거나 붙잡혀 있다고 보는 게 맞는데...’

나는 힐끔 내 등뒤에서 어깨를 주무르는 시온을 바라봤다.

“시온, 슬슬 보상도 전부 준 것 같은데, 찾아온 정보를 말해주지 않을래?”

“흐음...아직 조금 부족한데...♡ 도련님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방금 전 펠라치오 봉사도 시온이 정보를 찾아 왔다는 말에 상으로 허락해준 거였는데, 시온은 그게 모자라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이 서큐버스 같은 녀석, 진짜 몽마인 시르카도 이렇게 기브 & 테이크를 요구하지는 않았는데.

“후, 좋아. 이번에 천사 찾는 거 제대로 도와주면, 일일 데이트 일정 넣을 때 시온 너도 챙길 수 있게 도와줄게.”

“...일, 일일 데이트요...? 저, 정말인가요 도련님?!”

내 말에 시온은 기대감이 가득 담긴 보기 드문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는 표정도 지을 수 있는 녀석이었나.

‘하긴, 본인만 데이트 못할 줄 알고 있었을 텐데 기쁘기야 하겠지.’

내 하렘에서 본처들과 사역마인 시르카, 제자인 알‘미라즈, 스승님들은 각자의 발언권을 지니지만, 시온은 다르다.

이전에 말한 원래 나를 꾸준히 괴롭혀온 과거 때문에, 마왕군의 간부 후보생이었다가 탈락한 시르카보다도 입지가 안 좋은 시온은 데이트는커녕 나랑 단둘이 있는 것도 못마땅하게 보는 연인이 있다.

심지어 대외적으로도 같이 다니는 것을 숨기고 있는 만큼, 데이트 같은 행동은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일이나 마찬가지.

“하루, 같이 변장하면서 가볍게 데이트 해줄게. 봉사도 그 날 채워줄 테니까 그걸로 상이 됐으면 좋겠는데. 어때 시온?”

“...하루 종일..? 도련님하고..? 밖에서? 게다가 밤에는 봉사까지..?”

갑자기 시온이 절정이라도 느낀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뭔가 싶어서 얼굴을 살펴보니, 새빨갛게 물든 얼굴에 뱀과 같은 노란 눈이 반짝이고 있다. 마치 눈앞에 있는 먹잇감을 노리는 그 광기어린 눈빛에, 나는 어느 순간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좋아요! 정보..아니, 정보가 아니라 목숨을 바치라면 바칠게요! 저번처럼 미끼역할도 상관없으니까!”

“어? 어어...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고, 일단 정보 먼저 주지 않을래...?”

시온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자, 나는 움찔 놀라며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욕이 너무 과하게 들어간 것 같긴 한데...괜찮겠지?

...괜찮아야 할 텐데.

*

“어라, 여기는 학생회 비품 창고 중 하나 아니야?”

잠시 후 시온을 따라 내가 찾아간 곳은, 내가 2달 전에 샤오메이, 아그네스, 바이올렛하고 회의를 나누던 학생회의 창고였다.

“네, 여기에 단서들을 수집하고 있었거든요. 아그네스 황녀님이 아르틴을 위해서라면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어요.”

“그래? 역시 권력과 뒷배는 있고 볼일이구나.”

매번 회귀 후 다시 시작할 때 마다 빈털터리로 시작하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웅장해지는 편의성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그걸 무마하거나 도와줄 권력자의 존재는 무척 편하구나.

유착관계의 참맛을 음미하며, 나는 시온을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여기? 내가 알던 창고랑 전혀 다른데...?”

그런데, 창고 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뭐야? 이 테이블? 침대? 소파? 완전히 귀족 휴게실이잖아?”

먼지를 겨우 치워내서 쓰던 임시 모입 장소였던 창고는 지금이라면 살롱이 부럽지 않은 작은 쉼터가 되었다.

“그야 당연하죠. 이곳을 쓰는 건 도련님하고 하렘 멤버들과 친구분들이잖아요? 그 용사랑 용사를 따라다니는 얼빠년을 제외하면 다들 VVIP라는 말이 모자란 분들이라고요?”

“아니, 아니 분명 그렇기는 한데...”

“아그네스님에게 리모델링도 허락받아서, 그 악ㅁ...아니, 알‘미라즈랑 같이 싹 갈아엎었답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도련님?”

마음에 드냐고? 웃긴 말이었다.

‘숨겨진 비밀기지를 도대체 어떤 남자가 싫어해?’

연금술 동아리가 지금 공식적인 모임 장소가 되었지만, 역시 오고가는 눈이나 위치가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 아닌가.

“따라 오세요. 지하에도 공간이 있거든요? 단서는 거기에 다 모아놨아요.”

“세상에 세상에, 지하 비밀 공간까지 있다고? 당장 둘러볼래!”

들뜬 마음으로 지하를 따라 내려가자, 그곳에는 위층의 3배는 되는 크기의 지하실이 멋들어지게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내가 이 멋진 아지트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동안, 시온은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상자 하나를 들고 와 내 앞에 내려놨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나무 상자는 꽤나 묵직한 물건들이 들었는지, 테이블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무거운 소리가 쿵하고 울렸고, 그 상자를 보니 나는 미뤄뒀던 궁금증이 떠올랐다.

“그보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단서가 뭐 길래 여기에 숨겨 놓은 거야?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않아?”

“...으음, 이건 도련님이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말로 하면 좀 그런 거라..”

“말로하면 좀 그렇다고? 시온 네가 꺼려할 정도의 물건이라고? 도대체 뭐길래?”

빌런을 처리하라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오장육부에 레이피어로 구멍을 뚫어주는 시온이 미간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자, 나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에 상자에 손을 가져다대기가 싫어졌다. 이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설마 천사님의 신체 일부라도 들어있나...?’

내가 손을 뻗길 꺼려하자, 그 즉시 상태창이 귀신같이 내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

TIP : 지금 당장 단서를 확인하세요! 머뭇거리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아요!

─────────────────

‘훈수 한 번 이악물고 두네, 여태까지는 어떻게 참은 거야?’

나는 조금 어이없는 표정으로 상태창을 보다가 꺼버린 후, 한숨을 내쉬며 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래, 설마 보면 미쳐버리는 저주받은 아티팩트나 폭탄 같은 위험한 물건이 있겠어? 시온이 이미 확인한 건데!’

덜컥! 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개봉했다. 그 안에 들어있던 건...

“...책? 전부 책이잖아? 단서라는 게 이 책들이었어?”

상자 안에는 15권이 넘는 책들이 놓여져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표지를 종이 커버를 씌워서 가려놓은 책들이라는 점정도?

“게다가 이거, 소설이나 학술적인 책도 아니고 전부 만화책이잖아?”

내가 책들을 들어 펼쳐 확인해보니, 하나 같이 그림이 꼼꼼하게 그려져 있는 만화책들이었다.

그것도 소녀만화처럼 선남선념들이 수려하게 그려진 데다가, 채색까지 완벽하게 되어있는 이 책들은 현대의 인쇄기술을 이용해 출판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상한 퀄리티를 자랑하고 있었다.

“네, 책이에요. 그것도 아카데미 내부에서 요즘 암암리에 돌고 있는 만화책이죠. 저주받지도 않았고 마법적인 장치도 전혀 없는, 아주 평범한 만화책이랍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안쓰럽다는 눈으로 쳐다봐 시온? 그보다 이게 어떻게 천사에 대한 단서가 되는 건데?”

이상한 점은, 책에 대해 설명하는 시온의 눈이 나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일까.

“...그, 종이 커버들을 벗겨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종이 커버를?”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쩐지 불길함 예감이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며 종이커버를 천천히 벗겼다.

“──으아아악! 씨발!”

그리고 내용물을 확인한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책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내가 방금 뭘 본거지?

“..설마. 설마 이게 전부?”

나는 방금 본 것을 믿을 수 없어, 하나하나 책의 종이 커버를 벗기며 내용물을 확인했고, 그결과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어느날 여자가 된 나를 용사님이 너무 좋아해!』

『평범한 남작가의 영애였던 내가 황태자와 왕자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백작가의 악역이 내게 고백했다.』

『용사를 소유하는 101가지 조교법.』

하나 같이 어떻게 보면 평범한 여성향의 만화에 붙을 법한 제목들. 문제는 그 표지에 그려진 사람이 너무도 눈에 익숙했다.

“..이건 여자처럼 그린 나, 이건 근육질처럼 그린 나, 이건 바니걸 복장을 입은 나...?!”

“네, 맞아요 도련님. 그 책의 주인공은 전부..도련님이에요.”

하나 같이 그림체는 달랐지만, 누가 봐도 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그려져 있었다.

그냥 나를 소재로 했다면 모르겠지만, 이 책들의 소재는 하나 하나가 전부 내 정신을 파괴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것들 이었다.

“이건 내가 TS되서 카이엔에게 당하는 거고...이건 내가 여자인데 아그네스랑 마리안느 누님이 남자인 거...내가 여자인데 유니코르가 남자인거...아니 시발, 내가 남자인데 유니코르랑 조르바랑 삼각관계 구도인 책은 또 뭐야? 아르틴X렉스터어어어어언?!”

사실 내가 언급한 것들은 무척이나 약한 소재에 속하는 편이었다. 언뜻 보니까 지난 번 나에게 두들겨 맞았던 오크녀석이 표지에 그려진 만화가 있었는데, 그건 차마 제목을 확인할 염두조차 나오지 않았다.

좆토피아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은 만화책들, 나는 당장 마법으로 이 책들을 불태워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머리가 잠식되어가고 있었으나,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억누르며 설명해 달라는 눈으로 시온을 바라봤다.

“이 만화는 전부...조르바 펠카스에 의해 불건전한 창작물 생산으로 폐쇄된 만화부의 동아리 회원들이 만들어낸 만화에요. 그것도 단 2주 만에 말이죠.”

“...2주? 이 좆같은 책들이 2주 만에 나왔다고?”

만화부 동아리, 이제 기억났다. 내가 유니콘에게 선택받은 직후 나랑 조르바를 엮어서 이상한 책을 만들었다가, 연금술 동아리에게 동아리실을 뺐겼던 녀석들.

정신이 어지러웠다. 그 짓을 하다가 동아리를 폐쇄당했으면 얌전히 있어야 할 텐데 나를 소재로 동인지를 계속 제작하다니?

게다가 책이 15권정도 되니, 이 좆같은 동인지들은 하루에 1권 이상의 속도로 제작이 된 거다. 그것도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넘는, 풀컬러 만화책이 하루만에!

“그게 가능해? 아니, 제국에서 만들려고 마음먹어도 무리인 수준 아니야? 사람을 갈아 넣는다고 될 수준이 아니잖아?”

“그렇죠. 평범하게 생각하면 1달에 1권도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그렇지만...”

시온은 책 몇권을 무작위로 들어올리고는, 작가의 말이 적혀진 맨앞페이지를 펼쳐서 내게 보였다.

“이게 뭔데? 그냥 작가들이 누구에게 감사하다 적는 페이지...”

“네, 그 감사한 대상이 중요한 거죠.”

나는 표정이 확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모든 만화책의 작가의 말을 전부 확인하며 대조해보고 나서야 지금 이 상황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에 인정받지 못한, 허나 숭고하고도 고귀한 취향을 지닌 이들을 위해 이 만화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정신적 지주이자 후원자, 멘토이신 사르디엘님이 있었기에 우리는 도전할 수 있었다. 세상은 우리를 탄압하지만, 여신님은 우리의 진정한 사랑의 추구를 응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해당 작품은...”­

멘토 사르디엘.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 모든 책의 작가의 말에 빠짐없이 적혀있었다.

“이게...?”

“수상하지 않나요, 도련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한 이들의 후원자이자 도우미가 천사님과 이름이 같다는 사실이.”

“...”

“심지어, 2주전이면 천사님에 대한 퀘스트를 받은 시점하고 많이 비슷하죠?”

반박을 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하지만 시온의 추론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가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믿기 싫었다.

천사가 지상에 강림해서 처음으로 하는 게...나를 주인공으로 이 좆같은 동인지를 작성하는 거라고?

아니지? 이거...악마가 천사님 억까하는 거지?

─띠링!

─────────────────

천사 사르디엘에 대한 단서를 획득했습니다!

­발견한 단서­

단서1 : 천사 사르디엘은 파란머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서2 : 천사 사르디엘은 만화부에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

아니네 시발.

“동료...동료로 들이는 게 맞을까?그냥 악질 그 자체인 것 같은데?”

나는 이 악의에 가까운 집착이 어린 동인지들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상태창이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빌어먹을 상태창 새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