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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93화 (193/266)

〈 193화 〉 천사를 찾아라! #04

* * *

다음 날, 아침조회가 끝난 직후 나는 시온과 만나기 위해 시계탑으로 향하기로 했다.

본래라면 다른 애들의 손을 빌려서 찾아다녔겠지만, 그 괴상망측한 만화를 차마 애들한테 보여주면서 같이 찾자고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파트너. 같이 가자.”

“...하아, 제발 나 혼자 가면 안 되겠니? 뭐 재밌는 거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니까?”

“어라, 내가 남자로 돌아가기 전 까지는 붙어다니기로 한 약속을 잊은건 아니지?”

“...”

이 망할 녀석 하나만 빼고, 카르엔은 곧 죽어도 나랑 같이 다니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을 했지만, 여자로 변한 일을 들먹이며 은연중에 협박을 하는 탓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다녀야 했다.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이상한 행동 하지 말고, 치명적인 척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았지?”

“후후...♡ 파트너는 날 못 믿어?”

“응, 못 믿어. 지난번에 나한테 무슨 짓을 해놓고. 아니,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래, 아무 일도 없었지. 아쉽게도”

조금 아쉽다는 투로 말하는 녀석에게, 나는 주먹 한 방을 배때지에 꽂아 넣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뭐? 아쉽게도? 그 날 내가 얼마나 이 악물고 참았는지 알아?‘

그 날,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끌어낸 덕에 카르엔과 그 이상의 일은 없었다. 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참아내는 모습을 보자, 카르엔도 강제로 밀어붙일 마음은 없다는게 사실이었는지 순순히 물러나기도 했고.

‘하지만 역시 이상해. 카이엔이 여자가 됐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이렇게 반응하는 건 이상하잖아?’

요즘 내가 이상한 것은 확실히 자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당연히 시르카나 상태창, 둘 중 하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거지. 증거가, 빌어먹을 상태창. 도대체 뭐가 내가 좋아하는 이벤트야?’

이 부분을 말 꺼내기만 하면 귀신 같이 조용해지면서, 사르디엘 이야기만 나오면 시끄러워지는 상태창이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눈웃음을 히죽거리는 카르엔을 짜증난다는 눈으로 흘겨봐준 후,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샤오메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라버니, 오늘도 그 천사를 찾으러 가시는 건가요?”

“그래야지. 어차피 기연을 찾는 다고 생각하면 이만한 기연도 없고. 내가 수업을 열심히 들을 이유도 없잖아?”

“오라버니가 안 듣는 건 상관없는데, 매번 교수님들이 저희 얼굴만 보면 활짝 웃다가 오라버니가 없는 걸 알면 나라 잃은 표정이라...”

“...”

확실히 시험 성적이 공개된 후로, 나를 보는 교수님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기는 했다.

심지어 세니아 선생님도 요즘 들어서 자꾸 연금술에 깊은 관심 없냐고 묻더라. 마왕을 해치워도 세상은 돌아갈 텐데, 연금술은 절대 안 굶는 직업이라나?

‘그렇다고 내가 대학원생을 할 리가 없지만, 지금도 바빠 죽겠는데 교수 뒷바라지를 어떻게 해?’

세니아 선생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세니아 선생님의 밑에서 일한다고 해도 대학원생은 무리다. 연인으로써, 은사로써 선생님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분이지만...휘하에 있던 대학원생들은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고.

“혹시나 너네한테 대신 말해달라고 하면 별 생각 없다고 말해둬, 귀찮게 굴면 천마님 핑계대고.”

“아...증조모님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하긴 하겠죠...”

천마의 소문은 아카데미에 자자한 상황, 교수들도 그녀의 수제자인 나를 함부로 건드리고 싶진 않을 터다. 물론 샤오메이는 그 사실에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지만.

“오라버니, 증조모님은 도대체 언제 고향으로 간데요? 저 요즘도 증조모님이랑 마주치면 부끄러워 죽겠어요...!!”

“어쩔 수 없지, 내기에서 이겼는데 바로 데려가겠다고 떼쓰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니까.”

내가 여러 시험에서 최고점, 혹은 신기록을 세웠으나, 가장 특출난 성적을 낸 것은 검술, 마법, 그리고 무술 세 가지 분야였다.

문제는 앞에 2개는 내가 자신이 있는 거였지만, 무술은 완전 초짜중의 초짜였다는 사실.

­“누가 이겼냐니! 가장 미숙한 과목을 가장 높은 성적을 내게 만든 내 승리가 아니겠느냐?­”

물론 다른 두 사람은 반발했고 나도 못마땅했다. 애초에 허수아비를 박살낸 건 메피스토가 내게 힘을 보탠 덕이 아닌가?

­“꼬우면 성적을 냈어야지. 꺄하하하!”

“...”­

하지만 내기 내용이 가장 높은 성적을 내는 거였고, 결국 이번 시험에서 가장 이득을 본 건 천마와 조르바였다.

조르바는 왜 웃었냐고? 박살난 허수아비를 고치는 비용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무술 과목에서 A+ 성적을 받았으니까.

“세상이 망조지, 어떻게 마리안느 왕녀랑 세니아 선생님을 두고 증조모님이 이기다니...”

“...네 증조모님이 그래도 태산 도장의 시조 중 한분인 천마인데?”

“게다가 조르바 도련님이 A+라니! 평생을 무술을 연마해도 A성적도 힘든 사람들이 있는데! 그 놈팽이가!”

“샤오메이, 나 바로 옆에 있다만.”

“아니까 하는 말이에요, 도련님! 매번 진지하게 훈련 하자고 하면 도망가면서 꼴에 성적욕심은 있으셨나보죠!”

호위와 동시에 무술 가정교사인 샤오메이의 날카로운 일침에 조르바는 할 말을 잃고 하늘을 쳐다봤다. 하긴 조르바가 샤오메이의 속을 어지간히도 썩이긴 했지.

“안 되겠어요! 기왕 A+맞은 거, 증조모님에게 말씀드려서 조르바 도련님도 잔뜩 굴려야겠어요!”

“잠, 잠깐 샤오메이! 나는 상인이지 무술인이 아니라고! 게다가 오늘 애인들이랑 데이트가 3건이나 잡혀있단말야!”

“조, 조르바님!!!”

샤오메이가 조르바를 질질 끌고 가자 쪼르르 따라가는 클레어.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갈까 파트너?”

“그래...”

옛날의 귀여웠던 형님 거리는 샤오메이가 문뜩 그리워졌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

아침조회가 끝난 직후의 시계탑은 학생들이 텅텅 비어있었다. 당연하다, 곧 있으면 실습 체험을 위해 진짜 던전에 가야하니 수련이 한창이겠지.

“어머, 일찍 오셨네요 도련님!”

“..시온? 진짜 너 맞아?”

그때 웬 금발머리의 여인이 인사를 하자, 나는 순간 모르는 사람인 줄 놀랐다가 그녀의 몸매를 보고 시온인 줄 알아차렸다.

“네, 원래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눈에 띄잖아요? 그래서 변장을 좀 해봤죠. 예쁜가요?”

“...음, 나쁘진 않네.”

금발의 긴 생머리로 변장한 시온이 생도복을 차려 입자, 확실히 나랑 비슷한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귀여워 보이긴 했다. 특히 그 퇴폐적인 눈매를 화장으로 밝게 바꾸니 전혀 모르는 미인처럼 느껴졌다.

“본래는 단 둘이 돌아다니려고 했잖아요? 데이트 하는 기분도 살짝 내보고 싶어서 어렸을 때처럼 꾸몄죠! 머리카락은 그때랑은 다르지만요?”

“..이게 원래, 아니 어렸을 때 네 모습이라고?”

“우후후, 도련님도 참. 저도 어렸을 때는 꿈 많고 밝은 성격의 귀족영애였다고요?”

지금은 밝지도 않고 꿈도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걸까. 아무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이미지를 바꿨을 때 칭찬 싫어하는 여자는 없으니까.

“...그런데, 음. 도련님의 기분 나쁜 스토커 친구분이 같이 오셨네요? 용사면 많이 바쁘시지 않나요?”

그런데 눈이 카르엔을 향하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밝은 눈매를 초롱초롱 유지하던 시온의 눈이 급격히 날카롭고 매섭게 변하며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래, 이게 시온이지.

“그래, 나도 만나서 반가워. 아르틴을 어릴 적부터 꾸준히 괴롭혀 온 것 치고는 얼굴 낯짝이 꽤 뻔뻔한 여기사?”

“...하, 남자인 주제에 도련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여자로 변해서는 암컷처럼 구는 스토커에게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에이, 나는 15년간 파트너의 절친이었고, 너는 렉스턴에게 반해서 아르틴을 괴롭힌 원수잖아? 같은 급으로 비비진 말자.”

“...저기, 애들아? 갑자기 왜 그래?”

갑자기 벌어진 음습한 말다툼에, 나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급소를 노리는 생사결과도 같은 날카로운 말들이 아닌가.

‘아 젠장, 그러고 보면 애네 둘이 음습하기로는 1~2위를 다투는 애들이었지?’

...적어도 연기를 할 수 있는 올가를 제외하면, 본성부터가 베베 꼬이다 못해 정신병 증상을 보이는 시온하고 15년 간 나를 따라다니면서 뒤틀린 카이엔. 둘 다 음습함으로는 어지간한 빌런들, 아니 그 이상인 녀석들이었다.

“용사면 용사답게 모범을 보일 것이지. 당신이 그런다고 도련님이 그 근육질의 기분 나쁜 호모 면상을 잊기나 할 것 같나요?”

“마찬가지 아닌가? 평생을 쫓아다니던 남자한테서 버림받았다고 바로 주인을 바꾸는 사냥개를 아르틴이 뭐가 좋다고 아껴주겠어? 너는 그냥 장난감이지.”

“애들아! 그만하고 천사부터 찾지 않을래?!”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위가 쌔지는 발언에, 나는 다급하게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어 싸움을 멈췄다.

그래도 내가 말리자 두 사람은 쏟아내던 독설을 멈추고는, 서로를 적의 어린 눈으로 노려보다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갑자기 뒤틀린 애정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바꾼다.

“파트너는 너무 상냥하다니까. 파트너의 뜻이 그렇다면 나도 존중해야지.”

“호호호, 도련님은 역시 마음이 너무 여려서 탈이에요. 그래도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주세요?”

‘내가 마음만 독했으면 니네 둘 다 대가리를 부숴놨을 텐데 당연히 상냥해야지.’

지끈거리는 두통을 뒤로하고, 나는 시온을 바라봤다.

“그보다, 어제 말했던 대로 만화부 사람들하고 접촉은 시도 해봤어? 본 거지를 알면 그냥 쳐들어가면 쉬울 텐데.”

“저도 도련님과 같은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지난번에 폐쇄된 후로 만화부는 완전히 점조직화 해서 무리에요. 게다가 몇몇 부원들과 접촉해보니 사르디엘의 위치는 간부들만 안다고 하더라고요.”

점조직 화라니, 그렇게 열심히 활동해서 만드는 건 고작해야 나를 소재로 한 뒤틀린 동인지가 아닌가?

‘이 세계는 사실 마왕에 멸망하는 게 옳은 게 아닐까?’

“후우...그래서 천사의 소재는 아직 파악하지 못한 거야?”

내가 들끓는 속내를 억누르고 이야기 하자, 시온은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어머, 제가 그렇게 녹록할 리가 없잖아요? 미리 만화부의 간부 중 한 사람을 찾아내서 접촉을 끝내놨죠!”

“...정말?! 시온 너 정말로 유능하구나!”

“물론 대신 도련님의 비밀 컬렉션 중 하나를 내놔야 했지만...괜찮아요, 도련님의 명령이 가장 먼저니까요!”

“뭐? 비밀 컬렉션? 그건 또 뭔데?”

“제가 찾은 간부는, 바로 이 사람이에요.”

시온은 내 질문을 가뿐히 무시하고, 가슴 주머니 안쪽에서 본인이 직접 그린 초상화를 꺼내 나와 카르엔에게 내밀었다.

“이 사람은 4학년에 재학 중인 바토리 바실리사라는 여아인데...”

“...알고 있어, 순혈 뱀파이어 자매인 바토리 자매 중 언니 쪽이잖아?”

“어라, 알고 계신 사람이었어요?”

시온은 내가 그녀를 알아보자 무척이나 놀란 눈으로 봤지만, 내가 이 사람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야 그렇지. 나랑 카르엔 둘 다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카르엔?”

“...”

카르엔은, 아니 카이엔은 내 말에 식은 땀을 연신 흘리며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야 당연한 반응이다. 뱀파이어라는 설정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바토리 바실리사지만, 원작에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이 사람도 혹시 회귀 중에 엮인 도련님의 연인인가요?”

“아니, 내 연인은 아니야. 내 연인은 아니지..그렇지 카이엔?”

“..왜, 왜 여기서 그녀가 나타나는 거지?”

바토리 바실리사, 훗날 마왕군을 공포에 떨게 하는 피의 군주. 마지막 전투까지 살아남은 사람 중 1명.

그리고 원작의 메인 히로인이며, 2회차 당시 카이엔과 강제로 약혼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니까.

“왜? 왜? 어째서?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엮이지 않으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카이엔도 그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 건지, 목소리의 떨림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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