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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198화 (198/266)

〈 198화 〉 강해지는 법

* * *

──파앙!

날카롭게 내질러진 주먹과 다리가 맞부딪히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지고 충격으로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허나 두 사람은 개의치 않고 비무를 이어나갔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능력이 서로 맞부딪힐 때 마다 금속으로 제작된 연무장에 흔적이 새겨지는 모습은 퍽이나 인상적이리라.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걸.’

두 사람의 대련을 보고 있던 천마 린 샹페이는 혀를 찼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본래라면 성립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되는 비무였기 때문이다.

‘단 며칠 만에 이렇게 강해지다니, 젊은 시절의 내가 봤다면 질투심에 주화입마가 왔을 지도 모르겠구나.’

비무의 강도나, 그 여파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이 다름 아닌 아르틴과 카이엔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당장 며칠 전만해도 반푼이 각성의 경지였던 아르틴은 카이엔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르틴은 재능이 있었으나, 이미 완성된 카이엔에 비하면 재능도 육체도 터무니없이 부족했으니까.

‘내 눈이 틀리..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이 짧은 시간 내에 강해진 거지?’

허나 지금 눈앞의 두 사람은 이전보다 차원이 다른 강함을 뽐내며 서로를 향해 전력을 토해내고 있었다.

갑자기 달맞이관으로 찾아와 비무를 지도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저 강해지고 싶은 열망이 생긴 줄 알았지만, 그건 천마의 오판이었다.

“이 정도로 천방지축으로 날뛰면, 그야 불의의 사태를 확실히 막을 수 있는 건 나 말고는 없겠지.”

천마의 눈이 카이엔으로 향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신체 탓에 곤란함을 느낄 법도 하지만, 카이엔은 아주 보란 듯이 여성의 몸을 자연스럽게 운용하는 것도 모자라 더욱 강해진 신체능력을 완벽히 조율하고 있다.

저건 천재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귀신같은 재능이다. 만약 아르틴이 없었다면 샤오메이와 카이엔을 결혼시켜 저 재능을 혈통에 섞어야 한다는 생각 했을지도 모른다.

‘같은 나이라면...아니, 카이엔 녀석보다 10살이 많은 나라고 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겠는데.’

카이엔의 전투방식은 언제나 빠르고 화려하다. 말로 표현하면 간단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속도와 변화야 말로 천재들의 영역이다.

센스가 평범한 범인은 아무리 타고난 육체가 좋다 해도 자신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다. 통제하지 못하는 빠름은 강함이 아니다. 카이엔이 보여주는 완벽한 통제하에 놓인 쾌속이야 말로 강하다고 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가질 수 있다면 백이면 백은 아르틴 루드비히 쪽을 택하겠지만.’

힐끔, 천마의 시선이 카이엔과 치열하게 겨루는 아르틴을 향해 흘러갔다.

“──하앗!”

진각을 밟으며 내질러진 카이엔의 양 주먹이 아르틴을 향해 쇄도하여, 그 압도적인 속도 탓에 마치 팔이 수십이 달린 괴물처럼 보일정도로 귀신 같이 아르틴을 압박한다.

“후우──”

그렇지만 그 주먹이 아르틴에게는 닿지 못한다. 철저하게 영역을 굳힌 아르틴의 범위 내에 주먹이 침범하는 순간, 철저하게 카이엔의 공격을 받아 흘리고, 쳐내고, 굳힌다.

한 가지 방법만을 사용해서 막아내는 것이 아니다. 영역을 굳힐 때는 무겁게, 쳐낼 때는 강하게, 흘릴 때는 부드럽게, 어느 방향으로 들어오냐에 따라 철저하게 우위를 점할 방식을 택하여 막아낸다.

‘웃겨서 말도 안 나오는 군, 내가 불혹에나 들어서야 도달한 경지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으니.’

물론 무술의 극한을 추구하는 이라면 당연히 도달하게 되는 영역이다. 무조건 강한 일권이 아닌, 필요한 타이밍에 필요한 기술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것이야 말로 무의 극이라고 불릴 수 있는 법.

하지만 아르틴 루드비히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무술에 있어서는 이제 막 초보의 티를 벗어난 이에 가깝다. 샤오메이와 천마 자신이 숙련된 경지를 조금 체험시켜주기는 했다지만 그런 걸 본다고 해서 누가 완벽히 따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해내고 있다. 기술의 숙련도는 천마 자신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완전한 타이밍에 형태를 갖춘 대응법을 구사한다면 숙련도는 그저 형식에 불과한 이야기다.

‘모르겠어, 평상시에는 길가의 돌맹이 마냥 흔하디흔한 녀석이, 가끔 보면 어지간한 보석들보다도 가치 있는 재능을 보여준단 말이지.’

만약 아르틴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무술을 완벽히 베껴낼 수 있는 수준의 천재라면 천마도 스스로 납득했을 것이다. 당장 카이엔도 가르쳐주지 않은 영역의 기술을 스스로 고안해내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그러나 아르틴의 재능은 미천하다. 따지자면 상상을 벗어난 끈기와 정신력이 재능일 뿐, 그 외의 재능은 범부에 가깝다.

저런 재능을 가진 이는 머리가 백발이 될 때 까지 한 분야만을 파고 나서야 빛을 발하는 법, 오래 두드린 강철처럼 단단함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보아라, 초월적인 힘이야 축복이든, 계약이든, 혹은 마에 힘을 팔아서라도 얻을 수 있는 법이지만 아르틴은 그 신체능력마저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여 카이엔을 밀어붙이고 있다.

‘아니지, 만약 이게 비무가 아니었다면 세합 전에 이미 아르틴이 카이엔을 제압했겠지.’

다른 것들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아르틴의 전투경험은 천마의 상식을 초월했다. 아직 어른이라도 불리기도 어색한 어린 녀석이 수십 년을 마족과 싸워온 자신과 대등한, 어쩌면 그 이상의 진한 전투경험을 저 몸에 담고 있다.

──퍼억!

“으읏?!”

“좋아, 이번에도 내가 이겼네. 슬슬 그만할까?”

적절한 순간에 내질러진 아르틴의 주먹이 정확하게 카이엔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더 말할 것도 없는 아르틴의 깔끔한 3번째 승리였다.

“..좋아, 오늘은 3번 졌지만 그래도 2번은 이겼어. 다음에는 검으로 붙어.”

“그럴까? 천마님이 봐주시면 검으로 대련하는 것도 괜찮겠네. 지금 몸에 익숙해지기도 좋을 것 같고 말야.”

“하.”

공화 연방에서 저 소리를 들었다면 천마는 말한 녀석의 팔 하나를 부러트려 오만한 버릇을 고쳐줬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어쩐지 화가 나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 저 아르틴을 볼 때 마다 자신의 죽은 남편이 겹쳐 보여서 그런 걸까? 아니라고 확언할 수는 없었다.

“스승님! 카이엔과 씻은 후에 인사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마음대로 해라, 너희들이 없으면 할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모르겠다. 어쩌면 가끔 보여주는 진지한 모습에 하늘을 움직였다는 소리를 듣는 천마 자신조차 매료되어버린 걸지도.

‘이번 용사들은, 어쩌면 내가 죽기 전에 보고 싶던 광경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는데.’

마왕군의 몰락, 무척이나 허황되게 느껴졌던 그 문장이 어쩐지 현실감 있게 다가오자 천마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직은 먼 이야기다. 그 날이 올 때 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고...그 동안은 자신이 저 녀석들을 바로잡아줘야 할 것이다.

무척 귀찮은 일이지만..천마는 어쩐지 그런 귀찮음조차 즐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

“후우, 역시 계약이야, 성능 하나는 확실한 데?”

천마님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보며 전신에 넘칠 듯이 흐르는 활력을 체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전력으로 수련을 했는데도 기운이 넘치다니, 정말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 내내 수련을 해도 되겠어.”

“후후, 역시 강해지니까 기쁜가보네?”

“그야 당연하지, 약해서 좋을 일이 뭐가 있다고.”

“전에는 천사랑 계약 파기하고 돌려보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웠잖아?그 강함은 천사의 덕이면서 말야.”

아, 카르엔의 말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기분 좋았는데 바로 찬물을 끼얹어 버리네.

“네가 내 상황이 되어봐, 진짜 환불이 가능했으면 당장 그 천사랑 계약을 관뒀을 걸?”

“...반박을 못하겠네. 네가 고생이 많아 파트너.”

카르엔은 내 말에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이 녀석도 내 사정을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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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완료!

당신은 중급천사 사르디엘과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계약에 따라 천사의 힘을 얻으며, 특성 『천사의 계약자』를 획득합니다!

추가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그에 따라 칭호 『천사의 친구』를 획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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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 천사의 계약자

천사와 정식으로 계약을 마쳤습니다. 계약에 의거해, 계약자와 동일한 힘을 얻습니다.

천상의 존재와 계약을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의 신성력은 천상의 가호가 깃들게 됩니다.

부정한 것은 천상의 존재를 더럽힐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마기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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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계약이 완료된 직후 떠오른 상태창을 봤을 때는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중급천사와 힘을 나누어 받는 건 당연히 좋고, 신성력에 천상의 가호가 깃드는 건 천사박사 토마스나 가능한 궁극의 기예. 이제는 성법을 주력으로 밀어도 좋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바로 마기의 중독이다. 이건 정말 억만금을 줘도 얻기 힘든 능력이니까.

당장 스승인 천마님이나 일선에서 불러난 고수들만 해도, 오랜 마족과의 싸움으로 마기가 몸을 좀 먹어 전선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았는가.

유니코르만 마기에 면역이던 지난 번 퀘스트에 비하면 이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물론 그대로 상태창이 멈췄으면 좋았겠지만...정말, 정말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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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천사의 친구

지상에 떨어진 천사 사르디엘은 천상에 있을 때의 힘을 대부분 잃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당신과 사르디엘과의 호감도가 높을수록 사르디엘이 힘을 되찾게 됩니다!

단, 천사를 부정된 방법으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강제로 호감도를 높이거나 부정한 짓을 저지를 경우 사르디엘이 타락천사로 타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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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를 얻자, 처음에는 나도 이게 그냥 좋은 칭호인 줄 알았다. 호감도만 올라도 원래 힘을 되찾게 된다니, 그야말로 개꿀이 아닌가?

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아니, 최소한 사르디엘 앞에서 칭호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설마 호감도를 인질로 삼아서 나한테 갑질을 할 줄이야...”

“...”

요 며칠, 내 방에 틀어박힌 사르디엘의 폭거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악랄했다. 그야말로 2회차 당시의 유니코르가 우습게 보일 정도로 말이지.

“한 밤중에 단 음식이 먹고 싶다고 조르질 않나! 매번 킹사이즈 침대를 혼자 차지해서 간이침대에서 누워 자야하고! 온갖 수발은 다 들어달라고 징징 거리고!”

“아르틴...”

“유니코르랑 시온이 저 여자 언제 나가냐고 나한테 묻더라! 감당이 안 돼 감당이!”

안 그래도 동인지 때문에 괘씸해 죽겠는데, 이제는 침대에서 과자 흘리는 것도 혼내기 부담스럽다. 설마 상태창이 내게 독을 풀다니.

‘가장, 가장 빡치는 건 마지막 문장이지만..!’

부정한 짓, 강제로 호감도. 뭐겠는가? 당연히 야한 짓이다.

그래, 내 최후의 방법인 남자로써 혼내주는 것조차, 상태창이 정한 방식 때문에 막혀버린 것이다. 그 글러먹은 천사가 아무리 얇은 옷을 입어도, 씻고 나와 알몸으로 방을 활보해도 나는 건드릴 수도 없다.

보기 좋지만 냄새나고 먹을 수도 없는 떡. 그게 사르디엘이다.

“내가 이러려고 천사랑 계약 했냐, 자괴감 들고 괴롭다...”

“...힘내, 파트너.”

카르엔이 나를 가볍게 안아주자, 그 따뜻한 포근함에 어쩐지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안 그래도 시르카가 틈만 나면 몽마섹스빔을 갈겨대서 미치겠는데, 새로 영입한 천사도 저모양이라니, 처음에 가장 글러먹었던 유니코르가 지금은 선녀처럼 느껴진다.

“방에 돌아가기 싫다..사르디엘이랑 마주치기 싫어...”

“...그래?”

내가 울먹이자, 어쩐지 카르엔의 목소리가 살짝 들뜬 것처럼 느껴졌다. 뭐지?

“그럼, 오늘은 내 방에 와서 쉬지 않을래? 침대도 크고, 조용하고 좋은데...♡”

귓가에 카르엔이 작게 속삭이자, 소름이 돋으며 전신에 오싹거리는 위험감지 신호가 퍼지기 시작했다.

맞다, 그랬지. 워낙 미친년이 많아서 그렇지, 카르엔 이 녀석도 정상은 아니었지.

“...카르엔? 일단 이것부터 놔 줄래? 조금 답답하거든...?”

“괜찮아. 사양 안해도 돼 아르틴. 우린 파트너잖아? 파트너 끼리는 이렇게 달래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지?”

“아니, 그건...”

“그리고 파트너끼리는 니 꺼 내 꺼가 없잖아? 그러니 내 방도 네 방인 셈이지..그렇지? 그러니까 내 방에 쉬러 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거고...”

츄릅,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카르엔이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멍청하게도, 내 몸을 호시탐탐 노리는 들짐승의 아가리에 스스로 기어들어오고 만 것이다.

‘진짜...돌겠네...’

왜 내 주변에는 정상적인 여자가 적은 걸까. 어쩐지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일단...튀자. 잡아먹히기 전에.’

욕망에 이글거리는 카르엔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굳게 다짐했다. 언젠가 잡아먹힐지도 모르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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