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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01화 (201/266)

〈 201화 〉 강해지는 법 #04

* * *

아르틴의 말을 들은 바이올렛은, 차마 무슨 말을 건낼 수가 없었다.

‘내가...아직 아르틴에 대해 이만큼이나 몰랐구나...’

아르틴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자신들을 탓하는 원망이나 자신이 이러한 처지가 된 것에 대한 분노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었다. 아르틴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연인들에 대한 슬픔을.

이미 몇 번을 후회하고 또 후회한 사람이, 스스로를 속여가면서 까지 속에 담아 억눌러왔던 슬픔을.

‘이런 슬픔을, 아르틴은 언제나 홀로 견뎌왔던 거구나...’

사실은 안다고 생각했다. 지난 회차들의 기억이 떠올랐을 때, 3회차의 아르틴이 죽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장 오랫동안 방황했던 것이 바이올렛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아르틴과 함께 죽고, 아르틴이 죽는 것을 봐야 했고, 아르틴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며, 아르틴이 느꼈던 감정들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나눴다고 생각했다.

──그건 너무나도 큰 오만이었다.

‘우습네, 고작 그 정도로 아르틴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다니.’

기억을 되찾았다고 표현하나, 사실 모든 기억을 되찾은 것은 아니다.

아르틴과의 기억만이 선명히 남아, 자신의 기억에 어느새 추억처럼 살아 숨 쉴 뿐, 매번 경험도, 행동도, 선택도 달랐던 자신들을 완전히 동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계승했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그들의 기억은 자신과 함께 하지만, 바이올렛 자신은 분명히 그들과는 다르니까.

...그렇지만, 아르틴은?

이어져있다. 그 모든 기억이 하나로 이어져있다. 모두가 두려워할 죽음을 찰나로 여기며, 다시 깨어나 처음으로부터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만약 여기까지라면 누군가는 아르틴이 겪는 일을 축복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허나, 자신이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사랑하던 이들이 다른 사람이 된다면?

바이올릿은 2회차의 아르틴의 좋은 친구였다. 3회차의 아르틴을 사모한 여인이엇으며, 4회차의 아르틴을 열렬히 응원해준 조력자가 되기도 했었다.

──그 모든 바이올렛이, 아르틴에게 정말로 같은 인물이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순간, 바이올렛은 아르틴이 느꼈을 가장 깊은 공포를 한 가지 꺠닫고 말았다.

‘..아, 아아. 알아버렸어, 왜, 어째서 아르틴이 매번 다른 삶을 추구하고 있는 건지..!’

1회차의 아르틴은 도망자였다.

2회차의 아르틴은 용사의 동료를 지망했다.

3회차의 아르틴은 용사의 동료들을 돕는 현자를 자처했다.

4회차의 아르틴은 홀로 그 짐을 짊어진 후 스스로 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각자가 전혀 다른 삶, 당연히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평가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 그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 아르틴이 같은 일을 추구한다면?

같은 목적, 같은 행동, 같은 과정을 택하며, 이번에는 오답이 아닌 최선의 답을 고르려고 했을 때, 만약 우리가 다르게 반응한다면?

아르틴은 확인하지 못했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아르틴은 매번 자신이 구하고자 했던 다른 이들을 죽게 만들어 버린 걸 테니까.

그리고 아무리 회귀에 회귀를 더한다 해도 그 들을 다시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르틴이 매번 마주하게 될 사람들은, 이미 죽어버린 존재랑은 다른 사람이 될 테니까.

“아아..!! 아아아!!! 아아아악!!!”

마녀의 입에서 비탄이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연인이 겪고, 겪고, 또 겪었을 지옥 같은 삶에, 오한이 몸을 감싸고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바이올렛, 진정해.”

“...아, 아르틴. 나는...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괜찮아. 나는 너희들이 지금 곁에 있어주는 걸로 충분해.”

그런 바이올렛의 비탄을 멈춘 것은 아르틴의 따뜻한 온기였다.

고개를 들자, 아르틴은 평소처럼 사랑과 친애를 담아 자신을 바라보며 웃어주고 있었다.

“물론 너무 욕심쟁이라, 너희들 중 누구도 포기하지 못한 머저리 같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너희들이 있기에 아무렇지도 않아.”

“아르틴...”

“고마워, 나를 떠올려 줘서.”

와락, 아르틴의 몸이 바이올렛을 끌어안자 옷 너머로 형태가 잡힌 단련된 신체가 느껴졌다.

이는 아르틴이 단순히 힘으로만 강해진 것이 아니라, 수련으로 육체를 힘에 걸맞게 다듬고 있다는 증거기도 했다.

평상시라면 그 듬직한 신체에서 안정된 기분을 느꼈겠지만, 지금의 바이올렛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2달이다. 아르틴이 이번 생을 시작한 시간은 고작해야 2달이었다.

그리고 학기가 막 시작했을 때의 아르틴은? 검 하나도 간신히 들 수 있을 법한, 지금에 비하면 앙상하고 말랐다는 표현이 걸 맞는 육체였다.

‘나...정말 멍청하고 바보 같아, 고작 그 정도 노력을 해놓고 아르틴을 안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자신이 한 노력이 헛수고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르틴이 한 노력에 비한다면, 너무도 철부지 같은 발언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흐읍, 흐으읍...아르틴...”

“...괜찮아, 이거 참 울리려던 건 아니었는데 미안해.”

“흐윽..! 흐아아앙...”

바이올렛은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여태 아르틴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응원해 줬다는 말이 너무 우습지 않은가.

올가를 하렘에 들여도 좋다고 허락해? 바이올렛에게는 올가는 그저 연적에 불과했지만, 아르틴에게는 이 미친 지옥을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욕심쟁이라 포기하지 못한다? 듣기 좋은 허울에 불과하다. 아르틴은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지탱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을, 그리고 자신이 구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저 카이엔 마저도.

바보 같았다. 뭐라도 다 안 것 처럼 이해자처럼 굴지 말고, 차라리 아그네스처럼 묵묵히 믿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바보같은 자신이 너무 미워서, 바이올렛은 목을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알‘미라즈 너도 이런 이야기가 어색하지? 괜히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었네.”

“아, 아니에요 스승님...”

알‘미라즈도 일찍이 하렘의 일원으로써 아르틴의 회귀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적은 있었다.

허나, 알‘미라즈는 근본적으로 회귀 전에 대한 기억이 없었기에, 바이올렛의 감정도 아르틴의 감정도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바이올렛의 꿈속에서 아르틴이 자신에게 했던 말은 다시 가슴 속에 새겨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죽지마 알‘미라즈, 포기 하지 않으면, 쓰러져도 괜찮아. 누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저 말은 단순히 알‘미라즈 자신을 달래기 위한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기 하지 않으면 된다. 그 말을 스스로에게 집념처럼 품고 수많은 지옥을 반복했던 것이라.

“흐아앙! 흐아아아앙...!”

“괜찮아. 괜찮아 바이올렛.”

‘...어쩐지 악당이 된 기분이네요. 메피스토님.’

메피스토와 계약하겠다는 말에서 비롯된 이 슬픈 광경에, 알‘미라즈는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르틴에 대한 메피스토의 감정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

“흐흠, 이제부터는 정말 만만치 않을 텐데...아르틴이 걱정이란 말야.”

“...걱정하는 것 치고는, 무척이나 편해 보이는 데 말이죠 당신?”

“아하하! 나는 아르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걸~♡”

“진짜...말은 번드르르...”

같은 시각, 아르틴의 방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무려 인계에 강림한 천사와, 여신의 화신인 성녀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천사를 보며 이를 아득 무는 성녀의 모습은 어떨까 싶지만.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아르틴을 걱정하고 있는 걸? 나는 아르틴을 무척 좋아하니까.”

“...당신이? 아르틴을?”

“그럼! 말했잖아? 나는 쭉 아르틴의 수호천사였다고.”

“수호천사 같은 바보 같은 개념은, 마녀나 황녀는 숨길 수 있어도 제게는 통하지 않아요. 사르디엘.”

올가의 입에서 나올 말은 도저히 성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이 세상에 천사의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여신은, 그 잘난 여신은 제게 늘 뜬구름 잡는 소리만을 내려주는 머저리 같은 존재에요. 게다가 천사 박사 토마스에 맹세코, 저는 수호천사 같은 머저리를 실제로 본적은 단 한 번도 없거든요.”

“...확실히 다른 애들은 나가게 하길 잘했네. 성녀님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란 걸 알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짓겠어?”

“사람들을 속인 여신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아차리게 되겠죠.”

“아니면, 지금도 손목에 주사 바늘이 가득한 성녀의 본 모습을 알게 되거나?”

흠칫, 올가가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째려보며 뒤로 물러나자, 침대에 기분 좋게 누워있던 사르디엘이 갸르릉 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겁먹지 말거라, 여신의 목소리야. 나는 정말로 너희를 보호하기 위해 내려온 자이니, 이 말에 거짓이나 삿된 감정은 없도다.”

“...악마도 늘 자신을 믿으라고 하죠. 당신이 진짜 천사일 가능성보다 타락 천사일 가능성이 높고,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믿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죠?”

성녀의 드센 눈빛에 사르디엘은 웃음을 터트렸다.

늘 상태창으로만 보던 성녀의 눈빛은 확실히 실제로도 꽤 오싹거리게 앙칼졌다.

허나, 사르디엘이 누구인가? 대천사의 수장 미카엘에게도 서슴없이 장난을 치며 그 분노 어린 눈빛을 감내하던 가장 용맹한 천사기도 했다.

내색하지 않는 얼굴로,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은 사르디엘은 작지만 힘차게, 그리고 선명한 말들을 고했다.

“믿어야지, 그게 아르틴을 구할 수 있는 길이라면, 너희는 당연히 천사가 아니라 지옥의 대악마라고 할지라도 믿어야 할 테니까.”

“....”

“곧 고난이 닥쳐올 것이니라, 그 굳센 아르틴조차 버티기 힘든, 사악하고 악의 깊은 고난이.”

“당신은?”

“그런 고난을 예언하고 힘이 되어주기 위해 찾아온 너무도 상냥하고 착한 천사 사르디엘이 아니고 무엇이겠어?”

큭큭큭, 사르디엘이 장난기 깊게 웃었지만 성녀는 웃음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르디엘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럼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평소처럼, 늘 그랬듯이, 아르틴의 곁에서 아르틴을 사랑으로 보듬어줘야지. 그 커다란 가슴을 쓰면 더욱 좋을 테고.”

“하, 장난은 하지 말고!”

“내 말은 모든 게 진심이란다, 올가 비르투스야. 그게 아르틴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사르디엘은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즐거워서가 아니었다.

천계에서 본 만화책에서나 나오던, 선견자의 답답함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 무척이나 우습기 때문이었다.

‘아르틴도 참 힘들었겠네, 알고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어쩌겠는가, 그런 아르틴에 매료되어 진심으로 인간을 돌보기 시작한 것이 자신인 것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태풍 속에서, 내가 아르틴의 지붕이 되어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한숨을 내쉰 사르디엘은, 당장 눈앞에서 의중을 파악하려고 애써 머리를 굴리는 올가를 바라보았다.

‘우선은, 이 아이부터 좀 더 다듬어줄까.’

──어둠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시대를 알고 있는 자들은, 자연스레 폭풍을 피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늘 그들의 편은 아니었다. 회귀자인 아르틴에게 조차.

"뜬 구름 잡는 소리는 그만 하세요. 제대로 대답 안하면, 당신의 간식이랑 유흥비부터 전부 줄여버릴거예요."

"...정말?"

"황녀가 당신을 벼르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굳이 알려줘야 할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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