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네번째 후일담
* * *
탁. 타닥.
건조한 키보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니...다음 이벤트 보상은...현재 인과율을 생각하면 더 높게 잡아야...”
타닥, 탁, 타탁, 탁, 몇 십분 동안 계속 이어진 키보드 소리가 마침내 끊겼을 때, 힘차게 엔터키를 누르자 화면에 전송 알림이 울린다.
“드디어...드디어 밀린 일은 전부 처리했다...”
동시에 녹색 머리의 천사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천사는 머리에서 개기름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철야에 뭉친 머리를 누군가 봤다면, 그녀가 제타엘이라는 사실은 절대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다.
제타엘이 누구인가? 하급 천사 중에서도 언제나 규율에 충실하고, 몸단장에 충실하며, 무엇보다 그 정신 사나운 사르디엘의 밑에서 수십 년간 얌전히 업무를 수행했다는 차세대의 엘리트라 불리던 천사였다.
허나 그런 그녀도, 몇 주간 계속된 퇴근 없는 연속 철야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는 듯 완전히 퍼지고 말았다.
천사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정신적인 피로라면 더더욱.
“그 게으른 천사 1명이 사라지니까, 업무 난이도가 이렇게 올라갈 줄은...전혀, 전혀 몰랐는데...”
사르디엘이 지상으로 떨어지고 아크..아니, 이제는 악마로 타락한 ‘그 새끼’가 사라진 후, 상태창과 용사를 관리하는 업무는 제타엘이 혼자 떠맡게 되었다.
알아야 할 점은, 천국의 노동환경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하물며 둘이 해야 할 일을 한 동안 혼자서 떠맡게 된 제타엘은 퇴근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삶을 살아야 했다.
하루 24시간 풀타임 근무, 실시간으로 상태창의 관리를 하며 퀘스트를 짜고, 보고서를 올리고, 계획서를 작성하여 상부에 허가를 받고,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그 새끼라도 살려놨어야 했어, 적어도 그 새끼가 일처리는 기똥찼는데..!!!”
평생을 열심히 관리해왔던 자신의 피부에 눈 밑으로 3cm까지 다크써클이 생겼다. 게다가 이제는 작은 트러블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천사가 뾰루지가 날 수 있냐고? 제타엘 본인도 몸으로 겪고 나서야 처음 안 사실이었다.
“차라리, 나도 인간계에 떨어지는 게 좋았을 것 같아...이건 사는 게 아니야. 지옥이지.”
뿌득, 이를 간 제타엘이 마우스를 몇 번 딸깍 거리자, 과자를 먹으며 탱자탱자 놀고 있는 사르디엘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 모든 걸 예측하고 지상으로 도망친 걸까? 확신할 수는 없었다. 허나 어쩌면 예측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망할, 망할 인과율만 없었으면 저 나태한 천사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인과율, 그럴듯한 이름과는 다르게 비공식적으로는 난이도라고 불리는 상태창의 시스템 중 하나이다.
작동원리도 간단하다.
용사인 카르엔과 회귀자인 아르틴이 어떠한 행동을 함에 따라 보상을 받고 누적이 된다. 허나 그런 요소가 세상의 불균형을 낳으면 세계 자체가 뒤틀릴 수 있기에 여러 가지 복합적인 절차에 따라──
──쉽게 까놓고 말해서 밸런스를 맞추는 시스템이다. 자세한 작동 원리 자체는 제타엘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인과율이라는 것이 지금 최대치의 직전까지 풀로 올라간 상태라는 점이다.
이유? 아르틴 루드비히의 버그성 플레이 탓이다.
“설마, 당연히 1회차 부터 진행됐어야 할 기억계승이나 다회차 요소들이 한 번에 터져서 이 모양이 되다니...!!”
처음에는 제타엘도 사르디엘의 방만한 상태창 운영 탓에 벌어진 일인 줄 알았다.
허나 혼자 모든 업무를 감당하게 되며 보고서나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다보면 제타엘은 도리어 아르틴에 대한 스트레스만 차오를 것 같았다.
아니, 도대체 누가 멀쩡히 준비한 튜토리얼을 무시하고 진행한단 말인가? 그것도 4번이나!
그 탓에 난이도는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만큼, 중간에서 중재하는 입장인 제타엘은 퇴근을 등진자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뭐, 사르디엘님이 왜 그렇게 아르틴을 좋아 했는지 알 것 같네요.”
딸깍, 마우스를 누르자 아르틴의 얼굴이 화면에 떠올랐다. 이 고된 업무 속에서 그녀가 정을 주고 대화 비스무리 한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르틴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카르엔의 경우도 몇 번 시도해 보긴 했으나, 저 용사는 아르틴을 제외한 모든 알림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나마 여자의 모습이 되고 나서는 좀 더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하아아...지난번에 사르디엘님 찾는 걸로 장난 칠 때가 좋았는데, 이제 던전 실습 이벤트가 시작되고 나면 한동안은 그럴 여력도 없겠네...”
어쩌겠는가, 인과율이 어느 정도 소비되어 안정된 수치가 될 때 까지는 제타엘 스스로 아르틴과 카르엔을 위해 장난을 자제해야 했다.
두 사람이 인과율 때문에 목숨을 걸고 노력하는데, 두 사람을 돌보는 관리자가 무의미한 장난이나 칠 수 없지 않은가.
“사르디엘님이 알아서 눈치 있게 도와주시면 좋겠는데...”
끄응, 제타엘이 두통에 미간을 문질렀다. 하계에 내려간 후로 사르디엘의 행보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데다 수습하기도 어려운 일만 벌여대고 있지 않은가?
“미친 짓이야...아니,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정말 미친 짓이라고. 이 인과율을 낮추려면 얼마나 개고생을..아니 그래도 이게 아르틴을 위해선 나으려나?”
딸칵, 다시 마우스를 누르자 화면에 이 세계의 전부를 비추는 지도가 펼쳐졌다.
그 상태에서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자, 지도의 옆에는 평소라면 한두 개나 움직이고 있어야 할 그래프 수십 개가 동시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할 수 없다. 제타엘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만약 이 수치들이 전부 안정화가 된다면...
“...하아, 모르겠다. 서류 체크하면서 아르틴 동인지나 읽어야지. 어제는 조르바x아르틴까지 봤었지?”
아무리 고민해도 이미 떠나간 화살, 제타엘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대에 오른 자들을 최대한 서포트하는 것 뿐.
마음을 다잡은 제타엘은 사르디엘이 직접 제작한 동인지를 화면 우측에 띄우며, 고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마약에 손대는 중독자처럼 어두운 미소를 히죽였다.
누군가 봤다면, 제타엘 그녀도 사르디엘에게 점점 물들고 있다고 한탄을 했을 광경이었다.
***
“내가 해야 해.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해내겠습니까? 응! 내가 해내야 해!”
알‘미라즈는 몇 번이고 각오를 다졌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각오를 입으로 내뱉은 지 벌써 30분이 넘어갔지만, 알‘미라즈는 섣불리 눈앞의 거대한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하렘의 일원 중 오로지 나만이 메피스토님에게 간언을 올릴 수 있어! 다음 스승님과의 계약에는 절대로 못된 계약조건을 걸지 못하도록 설득해야해!”
그렇다, 이곳은 메피스토의 성. 그리고 알‘미라즈가 서있는 곳은 알현실 앞 복도였다.
그녀는 지금 지옥으로 돌아와, 아르틴과 다른 연인, 그리고 자신과 메피스토 모두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간언을 올릴 다짐을 스스로 하던 것이었다.
“메피스토님이 스승님에게 유니크한 존재가 되고 싶은 건 이해하겠지만..!! 스승님을 파괴적으로 몰고 가는 과도한 계약 조건은, 스승님을 망칠 뿐만 아니라 메피스토님 스스로를 망치는 파멸적인 행위입니다!”
버럭! 홀로 알현실 복도에서 예행연습도 다시 해봤다.
그 옆에 서있는 근위병은 알‘미라즈를 광인을 보듯이 안쓰럽게 쳐다봤지만, 목숨의 위험을 느끼고 있는 알’미라즈는 그런 눈빛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괜히 이런 말을 했다가, 용암대장군님처럼 먼지가 되면 어쩌지? 스승님을 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면? 역시 그만둘까...?”
파들파들, 토끼 귀를 떨어대던 알‘미라즈는 이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제 뺨을 크게 후려쳤다.
‘겁을 먹어서 어쩌자는 거야! 그 인간들도 스승님을 위해 노력하는데,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사실 평상시의 알‘미라즈라면 이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강약약강의 화신과도 같은 천성을 지녔으며, 동시에 대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얼마나 강력한 악마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허나 바이올렛과 아르틴의 대화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알‘미라즈는 가슴이 아팠다.
자신은 바이올렛이나 아그네스, 하다못해 유니코르보다도 아르틴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았으니까.
‘스승님은 내가 마법을 쓸 수 있게 도와줬고, 자신감을 되찾게 해줬어! 그런데 나는...! 나는!!’
시험도, 전투도, 무엇 하나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 장미관에서도 아르틴이나 메피스토, 바이올렛의 보조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평범한 사역마라면 그 정도로 충분하다. 하지만 자신은, 알‘미라즈는 스승님의 연인이 아닌가? 연인은 그걸로 만족해서는 안 되는 일!
“후우, 그래! 여는 겁니다. 셋을 세고 여는 겁니다! 셋을 열고 당당히 외치는 것입니다!!”
알‘미라즈는 눈을 꾹 감고 셋을 세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의 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의반 까지 세고 나서야 알현실의 문을 힘차게 열었다!
아니, 힘차게 열려고 마음먹었을 뿐 실제로는 아주 조용히 문을 열며, 천천히 알현실 안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 메피스토니이이임...? 알‘미라즈가 알현을 요청하고 싶습니다아아아...?”
겁에 질린 탓에 목소리는 파리 날갯짓보다 작아졌고 말끝은 파도처럼 요동쳤다. 아무런 대답이 없다면 당장이라도 어쩔 수 없다고 정신승리하며 돌아갈 것 같은 태도.
심지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메피스토펠레스가 언제나 권태로운 표정으로 앉아있던 옥좌는 평소와는 다르게 텅 빈 상태였다.
‘어라? 메피스토님이 안 계시잖아? 그럼 이대로 돌아가야...?’
[오, 짐의 작은 토끼가 왔구나. 어서 안으로 들어 오거라.]
“히익?! 메피스토님!? 어, 어디에 계십니까요...?”
갑자기 머리를 울리는 메피스토의 정신파에 알‘미라즈는 기겁을 하여 뒤로 넘어갈 뻔했지만, 콩닥거리는 토끼의 심장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짐은 알현실에 없노라, 그곳이 아니라 짐의 침실로 찾아 오거라. 짐은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치, 침실 말입니까? 아니 그보다, 메피스토님에게 침실이 있으셨습니까?”
[당연한 말을, 짐도 잠을 잘 수도 있으니 침실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작고 귀여운 짐의 토끼야. 길잡이 불꽃을 줄 테니 따라 오거라.]
글쎄, 알‘미라즈가 알기로는 메피스토는 적어도 천 년 이상 잠에든 적이 없었으나, 그것을 말로 꺼내는 불경죄를 도전하는 것은 알’미라즈의 담력으로는 무리였다.
대신,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눈앞에 피어오른 청록색 불꽃을 따라 10여분을 걷자 한 거대한 문 앞에서 불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기가 메피스토님의 침실...?”
[들어 오거라, 다른 이들은 아무도 들이지 않았지만 너라면 이곳에 들어와도 괜찮다.]
“저, 저만 특별히 말입니까...?”
방금 전까지 공포로 떨리던 알‘미라즈의 심장은, 이제는 부푼 기대감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오직 자신만이라니?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고위 악마들이자 측근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자신만이라니! 그것도 왕의 침소에!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메피스토님!”
본래의 목적을 반쯤 망각한 알‘미라즈가 신나서 문을 건드리자, 알현실의 문보다도 거대한 침실의 문이 굉음을 울리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 장대한 광경에 알‘미라즈는 기대감에 가득차고 말았다.
메피스토님의 침실이라니!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사람에게 본 것을 자랑해도 될까? 함부로 놀란 표정을 지으면 혼날려나?
하지만 침실 내부를 바라본 알‘미라즈는 조금 다른 의미로 경악한 표정을 하고 말았다.
“저, 메피스토님? 이건...?”
“후후후, 짐의 토끼여. 어떤가? 짐이 전부 손수 꾸민 침실이란다. 멋져 보이느냐?”
“아, 아뇨 메피스토님. 이건 마치...”
촌스러운 신혼부부의 방. 알‘미라즈는 자신이 본 광경을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거대한 방은, 온통 하트와 핑크빛, 그리고 하얗고 작은 인간 크기의 마족들을 위한 가구들로 가득 차있었다.
일단 도저히 지옥의 위대한 대군주가 쓸 가구들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느 대군주가 2인용 장롱을 방안에 들인단 말인가? 알‘미라즈 본인의 드레스 룸만 해도 저 장롱의 수백배는 될 것이다.
게다가 하트, 핑크, 하얀색? 메피스토랑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메피스토님이 저런 취향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다.
하지만 그 가구들을 자세히,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미라즈의 경악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저, 메피스토님 이건 혹시...?”
“눈치가 빠르구나 짐의 토끼여,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유일한 친구를 위해 직접 준비한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하는 쪽이 바보일 터다. 그야 방 안 곳곳에 위치한 하트 모양 액자마다 스승님, 그러니까 아르틴 루드비히의 초상화나 사진이 걸려있지 않은가.
‘아니, 사진이나 초상화뿐만이 아니야...?’
장롱에 걸린 잠옷도, 작디작은 2인용 침대위에 놓인 하트모양 베개도, 하다못해 하트 모양 카카페트 위의 슬리퍼도 한 짝이 더 있었다.
“저...혹시 이건 전부, 아르틴 루드비히님과 메피스토님 본인을 위해 준비한 것입니까?”
그 뜻이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질문을 하는 것이 무례한 일일수도 있지만, 알‘미라즈는 그 미친 광경을 보고난 후 정신이 살짝 나간 상태였다.
“그렇단다 짐의 작은 토끼야. 전부 아르틴 루드비히의 취향을 고려해 준비한 것이지.”
“이, 이게 말입니까?”
“그럼, 내가 직접 아르틴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기억해둔 것이란다. 조금 독특하지만, 이런 취향도 사랑스럽지 않느냐?”
아니요. 오히려 스승님의 취향이 의심이 들 정도에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알‘미라즈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빈정거림을 억눌렀다. 대신 좀 더 중요한 질문에 자신의 발언권을 할애해야 했으니까.
“..스, 스승님의 취향인 것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찌 이런 것을 준비하시는 겁니까? 마치 스승님이 이곳에 오기라도 할 것처럼...”
“어머, 너도 참. 직접 듣고 와서도 어찌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지.”
알‘미라즈의 말에, 천장에 손수 하트 모양 장식을 띄우던 메피스토는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것이 더욱 소름이 돋았다.
즐거워한다? 메피스토님이? 언제나 감정을 내비치는 일 없이 무뚝뚝하게 자신의 모든 악마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던 그 메피스토님이?
“아르틴이 나와 계약을 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짐이 직접 준비를 해야지.”
“...죄송합니다. 제 작은 식견으로는 계약과 이 방이 무슨 연관인지 잘...”
“계약이 있다면, 당연히 계약의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 뭐 그야 그렇겠죠? 그래서 무슨 대가를...”
“아르틴의 전부, 이번에는 모든 것을 요구할 생각이란다. 작은 토끼야.”
알‘미라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것도 스승님에 대한 악의적인 장난인가?
하지만 메피스토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동시에 즐거움과 행복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평생 꿈꿔왔던 소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새색시와 같은 표정으로.
“지난번에는 흥미가 있어서 아주 작은 대가만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아르틴의 모든 것을 받아올 생각이란다. 하나도 남김없이 말야.”
쿡쿡쿡, 충격 선언을 내뱉은 메피스토는 행복감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는 대비되게, 알‘미라즈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굳음과 동시에 창백해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설득해야 하지? 애초에 설득이 되긴 할까...? 포기하지 않으면 정말 뭐든 가능한게 맞을까?‘
안 그래도 콩알만 하던 알‘미라즈의 심장이, 더 작아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저 행복한 미소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도 계속 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더더욱 말이다.
"후후후, 정말 기대가 되는구나, 이번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옥의 위대한 대군주 메피스토펠레스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여전히 행복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