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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08화 (208/266)

〈 208화 〉 기둥서방이 되지 않는 법 #05

* * *

카페에서 자리를 옮긴 아르틴은, 알‘미라즈에게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연인들의 자신을 감시하는 행동이나, 자신이 메피스토와 계약하기로 마음먹은 것, 왜 그런 마음을 결심했는지 까지.

“...이야기는 전부 알겠어요. 이해 못 할 이야기는 없으니까.”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난 후 알‘미라즈는 이 계약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마, 수정구로 내 행동을 다 지켜보고 계시겠지? 내가 스승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까지..’

그러니 메피스토님과 계약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직접적으로 할 수 없었다. 메피스토님의 분노를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으니까.

“남부교단의 다른 신들과 계약은 생각이 없으신가요? 용사님과 그 동료라면 그 머리 무거운 초월자 놈들도 협력할 텐데...”

“방금도 말했지만, 시간이 부족해. 초원의 왕은 유니코르가 있어서 계약할 수 있던 거지, 다른 신들은 못해도 왕복에 몇 주는 걸릴 테니까.”

“그, 그래도 용사와 그 동료인데, 악마와 함부로 계약을 해도 되는 건가요?”

“하하, 3회차에 계약 해봤는데 아무 일 없었어, 그리고 그 말 대로 따지면 내가 널 멀리하는 게 맞지 않아? 알‘미라즈?”

“그, 그건 안 돼요! 스승님이 없는 삶은 꿈도 꿀 수 없는걸요!”

와락, 알‘미라즈가 깜짝놀라 품에 안기자 옆에서 마법진을 그리던 카르엔이 표정을 구겼다.

그 노골적인 질투에 사르디엘은 실시간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야 했다.

“그,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어요. 바이올렛 양이 협력하지 않으면 메피스토님을 현실에 소환하는 것은 무리라고요?”

“아까는 계약을 도와주겠다고 당당하게 외쳤잖아?”

“그, 그건 용사 당신이 기특한 말을 하니까 제 나름대로 도와주려고 노력하겠다. 같은 말이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군주님을 멋대로 소환할 권한이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카르엔에 대한 반박은 거짓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절반만 진실이었지만.

알‘미라즈는 스승님에게 마법을 배운 덕에, 메피스토님을 직접 소환하는 건 무리지만 나팔수의 속삭임이란 마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 불안했다. 직접적인 소환에 의한 계약이 아니라 속삭임으로 이루어진 계약은, 악마 측에서 자유롭게 계약서를 조작할 수 있는 위험한 계약에 가깝다.

계약의 성좌 솔로몬의 가호도 받지 못하는 스승님과 카이엔이라면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영혼을 뺏길 수도 있다.

몇몇 흑마법사들이 이런 방식으로 계약했다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을 봤기에, 알‘미라즈는 더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설마 속삭임으로 계약을 하실 생각이라면, 차라리 바이올렛님을 설득하는 게 더 좋을 거예요. 너무 위험하고 부담도 큰 방식이라...!”

“응? 내가 언제 원격으로 계약한다고 했나? 악마랑 계약은 직접 만나서 해야지.”

“...네? 그렇긴 한데..어떻게 하시려고요?”

“알‘미라즈 너 지금 내가 뭘 준비하는지 모르고 있던 거야? 나한테 잘못 배웠네...”

“네? 그냥 누가 엿 들을까봐 방음 마법을 설치하시던 것 아니셨나요?”

아르틴은 카르엔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있던 마법진을 완성하며, 마법진을 자신의 검으로 톡톡 건드렸다.

──치이익!!

마법진에서 검붉은 불길이 튀어 오르자, 알‘미라즈는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르틴과 카르엔을 번갈아가면서 보기 시작했다.

“지옥의 불꽃? 지금 무슨 마법을 그리신 건가요 두 사람?”

“그야, 지옥으로 가는 마법진이지. 메피스토를 불러낼 수는 없으니 우리가 직접 가야지, 안 그래?”

“...네? 지옥으로 가는 마법진이요?”

태평한 말투로 어느 미치광이도 생각 못할 방법을 말하자, 알‘미라즈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스승님, 지금 스스로를 제정신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마음이 많이 아프신 것 같아요. 메피스토님에게 계약을 하기 위해 직접 지옥으로 가신다고요?”

“정확해.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알‘미라즈?”

“확실한 자살 방법을 말하고 싶으신 거라면 그럴 것 같네요! 정말로 미치신 거예요 스승님?!”

실제로 벌어진다면 지옥의 역사서에 기록될 법한 미친 짓에 알‘미라즈는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 지옥으로 가는 마법진은 어떻게 아신 건가요? 이렇게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

“아, 이거? 3회차 때 메피스토가 심심하면 언제든 놀러오라고 알려줬어, 그 때는 한 번도 안 써보긴 했는데, 지금이라도 쓰면 좋지 안 그래?”

“지옥으로 향하는 마법을 메피스토님이 알려줬단 말인가요...?”

“응, 문제는 좌표를 까먹어서 네 도움이 필요하던 차거든! 다행이지?”

먼 옛날 마왕과 마족들을 인간계로 추방한 이후로, 인간계와 지옥 사이를 잇는 마법은 악마들 사이에서조차 1급 기밀이었다.

해당 마법을 함부로 타인에게 유출하거나 악용한 자는 대군주가 직접 처벌해야 할 정도로 중대사였거늘, 대군주가 직접 유출하면 누가 처벌해야 할까?

‘이, 이건 미친 짓이야. 안 그래도 스승님을 기다리며 입맛을 다시는 주군에게 스승님을 공짜로 넘겨주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

말려야한다. 굶주린 사자의 아가리로 달려드는 토끼나 다름없는 이 상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려야 한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런 거라면 제게 맡겨주세요!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릴게요! ...어? 어라?”

“이해해줘서 고마워 알‘미라즈. 그럼 좌표만 여기 마법진 위쪽에 적어줄래?”

“아니, 그게 아니...저만 믿으세요! 바로 메피스토님에게 도착할 수 있게 조정할게요!”

자신의 내뱉으려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 제 입을 보며, 알‘미라즈는 당혹을 넘어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다!

[장난도 좋지만...이제 슬슬 짐의 친구를 만나고 싶구나. 빨리 아르틴을 짐의 앞으로 데려 오거라.]

[메, 메피스토님? 역시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자, 어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다정한 목소리, 허나 평상시에 자신을 귀엽게 여기던 목소리에 냉기가 느껴지자 알‘미라즈는 식은땀을 흘렸다.

동시에 몸의 억제력을 풀리는 게 느껴졌다. 허나 어떻게 제 손으로 사랑하는 남편을 팔아 넘길 수 있겠는가!

[잘 생각하거라. 만약 아르틴이 짐의 것이 된다면, 5년간 짐과 짐의 토끼가 독점할 수 있지 않겠느냐?]

[...어?]

그 순간,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알‘미라즈의 결심을 흔들었다.

“자, 그럼 바로 출발할까! 다녀올게 사르디엘!””

“잘 다녀와~! 기념품 가져오고! 기다리고 있을게!”

‘어라? 적지 않으려고 했는데 손이 자동으로..?’

너무나도 욕망에 정직한 악마의 본능에서 알‘미라즈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마법진이 검붉은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잠깐! 가면 안 돼요 스승님!”

“응? 뭐라──”

마법진이 강렬한 보라빛을 내뿜으며, 마법진에 다가오려던 알‘미라즈를 마치 가로막듯 밀어냈다.

“꺄악!”

뒤로 콰당 구르며 넘어진 알‘미라즈가 다급하게 고개를 들었을 때는, 마법진 위에 서있던 아르틴과 카르엔의 형상은 사라지고 난 후였다.

“...스승님.”

“그럼, 우리 알리바이는 뭐라고 짜면 좋을까 알‘미라즈? 다른 여인들에게 도와준 걸 들키면 큰일이잖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알'미라즈를 달래줄 사람은 없었다. 오직 사르디엘이 전혀 천사 같지 않은 소리를 하며 행동을 재촉할 뿐.

좆됐다. 라는 생각이 알‘미라즈의 머리를 가득 채울 따름이었다.

지금, 자신의 사랑하는 남편이 지옥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군주 중 1명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흑, 흐윽..."

가슴을 가득 채우는 무력감에, 알'미라즈는 스스로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부우우웅!

나와 카르엔을 감싼 보랏빛 마력이 빛을 뿜어내자, 우리를 감싼 풍경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메피스토 녀석,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마법진이라더니 성능 확실한데?’

고작 중급 마력석을 하나 사용했을 뿐인데 이토록 고성능의 마법진이라니, 아마 메피스토가 나를 위해 직접 만든 술식이 틀림없었다.

“저기 아르틴, 메피스토펠레스를 직접 만나면 어쩔 셈이야? 바로 돌아갈 방법은 준비한 거지?”

내가 마법진의 위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카르엔은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묘하게 촉촉한 눈빛, 순간 얼굴을 붉힐 뻔 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냉정을 되찾았다. 진짜 예쁘긴 하네.

“크흠, 무슨 돌아갈 방법?”

“계약이 잘못 되면 인간계로 돌아가야 하잖아? 나는 괜찮지만, 아르틴 네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런 거 없는데? 나도 편도로 가는 법 밖에 모르는 걸. 메피스토한테 부탁해야지.”

“...뭐? 그럼, 계약을 성립 시킬 방법은 준비한 거지?”

“너도 참, 내가 그런 방법도 없이 지옥까지 찾아왔을까봐? 그야 준비했지.”

“그, 그렇지? 나도 참, 파트너를 못 믿고...”

카르엔의 표정을 보니, 녀석은 별 쓸 때 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나보다. 내가 설마 아무런 생각 없이 메피스토의 궁전에 찾아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메피스토에 대한 대응책은 인벤토리에 전부 준비했으니까, 마음의 준비도 해왔고.”

“..마음의 준비? 대응책? 그게 뭔지 설명해주면……흣?!”

카르엔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마법진을 감싼 마력으로 이루어진 술식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동시에 우리는 여태껏 봐온 그 어떤 궁전의 알현실 보다 크고 웅장한 거대한 공간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확실히 지옥에 온 느낌이 나네, 불쾌할 정도로 마력의 농도가 높은 걸 보면 말야.”

“...파트너, 저기 왕좌 위에 누가 있어.”

온몸에 휘감기는 마력의 끈적한 기분에 미간을 찡그릴 때, 카르엔이 긴장한 목소리로 내 팔을 잡아당기며 정면에 있는 옥좌를 가리켰다.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6년 만에 다시 만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후후, 장미관 때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빌렸으니 본 모습의 짐을 만나는 것 3회차 이후로 처음이구나, 아르틴 루드비히?”

“...메피스토.”

이 거대한 공간에는 어떠한 악마도 없었다. 아마 우리들을, 정확히는 나를 위해 전부 내보낸 걸 테지.

허나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도, 메피스토를 인식한 순간 나는 전신이 압도적인 존재감에 짓눌리는 감각을 느껴야했다.

카르엔도 나와 같은 감각을 느끼는 탓인지, 긴장해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릴 정도로 컸다.

“메피스토라, 후후, 그런 애칭으로 짐을 부를 수 있는 것도 그대뿐이지. 어떤가 짐의 궁전은?”

“...”

“긴장하지 않아도 좋다. 그대는 짐의 벗이니까. 본래라면 오체투지라도 해야겠지만, 특별히 아르틴 너를 위해서라면 그런 사소한 예법정도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메피스토?”

움찔, 자신의 말이 끊긴 메피스토는 불쾌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려다, 그 눈이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하게 휘둥그레졌다. 옆에서 내 행동을 지켜본 카르엔도 다른 의미로 당황하며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파, 파트너?”

“아르틴...? 지금 뭘..?”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인사나 해야지. 메피스토 너 포옹하는 거 좋아했잖아?”

나는 씨익 웃으며 옥좌에서 건방진 자세로 앉아있는 메피스토를 향해 팔을 벌렸다. 이는 메피스토에게 안겨도 좋다는 나와 녀석과의 싸인이기도 했다.

“그, 그, 이곳은 짐의 궁전. 짐이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이느냐!”

“그래? 포옹하기 싫어?”

떨리는 목소리, 흔들리는 동공, 메피스토는 내가 예상한 반응 그대로였다.

‘일단 확실히 해둬야지, 지옥의 대군주 메피스토가 아니라 3회차에 친구였던 메피스토를 만나기 위해 온 거라는 걸.’

메피스토의 생각은 뻔하다. 장미관 때 친근한 태도랑은 다르게 다짜고짜 위압감을 내뿜는 것은 내가 찾아온 의도를 알아채고 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걸 테지.

호락호락 당해주진 않는다. 회귀자의 경험은 이렇게 살려야지.

“그, 그으...!”

“...싫어? 메피스토도 변했구나. 어쩔 수 없지 포옹은 나중에...”

“아니야! 팔 다시 벌려줘! 지금 당장 안길거야!”

이를 뿌득 가는 메피스토를 보며 내가 팔을 내리는 시늉을 하자, 메피스토는 욕망에 충실한 악마답게 결국 내 품을 향해 총알같은 속도로 몸을 던졌다.

“아야, 너 살 찐 거 아니야? 무게가 꽤 는 것 같은데?”

“아냐! 키가 큰 거야! 전부터 나는 글래머한 누님계 악마가 될 거라고 몇 번을 말했잖아!”

“글래머는 아직 먼 것 같은데, 애초에 회귀했으니까 그때 큰 키도 돌아간 거 아니야?”

“우우...또 나쁜 말만 해...그래도 오랜만에 허그니까 봐줄게! 대신 머리도 쓰다듬어 줘!”

이제는 평상시의 가식적인 말투까지 벗어 던지고 내 가슴에 볼을 부비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웃음과 함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정말로, 초월자 주제에 멘탈은 완전히 초딩이라니까.

“...파트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정작 카르엔은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지 완전히 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은 메피스토를 안아주느라 바쁘니까, 나중에 설명해줄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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