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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10화 (210/266)

〈 210화 〉 지옥의 대군주 메피스토펠레스 #02

* * *

잠시 후, 메피스토가 준비한 화려한 만찬이 아르틴과 카르엔의 앞에 펼쳐졌다.

“...맛있다.”

“그, 그러게. 아니 생각보다 더 맛있네? 이런 건 처음이야.”

메피스토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칭찬을 하려던 두 사람은 진심이 담긴 감탄과 함께 식사를 이어갔다.

미각이라는 감각의 쾌락을 극대화 시킨 듯한 산해진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맛있어 아르틴? 흐히히, 겨우 이 정도 요리로 놀라면 곤란한데? 이건 지옥 만찬의 첫 번째 코스에 불과한 걸!”

“..첫 번째 코스? 50명은 족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푸흐흐! 인간의 상식으로 지옥을 평가하면 곤란한데..자 이것도 먹어 봐! 아앙~!”

메피스토는 아르틴의 긍정적인 당황에 만족감을 느낀 건지, 얼굴에 한 가득 미소가 만개한 채 고기경단을 포크로 찍어 아르틴에게 내밀었다.

“아하하..그, 내가 직접 먹을 수 있는데?”

“...아앙?”

“아니, 그..”

“아아앙!!”

“..아앙.”

메피스토의 점점 단호해지는 표정을 본 아르틴은 결국 고기경단을 입으로 받아 먹으며 불편한 미소를 지었다.

“어때 아르틴? 맛있어?”

“..으음, 맛있네. 고마워 메피스토, 그런데 이제 내가 직접..”

“자! 이것도! 아앙~!”

“...”

계속되는 메피스토의 먹여주기에, 아르틴의 표정이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워서? 아니면 창피해서? 아니, 그런 사소한 감정들이라면 계약을 위해서라는 정신승리를 위해 이겨낼 수 있으리라.

“...쁘드득! 까드드득! 으그르그으륵!”

맞은편에서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오는 사타나이차의 이갈리는 소리와 적개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며 아르틴은 당장이라도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30분 전에 죽었겠는데.’

아니, 분명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저 악마는 자신의 기운을 최대한 억누르며 식사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약하게 새어나오는 기운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군단장..아니, 마왕의 권속 중 최강인 하몬도 저 악마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는 걸.’

저 사타나치아라는 악마는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강함을 지녔음에도,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자신이란 존재를 움크리고 힘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 아르틴? 표정이 불편해 보이는데. 혹시 저 염소대가리가 너를 불편하게 하는 거야?”

“응? 아니, 아니야! 그냥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가 속이 더부룩해서...”

“...속이, 더부룩해? 역시 불편한 게 맞나 보네. 그렇지?”

쨍그랑!

메피스토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하는 순간, 주변에 있던 잔과 접시들이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깨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메피스토군의 2인자이자, 열두 가신의 수장인 사타나치아의 전신이 공포로 벌벌 떨렸다.

“사타나치아. 지금 짐의 소중한 친구에게 이게 무슨 무례지?”

“오, 오해십니다 메피스토님. 저는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기운을 억누르고 힘을 억제하여 존재감을 지웠는데...”

“불편하다고 하잖느냐. 아르틴이! 지금 불편해서 속이 더부룩하다고 하잖느냐!”

“하, 하지만 제가 여기서 뭘 더 어떻게...”

“악마가...말대꾸?! 짐에게 말대꾸라도 하려는 게냐?”

“아, 아닙니다! 제 모자람이고 불충입니다 메피스토님!”

메피스토의 외침과 함께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던 탁자가 보란 듯이 반으로 갈라졌다.

대군주의 분노에 사타나치아는 고개를 숙이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렸고, 아르틴과 카르엔은 식사를 멈춰야 했다.

‘...아, 진짜 체하겠네.’

메피스토의 변덕과 함께, 만찬회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참고로 당장이라도 사타나치아를 죽일 것 같던 메피스토의 분노는 아르틴이 가져온 푸딩으로 단번에 풀리고 말았다.

*

“파트너. 나는 너를 진심으로 믿고 신뢰해. 네가 하려는 행동에는 무언가 의도가 있겠지.”

“..으응, 그렇지. 믿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아르틴, 이제 슬슬 계약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고 있지?”

만찬회가 끝난 후, 메피스토의 기분을 좀 더 좋게 만들어주기 위해 아르틴은 인벤토리에서 보드게임을 꺼냈다.

잠깐 놀아주고 기분이 좋아지면, 그 때 계약의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었지만...

“벌써 3시간 째 보드게임만 하고 있잖아. 이러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침소에 밤시중까지 들겠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너도, 그런 일은 없을거야. 아마도.”

“아마도라는 시점에서 파트너도 확신하지 못하는 거잖아?”

곧 있으면 밤이 될 시간, 정말로 이러다 목욕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고 그 김에 살도 섞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상황을 인지한 카르엔이 아르틴을 잠시 불러내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아르티를 꾸짖고 있는 것이다.

“파트너, 너도 알겠지만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신경을 너에게만 쓰고 있어, 내가 계약 이야기를 꺼내도 계속 무시하는 거 봤지?”

“..응, 봤지. 그런데 쟤도 뭐 악의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오랜만에 봐서 반가워서 그런 걸 거야. 그러니까...”

“파트너, 네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카르엔은 아주 오랜만에 아르틴을 향해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단칼에 말을 끊었다.

그녀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아르틴의 판단에 큰 착오가 있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저런 어린아이 같은 악마가 아니야. 너도 봤잖아? 3회차에 바이올렛이 저 악마를 소환할 때 마다 나타났던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그건 단순히 강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악의와 죄악이 악마라는 형태를 빌려 현신한 것과 같았다.

나약한 필멸자들은 그런 죄악의 군주가 마족들을 손짓으로 쓸어버릴 때 마다 공포와 안도감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저 무시무시한 악마가 정말로 지옥에 존재한다는 공포, 그 악마가 지금은 우리의 편이라는 안도감.

“아냐 파트너, 나도 3회차 때 쟤하고 계약도 해봤는걸? 쟤가 겉으로는 폼을 잡아도, 속은 여리고 어리광이 많아. 그냥 장난기가...너무 심할 뿐이지.”

“그게 문제라는 거야! 아르틴 넌 저 악마에게 단단히 홀린 거라고! 저 악마는 알‘미라즈처럼 미숙한 악마가 아니라 지옥의 대군주잖아!”

“...”

아르틴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여의치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에게만 무척 무르고 상냥할 뿐, 계약자였던 바이올렛조차 그녀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던 모습은 3회차 때 자주 봤으니까.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아르틴, 정말 네 말대로 네가 통제 가능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그걸 증명해야해.”

“..증명?”

“가서 단호하게 말해. 지금 당장 계약을 맺자고. 우린 저 악마에게 놀러온 게 아니라 계약을 맺어서 힘을 빌리러 온 거잖아. 계약을 맺고 난 후에는 게임을 하든 뭘 하든 상관없으니까.”

맞는 말이다. 자신들의 원래 목표는 메피스토와 계약을 해서 충분한 힘을 얻어내기 위함이다.

‘그래, 내가 너무 메피스토에게 휘둘렸지. 단호하게 말해야 할 차례인 것 같아.’

이곳에 도착하기 전 생각해둔 계획을 떠올리며 아르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르틴의 결의에 찬 표정을 본 카르엔은, 그제서야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아르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잠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 나는 아르틴이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니까. 알았지?”

“알았어. 그리고 이 손은 놓고 말하면 안 될까? 조금 부담스러운데.”

“파트너 끼리는 손 정도는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러니까 놔.”

시무룩한 표정의 카르엔을 뒤로하고, 아르틴은 메피스토와 놀던 방으로 홀로 돌아갔다.

“흐음, 흐으음, 여기서 천마 토큰을 써서 군단장을 죽이면 크게 점수를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고민 많이 했어 메피스토? 아직도 네 차례가 안 끝난 거야?”

“조, 조금만 기다려줘 아르틴! 5분만, 아니 3분만 더 고민하면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르틴이 현대의 지식을 살려 직접 만든 보드게임에 푹 빠진 메피스토의 모습에, 아르틴은 자신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런 애 같은 면이 메피스토지.’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몰라도, 메피스토는 자신에게는 피곤하고 귀찮지만 동시에 어리광을 열심히 부리는 귀여운 소악마 같은 녀석이었다.

3회차 때도 자신의 부탁에 매번 짓궂은 조건이나 고약한 농담을 섞긴 해도 잘 들어주던 녀석이니, 이번에도 제 말을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저기, 메피스토? 보드게임은 잠시 멈추고 할 말이...”

“이제 계약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냐?”

“어? 으응, 역시 알고 있었구나? 그게 사정을 설명하자면...”

“다 알고 있다. 아르틴, 짐은 모두 알고 있느니라. 그대에 대한 거라면 무엇이든지 말이야.”

위화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메피스토의 말투와 목소리가 단번에 변한 탓에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허나 당사자인 아르틴은 조금 당황했다. 메피스토가 자신에게 이렇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준 건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저기, 메피스토? 혹시 화났어?”

“화가 났냐고 물었느냐? 아니다 아르틴, 짐은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메피스토는 여전히 아르틴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보드게임 판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르틴을 위해서라면 세상 전부라도 줄 것 같던 메피스토의 기분이 왜 갑자기 나빠진 것일까.

“짐이 그대에게 마법진을 알려준 것이 3회차였다. 그 이후로 짐은 매일매일 그대가 언제 짐의 성에 놀러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대가 죽고 나서도 매일을 기다렸다. 시간이 돌아가고 나서도 매일을 기다렸지,”

“그대가 4번째 삶을 누리며 같잖은 사랑놀음과 용사놀이를 하는 순간에도 매일매일.”

“...메, 메피스토?”

뚝, 메피스토의 말이 멈췄다.

차갑게 내뱉던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메피스토는 아르틴을 위해 자신의 기운을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고 있었다.

“아르틴, 그대는 진짜로 짐을 친구로 여긴 것이냐? 매번 그대가 했던 말처럼, 우정을 나눈 친구가 맞느냐?”

“..미안해, 하지만 4회차 때는 내 나름대로 노력하기 위해서 그랬던 거라...”

“6년이었다.”

메피스토의 눈이 아르틴을 바라봤다.

늘 개구쟁이 같은 웃음만 짓던 메피스토의 눈가에 난생 처음 울음기가 글썽이자, 아르틴의 표정도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악마의 삶에는 찰나에 불과하고, 인간의 삶에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짐에게는 그 6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 긴 시간동안, 짐을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것은...”

메피스토의 자그마한 손이 아르틴의 손을 잡았다.

눈앞의 아르틴이 자신의 상상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임을 확인이라도 받고 싶다는 것처럼.

“그대가 말하는 친구라는 것이 실은 거짓이었던 것이냐? 그대에게 이 세계가 진짜 세계가 아닌 것처럼.”

“…너.”

“대답해 보거라 아르틴 루드비히. 아니면 양희민이라고 불러주길 바라느냐?”

이 세계 와서 2번째로 자신의 이름을 타인에게서 들은 아르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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