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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14화 (214/266)

〈 214화 〉 소중한 친구 #03

* * *

내게는 친구가 1명 있었다.

아니, 친구라고 믿었던 녀석이 1명 있었다.

“어라? 희민아. 왜 오늘도 혼자 청소하고 있어? 다른 애들은?”

친구라는 개념을 머리로만 이해하던 내게, 진짜 친구처럼 다가오며 살갑게 대해주던 녀석이 있었다.

“뭐? 또 너한테 청소를 전부 떠넘겼다고? 이 새끼들이 진짜. 내가 한 마디 해줘?”

언제나 고독을 씹고 있으면 먼저 다가와, 놀러가자고 제안을 해주던 녀석, 나대신 다른 아이들에게 목소리를 높여주던 유일한 친구였었다.

“...별 거 아니야. 이 정도는 나 혼자 해도 충분하니까!”

“무슨 소리야! 같이 도와줄 테니까 끝나고 노래방이나 가자. 어때?”

기뻤다.

고아원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내게,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먼저 다가와준 그 녀석이 너무도 고마웠다.

“아, 맞다. 내가 오늘 지갑을 안 가져 왔네...희민이 네가 계산해줄 수 있어어? 내가 나중에 줄게!”

“으, 으응. 괜찮지. 다음에 편할 때 줘.”

“역시! 우리 희민이는 우정이 있는 녀석이라니까!”

그런 녀석이 고마워서, 나는 녀석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 노력했다.

쥐꼬리 보다 작은 고아원의 용돈으로 녀석을 대신해 계산하고, 생일에는 문화 상품권이라도 1장 구해다 선물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면 곤란해 하는 녀석을 대신해 전부 처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지만 그 때는 그런 멍청한 봉사조차 행복했다. 내게 처음으로 친구라는 것을 알려준 녀석에게 보답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기 때문일까.

“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나? 나는 노동 같은 것보다 스마트하게 돈 벌지. 토토라고 알고 있어? 이게 분석만 잘 하면 어마무시하게 벌 수 있는 건데...”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가끔씩 만나던 승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승후에 대한 나쁜 소문이 내 귀에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나는 그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가끔 녀석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보여도 애써 무시했다. 아무리 승후가 조금 바꾸었다고 해도, 나의 유일한 친구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들어봐 희민아, 이게 사업 아이디어가 보통이 아니라니까? 요즘 코인이 엄청 유명한 거 알지? 네가 자본금만 투자해서 코인만 상장하면 10배가 우스울 정도로 벌 수 있어!”

어느 날 녀석이 고등학교 졸업 후 6년간 모은 전재산을 자신의 사업에 투자해 달라고 했을 때,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아무리 내가 녀석을 유일한 친구로 여겼다 한들 그 제안은 거절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서 온갖 달콤한 말을 내뱉은 사람이,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여전히 나를 소중한 친구로 여기는 내 유일한 친구일 거라고.

──승후 녀석이 내가 6년간 모은 전 재산을 가지고 해외로 도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2달 후였다.

분노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이렇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도 진심으로 믿을 수 없었다.

나를 낳아준 부모조차, 나를 길러준 고아원의 선생들조차, 내게 먼저 다가온 친구조차 나를 배신했다. 그 사실은 지금 현재까지도 내 행동과 사고를 강하게 옥죄는 사슬이 되어 남았다.

­“이 염치도 모르는 호로 새끼가!!!”­

진심으로 믿으며 사랑하던 렉스턴에게 버려진 시온을 보자,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렉스턴을 때려눕힌 후 시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도, 나도, 이 좆같은 세계에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누구에게도 보답 받지 못할 선행을 반복하던 카이엔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자고 먼저 가가가 마음을 열기도 했었다.

내가 겪은 슬픔을 다른 누군가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내가 느낀 행복을 다른 누군가도 느꼈으면 좋겠으니까. 그 마음에 솔직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를 바라보는 메피스토의 표정은.

“왜, 왜 그러느냐...? 왜 말이 없는 게냐? 짐이 줄 수 있는 것들이 별로라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지 않던 표정이었다.

*

­“좋다. 아르틴, 계약이라면 해주마, 유일한 친구를 위해서라면 짐은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있는 힘껏 자존심을 부린다. 너와 내가 동등한 친구라는 사실을 믿고 싶으니까.

­“그, 그렇지 참. 악마인 짐이 말로 떠들어 봤자 믿기 힘들겠지? 정식 계약을 하자구나! 그럼 믿을 수 있겠지?”­

그 자존심이 무너지고 나면, 너와 나 사이의 관계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난다.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이 관계에서 의존적인 것은 누구인지.

­“아, 아직도 부족하느냐...? 그, 그렇구나. 짐이 언제 질려서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걱정이 되는 것이겠지? 걱정 말거라! 그대의 말이라면 전부 들어줄 테니!”­

그리고 그 관계를 스스로가 깨닫게 되는 순간...상대방을 향해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애원하게 된다.

상대방이 자신을 버릴 수 있을지언정, 자신은 상대방을 버릴 수 없으니까.

아무리 달콤한 말로 자신을 꾀어내려고 한다는 것을 알아도 거부할 수 없다.

믿고 싶어진다. 너는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고. 너 만큼은 언제나 내 곁에 믿어줄 거라고.

다른 모두를 배신해도, 나에게만큼은 언제나 상냥한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바보 같다.’

메피스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전부를 내게 줘봤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메피스토의 것은 한 줌도 되지 않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나도 알고 있기에, 이 거래는 한없이 불공정한 것이다. 나에게도, 메피스토에게도.

허나 메피스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절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더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이미 전부를 내줬는데, 무엇을 더 줄 수 있겠는가.

나도 그랬다. 내가 모았던 그 돈은 단순히 6년이란 시간이 아니었다. 25년간의 내 인생을 바쳐 모아온 내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녀석에게 흔쾌히 내주었던 것이다.

이것을 주면 상대방에게 생색을 낼 수 있어서? 성의를 보여주고 싶어서? 이 관계에 우위를 잡고 싶어서?

‘바보 같이 방법을 몰랐으니까.’

다르다. 물질적인 무언가로 상대방에게 우위를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내가 받아온 것들을 갚아주고 싶은 것이다. 상대방도 내가 느꼈던 고마움을, 행복을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는 간절히 바라는 거다. 자신보다 부족한 것 없는 상대방이, 이 감정을 공유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를 소중한 사람으로 여겨줬으면 하는. 얄팍한 생각.

방법을 모르는 거다. 처음으로 마음을 채워준 사람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모르니까. 마음을 주는 방법을 모르니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맞추려고 노력하며, 물질적으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다.

‘정말...병신 같다. 나.’

메피스토에게 친구가 되자고 먼저 다가간 것은 나였다. 그녀에게 많은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것도 나였다. 메피스토를 보고 있으면 과거의 내가 떠올랐기에 더 열심히 가르쳐주려고 했다. 친구가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다르다. 나와 메피스토의 관계는 이미 대등한 친구 따위가 아니었다.

녀석이 무슨 선물을 좋아하는 지, 어떤 행동을 기뻐하는 지, 어떤 말에 행복해하는 지 알고 있기에 설득을 하기 쉬울 거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내게 메피스토는 구워삶기 쉬운 초월자에 불과했다.

메피스토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더더욱 나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친근하게 대한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말이다.

자신이 틀린 것이다. 그저 자신의 과한 상상이 나쁜 의심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르틴이 내게 그럴 리 없다. 아르틴은 내 소중한 친구니까──

──나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괴물이 되고 말았다.

*

연기처럼 흩어지는 술식들을 바라보는 메피스토의 눈에 절망이 내려앉았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만약 무슨 말을 꺼내려고 입을 여는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갑자기 울면 아르틴이 곤란해 할 것이고, 아르틴과 즐거운 시간도 우울해 질 테니까. 참아야, 참아야....

“흐읍...끄으윽...”

참지 못한 울먹임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참아야 하는데, 울면 안 되는데, 아르틴은 우는 사람을 볼 때 마다 늘 곤란한 표정을 지었는데.

놓치면 안 되는데, 여기서 정말 울었다간, 더 이상 아르틴과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텐데. 참아야해, 참아야...

메피스토는 이를 악물고 속마음을 되새겼지만, 아르틴에게 거절당했다는 현실을 자각하자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 무력감이 메피스토의 의지를 나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안...미안해, 억지를 부려서...정말, 정말 미안해...그래도 미워하지 말아줘...”

이미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들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속마음을 숨기기 위해 뒤집어썼던 권위적인 말투도 잊고 아르틴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계약은 없어도 좋으니까. 한 달에 한 번...아니, 일 년의 한 번...회귀마다 한 번만 나를 찾아와도 괜찮으니까...”

버리지 말아줘, 라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정말 입으로 내뱉은 순간, 아르틴에게 버려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추했다. 이래서야 아르틴도 자신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미안해, 많이 귀찮지?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노력할게. 귀찮은 모습도 보여주지 않을 테니까...”

굳게 잡았던 아르틴의 옷깃을 천천히 놓았다. 사소한 행동 하나 조차, 아르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관계가 간절한 것은 메피스토 자신이니까.

친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은 자신이니까.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아, 아르틴?”

서서히 멀어지던 메피스토의 몸을 아르틴이 강하게 끌어안았다. 따스했다. 그 따스함이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져, 메피스토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르틴을 올려다보며 당혹감이 어린 표정을 지었다.

“네가, 메피스토가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야. 자격이 없는 건 나라고...!”

아르틴은 왼팔로는 메피스토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끌어안은 채로, 오른팔을 뻗어 허공의 연기가 완전히 흩어지게 팔을 휘둘렀다.

“사과해야 할 것은 나야. 미안해야 할 것은 나라고. 애원해야 할 것은 난데...!”

그 빈자리에, 아르틴은 마나를 담아 새로운 계약식을 손끝으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왜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네가 사과를 하는 건데! 사과 하지 마!”

처음이었다. 가끔 짜증을 부리기는 했어도 평상시에는 늘 자신에게 상냥한 모습만을 보여준 아르틴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르틴은 자신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어째서 저렇게 화가 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는 듯 신경질을 내며 계약식을 써내려 갔다.

“내 전부를 줄게. 외로움을 타지 않게 노력할 게, 준비해 온 선물들도 전부 줄게. 여태까지 가르쳐준 것들보다 더 즐거운 것들을! 행복한 것들을 알려줄게!”

호쾌하게 써내려간 계약의 술식들이, 하나의 문장을 이루자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울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아르틴이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메피스토도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슬픈 기분은 아니었다.

“──가 되어줘!”

*

아르틴의 진심어린 외침이 끝나자, 방 안에 고요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웠다. 이 상황과 감정을 따라가기에는 너무 벅찼다. 메피스토에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으니까.

혹시나 꿈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이번에는 아르틴이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허나, 아르틴은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정구로 보던, 연인들이나 친구들에게 진심을 전할 때 말하던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처음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가볍게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답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자신의 가슴에 간질거리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참기가 힘들었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방금 전까지 마음을 가득 채운 슬픔과 절망이 밝게 물들기 시작했지만, 메피스토는 감정을 꾹 참았다.

억누르지 않았다간, 너무 행복한 나머지 울음을 펑펑 터트리느라 대답하지 못할 것 같아서.

“──응!”

메피스토의 대답과 함께 계약의 술식들이 힘을 얻었다. 이는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증거이다.

이제 이 계약은 그 누구도 끊을 수 없다.

아르틴이 마음을 바꾼다 해도, 메피스토가 끝내고 싶다고 생각해도 계약을 끝낼 수는 없다.

왜냐면, 두 사람은 이 계약에 마침표가 될 조건을 넣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이 계약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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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계약의 조건 : ‘당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

계약의 대가 : 친구가 되어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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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영원토록 지속될 친구 계약이 성사되었다.

그리고 메피스토의 첫 친구와의 다툼이 시시한 결말로 막을 내렸다.

모든 친구들 간의 싸움이 그렇듯이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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