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악마와의 신혼 생활 #02
* * *
남자는 가끔, 불가능에 도전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게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세상에! 정말 다 드셨네요! 그렇게 맛있으셨나요 스승님?”
“후후후! 내 요리솜씨도 생각보다 괜찮지? 내가 진심만 내면 이 정도라니까?”
식탁 위에 놓여진 텅텅 빈 접시들을 보며, 알‘미라즈와 메피스토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설마 자신들도 다 먹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지, 혹은 정말로 꽤 먹을 만 한 요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꽤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이 참 보기 좋았따.
그래, 내가 목숨을 걸고 다 먹을 정도로 말이다.
─────────────────
긴급상황!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독기가 사용자의 몸에 가득 찬 상태입니다!
유니콘과의 계약에 따른 독기의 저항력이 치명적인 독성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
─────────────────
긴급상황! 인체에 가득 찬 독기와 오염도가 유니콘과의 계약으로 견딜 수 없는 수준입니다!
천사 사르디엘과의 계약에 따른 독에 대한 면역이 사용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
─────────────────
긴급상황! 사용자의 신체에 축적된 마력과 마기가 사용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준입니다!
대악마 메피스토와 유니콘의 계약에 따른 저항력이 사용자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
‘죽겠다. 맛이 없다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 유니코르가 없었으면 한 입만 먹었어도 죽었을 거야...!’
눈앞에 빨간 위험표시와 함께 점멸하는 상태창의 상태만 봐도 알겠지만, 방금 먹은 요리라는 것들은 요리라는 수식어를 모독할 수준이었다.
아니, 일단 요리에 영혼을 제거하고 숨통을 끊었다고 들었는데, 왜 씹자마자 살아서 펄떡인 걸까? 아마 나는 평생이 지나도 알 수 없는 이유겠지.
‘아니, 살아서 움직이기만 하면 산낙지 먹는 기분으로 먹었을 텐데...’
맛이 끔찍할 정도로 없었다. 3회차에 혀를 잘게 자르는 고문을 당했을 때도 이정도로 고통스럽지는 않았는데, 만약 이단심문관들이 이 요리를 강제로 먹였다면 굴복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게다가 한 입 먹을 때 마다 물리적으로 고통이 느껴졌다. 재료에 담긴 독성과 마력을 제거하지 못한 건지, 육즙 비슷한 게 터질 때 마다 내 혀의 감각이 마비되며 상태창이 울리더라.
앞서 유니코르와의 계약, 그리고 사르디엘과의 계약으로 신체에 위험한 물질들에 내성과 면역을 갖추지 않았다면 정신을 차렸을 때 아마 입학식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왜 아까부터 말이 없으세요 스승님? 혹시...맛이 별로였나요?”
“후후후, 짐의 작은 토끼도 아직 어리구나. 사랑이 가장 큰 조미료라는 말을 모르느냐? 짐과 네 사랑을 가득 담은 요리가 설마 맛이 없을 리가!”
“그, 그렇죠? 맛있었죠? 다 먹은 걸 보면 분명 맛있게 드신거죠?”
아니, 너무 맛 없어. 먹다가 죽을 뻔했어. 너희는 절대로 다신 요리 하지 마.
“...응, 맛있네. 어제 먹은 만찬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어.”
그런 차가운 말을 내뱉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미울 때가 없었다. 카르엔이 게이짓 하는 걸 보고 손절 못했을 때도 이정도로 분하진 않았는데.
“그..쿨럭! 그, 이제 다 먹었으니까. 가도 되지? 슬슬 아이들이 걱정하겠다.”
속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독기를 기침으로 억누르며,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계속 있다가는 점심까지 만들어 줄 것 같아서 두렵기 까지 했다.
“...메피스토?”
“벌써 갈 거야...? 아, 아직 여기 온지 24시간도 안 지났잖아...”
그런 나를 붙잡은 건 알‘미라즈도 아닌 메피스토였다. 자신의 부하 앞에서는 어지간하면 근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텐데, 메피스토는 그러지 않았다.
“네 버킷 리스트란 걸 계속 보면서, 나도 생각했단 말야. 네가 그토록 해보고 싶던 일을 대신 해주고 싶다고...네, 네가 웃는 모습만 봐도 나는 행복한 걸...”
“...”
확실히, 메피스토가 내게 요리를 해주던 표정을 보면 내게 직접 안길 때처럼 행복해 보였다.
신혼집에서 새색시에게 손수 만든 요리를 먹는 것은, 메피스토의 소망이 아니라 나만의 소망이었을 텐데 말이다.
“더, 더 머물라고는 안 할게. 24시간, 응? 딱 24시간 만 머물다 가면 안 될까...? 아직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많단 말야...”
“군주님...스승님도 곤란하실 거예요, 이만 보내드리는 게...”
내 표정이 굳는 걸 본 알‘미라즈가 메피스토를 만류하자, 내 옷깃을 잡은 손아귀의 힘이 점점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일까,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알았어, 좀 더 머물다 갈게. 그러니까 그런 슬픈 표정 짓지 마.”
“지, 진짜?!”
“친구...아니, 그래. 연인을 위해서인데 하루도 시간을 못 낼까. 점심 때 까지는 여기에 있어줄게. 알았지?”
“와아♡! 아르틴 최고♡!”
메피스토가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내 품에 안기자, 나는 어쩔 수 없이 메피스토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어쩐지 악마의 농간에 넘어간 것 같지만, 남자에게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란 것도 있는 법이겠지.
“그래서, 다음에 해주고 싶은 건 뭔데? 보드게임? 산책?”
“후후후, 그야 아르틴 네가 양희민으로 살 때 가장 해보고 싶던 거지!”
“...?”
**
한 악마가 닫힌 메피스토의 성문 앞에서 전전긍긍한 표정을 지으며 다리를 떨고 있었다.
“메피스토님...도대체 안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 겁니까...?”
불안에 떠는 악마는 다름 아닌 메피스토의 비공식 2인자이자 오른팔인 사타나치아였다.
어제 저녁, 사타나치아와 성의 고용인들은 메피스토에 의해 함께 강제로 성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짐이 성문을 다시 개방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성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청천벽력 같은 일방적인 통보였다. 사타나치아는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강경한 메피스토의 태도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장 먼저 성 밖으로 쫓겨났다.
“알‘미라즈, 그 풋내기 녀석이 상황을 살피겠다며 들어 간지 벌써 6시간이 지났는데...”
누구도 메피스토의 명령을 감히 거스르지 못하고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구세주처럼 나타난 것은 메피스토의 총애를 받는 알‘미라즈였다.
사정을 들은 직후, 알‘미라즈는 자신이 직접 메피스토님을 설득해보겠다며 다급하게 들어갔지만 그 이후로 감감무소식. 성문도 열리지 않았다.
“결국 소멸당하고 만 건가? 아무리 총애를 받았다고 해도 명령을 어긴 죄는 크다는 걸 테지...”
사타나치아는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의 군주가 한 번 변덕을 부리면 그게 몇 년까지도 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그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대로 자신이 포기하면 영토 내의 행정체계는 마비가 될 것이고, 그 끝에는 어떤 파국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
“어쩔 수 없지. 성 앞에 천막을 쳐라! 이제부터 성에서 치러져야 할 업무는 천막에서 치르도록 하겠다! 메피스토님이 자리를 비웠으니 평소처럼 내가 대리인으로 업무를 처리하겠다!”
사타나치아는 메피스토의 최측근으로서, 2인자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깊은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다. 자신의 수명을 태워서라도, 모든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런 그의 선택에 부하 악마들도 감명을 받은 것인지, 경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는 상태였다.
“뭣들 하느냐! 빨리 가만히 있지 말고 천막을 치고 탁자를 가져와라! 지금 당장부터 시작해야..”
“사, 사타나치아님! 성문이 열립니다!”
“뭐?”
황급히 등을 돌리자, 사타나치아의 눈에 기적이 펼쳐졌다.
길게는 10년까지도 닫혀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 성공했구나! 알‘미라즈! 괜히 총애를 받는 게 아니었어! 하하! 하하하!”
그 광경을 보며 사타나치아는 감격에 차 오랜만에 행복한 웃음을 터트렸다. 실패했을 거란 실망을 이겨내고, 알‘미라즈가 해낸 것이다!
*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벅찬 감격은 단 5분도 이어지지 않았다. 사타나치아의 염소 눈동자에 커다란 좌절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들은 거지?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사타나치아, 짐은 그대가 무척 현명하고 똑똑한 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말을 2번이나 하게 할 셈이냐?”
“메, 메피스토님. 이번 일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잖습니까? 사타나치아님께 제대로 차근히 설명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메피스토가 자신을 타박하자,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사타나치아의 시선에 몸을 움찔거린 알‘미라즈가 최선을 다해 메피스토를 달랬다.
그런 그녀의 정성이 닿은 걸까, 혹은 같은 아르틴의 여인이라는 점을 존중한 것일까 메피스토는 한숨을 내쉬며 방금 한 말을 천천히, 풀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으니 짐이 직접 다시 설명해주마, 오늘부터 인간 아르틴 루드비히를 짐의 부군이자 대리인으로 임명하고, 짐의 영토를 다스리는 공작위를 내리고자 한다. 알겠느냐?”
“아니...그게 그...아니...이게 대체 무슨...”
사타나치아의 허망한 눈이 옥좌를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옥좌‘들’을 향했다.
본래라면 하나만 있어야할 지옥을 지배하는 대군주의 상징인 옥좌가, 지금은 2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게다가 그 자리 중 하나에는, 뭔가 정신이 나간 웃음을 짓고 있는 아르틴이 넋이 나간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누가 보면 백치인 줄 알겠지만, 메피스토는 그런 아르틴의 모습도 사랑스러운 건지 눈에 하트를 띄운 채 손을 깍지까지 끼고 있었다.
‘...아아, 우리는...메피스토 군은 완전히 망조가 깃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사타나치아는 고개를 푹 숙여야했다.
지금 자신의 몸을 채운 무력감과 분노를 시선에 담는 순간, 저 나약한 필멸자를 단번에 죽여 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물론 옥좌에 앉아있는 아르틴도 그런 사타나치아랑 비슷한 의견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
“나보고...뭘 하라고?”
“아르틴도 참, 출근이라고 말했잖아?”
“아니, 그러니까...정확히 뭘 하고 싶다고?”
“그러니까안♡ 출근하는 아르틴을 배웅하면서 내조를 하고 싶어! 아니, 같이 출근하는 것도 좋겠다! 그것도 해보고 싶었지? 사내연애!”
“...그, 그렇긴 한데...”
이 미친 상황의 이야기를 설명하려면, 조금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