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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23화 (223/266)

〈 223화 〉 악마와의 신혼 생활 #05

* * *

생일은 그 사람의 탄생을 축하받는 날이다.

당연히 고아원 출신이었던, 탄생과 동시에 버려졌던 나에게는 거리가 아주 먼 기념일이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내게 생일은 별 감흥 없는 날이기도 했다.

단지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나 카톡의 광고 친구들에게서 축하 문자를 받는 날, 승후의 말 뿐인 축하 인사나 한 마디 받는 정도의 날.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메피스토에게 현실의 내 생일을 축하 받는 것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다.

그러니까, 내 눈물에서 눈물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적인 흐름이 아닐까?

“스승님, 이제 그만 진정해주세요! 벌써 20분 째 울고 계시다고요!”

“미, 미안해 알‘미라즈, 하지만 눈물이,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걸...크흠!”

머리핀을 붙잡고 감동에 취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20분이 지나다니.

현실에서 느꼈던 외로움이 겹쳐져서 일까,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더 감정적으로 반응해버린 것 같다.

“헤헷, 그렇게 기뻐? 아르틴이 눈물을 질질 흘리는 울보가 되어 버릴 줄은 몰랐는데~”

“...아니, 이건 비겁하잖아. 나도 잊고 있던 생일을 축하 받을 줄은 몰랐으니까, 우는 게 당연한 거라고.”

“헤헤헷! 하긴 당연히 기쁘겠지, 이렇게 너를 위해 정성껏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준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역시 아르틴도 내가 최고지?”

내 우는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메피스토도, 내가 눈물을 멈추자 그제야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평상시라면 괘씸한 언행에 볼을 꼬집었을 텐데, 축하 받은 게 너무 기쁜 나머지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크응, 확실히 고맙네. 이런 깜짝 축하는 살면서 두 번째라 그런가,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어? 두 번째라고? 첫 번째가 아니라?”

“응? 어, 두 번째지. 실제 생일로 치면 처음이긴 하지만...”

뭐지? 알‘미라즈에게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며 대답했을 뿐인데, 메피스토의 표정이 묘하게 굳은 것처럼 보였다.

“처, 첫 번째는 언제인데? 현실의 기억에는 축하받은 기억은 없었는데?”

“그야 첫 번째로 깜짝 생일파티를 받은 건 1회차 때였거든, 그때도 엄청 기뻐서 펑펑 울었는 데, 아, 그때 생각나서 더 울 것 같아.”

“...1회차? 1회차 때 누구?”

어라, 이상하게 메피스토의 웃음기가 싹 사라진 것 같다?

“왜, 왜 그래? 혹시 화났어 메피스토?”

“...아니야! 내가 화낼 리가 없잖아? 오늘은 아르틴의 소중한 생일을 축하하는 날인데! 그냥 궁금해서 그래!”

“그치? 아니 나는 갑자기 왜 화를 내나 걱정했네! 아하하!”

내 걱정이 기우라는 듯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활짝 웃는 메피스토를 보고 나서야, 나는 안심하며 소중한 추억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일을 축하해 준 사람은 샤오메이였거든. 1회차 때 루드비히 가문에서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을 때, 유일하게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 게 샤오메이였거든.”

“...아하, 그 곰 수인 혼혈 여자애, 말이지? 아르틴을 강제로 덮치려고 했던?”

“맞아. 그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나보다 어린 동생 앞인 것을 알면서도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그 당시의 나는 사람 같지도 않은 루드비히 가문의 가문 사람들과 고용인들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진지하게 내가 살아도 되는 인물인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늘 곁에서 지탱해주며, 형님~형님~하고 졸졸 따라다니던 샤오메이가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세계에 기대 자체를 버리지 않았을까.

“샤오메이는 가문의 만류도 무릅쓰고 아카데미를 자퇴하고 나를 따라왔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아마 루드비히 가문 사람들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나한테 내색 한번 안하고 늘 밝은 모습만 보여줬거든.”

“흐응...그렇구나..?”

“깜짝 축하파티를 해준 날도 얼마나 좋았는데, 방에서 혼자 눈이 내리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열고 직접 만든 요리를 가져다주면서 축하해줬거든! 그때는 우울증 때문에 식사도 자주 거를 때였는데, 그때는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식사를, 손수 만든 식사를. 해줬단 말이지?”

“응, 게다가 선물도 직접 만든...”

“그, 그만! 스승님 그만! 저희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벌써 2시간 가까이 늦었어요!”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즐거웠던 추억의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샌드위치는 전부 먹어 치운지 오래였고 시간도 인간계로 돌아가기로 한 지 2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이런, 중간부터는 내 이야기만 했네. 미안해 메피스토, 재미없었지?”

“──아니야! 재미있었어! 아르틴의 행복했던 이야기가 어떻게 재미없겠어? 더 듣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못 듣는 게 아쉬운 걸, 응.”

“그러게, 정말 아쉽다. 메피스토도 인간계로 같이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역시 지옥을 지켜야하니 무리겠지. 아하하.”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메피스토가 직접 만든 귀걸이를 곧바로 착용한 다음 보여줬다.

직접 만든 탓에 투박함이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정성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은 악세사리인 걸. 이래서 유니코르도 내가 만든 악세사리를 좋아했나?

“...어때 아르틴?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들어! 나는 보물 같은 것 보다 이런게 훨씬 좋거든! 고마워 메피스토!”

“헤헤헤, 마음에 들면 다행이다.”

내가 선물을 마음에 들어 하자, 메피스토도 다시 아까 전처럼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간계로 향하는 나를 배웅했다.

“이 좌표가 이 방으로 오는 좌표니까, 다음에는 올 때는 이곳으로 오면 돼! 나도 여기서 아르틴을 기다릴 게, 알았지?”

“하하하, 기다리는 건 좋지만 집무도 열심히 해야 한다? 사타나치아님이 얼마나 기뻐하는 지 좀 부담되더라, 다음에 올 때는 일 밀리지 않기로 약속하면 선물 사올게. 알았지?”

“...약속이다?”

메피스토가 새끼 손가락을 수줍게 내밀자,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내밀어 약속을 걸었다.

“응, 약속. 친구끼리의 약속이야.”

처음에는 괜한 걱정이 많았던 지옥여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오길 잘한 것 같다.

메피스토의 이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같이 따뜻해 지는 기분이 드니까.

**

──피싱!

마법진이 강렬한 마력으로 감싸진 직후, 아르틴의 모습이 마법진 위에서 사라졌다. 메피스토가 직접 제작한 마법진이니 아마 인간계로 정확하게 도착했으리라.

“저...주군, 괜찮으신가요?”

아르틴의 모습이 사라지자, 알‘미라즈가 메피스토의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는 인간계로 돌아가지 않고 우선 지옥에 잔류를 선택했다.

‘아, 아까 메피스토님의 웃음에 살기가 느껴지던데...’

방금 전 샤오메이와의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던 아르틴을 보며, 알‘미라즈는 메피스토의 손이 탁자 밑에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다.

이는 샤오메이 일생일대의 위기이기도 했다. 감히 지옥의 대악마가 필멸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저주하는 순간, 그 필멸자의 인생은 산산이 부서질게 틀림 없으니까!

“저기 주군, 스승님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닐 거예요. 아까 보셨잖아요? 주군이 준비한 선물과 음식에 감동해서 펑펑 울던 걸요!”

“...”

“게, 게다가 1회차의 일이라잖아요? 기억은 평생 남겠지만, 결국 이번 생에서 가장 먼저 선물을 준건 주군이니까, 굳이 질투하실 필요도...”

“...짜증나.”

우뚝, 메피스토의 차가운 목소리에 알‘미라즈의 몸이 얼어붙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인간계로 도망치고 싶었다. 알‘미라즈가 그러지 않은 것은, 샤오메이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아르틴이라는 사실 단 하나 떄문이었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왜 내가 처음이 아닌데? 난 내 처음을 전부 아르틴에게 줬는데, 왜 아르틴은 내가 준 것을 보고 다른 여자를 떠올리는 거야? 짜증나.”

“히끅...히끅...”

처음이라는 말이 나오자, 알‘미라즈는 심장이 말 그대로 콩알처럼 줄어드는 경험을 느껴야만 했다.

감히 불경하게도 자신의 군주보다 먼저 아르틴과 동침한 전적이 있는 만큼, 저 악의가 자신을 향하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까.

그런 알‘미라즈의 기분을 모르는 지, 메피스토는 아르틴의 앞에서 보이던 귀여운 메스가키 메피스토가 아닌, 위대한 지옥의 대군주 메피스토펠레스로 돌아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며 무심한 눈으로 알’미라즈를 바라보았다.

“짐의 작은 토끼야. 짐의 기분이 실로 불쾌하구나. 분노를 표출해야겠어.”

“...히끅!! 히끅!! 그, 부, 분노를 표출하신 다면...?”

“글쎄...무엇을 해야 이 시궁창에 구르는 것 같은 분노가 풀릴지...”

알‘미라즈의 말에 메피스토는 짐짓 고민하는 기색을 풍겼다. 무엇을 해야 자신의 이 분노와 질투를 해소할 수 있을까.

...아하.

아르틴이 쓰던 포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져있던 메피스토는,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진 것처럼 크게 웃었다.

“그렇지. 좋은 생각이 났다. 당장 사타나치아를 짐에게 데려 오거라.”

“메, 메피스토님!? 그, 그것만은 제발 멈춰주셔야 합니다!!”

알‘미라즈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지만, 오체를 바닥에 내던져 조아리며 메피스토의 행동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사타나치아는 현재의 메피스토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유능한 재상이며 열두 가신의 수장이다.

그 위대한 2인자가 단순히 화풀이를 이유로 용암대장군 아즈구단처럼 사라진다면, 메피스토군의 붕괴는 확정적이다.

“분노는 이해하지만, 제발 사타나치아님 만큼은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몰락할지도 모릅니다!!”

“...? 짐의 작은 토끼야. 네가 무슨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짐이 어째서 사타나치아를 건드리겠느냐?”

“...네? 그럼?”

“너도 보지 않았느냐? 마치 첫사랑에 빠진 계집애처럼, 신에 미친 광신도처럼 아르틴을 바라보는 사타나치아의 표정을. 영특한 아이이니 자신이 품은 감정을 지금쯤 자각했을 테지.”

달그락, 달그락, 메피스토가 가볍게 손짓하자 방금 전까지 어질러져있던 주방이 말끔하게 원상복구 되기 시작했다.

마치 아까전의 분주하게 요리를 하던 모습은 전부 연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얼마 전에 지옥에 떨어진 타락천사를 기억하느냐? 보르펠, 그 가장 깊은 무저갱에 떨어진 죄 많은 버러지를 말이다.”

“...아, 그. 천국에서 직접 벌을 주라면서 메피스토님에게 보냈던 그 악마 말입니까?”

대부분의 가신들은 눈앞에서 갑자기 떨어진 타락천사의 모습은 봤지만, 그 타락천사가 왜 지옥에 떨어졌는지, 그것도 왜 메피스토의 앞에 떨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미라즈는 그 내막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메피스토의 최측근이며 동시에 아르틴의 하렘의 일원인 만큼, 메피스토가 그 내용을 조금은 귀띔을 해준 것이다.

“그래, 그 천사가 내 분노를 사 무저갱에 떨어진 것은 다들 알고 있지만, 그 건방진 병신 천사가 감히 아르틴의 수호천사의 직위를 받고도 아르틴을 통제하려고 괴롭혔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지.”

“...그, 그렇습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메피스토님께서 말씀을 안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럼 이제 사타나치아가 그 사실을 알면, 그 아이가 어떻게 움직일까?”

“그건...”

산양의 왕 가문은 수천 년간 메피스토펠레스의 대리인이자 2인자를 자처하며, 지옥의 수많은 것을 관리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 분야를 일일이 세는 것이 바보 같은 정도로 많은 일들을 말이다.

자연히 그 권세는 만약 메피스토가 지옥의 군주들 사이에서도 최강이라고 불리는 초월자가 아니었다면, 아니 최강이라고 불리는 지금도 사타나치아가 반역을 일으킨다면 메피스토 군이 절반으로 나뉘어 내전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권세다.

그리고 산양의 왕이 조율하는 수많은 업무들 중에는 당연하게도, 메피스토가 ‘배려심 깊은’ 관리를 명한 죄수들의 관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 설마?”

“궁금하지 않느냐? 필요에 의해서 업무를 보던 아이가, 처음으로 느낀 달콤한 감정을 매개체로 삼아 업무에 매진하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보일지 말이다.”

메피스토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주제도 모르고 아르틴을 방해한 천사가, 끝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것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으니까.

“...확실히, 그건 기분 좋은 일이겠습니다. 바로 사타나치아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것을 상상한 알‘미라즈도, 아르틴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당장 그 타락천사의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충동을 참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짐도 준비를 해야겠지.”

알‘미라즈가 떠난 것을 확인한 메피스토가 자신의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어젯밤 아르틴이 밤새 가득 채워준 온기로 가득한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지고 있으면, 이 칠흑 같이 어두운 질투심이 조금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허나 동시에, 이런 욕심이 들곤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인간계로 가야겠어, 아르틴의 곁을 저 탕부들로 채워 넣을 수는 없지.”

지금도 행복한데, 만약 아르틴의 곁에 쭉 있을 수 있다면 어떨까.

아니, 아르틴의 곁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르틴을 가장 사랑하는 건 바로 짐이니, 아르틴도 짐의 곁에서 가장 행복하겠지?”

──메피스토펠레스는, 아르틴이 곁에 없을 때는 지옥에서 가장 위험한 악마중 하나인 것이다.

**

인간계, 마왕성.

[음욕의 권속 릴리트, 마왕님이 주신 권한에 따라 너를 마왕성에 유폐하도록 한다.]

리치 하몬의 소름 돋도록 차가운 정신파가 알현실을 가득 채우자, 릴리트의 아름다운 얼굴이 추악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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