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 당신은 이걸 보고도 참으실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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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계에 다녀온 이후부터 카르엔 실버소드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르틴을 위해서 라면 어떤 시련이라도 같이 짊어지겠다는 그녀의 맹세가 무색하게도 아르틴을 지옥에 남겨둔 채 인간계로 추방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영토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은 마왕을 아득하게 상회한다. 그녀가 저항도 하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의 무력함 때문에 아르틴이 지옥에 혼자 남겨졌다. 또 수치스러운 고초(?)에 시달려야 했다. 그 사실이 카르엔에게는 뼈저리게 아팠다.
심지어 그 교활하고도 사악한 지옥의 대군주는 무슨 수를 썼는지 아르틴을 유혹하는데 성공하여, 기어코 아르틴의 하렘에 합류하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이는 카르엔은 이루지 못한 일이기에 더욱 참담한 심정이었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지 몇 주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건만, 자신과 아르틴의 관계는 아직 일선을 넘지 못했다.
‘왜일까? 내 외모가 아르틴이 보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나..?’
차라리 아무도 아르틴과 이루어지지 못했던 때에는 이런 조급함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어제 회의 당시에 아르틴의 하렘에 속한 이들이 손을 드는 것을 보며, 카르엔은 속으로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던가.
그 자리에서 내색하지 않은 것은 카르엔 자신도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그 뿐이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16년째의 짝사랑 진행 중. 그게 자신과 아르틴의 관계다.
“무슨 잡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빈틈이 넘치잖아요!”
“...윽.”
카르엔이 그렇게 제 무력함을 곱씹고 있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샤오메이가 다시 맹공을 펼쳐오기 시작했다. 샤오메이의 주먹을 쳐내고 나서야 카르엔은 자신이 아직 샤오메이와 대련 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렇게 집중력이 없으면 막을 공격도 못 막을 텐데요! 잡생각을 버리세요!”
“...치잇!‘
카르엔은 사실 이를 갈고 싶었지만 이런 감정을 내색할 수 없었다. 지금 샤오메이는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자신과 대련을 진행하며 실력을 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지간한 천재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카르엔 자신도 어지간한 천재는 명함도 못 내밀 천재인데다, 그녀에게는 아르틴과 16년을 보내며 겪어온 아수라장에 대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즉 실전경험의 질과 횟수가 다르다는 소리기도 하다. 실제로 천마 본인도 카르엔과 아르틴을 가르치면서 놀란 것이 이런 실전 상황에 대비한 훈련에서 익숙하다 못해 노련한 대처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허리에 힘! 아직도 힘의 분배에 군더더기가 많아요! 부드럽기만 해서는 강함을 받아낼 수 없어요! 유능제강????의 묘리를 실현하려면 부드러움 안에 힘을 담으세요!”
하지만 눈앞의 이 판다 혼혈 수인 아가씨에게는 그런 노련함이 먹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성의 몸으로 바뀌면서 전투법을 바꾼 탓에 남은 동작의 빈틈을 정확하게 지적하며 그녀를 몰아 붙였다.
이는 샤오메이가 전투, 그것도 몸을 다루는 무술에 있어서는 같은 동급의 천재라 불리는 카르엔과 리처드 황태자를 뛰어넘는 천재인 덕이기도 하며,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21년간의 실전 경험의 결과물이다.
허나 그런 내막을 알 리 없는 카르엔은 자신을 한 수 아래의 하수처럼 가지고 노는 샤오메이에게 부조리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조리함은 그녀의 마음 안에서 열등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왜? 아르틴을 먼저 채간 것도 모자라, 싸움까지 네가 잘하는 거야? 그렇게 전부 가져가도 되는 거야?’
카르엔은 알고 있다. 아르틴이 순애보를 포기하고 하렘이라는 괴상망측한 길에 들어선 것은 최초의 하렘 멤버, 특히 샤오메이와 아그네스의 입김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아무런 생각 없이 아르틴의 곁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보다 강한 것도, 어느새 부터 그 어색한 슴다체를 버리고 여인의 말투를 쓰는 것도.
그래서 카르엔은 더더욱 진심으로 이 대련에 임했다. 자신은 누릴 수 없는 행복을 누리면서도, 되도 않는 삼류 연애소설의 치정극을 찍는 이 마음에 안 드는 여자에게 한 방을 먹여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저번보다 많이 나아졌네요. 오라버니가 지옥에서 돌아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그런가? 이대로만 가면 여자의 몸으로도 충분히 원래 모습처럼 싸울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한 수 잘 배웠어.”
결국 마지막까지 제대로 된 한방을 먹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했지만, 카르엔 내색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며 샤오메이와 헤어졌다.
자신이 느끼는 열등감과는 별개로 샤오메이가 자신을 위해 노력해준 사실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 사실도 인정하지 못했다가는 정말 스스로가 못나게 느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아.”
카르엔은 땀투성이가 되어 뜨겁게 달아오른 육체를 찬물로 식히며 거울을 들여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지간한 여인보다 매력적인 외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온? 알‘미라즈? 그런 아이들은 가볍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아그네스나 마리안느 정도나 되어야지 자신과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점점 묘해지는 것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아르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파트너가 자리를 비운 동안 몇 십 통의 연애편지를 받기도 했다.
‘그럼 뭐해. 정작 봐줘야 할 사람은 바라보질 않는데...’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아르틴을 자신의 방으로 들였을 때, 아르틴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나서야 자신의 유혹을 거부하지 않았는가. 평상시라면 그런 행동에 구역질이 난다며 밀쳐냈을 아르틴이었지만 크게 혼내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신은 아르틴의 입맞춤도 받지 못했고, 메피스토펠레스는 연인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그 차이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어떻게 해야 아르틴이 나만을 바라보게 만들 수 있을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덮치기라도 해야 하나? 페르몬 향수를 뿌리고 아르틴에게 어필이라도 할까?’
오후 대련이 끝나고 제 방으로 돌아간 카르엔은 저녁 시간이 될 때 까지 혼자 고민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르틴에게 미움 받지 않고 어필할 방법을 떠올리는 것은 16년 째 첫사랑중인 카르엔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카이엔, 안에 있느냐?”
그렇게 홀로 생각하며 나오지 않는 답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카르엔의 방문을 두드렸다.
“스승님? 갑자기 무슨 일로...?”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단다. 혹시 바쁜 일이 있느냐?”
카르엔이 고개를 좌우로 젓자, 천마는 그녀에게 따라오라 손짓한 후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달맞이관으로 그녀를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요? 특별수련인가요?”
“가보면 안다. 일단 얌전히 따라 오거라.”
처음 겪는 일에 카르엔은 의아함을 느꼈지만, 대답할 때 천마의 표정이 워낙 진지하고 굳은 상태였기에 뒷말을 꺼내지 않고 그녀를 묵묵히 따라갔다.
천마는 그런 카르엔의 배려를 거부하지 않고 그녀를 달맞이관의 빈 방에 들일 때 까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카르엔이 주섬주섬 눈치를 보며 공손하게 앉자, 잠시 뜸을 들인 천마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카이엔, 네가 이전에 내게 부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부탁이라면...?”
“사랑과 연애 말이다. 아르틴 루드비히를 쟁취하고 싶다고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
그 말에 카르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후 별다른 언질이 없어 천마가 잊은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따로 불러낸 것에 대한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카르엔이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그 말은...?”
“내 너를 한번 크게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고작해야 그럴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전부지.”
“스, 스승님!!”
자신의 정수인 무술을 가르칠 때도 무뚝뚝하던 카르엔이 진심으로 감격한 표정을 짓자, 천마는 이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기가 무척 힘들었다.
아마도 슬픔이 아닐까 싶었다. 한 아이의 순정을 제 욕심과 증손녀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천마는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내 굳게 마음을 먹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밤, 아르틴을 이곳 달맞이관으로 부르마. 이유야 적당히 붙이면 아르틴 녀석도 바로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지.”
“그 다음이라면...?”
“쐐기를 박아야 할 것 아니냐? 안 그래도 지옥의 대군주 탓에 여자들에게 눈칫밥을 먹고 난 직후인데, 아르틴이 너를 함부로 건드리려고 하겠느냐.”
그 말이 카르엔이 듣기에는 참으로 그럴듯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온갖 인외를 건드린 주제에 아르틴은 카르엔에 대해서만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야 말로 그 보수적인 자세를 뚫고 들어가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가능성도 크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쐐기를 박을 방법이..있는 건가요...?”
카르엔이 평소답지 않게 기대감과 설렘을 담아, 그 또래의 여자아이처럼 천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탓에 양심이 더욱 찔린 천마는 역으로 표정이 굳어졌지만 말이다.
“아니, 내게는 그런 방도가 없다. 나는 애초에 쉔과 마음을 통하고 있던 상태였고 내 외모가 쉔의 이상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네? 그런...”
기대감이 크면 실망도 큰 법. 스승의 단호한 말에 카르엔은 눈에띄게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내게는’ 그런 방도가 없다고 말이다.”
“...?”
“조력자를 준비했다. 두 사람...? 아니, 두 여인은 들어 오거라.”
천마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옆방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누군가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그들이 누구인지 확인한 카르엔의 눈이 다시 한 번 커다래진 것도 특이한 반응은 아니었다.
“우후후, 안녕 카이엔?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니? 걱정하지 마렴. 네 사랑을 도와줄 사랑의 천사가 여기에 도착했으니 말이야!”
“사, 사르디엘? 그리고 넌...”
“안녕하세요~♡ 주인님 덕에 몇 번 마주치기는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마주보는 건 처음이죠?”
스승님이 말한 조력자가 다름 아닌 천사 사르디엘과 몽마 시르카라는 사실을 알자, 카르엔이 고개를 돌려 혼란한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봤다.
“천사 사르디엘과는 우연히 말이 닿아 너를 돕기 위해 손을 잡기로 했다. 몽마 시르카는 사르디엘이 직접 섭외를 해왔고.”
“후후, 아르틴의 마음을 낚아챌 수단이 필요한 거잖아? 내게 아~주 좋은 방법이 있거든. 몽마 시르카만 있다면 성공률 90%를 장담할 수 있단다!”
“9, 90%?!”
“그래! 그것도 말이 90%지 네가 잘만 해준다면 100%에 가까운 확률이지. 네가 그럴 각오만 되어 있다면 말이야.”
사르디엘은 어느새 카르엔의 어깨를 주무르며 히죽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워낙 경박하면서도 동시에 간사해보여 도저히 천사가 지을 만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이미 양심이 찔리던 천마는 그 부분을 지적하는 대신 시선을 돌리며 눈을 감았다.
그 사이 사르디엘의 반대편에 시르카가 자리를 잡고 카르엔의 팔짱을 끼더니, 말 그대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고혹적인 속삭임을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후후후♡ 저도 원래라면 하렘을 돕는 게 옳겠지만...워낙 재밌어 보여서 도와주기로 결심했답니다. 카이엔 씨, 아니 카이엔 양도 주인님과 잔~뜩 야한 짓을 하고 싶죠?”
“야, 야한 짓...?”
“저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잔뜩 할 수 있을 거예요. 어쩌시겠어요? 저희의 컨설팅을 받아보시겠어요?”
“받는 게 좋을 거야 카이엔~이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거라고? 댓가도 필요 없어. 그냥 하겠다고 말만 하면 되는 걸? 거절하지 않을 거지? 그렇지?”
“그, 그게...”
카르엔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니, 애초에 천사와 몽마가 동시에 자신을 유혹하는 이 상황은 너무나도 비정상적인 상황인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거절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시르카가 야한 짓이라는 단어를 속삭인 순간, 카르엔의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며 그녀의 뇌에서 이성적인 판단력이 급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시르카가 그녀를 매혹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카르엔의 음습한 욕망이 고개를 쳐들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떻게 할래? 카이엔?” “어쩌실 건가요, 자기?”
“나, 나는...”
너무도 달콤한 천사와 마족의 유혹에, 카르엔은 침음성을 흘리며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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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이 내려앉은 밤길을 해치며, 적막까지 감도는 산 주변에 위치한 달맞이관에 도착했다.
“휴우...드디어 도착했네. 왜 이 시간에 달맞이관에 오라고 하신 거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은 던전 실습을 위해 개인 단련실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나는, 갑자기 울린 호출기를 보고 달맞이관으로 서둘러 달려왔다.
이 호출기는 내가 직접 천마님을 위해 만든 물건인데, 아카데미 내라면 언제라도 천마님이 나랑 카르엔을 호출할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만들고 나서 실제로 사용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어디보자, 210호로 오라고 하셨지? 2층 끝 방이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지 몰라 2층으로 서둘러 올라갔더니, 2층 복도는 지난번 천마님께 사과하러 왔을 때처럼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오싹한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물론 내가 귀신을 무서워할 수준은 지난 지 오래였기에, 나는 곧바로 복도 끝으로 상남자처럼 달려가 210호의 문을 두드렸다.
“스승님 안에 계세요? 들어가도 되나요?”
대답은 없었다. 묘한 것은 문 너머에서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점이었다.
뭐지, 이거 함부로 문 열고 들어가면 스승님 알몸이라도 보는 그런 이상한 이벤트인가? 천마님의 외모를 생각하면 나쁜 이벤트는 아니겠지만 그녀의 증손녀가 내 연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다.
“5초 후에 문 열고 들어가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시면 소리쳐서 말리세요!”
나는 혹시나 있을 불편한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크게 소리치며 3번 노크한 후, 5초가 지나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눈앞이 흐릿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어쩐지 익숙한 기분에 내가 저항하려던 찰나 내 후두부에 강한 통증이 밀려왔다.
“켁.”
그 직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바닥이 너무도 빠른 속도로 얼굴과 가까워지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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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뒤통수가 얼얼한 것을 느끼며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왜 스승님이 불러서 왔는데 기습을 당한 거지?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너무 많지 않나?
“손발은? 이번에는 안 묶여있네. 몽롱한 기운도 없고. 뭐ㅈ...?”
기절했다가 깨어났음에도 사지가 멀쩡한 낯선 경험에 의아함을 느끼던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확인한 순간 혼자서 떠들던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어머, 일어났구나파트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카르엔이 있었다.
달콤한 눈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나를 반기는 카르엔.
하지만 그런 카르엔의 모습을 보자 나는 한가지 깨달았다.
기절하다 깨어나면 늘 그랬듯이, 지금도 무언가 크게 좆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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