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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32화 (232/266)

〈 232화 〉 당신은 이걸 보고도 참으실 수 있습니까? #02

* * *

“읏차.”

천마의 가벼운 손짓과 함께 축 늘어진 아르틴의 몸이 떠올랐다.

그 무력한 모습에 천마는 제 손으로 기절 시켰음에도 개운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아르틴을 들고 210호의 침대로 다가갔다.

빈 침대는 아니었다. 이미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생도복 차림으로 누워있는 카르엔이 새근거리며 잠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옆에 천마가 아르틴을 천천히 눕히자, 그 옆을 모습을 드러낸 몽마 시르카가 다가와 제 마력으로 손끝에서 실을 한 줄 뽑아 카르엔과 아르틴의 손목을 묶었다.

“자, 됐어요! 이제 미리 말한 준비는 전부 끝이랍니다♡”

“정말...이걸로 준비가 끝이냐? 더 해야 하는 것은 없고?”

시르카는 마치 대단한 준비를 끝낸 것처럼 말했지만, 천마가 보기에는 이번 일의 준비는 놀라울 정도로 보잘 것 없이 간단한 일이었다.

고작해야 아르틴을 호출해 이곳으로 부른다. 미리 카르엔을 몽마의 힘으로 잠재운 뒤, 도착한 아르틴을 그 옆에 눕힌 후 재우면 준비 끝.

너무 간단했다. 물론 아르틴이 몽마의 수면 마법을 저항하려는 기색을 보이긴 했으나, 천마 본인이 물리적 수면도우미를 자처하자 곧바로 수면에 들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간단함이 도리어 불안하게 느껴졌다. 계획을 짠 것이 천마 본인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번 계획은 사전에 전부 들었잖아? 그런데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천마?”

“...들은 거랑 보는 건 느낌이 다르니까 그렇지, 천사양반.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야?”

그때 복도에서 천사 사르디엘이 걸어왔다. 천마는 그런 그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는데, 천사에게는 백의가 어울린다며 어디선가 구한 흰색 박스티를 늘어지게 입은 것이 꼭 동네 한량과 다를 것이 없었다.

“당연히 좋은 계획이지! 내가 아르틴의 수호천사로 있으면서 카ㄹ..카이엔과 아르틴을 하루 이틀 본 줄 알아? 천마도 그걸 아니까 내게 도움을 청한 거 아니야?”

“끄응...그래도...”

천마의 입에서 드문 침음성이 흘렀다. 자신을 향해 당차게 말하는 사르디엘의 말에 틀린 것이 없던 것이 첫째이고,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자신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 영 거슬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드러낼 수가 없는 것이 이 모임의 단점이었다.

몽마는 자신과 비슷한 연배라 굳이 존댓말을 듣는 것이 거북하고, 눈앞의 천사는 자신이 갓난아기처럼 느껴질 세월을 살았다고 들은 바가 있어 천마는 표정이나 뚱하게 짓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작 사르디엘은 그런 천마의 반응이 웃긴 지 쿡쿡 웃으며 시르카를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만 믿고 맡겨, 나 혼자서면 무리지만 시르카가 있으면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이거든, 백일몽 내부는 내가 알려준 대로 꾸며놨지 시르카?”

“네~생각보다 재밌던데요? 보여준 만화책의 배경을 따라 만들었는데 난생 처음 보는 건물이나 가구들이 많아서 만드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 만화책, 직접 만드셨다고요?”

“그럼, 너희가 바쁘게 시험 준비하는 동안 아르틴을 위해 준비한 나의 안배지. 분명 기뻐할 거야.”

사르디엘의 확신, 그 확신을 천마는 느낄 수가 없어 불안감을 느꼈다.

이치나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째서 저 정도로 확신을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불안하고 불편한 것은 그런 확실치 않은 것에 제 제자 둘을 맡긴 자신의 부덕함임을 금세 깨달았다.

“내가 말했지만, 몽마의 매료마법으로 밀어 붙이는 건 결국 결과가 좋지 않을 거야. 이전에는 아르틴에게 호감이 있거나, 반 쯤 아르틴이 자초한 상황이라 문제될 게 없었지. 하지만 카이엔은 경우가 달라.”

“생각보다 괜찮지 않을까요? 성별이 바뀐 미인 정도면 유니콘이나 악마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건 네 오해야, 애초에 유니코르가 연인이 된 건 반쯤 너랑 릴리트의 탓이잖아? 아, 갑자기 우울한 표정 짓지 말고, 탓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외부의 강압적인 개입이 없었으면 꽤 힘들었을 걸?”

“유니코르가 기억 찾은 후에 울먹이면서 고백한다면?”

“그랬으면 또 모르겠네...하지만 그때도 말이라는 거부감이 더 컸을 걸? 유니코르를 여자로 만든 건 일종의 구호활동 이었으니 그런 게 적었겠지. 중요한건 거부감이야.”

사르디엘은 시선을 잠든 아르틴에게로 향했다. 사실 천마의 일격에 기절한 것이니 잠들었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사르디엘은 신경 쓰지 않고 아르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마음이 여리고 속에 깊은 상처가 있는 아이야, 그 상처는 아마 마왕이 죽을 때 까지 평생 고칠 수 없겠지.”

지난 세월, 아르틴의 상태창을 관리하던 천사로 살며 사르디엘은 아르틴의 많은 모습을 보고, 독백을 듣고, 생각을 읽었다.

그녀는 아직 아르틴과 깊은 감정을 교류한 친구나 연인은 되지 못했지만, 아마 지금 이 세상에서는 아르틴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마 다른 하나는 전생의 기억을 읽은 메피스토펠레스일 테고 말이다. 그 사실이 사르디엘은 문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간악한 악마 녀석, 감히 카르엔을 추방시키고 아르틴을 독점해...?’

사르디엘의 시선이 카르엔을 향하자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찾아왔다. 그녀는 아르틴과 카르엔의 연대기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열성적으로 지켜봐온 사람이었다.

천계의 모니터 앞에 앉아, 매번 제 마음을 죽이는 카르엔을 보고 이입하며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가, 하지만 그때는 아르틴이 튜토리얼을 방치한 탓에 두 사람을 맺어줄 방법도 없어 구경만 해야 했다.

문뜩 사르디엘은 몇 가지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왜 인간계로 떨어지는 벌을 받았는가, 그리고 왜 카르엔이 갑자기 이벤트를 핑계로 여성이 되어 기회를 얻었는가.

‘제타엘 녀석, 그래도 내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줬나 보네. 후배 챙긴 보람이 있어.’

지금쯤 천국에서 죽어라 고생하고 있을 후배 천사를 떠올리며 사르디엘이 미소를 짓고는 잠든 두 사람의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기도 하듯이 모으며 작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잠든 두 사람이 기분 좋은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게.

꿈에서 깼을 때 적어도 이전까지 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된 두 사람을 볼 수 있게.

천사의 자장가는 백일몽을 더욱 깊이 빠져들게 했다.

‘...그래도 장소가 너무 노골적이었나?’

노래를 부르던 사르디엘이 문뜩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현대의 모텔을 꿈의 풍경으로 삼은 건 너무 심했을까?

아니, 이 정도는 해야 자신의 최애인 카르엔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가 수십 년간 망상해온 동인 작품들의 내용은 현실이 될 것이다.

그걸 위해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 천마를 구워삶고, 마족인 시르카에 대한 혐오를 참고 그녀와 손을 잡아 환상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제 자신도 슬슬 보답을 받을 때다.

“...사르디엘? 갑자기 왜 그러지?”

“조용히. 기도중입니다.”

사르디엘은 가볍게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간절히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대상은 아르틴과 카르엔, 그리고 여신님이었다.

‘제발 아르틴이 꿈의 세계에서 카르엔과 질펀한 교배프레스를 즐긴 후 그녀를 완전히 여자로 인식하도록 해주세요.’

도저히 남이 들을 기도가 아니었다.

허나 아르틴도 카르엔도 듣지 못하겠지만, 사르디엘이 워낙 중요한 천사인 탓에 여신은 틀림없이 그녀의 기도를 들었을 것이다. 사르디엘은 그걸 알면서도 한 것이니 죄질이 더욱 나빴다.

그 탓일까, 그녀의 찬란한 날개 깃털 중 하나가 회색이 되었다. 날개를 펼치지 않아 아무도 몰랐지만 말이다.

**

눈을 뜬 나는 이전처럼 어지러움이나 통증을 느끼지 않아 이내 빠른 상황판단을 할 수 있었다.

우선 다급하게 카르엔을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들어 접근을 막았다.

“아르틴? 손은 왜...”

“강간, 멈춰!!!”

내가 무적의 단어를 내뱉자, 카르엔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 했는지, 아니면 이해했지만 그것이 워낙 충격이었는지 움직이지 않고 나를 탁한 눈으로 바라봤다.

당황스럽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교미를 졸라댈 것 같은 카르엔의 천박한 복장을 보고 있으니 당장 음심이 밀려올 것 같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끝날 때 까지 접근은 금지야!”

“...갑자기?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너를 강제로 덮치기라도 했어?”

“강제로 덮친 것과 비슷한 일은 저번에 했잖아. 꺼지라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끝낼 때 까지만 거기 있어. 알겠지?”

사실은 썩 꺼지라고 노성을 내지르는 것이 카르엔과의 거리를 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실시간으로 울먹임 탓에 눈매가 붉게 물드는 카르엔을 보자 나는 태세를 전환해 잠시만 기다리라고 그녀를 다독였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안 그래도 매력적인 미녀로 변한 카르엔이 내 앞에서 나 때문에 펑펑 울면 마음이 무척 어지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젠장, 사내새끼 모습이었으면 추하게 울부짖어도 별 신경 안 쓸 텐데.’

속으로 혀를 찬 나는 내 말에 진정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카르엔을 바라봤다. 지난번 알몸으로 내 앞에 섰을 때보다도 발칙한 복장이었다.

하늘거리는 실크로 만들어진 가운은 몸을 가린다는 의미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는데, 카르엔의 부드러운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스루나 다름없어 내 자지를 화나게 만드는 괘씸한 복장이었다.

또 속옷은 어떤가, 내 연인 중 누군가에게 내 취향을 들은 것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속옷 중 하나인 검은색 란제리 속옷을 입고 있었는데, 팬티는 란제리가 아니라 티팬티였다.

‘와 씨, 뒤태 봐라...저거 보고도 참는 내가 진짜 부처고 현자다.’

당장이라도 엉덩이를 살랑이면 골반을 붙잡고 삽입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뒤태에 거울 너머로 비추는 커다란 아기맘마통에 나는 순간 숨결이 격해지고 말았다.

카르엔의 알몸을 2번이나 본 적이 있어서 슬슬 면역이 생겨야 할 텐데도, 카르엔의 모습은 참는 것이 용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지난 16년간의 기억이 없었다면 진작 덮쳤을 지도 모르고.

“...그렇게 계속 빤히 보고 싶으면, 곁에 다가가서 자세히 보여줄까?”

“아니, 계속 거기 있어. 이제 생각을 좀 해야겠으니까.”

카르엔은 내가 자신의 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자신의 몸에 흥미를 가지는 것이 좋은 걸까?

이해하기 힘든 심리였지만 내버려두기로 했다. 카르엔도 기분이 좋고 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굳이 목소리를 낼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데 익숙한 풍경. 장미관인가?’

간신히 카르엔의 치명적이고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에서 눈을 떼어내 주변을 둘러봤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지만 익숙한 것은 장미관에서 봤던 방과 매우 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이 방의 생김새는 그 방과 무척 비슷하다.

‘시발, 나 지금 릴리트에게 습격당한 건가?’

나는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열리지 않는다면 릴리트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 나를 습격한 것이 확실했다. 천마의 호출도 그녀가 조작한 환상이거나 천마님마저 조종하고 있는 걸 테지.

─달칵!

“어?”

그런데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는데, 문밖을 내다보니 내가 상상하는 모텔의 복도 그 자체인 복도가 나왔다. 옛날 불륜 드라마에서 봤던 그 모습과 꼭 닮았다.

검을 휘둘러 벽을 부수고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아르틴?”

“가만히 있어 가만히. 알겠지?”

나는 카르엔에게 얌전히 있으란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가구들과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엔틱한 가구들은 내가 살던 이세계의 그것이 틀림 없었따.

그런데, 창문 밖의 풍경은 또 그것과 달랐다.

‘...빌딩? 건물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창문 밖의 풍경은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르나, 확실히 내가 원래 살던 세계와 너무 꼭 닮았다. 네온사인이나 빌딩의 거울에 비춘 회사의 모습. 현대식 간판과 별이 안 보이는 밤하늘 까지.

그 풍경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는 작은 의구심이 난감함과 함께 찾아왔다.

‘내가 혹시 원래 세계로 돌아왔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몽마들이 보여주는 환각은, 몽마들의 기억과 지식을 토대로 구성이 되기 마련이다. 물론 꿈에 빠진 대상자의 무의식을 꺼내와 환각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것에도 한계는 있다.

우선 대상이 되는 사람의 심상세계를 깊게 마주해야 할 텐데, 릴리트가 그 정도로 내 안을 깊게 들여다 볼 시간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카르엔이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이 단순한 릴리트의 습격이 아니라는 가장 큰 증거이기도 한데.

‘나를 재웠으면 죽여버리던가, 아예 꿈인 것을 모르게 하겠지. 갑자기 반쯤 나신인 카르엔이 꿈에 나타난다고?’

내게 한번 패배한 릴리트가 그렇게 허술하게 일처리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얘는 대체 뭘까. 이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은 뭘까?

“...아직도 얌전히 있어야 해?”

카르엔은 고민에 빠진 나를 바라보며 그 우수에 젖을 것처럼 깊은 눈동자를 깜빡였다. 이게 만약 몽마의 짓이라면 저건 환각이거나 몽마 본인이겠지?

“파트너.”

“응? 왜 아르틴? 생각이 끝났어?”

“기회를 줄 테니까 내 심장을 칼로 찔러볼래? 이거 현실이 아니라 꿈같거든. 깨야겠어.”

내가 양팔을 벌리며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카르엔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불쾌하게 바라보며 볼을 부풀렸다.

남자일 때 저 표정을 했다면 지금 당장 혈마펀치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줬을 텐데, 여자인 모습으로 보니 썩 나쁜 애교는 아니었다.

“미쳤어 아르틴? 내가 너를 왜 찔러? 차라리 내 심장을 찌르고 말지. 내가 언제 너를 다치게 한 적 있어? 그런 듣기 싫은 말 하지 마!”

“...진정해. 혹시나 해서 테스트 해본거야. 진짜 파트너가 맞구나.”

나를 향해 격렬하게 소리치는 카르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절대로 안 들어 쳐먹으면서 나를 향한 뒤틀린 욕망과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반응. 이건 아마 몽마 본인은 절대 아닐 것이다.

환각일까, 진짜일까? 거기까지 알기는 힘들었고, 나는 그냥 미안하다는 뜻으로 카르엔에게 다가와 앉으라고 손짓했다.

“...이제 움직여도 돼?”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이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건 알겠네. 일단 서로 아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보자.”

“응!”

카르엔은 짧게 대답하며, 침대에 걸터앉은 내 옆에 바로 착석해 딱 딸라붙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꽤 예쁜 웃음이라 보기 좋았다.

“헤헤.”

“...조금 떨어져라. 너무 달라 붙었잖아.”

무뚝뚝한 남자일 때는 상상도 못할 카르엔의 천진난만한 반응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얘는 도대체 왜 날 이리도 좋아하는 걸까?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나는 인기가 넘치는 남자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나는 도내최고미소녀(처녀)의 마음을 빼앗는 하렘의 주인. 숫사자 아르틴이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건 암사자가 된 숫사자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기분이 묘하게 더러웠다. 팔에 닿는 가슴의 촉감은 이렇게나 기분 좋은데 말이다.젠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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