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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33화 (233/266)

〈 233화 〉 당신은 이걸 보고도 참으실 수 있습니까? #03

* * *

그 후로 몇 가지 시도를 한 결과, 나는 우리가 갇힌 곳이 몽마의 환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으로도 안 돼...물리적으로도 안 돼, 그런데 적의는 없다라.”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보통 몽마의 환각은 상대방의 정신을 붕괴시키거나 타락시키는 곳에 사용되는 힘이라 당연히 공간 안에 갇힌 사람들은 판단력이 흐려지고 제 힘을 잃게 된다.

그런데, 이 공간에는 그런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련한 현실세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시르카네, 젠장.’

그런 답은 하나. 적의가 없는 몽마 정도나 되어야 이 정도 수준의 환각몽을 꾸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릴리트의 2인자였던 시르카라면 가능하겠지.

그런데 왜 자꾸 방심하면 주인님을 엿먹이는 걸까, 혹시 릴리트에 대한 충성심이 아직 남은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몽마 종특인가?

모르겠다. 나중에 날 잡고 혼내면서 물어보기로 결심하며 고개를 돌렸더니, 창밖을 구경하던 나를 카르엔이 홍조가 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너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여기였다고?”

“응, 달맞이관에서 저녁 수련을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르엔의 말에 따르면 눈을 떠보니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독특한 가구들이 많아 신기해서 둘러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럼 너도 잘 모르겠네?”

“응, 미안...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카르엔은 정말로 미안한 건지 눈을 내리 깔며 목소리를 웅얼거렸다. 지난번 지옥에 이어서 이번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걸리는 걸까?

‘뭐, 거짓말이겠지만.’

하지만 나는 카르엔의 저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100%, 아니 1000%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유가 뭐냐고?

‘카르엔이 잠자고 있는 나를 내버려두고 느긋하게 풍경이나 구경할 리가 없지.’

교회의 숙소에서도, 자신의 방에서도 내가 잘 때마다 이상한 짓을 했던 카르엔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뒀을 리가 없다. 애초에 나는 생도복인데 어째서 카르엔은 란제리에 실크 가운 차림이겠는가?

의도가 너무 뻔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걸 지적하면 꿈에서 나갈 수 있는 걸까?

“..왜 그래 아르틴? 뭔가 알아냈어?”

이걸 알고 불안이 깃든 카르엔의 눈을 보면, 저 불안감이 낯선 풍경이나 상황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뭔가를 알아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아챈 것을 알릴지 말지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젓고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별거 안 떠오르네. 머리도 묘하게 붕 뜨고. 잠시 쉬면서 생각해봐야겠어.”

“그, 그럴까? 자, 여기 옆에 앉아서 쉴래? 아니면 누워도 좋겠네, 무릎베개 좋아하잖아? 그렇지?”

내 대답에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다리를 조신하게 모아 무릎베개를 준비하는 카르엔.

당연히 거절하려던 나는 문뜩 눈이 카르엔의 탱탱한 허벅지로 향했다.

가뜩이나 티팬티를 입은 탓에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둔덕의 라인과 거울처럼 매끈거리는 피부, 초인적인 근육을 감싼 비현실적인 육덕진 허벅지.

물론 나는 저런 것에 현혹되는 남자는 아니다. 애초에 카르엔은 남자, 녀석의 유혹이 내게 먹힐 리가...

“어때? 편해? 무릎을 좀 더 오므려 줄까?”

“어라.”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카르엔의 넓적다리를 베고 누워 카르엔의 풍만한 가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슴에 가려져 카르엔의 얼굴은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야지 간신히 보였는데, 생각해보니 내게 익숙한 건 오히려 얼굴이 안 보이는 쪽이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무릎베개를 받는 건 내 사심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다. 이건 오로지 카르엔을 위해서였다.

“옛날 생각나네, 그렇지 아르틴? 사막을 지나다가 바위벌레랑 사막모래벌레한테 습격당했을 때도 이렇게 무릎베개를 해줬잖아. 그렇지?”

갑자기 즐거운 목소리로 옛날이야기를 꺼내는 카르엔, 녀석의 목소리에는 요 근래에 느껴지던 어두움이 없었다.

“기억나지, 2회차 때였고 이런 상황이 아니라 내 배에 구멍이 뚫려서 다 죽어가던 때였잖아? 1년 전에 우연히 구했던 엘릭서 아니었으면 그날로 3회차 시작했겠지.”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정말 죽는 줄 알고 떨리는 손으로 엘릭서를 꺼내느라 하마터면 사막에 쏟을 뻔 했는데...”

최근 카르엔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남자의 몸으로 여자 수영복을 입었을 때는 본인도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겠지.

아마 녀석은 내가 다른 연인들과 점점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서 조급함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꾸준하게 나를 짝사랑하던 녀석인 것은 틀림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여자로 변하고 나서부터 무뚝뚝한 카이엔의 모습 대신, 묘하게 색기와 여성성을 어필하며 말이 많아진 모습을 보여줬는데, 차라리 이쪽이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유니코르 구하겠다고 세계수 잎 가지러 갔던 것도 기억나? 나 혼자 가도 괜찮다고 말했는데 기어코 아르틴이 직접 가겠다고 했잖아? 결국 마수에게 팔 하나 잃었을 때, 나 사실 아르틴 몰래 울었잖아.”

“카르엔.”

“응?”

“너무 마음에 두지 마. 지옥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쫓겨난 거.”

그 말에 카르엔의 허벅지가 파르르 떨려왔다. 지금 카르엔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녀석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됐다.

“...알고 있었어?”

“내가 너를 몇 년을 봤다고 생각해? 맨날 뚱한 표정으로 무미건조하게 말하는 것도 16년 들으면 알아차리지.”

저번 지옥에서 돌아왔을 때, 올가 사건 이후로 멘탈이 흔들리던 나를 카르엔이 다독여줬었다. 녀석은 그걸로 자신의 동요를 숨기려고 했지만 나를 속이진 못했다.

“미리 말하지만, 원래 내가 혼자 가려고 했어. 굳이 따라온 건 너고, 메피스토랑 대화 제대로 못해서 사건을 만든 것도 나야. 내가 누누이 말했지? 네 멋대로 죄의식 느끼지 말고 답답하게 굴지 말라고. 고구마 퍼먹는 기분이니까.”

이는 용사 카르엔의 나쁜 버릇이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 마냥 늘 무표정인 주제에,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 사건에 너무 깊이 공감하고 타인을 돕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녀석의 곁에 남아야 했다. 친구라는 녀석이 괜한 사기꾼에게 속아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말라고, 미련할 정도로 착한 탓에 필요 이상의 선행을 행하지 말라고.

내가 용사의 동반자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

카르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내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기회가 난 김에 말하지 않으면 이 녀석은 평생 모르고 살 녀석이었으니까.

“매번 그래, 괜히 처음 보는 친구들한테 부탁 떠맡지 마. 녀석들은 널 이용하려는 거야. 귀족이 너한테 잘해주면 의심부터 해. 3회차 때 왕국의 반란 진압하다가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엿먹었잖아. 사람을 돕는 건 좋아. 너를 챙기라고.”

“....아르틴, 나는...”

“말했잖아. 우리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내가 또 좆같은 결말 보려고 너랑 같이 죽어라 구르는 건줄 알아?”

용사 카이엔, 카르엔은 그런 녀석이다. 어떤 고난과 불행에도 끝까지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결국 그 선행의 가치를, 보답을 받지 못하고 패배한 용사.

나는 그런 카르엔에게 죄의식이 남아 있었다. 녀석의 유일한 선행의 보답이라고 할 수 있는 연인, 동료들을 내가 흡수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서 카르엔이 이상해졌을지도 모르고, 내가 있어서 연인들이 카르엔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결국 귀족이나 초월자들도 나를 주목하지 카르엔을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서 떠오르는 거다. 내가 카르엔이 받았어야 할 보답들을 훔쳐가는 도둑에 불과하지는 않을 까? 라는 생각이 말이다.

‘과한 생각이지, 내가 없으면 카르엔은 또 비참하게 마왕에게 최후를 맞이할 테니까.’

알고 있지만 생각대로 마음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역시 나도 호구새끼라서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게 보면 우리 둘은 참으로 어울리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호구새끼와 병신호구새끼. 후자가 나다. 쟤는 최소한 이해타산을 생각하지 않고 호구처럼 구는 거니까.

“...아르틴.”

“에휴, 이 공간 안에서 멍하니 있으려니 잡생각이 떠오르는 것 같다. 슬슬 나갈ㄲ...”

“아르틴.”

나를 부르는 카르엔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혹시 너무 말을 심하게 해서 화가 났나 싶어 상체를 들려는 순간.

“우왓?!”

갑자기 녀석이 나를 들어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눈앞에 보이는 낯선 천장에 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카르엔이 내 위에 올라타 엎드리곤 내 얼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파, 파트너? 갑자기 왜 이래?”

“아르틴, 정말 나를 파트너라고 생각해?”

“응? 그, 그야 당연하지. 그보다 이것 좀 풀어주고...”

내 양손에 깍지를 낀 채로 붙잡은 카르엔의 아귀힘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카르엔은 훈련에 집중해서 그런지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오히려 내가 손을 떨쳐내려고 하자 오히려 허리를 허벅지와 골반으로 찍어 누르기까지 하는데, 그 자세가 너무 묘한 체위처럼 돼서 당황스러웠다.

“처음 아르틴을 만났던 전생에서 아르틴이 말했잖아. 파트너는 영혼의 동반자. 절대로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 소울메이트라고.

“그, 그러긴 했는데...”

“그런데 왜. 내 마음을 안 받아줘? 왜? 파트너인데 자꾸 내 마음을 무시하고 눈빛을 피해? 다른 여자들은 덮치면 바로 넘어오는데 나만 거부하는 건데?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덮친다니, 아마 지난번 자신의 방에 끌고 갔을 때를 말하는 걸까?

그 때는 내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을 뿐, 지금 카르엔의 모습이 매력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참은 이유도 명확하다. 그야...

“매, 매력이 없는 건 아니야. 문제는 네가 남자니까 그렇지! 나는 TS태그 싫어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때 좋아했잖아. 내 가슴 만지면서도 좋아했고! 키스하면서도 좋아했고! 평상시에도 내 몸 힐끗힐끗 보는 거 다 알고 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육체적인 반응이고! 아무리 그래도 남자랑 어떻게 해!”

“왜 못해? 인간도 아닌 말도 사랑할 수 있고! 악마도 사랑할 수 있고! 마족도 사랑할 수 있잖아! 심지어 시온 그 개썅년도 받아줬으면서, 나한테는 못 박아? 고작 그런 이유로?”

고작이라니, 내게는 매우 중요한 이유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는 몰라도 나는 종족의 차이보다 성별의 차이가 더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까놓고 나보다 고추 큰 남자에게 어떻게 호감을 느낀단 말인가? 상상만 해도 역겨운 일이다.

“상태창도 말했잖아. 아르틴 네가 좋아할 일이라고, 그런데. 그런데 나는 안 돼? 나는 여태 네 부탁 다 들어주고 같이 싸우면서 16년을 같이 지냈는데!”

“카이엔, 너 너무 흥분했어. 잠깐 진정 좀...”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카르엔의 눈에 머금기 시작한 눈물이 내 입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녀석이 우는 것을 보는 것은 살면서 열손가락이 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된단 말야! 이제 여자도 됐어. 네가 해달라는 건 뭐든 해줄 수 잇어! 그런데, 난 정말 안 되는 거야?!”

“...카...”

일단 녀석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눈앞에서 울먹이는 여자를, 카이엔이라고 불러야 할지 카르엔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태...여태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잖아. 나는 그때마다 아르틴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줬는데...그래도 안 되는 거야...? 나는 어떤 모습이어도 너에게 사랑 받지 못해?”

“그건...”

“나를 여자로써 품어줘 아르틴, 아니면 차라리 나를 밀쳐내고 이 공간에서 나가던가.”

그 말에 나는 꽤 크게 놀랐다. 단호한 그녀의 요구 여태까지 내게 했던 어느 말보다도 직접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내 손을 맞잡은 손의 힘도 서서히 풀렸다. 아마 지금이 떨쳐낼 절호의 기회겠지.

‘...어쩌지.’

그렇지만 난 풀어내지 못했다. 이걸 풀어내면 녀석을 다독여야 할 테고, 내 마음을 이야기해줘야 할 텐데. 나도 내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쩐지 불쌍하기까지 했다. 내게 사랑받겠다는 이유로 여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진심으로 대하지 못해 언제나 계산적인 모습으로 대해왔으니까.

차라리 시르카가 몽마섹스빔을 갈겼으면 편했을 텐데, 아니면 저기 켜진 촛불이 최음향초였다면 편했을 텐데.

이 공간에는 어쩐지 변명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선택의 무게가 실감됐다. 내가 이 녀석을 연인으로,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왜 어느 순간부터 녀석이 해오는 스킨쉽과 집착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게 된 걸까. 조용히 녀석과의 일을 생각했다.

녀석은 늘 내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녀석은 늘 내 곁에서 머물렀다. 다른 사람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나만을 바라봤지.

생각해보면, 녀석이 울던 건 늘 내가 다치거나 아플 때였던 것 같다.

내가 팔을 잃었을 때, 죽어갈 때, 배에 구멍이 뚫렸을 때, 마기에 잠식됐을 때, 사람을 구하지 못해 신을 원망하며 울부짖고 있을 때.

늘 나를 보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 사랑의 무게는 언제나 느끼고 있었다.

“카르엔.”

“응.”

“내 연인이 되면 죽을 듯이 힘들 거야. 그래도 괜찮아?”

“...어?”

오랜 고민 끝에 내놓은 내 답에, 카르엔의 표정이 바뀌었다.

“다른 여자들이 우리 둘을 정말 혐오스럽게 볼 지도 몰라, 연인들이 견제할지도 모르고. 독점하는 건 무리일 테고.”

“앞으로도 개같이 굴러다닐 거고, 어쩌면 다른 여자를 또 받아들일지도 몰라. 나는 거절을 못하는 욕심쟁이니까. 그런 나한테 혐오감을 느껴서 후회할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괜찮겠어? 정말로 내 연인이 되고 싶어?”

카르엔이 전부 알고 있을 이야기를 나는 굳이 입 밖으로 꺼냈다. 그녀에게 확실한 대답을 듣기 위해서.

하지만 카르엔은 곧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 스스로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 카르엔을 위해 나는 고민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바로 대답할 수 없어도 괜찮아. 힘든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다음에...읍?!”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에 포개졌다. 달콤한 키스. 늘 내게 잘 보이기 위해 키스 전에 양치를 하던 것과는 다르게, 이번 카르엔의 입맞춤에는 인공적인 향기는 없었다.

대신 카르엔의 숨결과 타액의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꽤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그녀의 체취는 내 취향이라고 해도 좋은 느낌이었다.

“후우, 후우...”

내게 입맞춤을 끝낸 카르엔이 제 입을 손등으로 닦더니, 광기가 번뜩이는 강렬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아르틴 네가 받아들여준다면, 그 음탕한 창녀들 사이에서 너를 얼마든지 쟁취해낼게.”

“...뭐? 너 지금 그게 무슨..”

“자지 세워 아르틴, 오늘 네게 내 전부를 줄 거야.”

무서웠다. 지금 카르엔은 리미트가 풀린 것처럼 열정적으로 어프로치를 해오기 시작했다. 이런 건 예상에 없었는데?

그런 내 마음과는 별개로 카르엔은 내 생도복을 찢어낼 것처럼 벗기기 시작했다. 나는 첫날밤을 치르는 처녀처럼 무력하게 카르엔의 손길에 무방비한 나신을 드러내야 했다.

“뭐, 뭐하는 거야?! 강간 멈춰!!”

어쩐지 내 안에 내재된 여성성이 나올 것 같아, 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 카르엔을 멈추려 했다.

허나 카르엔은 이제 내 손길에도 멈추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내 타액이 묻은 자신의 입술을 혀로 훑으며 내게 도발적인 미소를 걸어왔다.

“다른 창녀들은 주지 못한 첫경험을 네게 가장 먼저 줄게. 네가 잊을 수 없는 처음을..”

“뭐, 뭐? 너 지금 뭐하려고...”

“아르틴, 아직 뒤로는 해본 적 없지?”

그녀의 도발적인 말에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 말을 카르엔에게 듣는 것은 아주 묘한 기분이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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