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미래 계획은 계획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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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양희민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던 외톨이였지만, 그런 내게도 꿈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아늑한 신혼집에서 오순도순 둘이 행복하게 사는 꿈.
우연히 소설 속에 빙의되어 치열하게 살게 된 이후로는 꽤 흐릿해졌던 그 기억이, 지난번 메피스토의 깜작 선물로 다시 떠올랐다.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단칸방에 살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외톨이도 아니고, 사랑받지 못하는 애처로운 영혼도 아니다.
아니, 지금의 나는 여태껏 살면서 가장 호화로운 공간에서, 분에 넘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닐까?
...딱 한 가지만 제외하고 말이다.
“바이올렛님, 이 찻잔은 어디다 두면 될까요?”
“아, 그건 저쪽에! 마리안느 왕녀님이 쓸 찻잔이니 조심히 놔줘 시온!”
“바이올렛! 그대가 시킨 대로 소파의 위치를 전부 바꿔놨다! 이제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아, 그럼 이제 시온이랑 같이 다과의 준비를 도와줄래 유니코르?”
“후후후, 맡겨만 두거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들의 비밀기지로 쓰기 위해 개조된 학생회의 창고.
오늘은 이 창고에 나와 몇 명이 미리 모여서 내일 있을 던전실습을 위한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 끝났네! 이제 다른 사람들이 오는 것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아. 다들 수고했어!”
사실 내가 숟가락을 얹는 것은 조금 웃긴 상황이었다.
고작 15분 정도 늦게 왔을 뿐인데 바이올렛과 시온, 유니코르와 시르카가 일을 다 끝내놨기 때문이다.
“다들 수고했어. 나는 뭐 도와주지도 못하고 구경만 했네.”
“괜찮아! 아르틴은 수련이나 계획 준비 때문에 피곤하잖아? 이럴 때 쉬어야지.”
“아니, 별로 안 피곤해서 충분히 도와줘도 됐는데.”
“쓰읍! 이런 건 우리가 할 테니 아르틴은 거기 얌전히 앉아 있는 게 돕는 거야! 알았지?”
바이올렛의 장난기가 섞인 꾸중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까도 내가 칠판을 옮기려고 하니까 혼내는 탓에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유니코르랑 시온이랑 시르카가 얼마나 열심히 도와줬는데? 나도 지휘만 하다가 끝났지 뭐야!”
“마, 맞아요 주인님. 저 엄청 열심히 했어요! 자, 잘했죠?”
“...도련님을 위한 당연한 봉사죠. 뭐든 더 맡겨만 주세요 바이올렛님.”
“확실히 열심히 도와주긴 하더라.”
바이올렛의 칭찬의 말에, 두 여인이 나를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나한테 점수 따려고 바이올렛을 열심히 도와준 건가?
‘시르카는 2주간 섹스 봉인 때문일 거고, 시온은...저번에 이사벨라랑 대화 때문인가.’
짚이는 곳은 많았다. 시르카는 어떻게든 내가 내린 벌을 줄이고 싶을 거다. 안 그래도 마왕군과의 충돌이 코앞인데 마왕군 출신인 시르카는 당연히 신경 쓰이겠지.
‘...신경 쓰는 게 맞겠지? 어제 한 거 보면 신경 안 쓰는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는 릴리트의 오른팔이라는 것에 자부심도 있고 성격도 꽤 날카로운 노처녀 서큐버스였는데, 지금은 섹스의 맛을 알고 삶에 여유를 가져서 인지 성격이 물렁해진 것 같다.
“주인님, 다 들리게 생각하지 마세요. 노처녀 서큐버스라니, 죽고 싶으세요?”
“앗, 미안.”
아무튼 시르카는 그래서 일거고, 시온은 안 그래도 나를 괴롭힌 과거 때문에 여전히 하렘에 제대로 섞여들지 못한 상태.
실제로 시온이 나랑 관계를 맺는 날에는 다른 연인들은 동침을 거부해, 역설적으로 나를 독점하거나 시르카와 같이 3p를 하는 경우가 많다.
어지간하면 하렘의 일원끼리는 다정하게 지냈으면 바라는 나라고 해도, 그 부분에서는 커버 쳐주지 못해서 내버려두고 있다.
‘뭐, 와이즈 가문으로 내쫓지 않은 것만 해도 충분히 너그러운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시온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지, 나를 음습하게 쫓아다니며 광기를 내보이던 처음과는 다르게, 요즘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솔직히 나도 시온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다. 여기사 알몸 도게자가 워낙 꼴려서 덮쳤던 거지 깊이 생각하고 건드리진 않았으니까.
“시온아.”
“네, 주인님.”
“잘했어,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자. 알았지?”
아무런 말을 안 하고 가만히 보는 것도 이상해, 나는 짧게만 칭찬하며 어깨를 두드려줬다.
과한 칭찬은 시온을 망치는 길이라고 렉스턴의 사례를 보며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온은 그것만으로도 뭔가 보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벅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힘차게 대답하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암퇘지 여기사가 되겠습니다!”
“...암퇘지가 될 필요는 없고. 적당히만 열심히 하자. 알았지?”
“네♡ 주인님♡”
저 광기가 번들거리는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눈빛에는 익숙해지질 않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유니코르는...”
“본좌는 아르틴과 관계없이 바이올렛을 도운 것이다! 최애와 함께 하는 것은 뭐든지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나와 다른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보고 기류를 파악한 걸까, 예전과는 다르게 눈치가 빨라진 유니코르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당차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어쩐지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연인이 되고 나서 가장 크게 바뀐 사람 중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유니코르가 아닐까.
“아직도 바이올렛을 최애라고 좋아하는 거야? 처녀도 아닌 여인을 좋다고 좋아하다니..”
“바이올렛은 순애니까 괜찮다! 아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좋다! 같은 하렘의 일원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구나! 그렇지 않느냐 바이올렛?”
“어? 으, 으응. 그렇지, 나도 유니코르가 참 좋아. 늘 열심히 도와주고 노력하잖아?”
유니코르가 바이올렛에게 다가가 와락 팔짱을 끼자, 바이올렛이 상냥하게 웃으며 유니코르를 칭찬하지만 나는 봤다.
팔짱을 끼는 그 순간, 바이올렛의 얼굴에 스쳐지나간 두려움의 일각을.
‘그럴 만하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카데미의 대표 처녀라고 수치플레이를 당했으니...’
유니코르 몰래 듣기로는 아그네스도 개인적으로는 유니코르를 꺼린다고 들었다. 자신도 1학년 때 그 수치 플레이를 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하던가.
뭐, 그래도 저렇게 본인이 노력하면서 친해지려고 하니 바이올렛이라면 아마 얼마 안가서 유니코르랑 친해지겠지. 좋은 징조다.
‘그에 반면...’
힐끔, 내 눈이 한 쪽에 놓여있는 빈자리로 향했다. 내가 앉을 자리 바로 옆의 빈자리를.
“그러고 보니, 올가 그 여자는 괜찮겠느냐? 지난번에 꽤 소란이 있어서 아르틴 네 옆자리로 배정해뒀다!”
“아, 잘했어. 이번에는 별일 없기야 하겠지만...혹시라도 내가 옆에 있으면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좋으니까.”
현재 내 행복한 가정만들기라는 꿈은 아주 약간 변질된 상태였다.
아득한 집에서 오순도순 같이 행복하게 지낸다는 계획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연인의 수가 두 자리 수를 넘겼다는 사소한 문제가 있을 뿐,
그로인해 아주 미약한 갈등이 하렘 내부에 퍼지고 있었는데, 올가는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갈등과 불만을 내보였다.
특히 지난번에 소리를 쳤다가 샤오메이에게 뺨을 맞은 후로, 더더욱 하렘 내의 평판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나도 올가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샤오메이나 마리안느 왕녀님이 특히 크게 화를 내더라고. 유니코르도 기분나빠했고...아르틴 네가 조금이라도 중재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회의 끝난 후 나중에 바이올렛에게 전해들은 말이니 그 내용은 사실일 터, 하지만 중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 태산이었다.
히로인의 캣파이트, 소설로 볼 때는 그렇게 재밌는 게 더 없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당해보니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가파올 정도로 큰 스트레스가 된다.
게임이나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들은 여자를 무지성으로 꼬셔대면서도 배에 칼도 안 맞던데, 어떻게 하는 걸까?
원작의 카이엔도 하렘 관리 잘 하던데, 할 수만 있다면 그 비법을 물어보고 싶을 정도.
‘게다가 여기에 카르엔 이야기까지 꺼내면 폭탄이 2배가 되겠지...?’
가장 큰 문제는 아직 가장 큰 폭탄 중 하나인 카르엔의 연인화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점이다. 혹시 이제는 남자까지 건드렸냐면서 매도하는 눈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음, 답이 안나오는 문제는 나중으로 미뤄두자. 지금은 마왕군이 먼저지.’
오랜 경험상 이런 단번에 답이 안 나오는 문제는 끙끙 앓기보다, 뒤로 미뤄두고 급한 것을 해결하는 게 최선이다. 하나하나 매듭을 풀다보면 뭔가 풀리는 것도 있겠지.
“괜찮아, 아르틴?”
그때, 바이올렛이 풍미가 좋은 허브티를 가져와 찻잔에 따라주고는 옆자리에 앉아 내 손을 꼭 잡았다.
“표정이 아까보다 복잡해 보이던데...전에 말한 올가에 대한 문제 때문이야? 아니면 마왕군?”
“...그냥 머리가 복잡해서 그래. 어느 쪽이든 내가 해결해야 하니까.”
“걱정 마. 아르틴은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내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해준 왕자님이잖아?”
왕자님이라. 현실은 남작위도 없지만, 제국의 부마가 되면 어디 이름 뿐인 왕작위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텐데.
“이번 습격에 정말로 마왕군 간부가 쳐들어와서 그걸 막아내면, 황제나 천제한테 왕작위라도 달라고 해볼까? 그럼 바이올렛도 왕비님이 되는 거지.”
“흥, 여제가 허락한 하렘의 일원이 아니라?정말로 정실 시켜 줄 생각은 있는 거야?”
“그야 물론이지. 고백할 때 말했잖아. 이번 생에는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아르틴도 참.”
바이올렛이 얼굴을 붉히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은은하게 풍겨오는 샴푸냄새에 허브 냄새가 섞여있어서 인지 내 기분도 점차 릴렉스를 되찾기 시작했다.
“본좌도 아르틴의 정실이니 기억해야 한다? 본좌는 아르틴이 죽는 날에 같이 죽는 운명공동체니까 말이다!”
“에이, 마왕 목 따버리고 천년이고 만년이고 행복하게 살 생각을 해야지, 벌써부터 죽을 생각을 하면 어떡해? 유니코르도 옆에 와.”
“...흐흥! 짐의 어리광이 그리워진 것이냐? 어쩔 수 없지!”
유니코르가 의자로 내 무릎을 선택해 품에 안겨오자, 슬그머니 시온과 시르카도 눈치를 보며 바이올렛의 반대편 옆자리를 노리기 시작했다.
둘 다 캥기는 게 커서 그런지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걸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 그래도 옛날 보다는 확실히 행복하네.’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많은 고생을 겪고 고통을 이겨내야 했지만, 단칸방에서 망상이나 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사랑을 받는 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니.
‘..그래, 열심히 노력해서 모두 다 쟁취하는 거야. 연인들끼리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분골쇄신하고, 마왕군도 열심히 쳐죽여서 2세 계획도 성립을 시켜야지!’
기분이 좋아지니 갑자기 정신에 각오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 2세.
회귀물 소설에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회귀 후 출생한 아이의 딜레마. 그 딜레마를 내 아이들에게 겪게 하는 것은 죽어도 사양이었다.
아니, 애초에 내 아이들이 죽음을 1번이라도 겪는 것 자체가 보기 싫다. 아빠가 이렇게 가시밭길만 골라서 걸어온 만큼 우리 아이들에게는 비단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걸.
‘내 2세는 어떻게 생겼을까. 내 연인들을 닮아 굉장히 이쁘겠지?’
바이올렛의 아이는 아마 마녀가 될 것이고, 샤오메이의 아이는 쿼터 판다수인이 되겠지.
시르카는 반마족, 알‘미라즈나 메피스토는 반악마.
‘...그럼, 유니코르랑 내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간 금단의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 나는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반바이콘이 되는 걸까? 아니, 바이콘이 된 건 후천적인 형질 변화니까. 반유니콘? 켄타우로스가 되는 건 아닐까?
“아르틴, 왜 그렇게 본좌를 빤히 쳐다보느냐? 본좌가 그렇게 귀엽느냐?”
“..아하하, 당연하지. 나는 내 연인들이 하나 같이 너무 아름다워서 탈이라고 생각하는 걸?”
“아르틴도 참! 그렇게 낯부끄러운 소리를!”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갈 무렵.
벌컥, 하고 지하기지의 문이 열렸다.
누가 왔나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더니, 두 사람이 쭈뼛거리는 발걸음으로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하하, 잘 지내셨나요 스승님?”
“...알‘미라즈? 드디어 돌아왔구나!”
그중 익숙한 얼굴이 알‘미라즈라는 사실을 알자, 나와 바이올렛이 벌떡 일어나 알’미라즈를 배웅했다.
“지옥에 간 김에 본가에 다녀온다더니, 잘 지내고 왔어?”
“예. 바이올렛 양과 스승님의 배려로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해야 할 일도 하고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저번에 지옥에 남은 알‘미라즈는 이후 볼일이 있다며 지옥에 좀 더 체류하겠다고 연락을 했었다.
물론 고작 며칠 안 본 것이지만 하렘의 귀여움과 분위기 메이커를 맡은 알‘미라즈의 부재가 요 며칠 꽤 크게 체감이 됐었기에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오, 며칠 안 보인다 했더니 본가에 갔던 것이냐? 그런데 옆에 있는 이 아이는 누구더냐? 처음 보는 데?”
내 품에 대롱대롱 매달려 안겨있던 유니코르도 알‘미라즈와 친한편, 반가움을 감추지 않고 손을 정답게 흔들다가 알’미라즈의 옆에 서있던 한 아이를 가리켰다.
꽤나 익숙한 빨간머리에 작은 뿔이 인상적인 아이는 몸에서 풍겨지는 마력으로 봤을 때 악마로 보였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갈 법한 나이인지 볼에 탱탱한 젖살이 매력적인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이 아이는 진짜 누구지?
“아, 이, 이 아이 말인가요? 그게...”
“...?”
모두의 시선이 아이와 자신을 향하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알‘미라즈.
그 반응에 내가 의아함을 느껴 고개를 갸웃 거리는 순간.
─도도도도도!
그 빨간 머리의 어린아이가 달려와 내게 점프하더니 놀라운 괴력으로 품에 안겨있던 유니코르도 밀치고는 내 품에 와락 안겼다!
“꺄악?!”
“유, 유니코르?!”
바닥에 콰당 넘어진 유니코르를 보며 내가 당황하는 찰나, 어린아이가 그 자그마한 손을 내 볼에 뻗어 손바닥 가득 내 볼을 움켜쥐며 내 고개를 고정시켰다.
내 얼굴을 빤히 요리저리 둘러보는 아이, 너무 당혹스러운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이 아이에게 화를 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묘하게 익수갛고 친근하다고 해야 할까?
그 순간, 아이가 환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헤헤! 드디어 찾았다! 우리 아빠 찾았다!”
“...뭐?”
어...뭐라고? 지금 뭐라고?
뭔 빠? 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보고 싶었어! 아빠!”
“...아, 아빠라니?! 얘야, 나는 네 아빠가 아니야!”
“아니야! 아빠 맞아! 엄마가 말해준 대로 빨간 머리야! 그치 알‘미라즈?”
“그, 그게에...그게에에에...”
내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혼란에 빠진 이 상황, 유일한 구세주가 될 사람인 알‘미라즈는 그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눈동자를 굴려댔다.
“...알‘미라즈?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왜 대답을 못해?”
“...”
홱! 나랑 눈이 마주친 알‘미라즈가 함부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이게 무슨 일이더냐? 아이? 아빠?”
“...아르틴, 우리 마왕을 토벌할 때 까지 아이 가지지 않기로 한 거 아니 였어?
“아니, 그게...나, 나도 모르는...”
그리고 뒤쪽에서 들려오는 어쩐지 서늘한 바이올렛과 유니코르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나는 느끼고 만 것이다.
오늘도 역시나 좆 된 것 같다고.
“헤헤! 아빠 너무 좋아!”
그런 내 속사정도 모르고, 품 안에 안긴 빨간 머리 여자아이가 명랑하게 외쳤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