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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41화 (241/266)

〈 241화 〉 미래 계획은 계획적으로 #03

* * *

“흐에엥! 흐에에엥!!!”

찰싹! 찰싹! 회초리 소리가 날카롭게 귓가를 울렸다.

내가 회초리를 휘두를 때 마다 메피스토는 서럽게 울어대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나는 회초리를 멈추지 않았다.

“아르틴, 이제 그만 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그네스, 말리지마. 아직 부족해.”

“그, 그렇지만...벌써 5분이 넘게 회초리를 때리고 있잖아요? 평범한 여자아이라면...”

그래, 평범한 여자아이라면 이건 체벌이 아니라 학대일 것이다.

실제로 나도 고아원에서 지낼 때 쉬지 않고 회초리를 맞아봤는데, 1분만 지나도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아파서 쓰러졌다가 더 크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때 맞았던 이유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도둑질? 폭행? 뭐든 누명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아무튼 그런 기억 때문에 나는 이런 식으로 혼내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아무리 시르카가 나한테 매혹의 권능을 써대도, 시온이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때도, 유니코르가 탈모를 가지고 놀렸을 때도 이런 식으로 진지하게 물리적인 처벌을 하진 않았다.

가벼운 꿀밤이나 간식 압수정도,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보복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하는 거야.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해야 했다. 메피스토가 선을 넘는 장난을 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선을 과하게 넘었으니까.

“자흐, 잘못했어, 히극, 그러니까아, 히끅, 그만 때려어...”

미리 말해두지만, 5분이나 때렸음에도 메피스토의 허벅지는 빨갛게 물들지 않았다. 빙의용 호문쿨루스라더니 평범한 인간은 당연히 웃돌 정도의 내구성은 갖춘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내가 전력을 다해 회초리를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딱 일반적인 체벌 정도로만 힘을 줘서 때리고 있다.

내 하렘에서 육체적으로 가장 연약한 편인 바이올렛도 이 정도는 10분을 넘게 맞아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세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메피스토는 펑펑 울고 있다. 그 이유는 때리는 나도, 맞는 메피스토 본인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메피스토는 현실의 기억을 계속 돌려봤다고 말했었지...내가 겪은 경험들을 잘 안다는 뜻이고.’

메피스토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 외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반대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메피스토가 사랑하는 내게 회초리를 맞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메피스토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게다가 회초리를 때린다는 게 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을 거고.

“나한테 가족이 무슨 의미인지 알잖아. 꼭 그런 장난을 쳐야 했어?”

“그치마안...히끅, 며칠 만에 보는 거니까아...히끅, 장난을 치고 싶었단...”

“그리고 나한테 장난을 치는 건 참을 수 있어, 하지만 다른 연인들이 상처받는 걸 보고도 계속 했잖아. 나는 그런 거 정말 싫어. 알았어?”

“흐그윽....미안해애...앞으로는 아르틴한테마안 장난칠게에...”

마침내 메피스토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오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회초리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직후 말없이 메피스토를 바라보다가 양팔을 조금 벌리자, 메피스토가 바로 내 품에 안겨서 펑펑 울며 미안하단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에...미안해에 아르틴...다음에는 약한 장난 칠테니까아...”

“세상에...그 메피스토펠레스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한다니...”

그런 메피스토를 보며 바이올렛이 경악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도 놀랍긴 하다. 3회차 때 메피스토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독불장군 그 자체였으니까.

그나마 내가 친구로서 간신히 부탁을 할 때면, 못 이기는 척 이런저런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사과? 그런 건 꿈도 꾸기 힘든 아이였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기특해져서 메피스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주자, 방금 전까지 눈물을 펑펑 흘리던 메피스토가 뭐가 좋다고 헤헤 웃기 시작했다.

“...크흠, 다행이네요. 저는 당연히 의심하고 있었지만요. 아르틴이 아무리 무분별하게 여인을 늘린다 해도 지킬 건 지키잖아요?”

그때, 이 훈훈한 광경을 구경하던 아그네스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시치미를 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심했다고 하기에는, 아까는 너무 놀라서 입도 다물지 못하던 것을 봤던 것 같은데?

“...호호호, 그렇죠? 저도 서방님을 믿고 있었답니다. 서방님이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맞아요, 오라버니가 가끔 사고는 쳐도 선은 안 넘는 다고요.”

“보, 본좌도 당연히 아르틴을 믿고 있었노라! 하하하!”

눈치를 보며 그런 아그네스의 의견에 올라타기 시작하는 연인들. 동시에 어색한 웃음과 대화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해,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뻔 했다.

이걸 트집을 확 잡아서 말꼬리 물고 늘어져 버릴까?

“그전에, 다들 나한테 할 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앗...그, 미안 조르바. 너무 당황해서 나도 모르게...미안해.”

“사과를 받아주지, 그 말을 한 사람이 아르틴 네가 아니었다면 법적으로 고소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 조르바를 잊고 있었다. 내가 곧 바로 대가리를 박으며 사과를 하자, 다른 연인들도 나를 따라 사과를 건네기 시작했다.

“미안해요...하지만 조르바 도련님이라면 언젠가 사고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 그 말을 한 게 샤오메이 네가 아니었다면 진심으로 고소를 했을 거다.”

“대신 지난달에 여자들하고 놀러 다니느라 수업 빠지셨던 건 본가에 알리지 않을 게요.”

“하지만 내 친동생보다 가족 같은 샤오메이니까 봐줘야지. 대신 나도 오라버니나 오빠라고 불러 주지 않겠어?”

“선 넘지 마세요 도련님. 오라버니는 아르틴 오라버니뿐이에요.”

“칫.”

“이제 다 끝난 거냐? 도대체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제 회의를 시작하면 안 되겠느냐?”

이 모든 광경을 묵묵히 보던 천마님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이쪽 보지 마세요. 오늘은 저도 피해자라고요.

“나는 이쪽이 더 놀랍네. 어떻게 빙의형 호문쿨루스로 인간계에 나타날 생각을 했어? 본체는?”

“당연히 본체는 지옥에 잘 있다. 이건 그냥 의식의 일부를 연결한 인형에 지나지 않다.”

“지옥의 대군주의 의식을 담은 인형이지. 쉽게 만들 수도 없고, 만들어도 평범한 방법으로는 인간계에 보낼 수 없었을 텐데?”

본래라면 자숙을 했어야 할 사르디엘이 한건 했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메피스토를 빤히 노려보며 물었다.

확실히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은 나도 처음 들어 궁금했다. 3회차에서는 본 적도 없고, 호문쿨루스는 어지간한 연금술사는 시도도 못 할 정도로 고등의 기술인데 말이야.

“만드는 건 짐의 2인자인 사타나치아가 도왔지! 아르틴을 위한 일이라고 하니 다른 가문의 가주들을 총 집합시켜서 만들더구나!”

“아...하긴 힘만 쌘 당신이 이런 걸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아무리 실력 있는 연금술사가 있어도 인간계에 보내는 건 다른 일이잖아? 어떻게 한 거야?”

“아르틴의 도움을 받았다. 정확히는 내 쪽에서 일방적으로 받은 거지만!”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한테 도움을 받다니 금시초문인데.

“도움이라니? 내가 뭘 도와줬는데?”

“아르틴의 신체정보를 이용해 호문쿨루스를 만들었거든! 이 육체를 구성하는 지분의 50%은 아르틴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아르틴이 이 육체의 아빠인 셈이지!”

“뭐? 내 머리카락이라도 쓴 거야?”

“아니, 저번에 뜨거운 밤을 보냈을 때 내 자궁에 아르틴이 가득 사정한 정ㅇ”

“그만! 알았으니까 그만해!”

내가 입을 틀어막자 메피스토는 방금 혼난 탓인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 직후 쏟아진 시선은 영 곱지 못했지만, 아까의 오해 탓인지 직접적으로 타박하는 사람은 없었고.

“아무튼 아르틴과 나의 신체구조를 이용해 만들어서 혈족의 마법을 걸 수 있었다. 이제 아르틴이 귀걸이를 차고 있는 한 짐은 이 육체를 이용해 인간계에 있을 수 있다는 소리고!”

“그거 참 듣기 나쁜 소리구나. 안 그래도 사람이 많은데 이제 네 녀석까지 아르틴의 보금자리에 눌러 앉아야 겠느냐?”

“꼬우면 지옥에 직접 찾아와 덤벼도 좋다. 바이콘도 유니콘도 아닌 되다만 녀석아.”

“캬아악! 짐은 바이콘이 아니다─!”

캬악 소리를 내지르며 메피스토에게 덤비는 유니코르, 지난번 장미관 때도 사이가 안 좋던 두 사람이 티격태격 싸우다가 천마에 의해 1층으로 쫓겨났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메피스토가 빙의할 육체가 생겼으니, 이제 바이올렛이 직접 빙의당할 필요가 없잖아? 전보다 수월하게 싸울 수 있을 거야.”

메피스토가 나간 직후 내가 운을 띄우자, 바이올렛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직접 계약했을 때랑은 조금 다르겠지만, 메피스토펠레스와 내가 따로 합을 맞출 수 있으면 훨씬 싸우기 좋을 거야. 이번 상대가 군단장이라면 더더욱 좋을 테고.”

“상위 마족, 특히 간부쯤 되면 대악마 메피스토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요.”

시르카의 부가적인 설명에 따르자면, 마왕군의 수뇌부와 간부들은 메피스토를 가장 최악의 원수로 여기며 동시에 두려워한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은 사르디엘이 저 말에 긍정하며 부가적인 설명을 덧 붙여왔다.

“지옥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마왕을 인간계로 몰아낸 장본인이 메피스토였거든. 물론 타천사인 아스모데우스가 바알제불의 발을 묶어 판을 짜긴 했지만. 그때 마왕을 따라 인간계로 추방되면서 진명을 뺏긴 악마들도 꽤 많았어.”

“그런 사정이 있었어요? 그런 건 난생 처음 듣네.”

역사서나 성경에도 기록 되지 않는 마왕군과 지옥의 이야기라니, 과거 대천사였다는 사르디엘의 말이 허풍은 아닌 듯 싶었다.

이런 건 소설로 읽을 때도 나온 적이 없었던 이야기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자 사르디엘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예를 들어 지금 권속들 중 지옥에 있을 때도 권속이었던 사람은 아몬 하나 뿐이야. 지금은 리치 하몬이라고 알려졌지만 원래는 지옥의 대악마 중 하나였거든.”

“네? 그럼 나머지 권속은요?”

“죽거나 흩어지거나 배신했지. 진명을 잃은 악마는 그 힘의 대부분을 잃어버려. 색욕의 권속인 릴리트나 시기의 권속 암모서스, 분노의 권속 카르지오네도 전부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추가한 경험 없는 신입에 불과해.”

“네? 릴리트님이 신입이라고요...?”

“당연하잖아? 아몬을 뺀 나머지는 고작해야 천년이나 지났을 애송이라고. 진짜 지옥에서는 대악마라고 자랑하기도 창피하지. 오히려 알‘미라즈가 특이한 부류고.”

애송이. 마왕의 권속을 낮잡아부르는 사르디엘의 말에 몇몇 사람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로 마리안느 누님이나 샤오메이처럼 마왕군과 직접 맞붙어본 경험이 있는 무투파가 그러했는데, 특히 천마님은 대놓고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애송이 권속을 상대하기 위해, 인류는 영웅을 몇 명이나 잃은 건지 알고 하는 소리냐. 천사양반?”

천마님은 마왕군과 가장 오랫동안 싸워온 사람, 그러니 마왕군을 얕잡아보는 사르디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당연히 알고 있어,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마왕군은 지옥의 3대 세력과 비교했을 때 가장 약한 세력이라고."

"그, 그러니까 당연히 상대할 방법이 있겠죠? 이만한 사람들이 모인데다가, 휘하 병력들도 꽤 모았잖아요?"

샤오메이가 다급하게 끼어들자, 사르디엘은 여전히 불만을 감추지 않는 천마를 힐끗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있지. 마왕이 직접 강림하지 않는 이상 누가 오더라도 상관없어. 우리에게는 모든 마족이 가장 두려워하던 영웅이 있으니까."

"영웅...이요?"

듣던 여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마족이 가장 두려워 하는 사람이라니?

"단신으로 거인을 죽여 이름을 날렸고."

마리안느 누님이 움찔거렸다.

"군단장과 간부를 토벌한 경험이 있으며"

천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마왕의 목을 벨 자격을 가진 마왕의 가장 위험한 적"

카르엔의 호흡이 묘하게 흔들렸다.

"현재 아카데미, 아니 인류의 대전사라고 봐도 무방한 영웅이 있거든."

사르디엘의 극찬에 묘하게 무투파들의 엉덩이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다들 살짝 기대하는 표정인것 같기도하고.

"그게...누구죠?"

거론된 업적에서 거리가 가장 먼 아그네스가 그런 여인들을 대표해 물었다. 꽤 거창한 업적들이다보니 나도 누군지 궁금하네.

"누구냐니? 그야 당연히 아르틴이지."

"...네? 저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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