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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45화 (245/266)

〈 245화 〉 미래 계획은 계획적으로 #07

* * *

기술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아무리 신동이라고 불리는 아이도 검을 쥐자마자 검기를 쭉쭉 뽑아낼 수는 없는 법.

어지간한 이름 있는 영웅들도 그 만한 실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르는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수련과 경험을 쌓아야 하는 법이다.

그래, 그게 세상의 이치고 상식인 법인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들은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팔을 휘두르는 것이 느리다고 하지 않았느냐! 생각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빠른 법! 생각을 스스로 인지하기 전에 몸이 움직여야 한다!”

“마나를 단순히 직선으로 쏘면 안 된다니까? 검기에서 쏘아진 마나를 전부 통제한다는 느낌으로 휘두르면 된다고! 4회차 때도 알려줬잖아!”

“악! 시끄러워! 두 사람 다 좀 조용히 해! 대련에 집중이 안 되잖아!”

두 사람의 멈추지 않은 훈수에 나는 당장이라도 칼을 바닥에 내던지고 싶었다. 눈앞에서 나를 죽일 기세로 살초를 섞어가며 덤벼오는 카르엔이 없었다면 바로 성질을 부렸을 텐데.

“빈틈!”

“큭?!”

잠깐 두 사람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한 줄기의 바람이 내 옆구리를 스쳐지나갔다. 검기가 담긴 바람은 옆구리에 깊은 상흔을 새겼고, 곧 이어 피가 터져 나오자 옆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이고, 저걸 못 막다니...화려하고 빠른 검식에 매료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아르틴, 우리가 괜히 화 내는 거 같아? 집중하면 막을 수 있는데 못 막으니 답답해서 그렇지!”

아, 줘패고 싶다. 사랑하는 누님과 존경하는 천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파운딩 포지션으로 눕혀서 두들겨 패고 싶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내 속이 산불이라도 난 것처럼 들끓던 찰나, 옆에서 이 모습을 구경하던 시르카가 손가락을 튕기자 내 옆구리의 상처가 마치 환각이었던 것처럼 단번에 사라졌다.

“자, 이걸로 2승 7패네요. 끝까지 가면 다 이긴다는 걸 보여주세요 주인님!”

지금 이 대련은 시르카의 환각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험공부 막바지에 썼던 꿈 속 공부법을 그대로 대련으로 적용한 것에 가깝달까.

그래서 나랑 카르엔은 이렇게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칼을 휘둘러도 목숨을 잃을 걱정 없이 무자비한 대련을 펼칠 수 있었다. 시간이 꽤 절약되는 건 덤이고.

“괜찮아, 아르틴? 내가 너무 깊게 벤 것 같은데...아프지 않아?”

“...후우, 괜찮아. 그냥 그대로 봐주지 말고 계속해.”

대련의 실효성을 위해 감각은 현실과 똑같이 해놓은 터라 내 표정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그 표정을 본 카르엔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차마 내 입으로 살살하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살살하면 누님과 천마님이 알아차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남자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기도 하다.

‘젠장, 4회차 때 풀스펙만 찾을 수 있어도 이 고생은...아니, 계약한 얘들 힘만 쓸 수 있어도...’

변명할 여지는 있었다. 사르디엘이나 유니코르, 메피스토나 시르카 같은 계약체들의 힘을 쓰지도 않았고, 꿈의 세계가 무너질까봐 과한 화력의 마법도 사용하지 못했다.

사실 저것 말고도 금지당한 것들이 꽤 있는데, 기술 외의 것을 전부 막아서 강제로 기술을 익히게 하도록 하는 방법이라나.

문제는 이 천재들이라면 몰라도 나는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억지로 기술을 우겨넣어 익히는 타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까 몇 번이나 진득하게 시범을 보여주지 않았느냐! 제대로 해보아라, 아르틴!”

“그걸 몇 번 보고 할 수 있으면 진작 마왕 목베러 2회차 떠났지! 훈수질 좀 그만해요!”

천마의 외침에 삐딱하게 대답한 나는 다시 검을 바로 쥐며 자세를 잡았다. 얼마 전의 누님이나 천마라면 나를 이정도로 과하게 몰아붙이지는 않았을 텐데.

아마도 아까 사르디엘의 발언이 누님과 스승님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 같다.

단독으로 군단장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면,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어긋난 기대감을 품은 스승의 열정이 너무 부담스러워.

마음 같아서는 이 대련을 설렁설렁 하고 싶다.

천마신권류 오의니 레크투르 왕가에 전해지는 비장의 기술이니 하룻밤 만에 익힐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미안해 파트너...그래도, 약속한 거 기억하지?”

“그래, 대련이 끝났을 때 승점이 네가 나보다 높으면 내 검 너 주기로 한 거 말이지?”

내 물음에 카르엔이 묘한 기백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자신의 물건을 만들어 달라던 부탁에서도 모잘라, 카르엔은 내 검을 직접적으로 탐내기 시작했다.

그야, 워낙 좋은 소재만 넣고 만든 검이니까 탐내는 게 이상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파트너 직접 만든 검. 무조건 가져야만 해, 아파하는 파트너의 얼굴은 보기 싫지만, 이것도 파트너와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저렇게 기분 나쁜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는 카르엔을 보고 있으면, 역시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여인의 모습이라서 용서받는 거지, 예전에는 저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참았던 걸까?

“어쩔 수 없이 전력을 다할게! 파트너어어어!!!”

“이거 대련이니까 좀 진정해 이 미친년아!”

“어허! 거기서 힘으로 밀쳐내지 말고 받아서 흘려보내라고! 건곤대나이 모르느냐!”

“그게 뭔데요!! 난 무협 안 좋아했어!!”

“저저 또 허벅지 베이지! 집중하라고 집중!”

‘시발. 진짜.’

온 방향에서 들려오는 정신을 어지럽히는 소리들의 향연에, 어쩐지 서글퍼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마리안느 누님하고 카르엔은 나중에 습격 끝나고 침대 위에서 두고 보자.

나를 향해 스무 갈래로 휘어지는 카르엔의 검로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 당한 것의 배로 되갚아주겠다고 이를 악물며 다짐했다.

**

아카데미의 정기행사인 던전 실습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는 소풍에 가깝다.

본래부터 이런 행사는 아니었다. 처음 던전실습이 정기 행사로 정해졌던 200년 전의 아카데미는 실제로 제국이나 군도에 나타난 던전을 실습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방심하면 정말로 목숨을 잃는 것은 물론, 방심하지 않더라도 어떤 변수가 일어나는 순간 학생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최악의 사태로 이어질 수 있던 행사가 바로 던전 실습이었다.

허나 200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100년 전에 마왕군의 기세를 천마를 필두로 한 영웅들이 꺾은 이후로 제국의 남부에 던전이 발생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간혹 나오더라도 하급 마족들이나 짐승이 오염되어 하급 마수가 된 저급 던전일 뿐, 그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도전하는 던전의 질은 이전보다 점점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던전 실습은 그저 중간고사의 준비로 억눌려있던 학생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행사이자 친목회에 가까운 행사.

그런 행사에 큰 기대를 가지는 학생들은 대도시나 수도에 살아 던전을 접할 기회가 없던 상류층 귀족의 자제들 정도였다. 그랬을 터였다.

“우와...!!”

큰 기대 없이 항구에 도착해 자신들이 탈 배를 기다리던 1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동시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저것 좀 봐! 소문으로만 듣던 제국의 황실 친위대야!”

“세상에, 백기사 유예프님에 고행의 사제 줄딘님까지! 북구 교회의 자랑인 교황 직할 성기사단과 사제단이잖아?”

“저기 늠름하게 걷는 왕국의 전사들은 어떻고?! 다섯이 모이면 상급 마족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늑대 가죽 전사단이잖아!”

본래라면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도 평생 마주치는 것조차 영광으로 알아야 할 최정예 군사들이다. 걷는 모습만 봐도 평범한 병사들과는 다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이는 시험이 끝난 후 목표를 잃고 늘어져 있던 학생들에게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족과의 전쟁 최전선에서 검을 쥐고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동시에 눈치가 빠른 몇몇 학생들은 이 상황에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고 잇었다.

‘고작해야 던전 실습에 왜 저런 대단한 사람들이 참가하는 거지?’

‘우리는 사실 던전이 아니라 전쟁터로 팔려나가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사람들을 호위로 대동할 리가 없잖아!’

단순히 최정예 병력들만 참가한 것이 아니다. 선후배의 교류를 핑계로 선배들을 이끌고 실습에 참가한 학생회에 무려 천마가 공화연방을 대표해 참가한 것이 아닌가.

“천마님, 결국 진짜로 실습에 따라갈 생각입니까?”

“아까부터 계속 몇 번을 묻는 거냐? 안 그래도 제자 녀석 때문에 기빨려 죽겠는데, 너 까지 나를 귀찮게 해야겠느냐?”

“피곤하면 제발 들어가서 쉽시다 천마님. 아이들이 불안해서 고개도 못 들고 있는 게 불쌍하지도 않으시냔 말입니다!”

그런 천마를 만류하기 위해 직접 나선 빈센트 노팅햄 부학장의 계속된 만류에도, 천마는 고집을 꺾지 않고 행진에 참여해 그 자태를 뽐냈다.

평상시 샤오메이의 발칙한 복장이 누구에게서 배운 건지 알 수 있는 과한 노출이 인상적인, 속된 말로 나잇값을 못하는 복장이었지만, 이 자리의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강자의 기세를 지닌 천마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치 않았다.

“됐으니까 가거라! 이제 배에 올라타야 하는데 네가 따라오니 걸리적거리지 않느냐!”

“아니, 도대체 누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제발 체면을 배우란 말입니다 천마ㄴ“

“이 자식이! 보자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악! 제 나이가 몇 인줄 알고 손찌검을 하십니까! 이제 곧 있으면 손주도 볼 나이란 말입니다!”

“진짜 죽고 싶다...”

감히 아카데미의 부학장이자 제국의 공작을 손찌검하는 천마,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샤오메이가 수치심에 주먹을 떨며 배에 황급히 올라탔다.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던 인류의 영웅, 천마의 품위 없는 모습에 학생들이 당황하여 수군거렸지만, 곧 이어 행렬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학생들의 시선이 돌아갔따.

“용사 카이엔이다! 그리고 그 옆은...”

“...그, 그 옆은...아그네스 황녀님의 약혼자 아니야?”

학생들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당혹을 넘어 경악이 담겼다. 천마의 무례한 모습을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학생들조차 그 모습을 보고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

“파트너, 떨어지지 않는 거야. 알고 있지?”

“나, 나 창피해 아르틴...제발 빨리 가면 안 될까...?”

본래라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여자의 모습으로 변한 카르엔이 입방아에 올랐어야 했을지도 모르나, 오늘의 주역은 카르엔이 아니라고 누구나 감히 말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 평상시라면 아르틴이 어떤 모습을 하더라도 곁에 서는 것만으로 즐거워서 고개를 들고 다녔을 카르엔 조차, 지금 상황에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얼굴이 빨갛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 저게 도대체 무슨 모습이야...?”

“저기 밑에 저 여자...아르틴 루드비히가 데리고 다니던 유니콘 아니야...?”

하지만 아르틴은 차마 카르엔을 책망하지 못했다. 학생들과 항구에 거주하는 도시의 시민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들에게 모이는 이 순간.

“어떠냐 아르틴! 유니콘 오너의 자부심이 샘솟고 있느냐? 지금 이 자리의 모두가 너를 경외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구나!”

“...경외가 아니라 경악에 찬 눈이잖아...”

아르틴 자신은 인간의 형상을 한 유니코르에게 업힌 채 행렬의 중심에 서서 그 우스꽝스러운 자태를 뽐내야 했기 때문이다.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거라 아르틴! 쑥스러워 하지 말고!”

“제발, 어떤 새끼가 유니코르에게 이상한 바람을 불어 넣은 거야!!”

“ㅋ...크흡...크흐읍...배, 백마 탄 기사님의 자태로구나...크흐흡...”

절망에 빠져 절규하는 아르틴을 바라보며, 그 뒤를 따라가던 메피스토가 실시간으로 웃참을 견디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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