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6화 〉 바다의 밤은 뜨겁고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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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스의 호위대장, 여기사 노먼 링클레드는 아침 일찍부터 요란스럽게 뛰는 심장을 자제시키기 어려웠다.
5일간 진행되는 던전실습 동안 마왕군과 만나 전투를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
다른 배에서 자신들을 의식하며 바라보는 왕국의 전사단이나 교단의 성기사에 뒤처지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점.
마왕군과 싸우는 와중에도 자신의 주군인 아그네스 황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점.
무엇하나 아카데미에서 아그네스를 보호하며 평온한 생활을 보내던 황실 친위대와 시녀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허나 노먼에게는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아르틴 루드비히...아그네스 황녀님의 약혼자가 이번 전투에 참여한다고 했었던가.’
아르틴이란 이름은 현재 아카데미 내부를 가장 시끄럽게 하는 이름일 것이다.
본가의 영주가문의 후계자를 때려눕히고, 왕국 귀족파벌의 수장가문인 위센 공작가의 차남도 때려눕힌 겁 없는 미치광이.
게다가 자신이 아그네스 황녀와 결혼할 남자라고 밝혀 연애사실을 공표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2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황녀의 마음을 어떻게 훔친 건지는 황실 시녀대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용사의 동료, 동반자로써 여신이 점지했고 성녀가 그에 대해 공증한 인물, 전설 속의 영웅인 천마의 제자이며 요 근래에는 왕국의 후계자인 마리안느 왕녀와도 자주 어울리는 인물.
무엇보다 장미관에 나타난 릴리트의 분신체를 용사와 같이 토벌하지 않았던가. 이미 아르틴 루드비히를 황태자와 비견되는 천재, 용사와 대등한 인류의 희망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나타나는 형국이다.
‘듣기로는 왕녀의 동생인 오지에 왕자도 아르틴 루드비히를 신경 쓴다고 했지? 우리들 보다 더 신경 쓰이는 곳이 아마 왕국 측일지도 모르겠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던전실습은 아주 좋은 기회다.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경 쓰는 아르틴 루드비히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
고작해야 중간고사에서 1등이 아니라, 마족이나 마왕군, 어쩌면 그 간부하고 싸우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는 북부 교단의 정예 성기사들과 사제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녀가 늘 신경 쓰는 아르틴 루드비히는 과연 이번 원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아르틴의 모습을 기대하며 고대하고 있던 찰나.
“노먼 경, 저게 도대체 뭐죠?”
“왕자님,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여신님 맙소사...”
모두가 기다렸던 아르틴의 첫 등장은 매우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에 한 여인이 쓰러지는 작은 소란이 벌어질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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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버니, 미쳤어요 정말?”
“...”
“정말 미쳤냐고요! 증조모님만 해도 제 속을 터져 죽게 만들 것 같은데, 어떻게 오라버니까지 그러냐고요!”
울먹이는 얼굴로 내 가슴을 마구 두드리는 샤오메이.
손맛이 맵다 못해 슬슬 가슴에 피멍이 들 것 같았지만 나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도, 나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고...알잖아? 유니코르가 하고 싶다고 졸라서...”
“하고 싶다고 조른다고 그런 걸 다 받아주면 어떻게 해요! 오라버니의 늠름하고 멋진 모습을 만인에게 보여줄 기회였는데!”
확실히 오늘은 중간고사 이후로 처음 참석하는 공식적인 자리.
이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리처드 황태자의 신기록을 갈아치운 루키의 새 등장을 고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못 보셨어요? 아그네스 황녀님의 기사단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거?! 바이올렛 언니는 그 참담한 모습을 보다가 실신까지 했잖아요!”
“아, 아까 쓰러진 게 바이올렛이었구나...”
어쩐지 바이올렛이 보이질 않더라. 그리고 아까부터 아그네스랑 마리안느 누님이 구석에서 한숨을 쉬던 것도 그 이유였나...
“그만 두거라! 아르틴은 잘못이 없다!”
“유니코르...”
“유니콘의 계약자가 유니콘을 타는 것이 도대체 무슨 죄라는 것이냐? 오히려 당당히 그 멋진 자태를 뽐내야 할 것이거늘!”
“씨발...그만해...”
미리 말하지만, 이번 일은 미리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밤새 카르엔과 대련을 마치고 온 나에게 유니코르가 오랜만에 부탁이 있다며 말을 걸어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
‘괜히 요즘 사고 잘 안치니까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해서...’
지난번 중간고사 때 유니코르가 작은 사고를 치긴 했지만, 그래도 요즘 가장 얌전하고 의젓하게 구는 것이 유니코르가 아니던가.
게다가 유니코르는 내게 가장 먼저 악세사리를 선물 받은 여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바.
그런데 곧 있으면 카르엔과 다른 여인들을 위해 반지를 잔뜩 제작해야 하는 지라 유니코르에게 조금 심적인 죄책감이 남아 있었다.
그런 유니코르가 부탁을 해오니 나는 자신만만하게 백지수표를 던진 거였는데, 이렇게 파산할 줄이야.
“쿳, 크쿳, 나, 나도 유니코르의 의견에 동의해 아르틴. 얼마나 멋진지 눈이 부실 정도였다니까?”
“메피스토, 은근슬쩍 손 내리지 말고 높이 들어.”
“그 성녀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못 봤어?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바이올렛의 옆자리에 누워있었을 텐데!”
그래, 원흉은 저 메피스토였다. 어제 둘이 올라가서 말다툼을 하다가 유니코르에게 이상한 헛바람을 불어넣은 원흉.
“내일부터 시작되는 행사는 사실상 공식석상에서 아르틴의 모습을 뽐내는 자리가 아니냐? 그럼 당연히 말을 타고 멋지게 등장하는 것이 좋을 텐데 말이다.”
저 말에 메피스토의 심기를 비꼬던 유니코르 귀가 팔랑이고 말았다고.
이해는 한다. 2회차 당시 나는 유망주나 천재랑은 거리가 멀었으니, 만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레드 카펫 위에서 나를 태우고 걸을 기회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하필 인간 형태로 태우냐고...”
“나보고 유니콘 형태로 돌아가지 말라고 한건 아르틴이었잖아! 그러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태울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저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콧김 히힝 거리는 말의 모습으로 나를 태우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에 내가 극구 거부했다.
내 안의 유니코르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닌 말로 각인 되는 것 보다. 만인의 앞에서 수치심을 겪는 것을 택한 셈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로맨티스트라고 봐도 좋은 게 아닐까?
“주인님, 그건 너무 개소리 같아요.”
“그냥 정신승리라도 하고 싶어서 그래...”
내 마음을 읽은 시르카의 일침에 정신승리마저 박살나고 말았다.
그냥 눈 딱 감고 유니콘인 유니코르를 탈 걸 그랬나.
“걱정 마 파트너, 첫인상이 전부는 아니잖아? 마왕군과 싸우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들도 아르틴의 멋진 모습을 이해해 줄 거야.”
“...그렇지. 중요한 건 마왕군과 잘 싸우는 거지. 용사는 잘 싸우면 그만이잖아. 그렇지?”
카르엔의 그럴 듯한 말에 나는 한번 꺾인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 모두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봐도 상관없다. 곧 있을 마왕군과의 싸움에서 활약만 한다면 우마무스메를 타고 다니던 내 모습이 대수겠는가.
“정말, 혹시라도 마왕군이 안 나타나면 어쩌려고요?”
“아니, 나타나는 건 확정이야. 간부 중 누가 오느냐가 문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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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마왕군의 침략
마왕의 4대 권속, 릴리트의 패배는 느슨해진 마왕군에 긴장감을 더했습니다!
그들은 본래보다 조금 더 일찍, 그리고 강하게 아카데미를 압박하고자 합니다!
언제 그들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허나 여신의 대행자라면 언제나 이를 이겨내야하죠!
퀘스트 조건 : 랜덤 인카운트 – 마왕군의 침략을 해결.
퀘스트 성공 보상 : 퀘스트의 완료 루트에 따라 달라짐.
퀘스트 실패 패널티 : 강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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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떠올랐던 퀘스트의 내용을 보면 확실하다.
‘마왕군의 침략이라고 적혀있지만, 아카데미를 직접 침략할 일은 절대 없어. 나타난다면 우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야.’
이에 대한 확신은 있다. 딱 한번, 2회차의 4학년 당시 리치 하몬이 마왕군을 대규모로 이끌고 아카데미를 침공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그 초인적인 싸움에 낄 수가 없어 인명구조와 마왕군 잡졸들을 해치우는 데에 주력해야 했는데, 워낙 규모가 커서 아카데미의 피해도 컸지만 대마법사인 루베루스 학장을 중심으로 한 반격에 마왕군도 큰 피해를 입었었다.
“루베루스 학장이 있는 아카데미를 직접 노리는 일은 최대한 피할 테고, 던전실습이 벌어지는 제국의 남부에 올 수 있는 간부도 한정되어 있지.”
“한정되어 있다니요?”
“잘 생각해봐. 제국의 전선을 침공하는 간부는 매번 다르지만 아카데미랑 같은 남해와 동해 쪽에 위치한 공화연방을 침공하는 간부는 늘 같잖아?”
세 나라 중 어느 국가보다 강대한 해군을 지닌 공화연방의 영해에 군대를 이끌고 침략을 벌이는 간부는 내 기억 상 하몬을 제외하고 언제나 둘이었다.
“설마, 암모서스와 카르지오네 말이에요?“
“그래, 심해의 제독의 유령선단이나 블랙 드래곤의 군단쯤 되어야 바다를 건너서 제국의 남부를 노릴 수 있지. 이번에도 그 둘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물론 진짜 둘 중 하나가 등장한다면 부담은 꽤 클 것이다. 둘 다 간부 중에서도 특히 강한 권속이니 말이다.
하지만 역으로, 권속이나 되는 존재가 1년차에 곧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터, 아마 장미관 때처럼 리미트가 걸린 채로 등장할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었다.
“가장 유력한 건 암모서스의 함대가 바다에서 우릴 습격하고, 그 배 중 하나에 군단장이 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군단장 중에는 군대를 이끌지 않고 단독으로 다니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가장 귀찮은 조합인 망령군주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누가 와도 상관없다.
망령군주의 유령 군대와 유령선에 탄 언데드 해적들은 잘 죽지도 않아서 올가에게 전부 맡겨야겠지만.
나머지 군단장은 나랑 카르엔, 샤오메이와 마리안느 누님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거기에 천마님까지 더하면 사실상 위험은 없다고 봐도 좋을 터.
“그렇게만 된다면 다들 파트너를 재평가 하지 않겠어? 무려 군단장을 무찌른 용사의 동반자인 셈이니까...모두가 아르틴을 내 동반자로 인정하는 거야...”
“...저기, 그 동반자라는 어감이 굉장히 기분 나쁜 거 알아요?”
샤오메이가 음습한 카르엔의 목소리에 불만을 표했지만, 카르엔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내 연인이 되고 난 이후로 무척이나 여유가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예전이었으면 샤오메이를 죽일 듯이 노려봤을 카르엔이 품격을 챙기다니.
“그런데 아르틴. 아까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는 데...”
“응? 뭔데 조르바?”
“카르엔의 허리에 찬 저거, 전에 만든 네 검 같은데 내 착각인가?”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카르엔의 허리로 향했다.
그리고 시선이 모인 카르엔의 허리에는 내가 지난 번 장미관을 대비해 만들었던 아티팩트 급 명검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묻지 마. 나도 짜증나니까.”
182전 90승 92패. 내기가 끝난 시점에서의 내 전적이었다.
“승리자의 권한.”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카르엔은 허리에 찬 검을 아그네스와 다른 여인들에게 보란 듯이 뽐내며 기분 좋은 티를 양껏 뽐내고 있다.
...보다보니 열 받네,
“...솔직히 억까였어. 나는 마법도 못쓰고 축복도 못 받았잖아? 3판만 더하면 내가 이긴다니까?”
“응, 안 해. 내가 파트너 보다 강한데 왜 해야 해?”
“막판에 솔직히 힘 싸움하면 내가 이기는 데 억지로 시간 끌었잖아! 시간만 안 끌었어도 내가 3판 이겼어!”
“후후후, 이 검 정말 나한테 딱 맞더라. 너무 좋은 거 있지?”
카르엔은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으며 황홀한 표정으로 검을 제 볼에 부비며 승리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1시간 동안 다시 한 번 대련 뜨자고 카르엔에게 빌었다.
"흐음...하지만 난 하기 싫은걸? 약한 사람 괴롭히는 거엔 취미가 없어서."
"씨발년아!"
아무리 내게 불리한 조건을 내걸어도 카르엔은 제안을 거부하며 내게 너 좆밥이잖아를 시전 했다.
씨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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