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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53화 (253/266)

〈 253화 〉 바다의 밤은 뜨겁고 거칠다 #08

* * *

“일단 하나는 맞췄네. 4대 권속 중 하나인 암모서스가 직접 함대를 이끌고 움직였다는 거니까.”

일찍이 말했듯이 아카데미는 마왕군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대륙의 남동쪽, 공화연방의 인근에 위치한 열대기후의 대형 섬에 설립되었다.

그에 반면 마왕군의 영지는 대륙의 최북부.

일반적인 세력이라면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는 것에도 1년 이상의 대진격이 되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육로를 통한 진격은 당연히 제국과 왕국에 저지되기 마련, 결국 대규모 군세를 보낼 방법은 바다를 통한 해로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어느 쪽 해로를 타고 올 지가 관건이었는데...”

마왕군이 선택할 수 있는 해로는 2가지였는데, 하나는 완만한 대신 멀리 돌아가는 서쪽 해로.

현재 남부교단의 신중 하나인 바다의 초월자 레비아탄이 지키는 영역이라 신의 해로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레비아탄을 모시는 다국적 함대가 지키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최단 루트로 찌를 수 있는 동쪽 해로. 이번에 마왕군이 선택한 루트다.

“설마 여기서 동쪽 해로를 선택할 줄이야. 마왕군 녀석들 급하긴 했나봐.”

“응? 당연하지 않느냐? 서쪽은 레비아탄이 지키는 바다이니 동쪽이 더 빠르고 안전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치료 중에 자꾸 말하지 말거라!”

“끄아악! 아파! 아프다고!”

단검에 깊이 찔린 배를 정성을 다해 보살피던 유니코르가 살짝 상처를 찌르자,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고통을 호소했다.

대신 설명은 나를 대신해 옆에서 걱정 어린 눈빛으로 치료를 바라보던 샤오메이가 이어나갔다.

“초원 출신이라서 그런지, 바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네요. 유니코르.”

“뭐? 지금 내가 무식하다고 비꼬는 것이냐?! 마왕군이 서쪽 대신 동쪽을 택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구나!”

“그야 당연하죠. 유니코르는 잘 모르지만 대륙의 동쪽 바다에는 인류 최강의 함대라 불리는 공화 연방의 황금함대가 주둔하고 있으니까요.”

샤오메이는 꽤나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황금 함대를 소개했는데, 그녀가 공화 연방 출신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군도에 자리 잡고 있던 여러 부족과 민족의 소국들.

동해의 맹주를 놓고 싸우던 섬나라의 강국들.

마왕군에게 나라를 잃고 피난 온 망국의 후예들 까지.

공화 연방은 저런 다양한 종족과 민족이 모인 다국적 연방. 그 말은 결집력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약하고 국력도 밀린다는 뜻이다.

“마왕군의 해군을 이끄는 4대 권속 암모서스의 강점은 신출귀몰한 유령선단! 통칭 ‘와일드헌트‘라고 불리는 대규모의 안개와 함께 나타나는 괴물과 마족, 마수들로 이루어진 최악의 해군. 그런 해군을 정면 상대할 수 있는 건 황금함대 뿐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공화연방이 당당히 삼국에 이름을 놓을 수 있던 건, 공화연방을 대표하는 다섯 무인, 오신장과 황금함대의 덕분이기 때문이다.

동쪽 바다 곳곳에 설치된 해상요새의 상아등대는 와일드헌트가 끌고 다니는 마왕군을 강화하는 안개를 몰아내고, 황금함대는 안개가 파훼된 유령선단을 전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함대.

무엇보다 전투가 길어지거나 마왕군의 네임드가 나타나는 순간 출동하는 오신장 덕에 공화연방은 마왕군을 상대로 몇 번이고 승리를 쟁취했다.

나와 같이 늘 붙어 다닌 덕에 회귀 전의 기억이 꽤나 많은 샤오메이로써는 그런 승리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기에 자부심이 넘칠 만하다.

“끄응...뭐 오히려 좋은 일이야. 회의 때도 말했지만 동해로 온다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마왕군의 전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테니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고?! 본좌를 빼놓고 언제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냐!”

“네가 메피스토랑 놀겠다고 위로 올라간 날에 말했지.”

“놀다니? 본좌는 저 건방진 꼬맹이를 꾸짖었을 뿐이지 논 것이 아니다!”

치료를 끝낸 유니코르가 내 배를 상냥하게 쓱쓱 문지르면서도, 눈은 매섭게 치켜뜨며 앙칼지게 대답했다.

무섭다기 보단 귀여웠지만 그걸 티내면 또 상처를 누를 것 같아 져주는 척 시선을 돌렸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에요 오라버니. 공화연방의 함대에 합류해서 싸운다면 그 골치 아픈 암모서스를 토벌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아까 그렇게 다급하게 왔던 거구나. 위험한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했네.”

“당연하죠! 암모서스가 누군데요? 몇 번이나 오라버니랑 같이 싸웠어도 잡지 못한 그 재수 없는 마족이잖아요!”

확실히, 암모서스는 사실상 유일하게 해상 진격이 가능한 마왕군의 간부이기에 마왕의 권속이라는 강력한 포지션임에도 자주 만나 싸움을 벌이기도 했었다.

초반부터 후반까지 계속 얼굴을 비추며 중요한 타이밍에 사라지며 사람을 약 올리는 악역이라고 봐도 좋을 터.

그런 의미에서 지금 암모서스를 잡을 수만 있다면 하늘이 내려준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 틀림없다.

“아니, 암모서스는 황금함대에 맡겨두자. 우리는 계획대로 던전 실습을 진행하는 거야.”

“네?! 어째서인가요 오라버니?! 시불가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요!”

하지만 나는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잊었어? 이번 실습은 얼마나 더 죽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더 안 죽느냐가 중요해.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학생과 선생님, 교수님들 쪽에 마왕군이 오면 어쩌려고?”

“....아.”

심해군주 암모서스는 권속 중에 전투력은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권속은 권속. 그런 녀석을 안전하게 토벌하려면 병력의 대부분을 끌고 가야 마땅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를 유인하려는 함정일 수도 있어. 녀석의 배에서 인간 군단장 중 1명이 튀어나오면 무척 골치 아플걸?”

“그, 그럼 더더욱 가야하는 거 아니에요? 무려 권속이랑 군단장을 황금 함대 혼자서 상대하는 셈이잖아요!”

“그게 녀석들이 노리는 걸 수도 있지. 너무 걱정 하지 마. 황금 함대는 리치 하몬이 직접 나서도 궤멸시키지 못한 최강의 함대니까. 우리는 믿고 여기를 지키면 그만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번 이벤트의 난이도가 이렇게 만만할 리가 없지. 분명 뭐가 하나 더 있다.’

나는 암모서스가 황금함대에 격퇴당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분명 뭔가 크게 준비된 함정이 격발해 우리를 엿 먹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난이도가 미친 듯이 올라간 이번 회차라면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적의 의중을 알 수 없을 때는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야. 알았지?”

“우으...하지만, 절호의 기회가...”

샤오메이는 결국 내 말에 납득한 건지 의기소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이번에는 얌전히 가자고.

“하지만 암모서스님 인가요? 조금 아쉽네요...”

“응? 뭐가 시르카?”

그때, 얌전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시르카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저는 당연히 릴리트님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주인님에게 그렇게 크게 당했는데 그 성격 나쁜 창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차, 창녀?”

“만약 왔다가 토벌 당했으면, 그 힘을 잔~뜩 흡수해서 제가 지금보다 더 강한 사역마가 될 수 있었을 텐데...정말 아쉬워요♡”

그렇게 말하는 시르카는 진심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며 입맛까지 다시기 시작했다.

창녀에 흡수라니, 물론 내가 사역마로 만들기는 했지만 자신의 전 주군에게 저렇게 차가워도 되는 건가?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주인님? 아, 혹시 제가 릴리트님에게 다시 돌아갈 생각이라도 했을 까봐요?”

“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후후, 주인님도 참♡ 이런 굉장한 자지랑 너그러운 아량, 그리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애정을 지닌 주인님을 배신할 리가 없잖아요?”

“...”

“그럼요♡ 마왕군 밑에서 죽을 듯이 노력하면서 노처녀로 살던 시절보다 전 지금이 훨~씬 즐거운 걸요♡”

조금 감동할 뻔했다. 아량과 애정, 자지 중에 자지를 가장 먼저 장점으로 꼽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도 시르카는 충분히 유용한 걸? 그 이상한 장난이랑 몽마섹스빔만 안 쓰면 좋겠지만...”

“하지만! 안 그래도 요즘 가장 강력한 계약수 자리에서 밀려나서 신경 쓰인단 말이에요! 경쟁자가 알‘미라즈나 유니코르양 뿐이었을 때는 충분히 해볼만 했는데!”

“뭐? 여태 본좌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것이냐?! 마기를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갑자기 경쟁심을 불태우던 두 사람은 내 앞에서 티격태격 말싸움을 시작했다.

저것도 사이가 좋아져서 싸운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싸우면서 정 들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그보다 몽마 섹스빔 안 쓴다는 소리는 죽어도 안하네.

“그러고 보니까 메피스토랑 사르디엘은?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안 보이네?”

이 방은 나나 샤오메이의 방이 아닌, 내 직속 계약자인 유니코르와 시르카, 사르디엘과 메피스토가 머무르는 방.

내 배에 구멍이 뚫린 탓에 치료하러 오느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까 두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두 녀석 말이더냐? 말도 마라. 한 방에 내버려두니까 얼마나 기싸움을 하는 지 정신이 없어서 다른 방에 보내놨다. 그리고 머리 놔라 시르카!”

“뭐? 둘이 싸웠어? 왜?”

“그야 전 대천사랑 현 악마들의 대군주 중 하나잖아요? 둘이 사이가 좋은 게 이상하겠죠. 그리고 당신 먼저 제 가슴 그만 잡아당기세요! 그런다고 당신처럼 안 쳐지거든요!”

“130년 묵은 노처녀가 종족 빨로 할매젖을 숨기는 게 같잖아서 그러느니라! 그리고 본좌는 탱탱하거든!”

“뭐요? 이 되다만 바이콘이! 요즘도 아르틴에게 말의 모습으로 교미하자고 조르나요? 그런 추악한 모습을 누가 좋아할까!”

점차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수위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나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왔다.

샤오메이는 그런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따라나와 등을 토닥였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다. 저번에 샤오메이랑 올가가 싸울 때도 그렇고 여자들은 왜 이렇게 무섭게 싸우는 걸까.

하지만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숫사자라고 할 수 없겠지. 나는 최대한 의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먼저 갈래? 나는 사르디엘하고 메피스토 상태 좀 확인하게.”

“저 두 사람...아니, 두 여자는 내버려둬도 괜찮아요? 말려야 하지 않아요?”

“...적당히 하겠지. 둘 다 상식이 있는 얘들이잖아. 나는 사르디엘하고 메피스토 상태나 좀 확인하러 갈게.”

저런 두 사람이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기 싸움을 했다는 것을 들으니 내가 얼굴을 한 번 비춰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 있을게요. 오라버니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조심하세요. 아셨죠?”

“걱정 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싸울 준비는 하고 있으니까.”

사실 차라리 지금 당장 싸움이 일어나면 편하겠다는 생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골치 아프다. 진짜. 언제 날 잡고 기강을 잡아야지. 카르엔에게 했던 식으로 말야.

*

나는 사르디엘과 메피스토가 머물고 있는 4번째 골드 클래스 배로 넘어왔다.

각 배에 연결된 텔레포트 마법진 덕에 사실 상 호텔의 다른 층을 건너오는 느낌이란 말이지.

“근데 어떻게 방을 줘도 이렇게 가까이 주냐?”

나는 사르디엘이 머물고 있는 207호와 메피스토가 머물고 있다는 208호가 있는 복도에 서서 방문을 바라봤다.

선원들은 이 두 사람이 대천사나 대악마인줄 모르고 새 방을 줬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싸워서 방을 옮겨 달라고 한 사람을 이렇게 붙여서 주다니.

이러다 또 싸우면 어쩌려고 그러나 싶다. 두 사람이 전력이었다면 이런 배는 가볍게 박살났을 텐데.

‘일단 사르디엘부터 살펴볼까.’

메피스토에게 먼저 갔다가 괜한 장난을 당할까봐, 나는 207호의 문을 두드렸다.

“아르틴? 무슨 일이야?”

방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문 건너에서 사르디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계약자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건가.

“안녕하세요 사르디엘, 잠깐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가, 갑자기? 내 방에? 무, 무슨 일로?! 설마, 전투 전에 흥분을 참지 못하고 나를...?”

그냥 잠깐 얼굴 좀 보려고 들어가도 되냐고 물었을 뿐인데, 사르디엘은 갑자기 이상한 헛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메피스토랑 싸웠다고 해서 상태를 보러 왔는데요. 괜찮을 것 같으니까 그냥 가봐도 될까요?”

“어? 아니, 그게...그으...”

귀찮아진 내가 그냥 가겠다고 말하자, 무언가 고민하는 기색으로 말꼬리를 흐리는 사르디엘.

“....후우, 좋아. 안으로 들어올래? 안 그래도 보여줄 게 있었거든.”

“네? 보여줄 거요?”

갑자기 뭘까. 나를 위한 성검이라도 준비해둔 걸까?

“들어와 보면 알아...! 창피하니까 빨리 들어와...!”

“창피하다니? 도대체 뭘 보여주려고...”

사르디엘의 이상한 반응에 의문을 표하며 문을 연 나는, 잠시 문 고리를 잡은 그 상태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어, 어때? 어울려? 전투복은 너무 오랜만에 입어봐서 어떨지 물어보고 싶었거든."

사르디엘은 무척 적나라한 노출의 복장, 까놓고 말해서 이미 타락한게 아닌가 싶은 저속한 복장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이런, 벌써 또 내 차례인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아랫도리에 서서히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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