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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할 정도로 경험이 많은 회귀자-254화 (254/266)

〈 254화 〉 와일드 헌트가 나타났다.

* * *

어렸을 때, 또래들이 보던 만화 중에 한 천사 캐릭터가 있었다.

주인공 일행을 돕는 아름답고 강한 천사인데, 복장의 노출이 많다는 수준을 떠나 몸매와 속살이 전부 드러났던 야한 캐릭터.

그 캐릭터는 내가 이 세계에 오기 직전까지도 노출하면 회자가 되던 캐릭터였던지라, 그런 자극적인 요소가 부족했던 어릴 적에는 수많은 남자아이들이 그 캐릭터를 첫사랑이 되고는 했다.

물론 나도 그런 노출 많은 복장을 좋아 했지만, 어릴 적부터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저런 옷을 입고 정말 싸울 수 있을까? 저렇게 노출이 많은 옷을 입으면 창피해서 못 싸울 것 같은데.’­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게 될 궁금증.

그 어린 시절에 가졌던 오랜 의문을 오늘 갑자기 해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르디엘. 지금 그 복장이 전투복이라고요?”

침대에 걸터앉아 그 박음직한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르디엘.

그런데 사르디엘은 분명 지금 입은 저 복장을 전투복이라고 말했다. 진심인가?

“어, 어때? 별로야? 역시 인간계로 내려와서 살 찐 건가? 천계에 있을 때는 살이 전혀 안 쪄서 신경 안 써도 괜찮았는데!!”

“아니, 그 쪽이 문제가 아니라...”

가슴은 유륜을 간신히 가리는 수준으로 드러낸 대다, 배꼽과 허벅지, 옆구리와 가랑이 부근까지 전부 노출된 복장.

그런 복장을 입고 있는데도 사르디엘은 제 배와 옆구리만을 팔로 가리며 자신의 몸매가 망가진 것이 드러나는 것만을 걱정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저 상태가 망가진 상태라고?

“문제가 아니야? 그럼 아르틴이 보기에는 충분히 괜찮아? 아름다워? 나라는 대천사의 고귀함이 느껴지는 거니??”

허나 사르디엘은 진심으로 물어봤던 건지, 내가 괜찮다는 말을 하자 재차 호들갑을 떨며 자신이 가렸던 배를 쓱쓱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이제 보니 아주 살짝 뱃살이 느껴지는 것도 같은데, 저 정도면 애교 뱃살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매끄럽다고 생각된다.

“충분히 괜찮으니까 좀 진정하실래요...? 애초에 평상시에는 그런 거 신경도 안 썼으면서 왜 갑자기 신경을 쓰는 건가요??”

“왜냐니! 당연히 저 악마 녀석보다는 더 멋지게 보이려고 준비한 거지! 나도 대전쟁 이후로 처음으로 입는 거란 말야! 저 망할 악마 녀석보다는 무조건 아름답고 품위 있게 보여야 하는 걸!”

아, 또 메피스토가 충동질의 범인이었나? 저런 걸 입으면 품위보다는 천박함만 느껴질 것 같은데...

“반응이 이상한 걸 보니 역시 별로인가 보구나! 됐어, 이제는 위에 로브라도 걸칠 테니까...!”

내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음에도 자격지심 때문인지 벌벌 날뛰던 사르디엘.

어떻게 사르디엘을 달래야 잠시 고민하던 나는 문뜩 사르디엘이 묘하게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르디엘?”

“흐, 흐응. 화, 확실히 아르틴에게는 괜찮았나 보긴 하네...?”

“...네?”

사르디엘의 빨개진 볼, 요동치는 동공과 떨리는 목소리.

그 동공이 향한 살짝 아래쪽을 향해 내 시선이 따라가자,

그곳에는 구렁이 한 마리가 내 바지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이런 시발, 분위기 좀 읽고 반응하지!’

상황 판단 못하고 박음직한 여체가 눈앞에 있다고 곧 바로 반응한 내 빅­아르틴은 당장이라도 사르디엘의 여체를 범하기 위해 그 자태를 꿈틀 거리고 있었다.

터지지 않는게 용할 정도로 그 크기가 적나라한 탓에, 사르디엘도 내가 지금 어떤 욕망을 느끼고 있는지 전부 알아차린 듯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시선이 내 자지에서 떨어지질 못한다고 해야 하나?

“저기 사르디엘, 그게 아니라...”

“어, 어, 어쩔 수 없지! 응? 남자라면 당연히 이런 매력적인 여자가 눈앞에 있는데, 응응, 당연히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렇지?”

내가 뭐라고 설명하려는 순간 혼자서 다급한 목소리로 뭔가를 외치기 시작하는 사르디엘.

“그, 그래도...곧, 곧 마왕군하고 싸워야 하는데...그, 그런 흥분은 자제하는 게 좋, 좋지 않을까아? 실수로 나를 덮치기라도 하면... 나, 타락천사가 되어버려...♡”

그렇게 말하며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는 사르디엘의 목소리에서는 확실히 무언가 음란한 욕망이 서려있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지금 당장 범해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그러진 않을까 하고 내게 은근슬쩍 권유하는 것처럼 말이지.

‘아니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내가 바보도 아니고 옛날처럼 동정도 아닌데 사르디엘의 저 노골적인 욕망을 모르겠는가, 그저 최대한 모르는 척 할뿐.

왜 모르는 척 하냐고? 멀쩡한 천사를 타락천사 만들지 말라고 퀘스트까지 와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다.

한창 사르디엘을 찾을 때만해도 시끄러웠던 상태창이 요즘은 잠잠해진 것만 봐도 그 편애는 확실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 사르디엘의 성격이 좀 피곤한 것도 있고. 타락천사라서 축복마저 타락하면 큰일이잖아.

“그러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사르디엘이 타락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으? 으응?”

“메피스토하고 싸웠다고 해서 와봤는데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네요. 저는 이만 가볼 테니까 다음에 뵈요.”

하지만 사르디엘을 보고 있으면 순수하게 꼴리는 것도 사실.

나는 혹시 모를 불상사가 생기기전에 급하게 자리를 뜨기로 결심했다.

“그, 그런 흉측한 상태로 그냥 가는 거야..? 지, 지나가던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바로 옆방이 메피스토 방인데 메피스토한테 달래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정 안되면 그냥 인식 저해 마법으로 숨기면 그만이고요.”

“메, 메피스토 그 악마한테 간다고?! 눈앞의 나를 내버려 두고!? 그거 천사에 대한 큰 모욕이야! 나에 대한 배신이라고!”

메피스토를 언급하자 갑자기 짜증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사르디엘.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냥 타락천사 될 걸 감안하고 무지성 교배프레스라도 해달라고 바라는 건지.

“안 돼! 못 가! 차라리 내가 달래줄 테니까 저 악마에게는 못 보내!”

“뭐, 뭐하는 겁니까?! 이거 놓으세요! 바지, 바지 내려가잖아요!”

내가 문고리를 잡는 순간, 갑자기 내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르디엘 때문에 나는 황급히 바지춤을 움켜쥐며 버텨야 했다.

“다른 여자는 다 괜찮아도 저 괘씸한 악마한테는 절대 안 돼! 너는 용사의 동반자잖아! 악마보단 천사가 궁합이 더 좋을 거라고!”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에요! 그러다 타락하면 어쩌려고!”

“그럼 말해! 악마나 마족보다 천사가 더 꼴리다고! 아니, 서명해! 가장 꼴리는 종족은 천계의 천사들이다 라고!”

“이거 놔 이 정신 나간 여자야!”

악마와 비교된다는 사실에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건지 내 바지를 격렬하게 벗겨내려는 사르디엘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초인의 경지에 도달한 내 힘을 사르디엘이 묘하게 웃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탓에 바지도 점점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슨 힘이 이렇게 쌔..?!”

“흐흐흐, 강제로 덮치는 사람은 평소의 7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못 들었어? 포기하고 서명해!”

“개소리 그만하고 정신 좀 차려!!”

저런 헛소리를 어디서 들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간다면 정말로 바지가 벗겨질지도 모르는 상황.

안 되겠다. 사르디엘의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도망쳐야겠어...!

──띠링!

“봐요! 지금 상태창도 떠오르잖아! 이거 분명 경고라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상태창에 나는 분명 타락천사에 대한 위험 문구라고 확신하며 상태창의 내용을 읽었다.

“...어?”

상태창의 내용을 전부 읽은 나는 당황한 나머지 바지춤을 붙잡던 손의 힘도 풀린 채 멍하니 그 창을 바라보고 말았다.

“벗겼다! 이제 정말 포기하고 서명해! 천사야 말로 가장 꼴리는...아르틴?”

그 틈에 내 바지를 벗겨내고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개소리를 외치던 사르디엘은, 내 굳은 표정을 보자 뭔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듯 의아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요.”

“뭐, 뭐라고?”

“왔어요. 왔다고요.”

“...누가? 누가 왔다는 거야?”

그야 뻔하지 않은가. 지금 이 상황에 상태창이 알림까지 써가며 등장을 알릴 존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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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마왕군의 침략

마왕군의 타격대가 아카데미의 함대를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전투에 참가한 모든 간부를 쓰러트려야 퀘스트의 성공으로 간주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퀘스트 조건

1. 휘광을 삼키는 자, 엘드리치를 처치하십시오. (0/1)

2. 천괴수 헤카톤케일을 처치하십시오. (0/1)

3. 몰락한 옛 신 마그니를 처치하십시오. (0/1)

4. ??의 ??, ???? ???를 처치하십시오. (0/1)

퀘스트 성공 보상 : 퀘스트의 완료 상태에 따라 달라짐.

퀘스트 실패 시 패널티 : 강제 회귀.

퀘스트 시작까지 남은 시간 ─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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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군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분명 공화 연방의 황금함대와 싸우고 있어야 할 마왕군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알림.

아니, 그런데 목표가 너무 많았다. 군단장, 혹은 군단장급 마수가 셋이나 온다고? 4번째의 저 물음표 투성이는 뭐고?

게다가 대응할 시간이 5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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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시작까지 남은 시간 ─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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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5시간이 아니라 5분이야?

**

대륙의 동쪽 바다, 그 심해 500m 아래.

공화 연방의 자랑인 해상요새의 상아 등대도 비추지 못할 그 깊은 심해에, 다섯 척의 배가 남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리치 하몬이 건 마법의 힘으로 해상요새의 탐지 마법을 피해, 심해를 나아가는 마왕군의 호위 선단은 셋이나 되는 마왕군의 간부를 태운 상태.

평범한 일로는 목숨을 잃을 위험이 없는 터라 과격하기로 유명한 유령선의 언데드 선원들조차도 긴장하는 중요 임무를 맡은 이들이다.

“에, 에취!”

그리고 그 선단에 속한 배 중 한 척. 그 한 척의 하부창고.

화약이 가득 들어있는 화약통들 사이에서 재채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으, 추워...이, 이런 취급은 지옥에서 쫓겨난 후로 처음인데...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거야?”

그 빈 화약통 안에 있는 것이 한 몽마 여인이라는 사실을, 갑판 위에서 심해 항해를 진두지휘하는 선원들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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