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3. 생일
* * *
“들.”
“으음.”
“아들.”
“음?”
헉.
정신이 퍼뜩 들어 벌떡 일어났다.
“아들.”
“예.”
“암만 술 마셨어도 동생 침대에서 자면 어떡하니.”
“여기 겨울이 방이에요?”
“저기 구석탱이에 찌부러져 있잖아.”
시선을 돌려보니 침대 벽 쪽에서 이불을 덮고 엎어져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동생이 보였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
“취해가지고 헷갈렸나 봐요.”
“술 마시는 건 좋은데, 좀 적당히 마셔. 겨울이 불쌍하지도 않니?”
“저만큼 겨울이 챙겨주는 사람이 어딨다구요.”
“챙겨준다는 놈이 술 먹고 동생 이불을 뺏어?”
“아니, 오늘은 잘 덮고 있잖아요.”
“그건 엄마가 다시 덮어준 거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더라.”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더 잘 거면 네 방 가서 자고, 밥 먹을 거면 나오고. 겨울인 좀 더 재워야 할 거 같으니까.”
“밥 먹을게요.”
“술 좀 적당히 마셔.”
“네.”
“알았지?”
“알았어요.”
어머니가 나감과 동시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일은 생생히 기억났다.
왜 그랬지.
말과 행동이 정반대였잖아.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술을 끊어야 하나.
고개를 돌려 엎드려 있는 동생을 바라봤다.
이불을 살짝 걷어냈다.
머리카락으로 목이 뒤덮여 있었다.
손으로 슬며시 치웠다.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빨갛게 상처나 있었다.
.
핸드폰을 꺼내 내 모습을 확인해 봤다.
다행히도 내 쪽은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오려 했다.
손잡이를 잡은 순간,
“오빠.”
자는 줄 알았던 동생이 말을 걸었다.
“오빠는, 오빠지?”
“싫어도 평생 오빠지.”
“어제 많이 취한 거지?”
“응.”
“필름 끊겼어?”
“응.”
“응. 나 좀 더 잘게.”
“그래. 잘 자.”
“생일 축하해.”
“.”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식탁에서 어머니가 출근하시기 전까지 등짝을 얻어맞았다.
그래도 미역국은 맛있었다.
***
우리 집은 음력으로 생일을 세기 때문에, 양력 생일 땐 별달리 챙겨주진 않는다.
그냥 아침에 미역국이 나오는 정도.
물론 난 음력 따윈 안 세는 사람이기 때문에 정확히 내 생일이 언젠지는 모른다.
대충 추석 언저리 정도라는 것만 알지.
막상 당일에도 고기 종류가 무척 다양해진다는 점을 빼면 딱히 생일 느낌은 안 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랑도 뭐, 모이는 핑계로 생일을 쓸 뿐이지 파티를 하는 느낌은 없고.
결론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생일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졸업하고야, 동생한테 기프티콘은 받았지만.
사회면 몰라도 군대에서 어떻게 써먹으라는 건지.
물론 쓰긴 썼는데.
“오빠.”
“응.”
“이거 줄게.”
점심을 먹은 뒤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누워있다 보니, 동생이 익숙한 디자인의 기다란 박스를 가져와 내게 건네줬다.
아니 이거 좀 비싼 거 아닌가?
“생일선물?”
“응.”
“이, 이거 몇십만 원 하지 않냐?”
“그, 조금 싼 버전이라 40만 원밖에 안 해.”
“고3이 돈이 어디 있다고.”
“용돈 쓸 일이 없어서.”
비닐을 뜯고 언박싱 해보니 요즘 광고하던 스마트 워치가 있었다.
아니, 전역한 김에 살까 말까 고민하던 건 맞는데.
“너 용돈 얼마 받는데.”
“5만 원.”
“한 달에?”
“일주일.”
그래도 두 달은 모아야 하는 거 아닌가.
군대 월급보다도 적은데.
뭔가.
뭔가 죄책감이 몰려온다.
“요즘 오빠 차 타고 다니니까 교통비도 안 나가고, 밥도 집에서 먹고 하다 보니까.”
“뭐, 그. 어.”
“그래서 좀 여유 있었어.”
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이다.
미안하다고 해야 할지, 고맙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채워 봐도 돼?”
“아, 잠깐만.”
상자를 가져가더니 이것저것 포장을 풀고 줄을 끼웠다.
그리곤 내 손을 붙들곤 손목에 시계를 채워줬다.
“이쁘네.”
“오빠 시계 잘 안 차고 다니길래. 필요할 거 같아서.”
“고마워.”
좀 부담스러운 건 맞지만 선물이니 감사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 어쩌지.
난 겨울이 생일 때 뭐 챙겨줘야 하냐.
진짜 큰일이네.
이러면 못해도 노트북인데, 이거.
“겨울아.”
“응.”
“그, 필요한 거 있어?”
“그걸 나한테 묻는 건 좀 그렇다고 생각해.”
폰이랑 연동하는 도중 스리슬쩍 물어봤지만 걸려버렸다.
쩝.
결국 알아서 때려 맞춰야 되나.
“어, 그.”
“?”
“아니야.”
핸드폰을 내리고 왼손을 잡은 겨울이 쪽을 내려다봤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인지 흔적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지적할 수 없었다.
없던 일이니까.
“아, 반창고 가져올게.”
“.”
그렇지만 시선은 속일 수 없었다.
모기 물린 걸로 쳐야지, 뭐.
***
시간을 너무 허비한다는 생각이 들어 뭔가 생산성 있는 활동을 해보려 했다.
운동이야 솔직히 시간 그리 오래 안 걸리고.
하지만 일 년 반 동안 무의미하게 살아서 그런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능 공부를 또 할 수도 없고.
역시 자격증 따야 하나.
근데 이상하게 자격증 공부는 손이 안 간단 말이지.
과를 잘못 골랐나 보다.
커피라도 타 먹으려 부엌으로 향했다.
물을 끓여놓고 잠깐 기다리는 사이 개인톡이 왔다.
누군가 했더니 곧 군대 갈 빡빡이 새끼였다.
님
ㅙ
괜찮음?
뭐가
괜찮냐고
그니까 뭐가
술 존나 퍼마시더만
원래 술 좋아함
구라까지 마셈 맨날 소주는 입에도 안대면서
그건 맛대가리가 없어서 그런거고
암튼 멀쩡함?
너보단 멀쩡할듯
여친이랑 싸움?
아니 대체 왜
말도없이 술만 퍼마시는게 정상임?
싸운건 아니고
먼진 모르겠는데 니 잘못이니 사과하셈
아니 멀쩡하다니까
니 그 좆같은 성격 받아줄 사람 몇 없음
고무신 꺼꾸로 신을 걱정이나 해 남걱정 말고
그럴일 없음
술 처마시다가 차이면 어쩌냐고 펑펑 울던 놈이 남한테 왜 이러냐.
진짜 그냥 할 말 없어서 입 다물고 있던 건데.
노잼진지충한테 기대할 거 없다매.
손가락으로 싸우다 보니 물이 다 끓어서 커피를 들고 책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듯 보인 옆 방문이 괜히 신경 쓰였다.
뭐 하려나.
왜인지는 모르겠다.
똑, 똑, 똑.
손이 멋대로 노크를 하자 동생이 방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뭐 해?”
“소설 보고 있었어.”
“커피 마실 건데, 너도 타줄까?”
“응.”
“블랙? 밀크?”
“밀크.”
“아이스로?”
“아니. 따뜻하게.”
“기다려 봐.”
방문을 등지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커피믹스를 뜯어서 꺼낸 찻잔에 붓고, 끓여놨던 물을 따랐다.
쟁반에 커피 두 잔을 올려 다시 동생 방으로 향했다.
“자.”
“침대 정리해뒀으니까, 앉아도 돼.”
딱히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하지만 거절하기도 뭐해서 순순히 양반다리로 앉았다.
서로 찻잔에 코를 박는다.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려 퍼진다.
이상하네, 어제까진 잘만 이야기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왜 이러지?
“저기, 오빠.”
“어.”
“뭐 할 말 있어서 들어온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
“그래? .”
난 그냥 뭐 하는지 궁금해서.
잠깐 확인하는 겸 커피만 타다 주려 한 건데.
뭔가 흐름상 어쩌다 보니.
“겨울아.”
“응.”
“저녁 뭐 먹을래.”
“오빠 생일이니까. 맛있는 거.”
“나가서 먹을까?”
“응.”
결국 꺼낼만한 이야기라곤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요즘 식당은 갈 수 있으니까.
동생이랑 외식 한 지 오래되기도 했고.
“어디 갈까.”
“글쎄, 오빠가 좋아하는 거.”
“범위가 너무 넓은데.”
“오빠 생일이잖아.”
“그래도 둘이서 먹는 거니까 어느 정도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야지.”
“그럼 같이 찾아보자.”
동생이 자기 옆자리를 팡팡 치길래 어쩔 수 없이 붙어 앉았다.
겨울이가 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하는 걸 들여다봤지만, 딱히 그럴듯한 건 보이지 않았다.
“음식 찾는 거보다 음식점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그건 그런데.”
“일단 집 근처에서 먹자.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응.”
어차피 차 끌고 가기도 그렇고, 집을 중심으로 둘러보니 평점 좋은 이태리 식당이 보였다.
특별한 날이기도 하고, 한식을 너무 자주 먹기도 했고.
웬만하면 호불호 안 갈리면서 익숙한 요리니까.
괜찮겠지?
“여기 어때?”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여기 가자. 간만에 양식도 먹어 보게.”
“이탈리아는 생일 때 뭐 먹을까, 오빠?”
“뭐 파스타 아니면 피자 먹지 않을까?”
장소를 정하고 났는데도 겨울이는 계속 무언가 검색하기 시작했다.
뭐 찾는 거래.
“아, 이탈리아에선 생일 때 귀 잡아당기는 문화가 있대.”
“그래?”
“얍.”
그리곤 잽싸게 내 귀를 잡아당겼다.
귀는 만지면 안 되는데.
“하지 마.”
“나이만큼 잡아당겨야 된다는데?”
“진짜 하지 말라고.”
떼어내려 했는데도 손에서 귀를 놓질 않았다.
말로 해선 안 들을 것 같아서 나도 겨울이 귀를 잡아당겼다.
나랑 다르게 조그마면서도 말랑말랑해서 되게 기분이 이상했다.
“.”
“.”
마주 본 채 서로 귀를 만지고 있자니 되게 어색했다.
어.
음.
시선이 맞은 지 몇십 초 정도 지났을까.
손가락이 조금 따뜻해졌다.
“그, 커피 다 마셨으니까, 갈게.”
“아. 응.”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깜빡하고 커피잔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