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 64. 연말
* * *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한겨울의 낮.
TV에서 흘러나오는 연예인들의 목소리.
살짝 소란스러우면서도 편안한 거실의 공기.
“소파 혼자 쓰지 말고 좀 비켜 줄래? 다리를 접던가.”
“싫어.”
이 시간만 되면 늘 그렇듯 소파 세 칸을 다 차지하고 누워 있는 동생.
볼 때마다 괘씸하다.
“오빠, 내 배는 베개가 아니야.”
“비키던가.”
소파 밑단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힌다.
따뜻하고 몰캉몰캉한 베개가 움찔거리더니 내 뒤통수에서 빠져나간다.
“뭔데.”
그 대신 어깨에 중량감이 실린다.
보드랍고 여리여리한 피부 결이 뺨에 닿는다.
귓가에 숨결 또한 느껴진다.
“가벼운 스킨쉽.”
“엄마 언제 돌아오실 줄 알고.”
“오빠가 먼저 시작한 거잖아. 난 잘못 없어.”
‘사이좋은 남매’라는 변명이 과연 언제까지 통할까.
아직까진 가벼운 스킨쉽이니 괜찮은 걸까?
“나도 베개 대신에 오빠 어깨를 쓰고 있을 뿐이야.”
“기분 나쁘거든.”
“거짓말하려면.”
머리칼이 목을 스치는 감촉에 살짝 소름이 돋는다.
샴푸 냄새가 나서 싫지는 않지만.
“귀 정도는 숨기고 하는 게 어때?”
살짝 깨물린 귓불.
피라도 흘러내리는 듯, 뜨겁다.
“장난 그만 쳐.”
“오빠는 장난이 아닌 편이 좋아?”
귓구멍에 날숨이 들이닥친다.
등부터 기어오르는 애매모호한 감각.
간지러움과는 살짝 거리가 있었다.
“동생 장난에 어울려주는 게 아니라.”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머리에 느껴지는 뱃살보다 말캉한 감촉.
몇 번이고 맛본 선악과의 속살.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참기 힘들어진다.
“유혹에 넘어간 쪽이 죄책감이 덜 느껴져?”
“김겨울.”
가녀린 팔을 풀어내고,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다.
자연스레, 너도 눈꺼풀을 닫는다.
“이건 장난? 아니면 본심?”
“실수야.”
소리조차 나지 않는 가벼운 버드키스.
너는 숨 막힐 정도로 하는 게 취향이라곤 했었지만,
“이번 거는 실수 아니고.”
난 혀끝과 혀끝이 맞닿는 쪽을 좀 더 좋아했고,
“오빠 미쳤어.”
너 또한 정작 거절하진 않으시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피차일반 동상동몽인 모양이었다.
“네가 할 말이냐?”
“그래서 싫어?”
“아니.”
우린 남매라 보기엔 너무 가까웠고,
“그러면 좋아한다는 뜻?”
“네가 날 좋아하는 만큼은.”
“그런 말 하면 안 부끄러워?”
“별걸 다 가지고.”
연인이라 정의하기에도,
“남매끼리 뭘 부끄러워하냐.”
너무나 가까운 관계였다.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점점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참 길었네. 올해는.
여름까지만 해도 내가 이딴 새끼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동생에게 집착하고, 소유욕을 드러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었다. 좀 이상한 수준일 뿐이지.
하지만 어느 샌가부터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성욕을 느꼈다.
결국, 가벼운 도발 하나하나에 참지 못하고 선을 넘었다.
첫 키스를 빼앗고, 첫 경험을 빼앗고.
남매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다시 수상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남매로.
책임져야지.
내가 내린 판단이고, 내가 선택한 길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 한들, 대처마저 꿈꾸는 애새끼마냥 생각 없이 했다간 대참사가 날 게 뻔하잖아.
그래서 동생과 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그래서 넌 영문과 들어갈 거야?”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여동생의 다리를 치워버렸다.
소파 끄트머리에 앉아 동생의 발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렸다.
만약에 엄마가 장 보고 돌아오신다 한들, 이 정도면 아마 큰 문제는 없겠지.
“응. 영어 배워 놓으려고. 우리 해외 가야 할 수도 있잖아? 영어만 배우려는 건 아니고, 영문학 배워 놓으면 적응하기 쉬울 테니까.”
“그렇지.”
“그리고 대학도 오빠랑 다른 데 갈 거야.”
“그건 왜.”
“같은 대학 가면 들킬 수도 있잖아.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하기도 어렵고.”
의외로 생각 많이 했네.
나만 고민한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대책 없이 이랬을 리가 없잖아.
영어 공부한다는 것도 그렇고.
피임 안 한 척하면서 나 가지고 노는 것도 그렇고.
덕분에 내 절제심과 인내심은 개박살 났지만.
“그리고 같은 대학 가면 자취하자고 조를 거잖아.”
“자취?”
“이제 차도 없으니까, 차라리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겠다고 할 거잖아. 그리고 나도 같이 데리고 가서 맨날 섹스할 거 뻔히 아는데 어떻게 오빠랑 같은 대학 가.”
“우리 학교 오면 넌 기숙사를 가든, 아님 비대면 수업을 하든 둘 중 하난데 자취를 왜 해.”
“뻥 쳐서라도 자취하려 할 거면서. 순진한 여동생도 꼬셔서. 질릴 정도로. 맨날.”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말을 하면서 날 보고 실실 웃었다.
하, 못 참겠네 진짜.
이젠 너랑 야한 짓 할 때는 뭔 소리 해도 안 믿을 거야.
진짜 생기면 차라리 책임지고 만다.
엄마가 장 보러 가신 게 아니라 놀러 가신 거면 바로 덮쳤는데.
“일단 대학 졸업까지는 절대 들키지 말자. 그 뒤로도 웬만하면.”
“에이, 안들켜 안들켜. 오빠가 저번처럼 그러지만 않으면.”
“내가 뭐.”
“거실에서 키스했잖아. 미쳤어, 진짜.”
“그게 네가 할 말이냐? 너는 누나 놀러 왔을 때 나 덮쳤잖아.”
“그거는 잘 시간이니까 괜찮잖아. 오빠는 한낮에 그런거고.”
“잘 시간에 찾아가 달라는 소리지? 옛날에 외로우면 네 방 찾아가도 된다고 했잖아.”
“또 발정 났어?”
“이브 때 하고 쭉 안 했잖아. 벌써 삼 일이나 참았는데?”
더 이상 숨길만 한 일도 없는 사이라 솔직하게 말했다.
같이 나가서 살고 싶긴 하다.
둘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몸을 섞고 싶은 로망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니까.
같이 잠들어서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일어나고.
일어나자마자 한 번 더 하고.
아침 차려주는 동생 뒤에 들러붙어 괴롭히다가, 밥 먹은 뒤 또 하고.
매일 같이 그러고 싶은 건 아니어도, 한 번 정도는 그래 보고 싶다.
밖에 멀쩡해지면 여행이라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해외도 좋고. 안되면 국내라도 좋으니 적당한 곳 찾아서.
“일주일에 세 번 정도면 걷어차진 않을게.”
“세 번은 좀 적은데. 매일은 안돼?”
“안돼. 진짜 몸살 나.”
“한 번만 하면 되잖아.”
“그건 싫어.”
요즘 들어 NO라는 대답이 늘어난 여동생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번처럼 하는 게 좋으니까. 매일 하면 그렇게 안 해줄 거잖아.”
“지금 그렇게 해줘?”
“안 돼. 언제 엄마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만족할 만큼 놀려댄 건지 내게 떨어져 킥킥대는 여동생이,
어이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오늘 밤엔 흐트러질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니까.
소리 안 낼 정도로만 괴롭혀야지.
아니면 입을 틀어막아 버릴까?
다양한 망상들이 머릿속에 잔뜩 떠오르고 있었는데,
동생이 말을 이어가는 탓에 전부 흐트러지고 말았다.
“책임져준다고 했으니까. 책임지고 들키지 말아 달라는 소리야. 오빠랑 나중에 해외든. 여기서든 둘이서 같이 살고 싶으니까. 아, 고양이도 한 마리 기르고 싶어. 개나.”
“애완동물은 왜?”
“애는 못 낳아 주니까, 대신 뭐라도 기르고 싶어서.”
“.”
“나도 가능하면 해주고 싶은데, 안 되잖아. 엄마 쓰러지실 테니까.”
“지금 하는 말만 들으셔도 쓰러지실걸.”
평생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 자체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확신이 있었다.
동생보다 매력 있는 사람은 10번 정도 죽었다 깨어나도 못 찾을 것 같고,
같이 살면서 자극이 모자랄 것 같지도 않다. 그야 피가 이어진 진짜 친동생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지내면서 들키지 않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선,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당장 언제 들켜도 안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아니까.
그렇다고 참을 수 있는 수준은 또 아득히 뛰어넘었고.
“겨울아.”
“왜, 오빠. 갑자기 목소리 깔고.”
“너 안암 간다고 그랬지.”
“아마?”
“자취할래?”
“거봐. 그럴 거면서. 내 말 맞잖아.”
“너 잠 많아서 여기서 통학하면 피곤할걸?”
“진짜 그 이유로 물어보는 거야? 오빠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솔직히 여기서 같이 살면 언젠간 들킬 거 같거든. 너 혼자 살든, 아니면 나랑 같이 나가든, 그거야 나중 문제고.”
동생이 혼자 나가 산다고 해도 큰 문제 될 일은 없다.
오히려 자취방이 생기면 더 편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 내 페티쉬도 충족할 수 있을 거고.
위험부담을 따져봐도 그쪽이 훨씬 나으니까.
집에서 하는 거보단 들킬 가능성 낮을 거 아니야.
“그래도 오빠랑 떨어져 살긴 싫어.”
“그럼 뭐, 엄마한테 여자애 혼자 위험하게 어떻게 사냐고 하지.”
“오빠가 제일 위험해 보이는데?”
“너 진짜 오늘 밤에 어쩌려고 자꾸 그렇게 살살 긁어?”
“아, 또 위험한 눈으로 쳐다본다. 덮치려고 하면 소리 질러야지.”
“네가 소리 지를 수나 있긴 할까?”
“와, 동생한테 그딴 소리나 하고. 개쓰레기. 개변태.”
어느덧 다시 소파에 누워 발로 날 투닥투닥 때리는 동생에게 응징을 해주고 싶었지만,
때마침 엄마가 돌아오시는 바람에 나만 얻어맞고 끝나버렸다.
진짜 같이 나가서 살든가 해야지.
여긴 너무 위험해.
밤에 안 찾아가겠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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