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74. 집착
* * *
위험하다.
어젯밤, 정확히는 자정 이후였으니 오늘.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서마저 서로에 대한 욕구를 숨길 수 없었다.
그 위험한 일을 겪고서도, 어머니가 장 보러 가시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소파에서 달라붙어 있다.
내가 네 허벅지를 베거나, 네가 내 무릎 위에 눕거나.
이런 관계를 원한 건 맞지만,
언제 부서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살얼음판을 걷고 싶진 않다.
스릴을 즐기는 사람이라 할지언정, 진짜로 생명을 걸고 짜릿함을 추구하는 건 아니니까.
“겨울아. 밤에 그러는 건 앞으로 그만두자.”
“.”
“어차피 알바 나가기 시작하면 밖에서 볼 시간 많으니까. 솔직히 계속 그러다 보면 못 참잖아. 우리.”
“응.”
“키스 정도만 몰래 하고, 밤에 보는 건 그만두자. 알았지?”
“알았어.”
둘다 자제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미 도를 지나친 관계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어제는 그걸 감안하더라도 도가 지나쳤다.
그래선 안 됐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아마 또 똑같이 행동하겠지.
“오빠, 대신 하나만 부탁 들어줘.”
“뭔데.”
“자기 전에 통화하면서 자면 안 돼?”
“통화?”
“그러면 좀 더 편하게 잘 수 있을 거 같아서.”
“뭐, 상관은 없는데.”
“이어폰 끼고, 목소리 듣다가 자면 괜찮을 거 같아.”
“그래, 그러자.”
사실 나도 자기 전에 냄새를 못 맡으면 편히 못 자니까.
목소리와 숨소리를 듣지 않으면 항상 꿈을 꾸니까.
좋지 못한 내용으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어차피 참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니까.
들키지 않을법한 방법을 찾고.
들키지 않을만한 장소에서 해소해야지.
서로가 서로에게 품은 욕구를.
“아, 맞다. 오빠, 베개도.”
“베개?”
“오빠한테 내 쿠션 하나 줄 테니까, 오빠도 오빠 베개 하나 나한테 줘.”
“냄새 맡으면서 자게?”
“그냥 껴안고 자려는 거야. 내가 무슨 오빤 줄 알아?”
“알았어. 하나 바꾸자.”
“응.”
너무나도 가깝지만,
너무나도 멀다.
드러낼 수 없는 관계라는 건 너무나도 모순적이었다.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 식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우리끼리 싸우는 건 너무 바보 같잖아.
***
“아아, 오빠. 들려?”
“무슨 전화 처음 하는 거처럼 말한다.”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거니까 들리냐는 말이지.”
“잘 들려. 숨소리까지.”
“응. 나도.”
서로의 베개를 맞바꾸고 맞이한 첫날 밤.
벽 하나 너머에 있는 동생.
조금이라도 크게 소리 내면 전화하지 않아도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밤이니까.
숨소리까지 들리게 소리를 키우고, 소곤소곤.
들키지 않는 이야기를 나눈다.
“근데 무슨 얘기해야 될까, 오빠.”
“어차피 자려고 전화한 건데 굳이 얘기 해야 돼?”
“그건 그렇지만.”
“내일부터 알바 나가야 하니까, 일찍 자자.”
“아, 알바. 까먹을 뻔했다.”
“너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런 거 까먹고 다니냐.”
“엑, 오빠 내 옆에서 없어질 거야?”
“없으면 굶어 죽을 거 같아서 안 없어져.”
“어쩔 수 없네. 나도 굶어 죽기는 싫으니까 오빠 못 도망가게 해야지.”
이야기 할 거리나, 공통된 관심사가 없다 한들 이젠 대화가 끊기질 않는다.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잔뜩이니까.
사실 말도 필요 없다.
그냥 숨소리만 들어도 괜찮으니까.
“있잖아, 오빠.”
“왜.”
“그 카페 엄청 크던데, 알바가 우리만 있진 않을 거 아니야?”
“그렇겠지.”
“다른 알바 중에 이쁜 사람 있어도 바람 피우면 안 돼?”
“눈길도 안 줄 건데?”
왜 자꾸 내 걱정을 하는 거야.
나보다 본인 신경이나 더 쓰시지.
어차피 내가 계속 지켜볼 테니 문제없겠지만.
“진짜?”
“네가 맘만 먹으면 나 사회적으로 죽는데 어떻게 그래.”
“그걸 꼭 굳이 그렇게 말해야 돼?”
“그냥 뭐, 이쪽이 더 설득력 있는 거 같아서.”
분명 옛날에는 부끄러운 소리 잘만 했던 거 같은데.
역지사지로 들어보니 생각보다 부끄럽더라고. 그런 소리 하는 거.
달아오르고 나면 상관없어도, 평소에는 말이지.
“둘다 애인 있는 척하자. 오빠는 세 살 어린 엄청 귀여운 여친 있는 거고, 난 세 살 많은 엄청 듬직한 남친 있는 걸로.”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 하면 안 부끄럽냐?”
“부끄러운 말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할 말이야?”
“너보단 못해.”
“나는, 오빠 동생이니까. 오빠한테 배운 거지.”
“뭐, 그러냐.”
“그럼그럼. 오빠 탓이야.”
뭐 어쩔 수 없다.
사실 네 탓이라고 해도, 내 소유인 이상 전부 내 탓이 맞다.
이 정도는 인정해야지.
너한테 받아간 게 너무 많으니까.
“아무튼, 알았고. 슬슬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응. 알았어. 잘자, 오빠.”
“전화 안 끊을 거지?”
“당연하지. 소리 끝까지 키웠으니까 숨 크게 쉬어줘. 숨소리 들리게.”
“알았어. 잘자.”
“응. 안녕히 주무세요, 오라버니.”
“그 소리 들으면 못 자거든? 빨리 자.”
“네네, 오라버니. 영면을 취하시길.”
“자라.”
“응.”
건네받은 네 쿠션에 남아있는 냄새를 맡으며,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숨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꿈꾸지 않고 잠들 수 있었다.
***
동생과 함께 한 첫 알바는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남매 둘다 인물이 좋다면서 호호호 웃으며 바로 계약서를 내미셨고, 착하진 않아도 친절하신 분이었다.
성질이 좀 있으시긴 해도, 우리한테는 잘해주시니 됐지. 식대도 주시고.
매장이 넓어서 그런지 다른 알바들도 많았는데, 딱히 꺼려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착하더라고. 원래 세상이 이렇게 훈훈한 곳이었나?
물론 관심을 보이려는 새끼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둘다 바로바로 쳐냈다.
어딜 감히.
대놓고 애인 있다고 말하니 수작 부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남매끼리 그런 관계라고 말한 건 아니고, 양쪽 다 애인이 따로 있는 척했다.
어차피 이름이나 생긴 거 보면 남매인 걸 숨길 순 없었으니까.
사장님이야 당연히 아시고.
9시부터 17시까지.
일은 바빴어도, 밥 먹는 시간 빼면 7시간 근무니 나쁘지 않았다.
엄마한텐 18시까지 일한다고 거짓말했지만.
나야 군대 가기 전에 해봤으니까 일이 어려울 건 없었고.
동생도 나름 싹싹하게 일을 금방금방 배웠다.
얘가 이렇게까지 말 잘할 줄 몰랐는데.
나를 하도 놀려대다 보니 친화력이 좀 나아진 건가?
그랬으면 좋겠네.
일이 끝나고 나면, 커피 한 잔 들고 동생과 같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물론 안 돌아다닐 때도 있었지만, 바로 집에 들어가진 않았다.
거짓말했으니까.
식사시간에 밥 먹고 난 뒤, 이를 급하게 닦고 잠깐 짬 내서 시간 보내는 것도 좋았다.
딱 지금처럼.
“오빠. 귀 그만 깨물어. 아파.”
“싫은데?”
“끝나고 좀 이따 하면 되잖아, 진짜.”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남는 시간 30분.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뒷골목.
첫 키스의 장소.
가끔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둘 중 누군가가 화나면 화난 쪽이 그 응어리를 풀어내기 위해서.
딱 지금처럼.
“아까 그거 때문에 그래?”
“당연한 거 아니야?”
“그냥 뭐 가져다 달라고 한 거잖아, 그거는.”
“좀 더 표정 구기면서 대답 했어야지. 너도 내가 다른 여자랑 말만 해도 귀 깨물잖아.”
“오빠는 목소리 깔고 폼 잡으니까 그렇지.”
이제는 몸에 배어있는 커피 향.
앞치마를 입은 모습도 귀여웠지만, 난 아무래도 덧입는 게 적은 편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이렇게 뒤에서 끌어안았을 때, 옷 위로도 가슴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아. 오빠 질투해?”
“내가?”
“평소보다 훨씬 세게 껴안잖아. 아플 정도로.”
“글쎄?”
“여동생한테 질투하는 거 개징그러워.”
깨물던 귀를 뱉고 목덜미에 코를 박는다.
자국 남길까, 내 꺼라고.
어차피 반창고 붙여서 숨겨야 되는구나.
반쯤 나갔던 이성이 돌아와서 빨진 않고 깨물고 핥았다.
잇자국과 타액으로 적당히 더럽혔다.
이 정도는 금방 사라지니까.
“놔줘, 진짜.”
“내가 왜?”
“뒤에서 안으면 키스하기 힘들잖아.”
칭얼대며 놔달라는 말에 몸을 뒤집어 이번엔 마주 보고 껴안는다.
끝나고 가야겠네.
거기.
“오빠, 일 끝나고 쉬고 싶어?”
“어떻게 알았냐.”
“그런 눈 하고 있으니까.”
“네가 쉬고 싶다고 하면 쉬긴 하겠지.”
“누가 자꾸 깨물어대서 힘이 별로 없으니까. 끝나고 쉬다 갈래.”
치약 냄새가 나는 입술을 서로 핥는다.
건전하다고 하긴 어려운 사이였지만,
그래도 그동안에 비하면 제일 건전한 편이었다.
적어도 들킬 만한 곳에서 이러진 않았고,
집에서도 전화할 때 빼면, 투닥대는 남매로 있었으니까.
“프아. 오빠 또 눈 무서워졌어.”
“너도 표정 엄청 이상해.”
“나?”
“그 표정 나밖에 못 봤을걸.”
“오빠한테만 보여주는 표정이니까.”
“나도 너 말곤 이런 눈 안 해.”
“아닌데? 오빠 고기 맛있게 구워진 거 보면 그런 눈으로 째려보잖아.”
“그건 배고프니까 그렇고.”
“그럼 지금도 배고픈 거야?”
“굶주리긴 했지.”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나와 사회에 섞여 들어갔지만,
오히려 서로에 대한 마음은 더더욱 커지기만 했다.
집착, 애정, 욕구.
그 어떤 것도 줄어들질 않는다.
오늘은 아무래도,
어머니에게 조금 늦는다고 전화해야겠다.
둘다 일이 늦게 끝날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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