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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한다는 계시를 받았다-48화 (48/224)

〈 48화 〉 신체검사

* * *

100M 달리기, 그 출발 신호를 부탁했더니 나영이는 무슨 레이싱걸처럼 자세를 잡고 섰다.

다리를 살짝 꼬고 손은 허리에.

곡선미를 살린 자세를 취하고선 손에는 막대기를 들었다.

“자~ 준비~ 땅!!!”

제대로 된 크라우칭 스타트도 할 줄 몰랐지만, 힘을 싣자 몸이 튕기듯 앞으로 쏠렸다.

달렸다기보다 몸이 내던져진 느낌.

쏘아진 몸은 이내 균형감을 되찾았다.

그다음부터는 무념무상.

순식간에 100M를 완주했다.

“몇 초야?”

“... 10. 02 요.”

다영이는 입을 살짝 벌리고 섰다.

소현이의 ‘감’도 분명 신기했지만, 확 와닿지 않았지만 육체적 능력은 달랐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힘을 쓸 일이 없어서 몰랐지만 작정하고 힘을 쓰자 놀라울 만큼 몸이 쉽게 따라온다.

10초.

출발 자세, 달리는 방법.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을 조금만 고친다면 순식간에 세계 기록을 갈아치울 기록이었다.

출발선에서 뒤늦게 나를 쫓아 온 나영이도 핸드폰을 쳐다보고 입을 쩍 벌렸다.

“와...”

“...다음 거 하죠.”

달리기를 끝내고 이제 근력 테스트의 시간.

쪼그려 앉아 목에 기다란 쇠막대를 걸었다.

쌀 포대를 옮겨 측정할 수도 있었지만, 다시 되돌려 놓기도 귀찮은 탓에 간단하게 바벨은 여자로 대체했다.

4명의 여자가 기다란 쇠봉에 빨랫감처럼 배를 걸치고 널렸다.

“일어난다.”

“응!!!”

“네!”

응원처럼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허벅지에 힘을 넣었다.

부풀어 오르는 단단한 허벅지 근육, 힘을 주는 순간 느껴졌다.

이건 무조건 성공이다.

네 여자의 무게를 합쳐봐야 200kg 아래.

엄청나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3대 500은 가뿐한 셈 아닌가.

원래 3대가 250정도 되었던 걸 생각하면, 거의 두 배는 늘었다.

“으아아아!!! 내려줘요!!!”

“아, 맞다.”

뭐 그리 높다고 저리 엄살인지.

조심스럽게 다시 쪼그려 앉아 여자들을 내려주었다.

“...짚이는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놀라기 바쁜 다른 여자들과 달리 다영이만은 이 상황의 중요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속도. 힘.

최근의 밤일까지 생각하면 체력까지.

활질을 잘하게 된 걸 보면 동체시력, 순발력. 거의 육체적인 모든 부분에서 인간의 한계 가까이 신체 능력이 올라갔다.

씹창난 세상에서 무력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신체 능력은 곧 생존 가능성.

좀비들이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내가 변한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는데.”

짚이는 것이 하나 있다면 꿈.

어쨌든 나는 이런 미래를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제외하면 평소보다 섹스를 많이 했다?

혹시 섹스로 신체가 발달..

최고의 수련 방법이었으나, 이내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집에 이상한 능력이 생긴 사람은 나 뿐이 아니었으니까.

“소현아 너 처녀 맞지?”

“왜..왜왜왜 왜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말까지 더듬으며 자기 몸을 숨긴다.

“중요한 거니까 솔직하게 말해.”

“으...맞아요!!”

‘동생이라고 해놓고선….’

조용히 속삭일 거면 들리지나 않게 하던지.

사람들 앞에서 처녀성을 고백하게 한 것이 꽤나 민망했던지 살짝 삐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섹스로 인한 것은 아니고.

“좀비 잡은 적 있어?”

“당연히 없죠!”

좀비도 아니었다.

“소현아, 좀비 나타나기 전에 예지몽 같은 거 꾼 적 있니?”

“예지몽이요? 할머니 꿈은 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니요, 돌아가시고 난 뒤에요.”

꿈도 아니라니.

공통점이랄 것이 없었다.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건 공통점이라 하기 미묘하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 다영이를 뒤로하고

나 홀로 나지막이 속삭여보았다.

‘상태창.’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시발 쪽팔려.

*

사실은 독재국가지만, 나름 민주주의의 느낌을 주기 위해 거실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나 한 명의 지능보다는 여러 명의 의견이 낫다는 건 저번에도 느꼈던 점이었다.

담담하게 8월 9일. 일이 터지기 한 달 전, 꿈을 꾼 일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려 한 달의 시간을 느낀 이상한 꿈.

그 꿈의 끝에서 나온 좀비.

빠듯한 시간 동안 열심히 물자를 준비하고, 생존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같이 살아남고 싶은 몇 사람을 초대해 이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다영이가 당황하지 않게 살짝 각색한 이야기. 다행히 그 부분에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없어야지 그럼.

“꿈을 꿨었구나….”

이제야 내가 이런 집을 준비해놓은 것이 이해된다는 듯 탄성을 터트리는 소현이.

“...나는 그냥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는데.”

우리 빡대가리년은 참 한결같이 청순했다.

그러고 있을 때, 아람이가 한 마디를 툭 던져왔다.

“꼭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 같네요.”

“노아?”

“네, 그 노아의 방주 만든 노아요.”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익숙한 이야기였다.

타락한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신이 홍수를 일으켰고 신에게 선택받은 노아만이 방주를 만들어 살아남았다.

그 노아의 자손들이 다시 인류를 번성시켜갔다.

그런 줄거리의 이야기였다.

“분명 비슷하긴 해요.”

다영이의 말처럼 비슷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계시라고 할 만한 꿈을 꾸었고, 그 덕에 살아남았다.

여러 동물까지 구하지는 않았지만, 여자와 식물들은 챙겼고.

“노아라는 그 사람도 좀 특이한 능력이 있었어?”

“딱히 그런 언급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오래 살긴 했어요. 300살은 넘게 살았다고 나왔던 것 같아요.”

“오!”

나도 300살까지 살 수 있으려나?

근데 혼자 오래 살아서 뭐...

아, 내가 살면 소현이도 살겠구나.

“기독교 신도였어?”

“...엄마가요. 저는 깊게 믿지는 않았어요.”

오랜만에 엄마 생각이 났던지, 아람이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자 조금씩 그 표정이 풀어진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주...”

정작 뒤에 말이 기어들어 가듯 작아진 탓에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 했던지는 전해졌다.

“노아라….”

근데 나 정관수술 했는데.

망했나?

망한 세상, 행복하게 살다가 깔끔하게 갈 생각이었는데, 300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생겨버리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다영이도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해왔다.

“생각해보면 좀비도 일순간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났어요. 질병의 확산이었다면 먼저 일이 터진 국가가 생기고, 차례차례 무너졌어야 했는데.”

“그럼 좀비가 진짜 홍수 역할이라는 거야?”

“...신은 믿고 싶지 않아서요. 그런 것보다 누군가 처음 좀비로 변화했듯 바이러스나 세균이 우리 몸에 조금씩 변화를 일으킨 게 아닐까요?”

“하긴 사람이 좀비도 되는데, 진화라고 못하겠어.”

이미 인류는 여러 병균과 싸웠고 항체를 얻어가며 조금씩 병원균에 대항해 진화해왔다.

진화론까지 들어가면 거의 반 원숭이에서 지금의 사람까지 진화했고.

개인적으로는 진화론 쪽에 더 희망을 두고 싶었다.

무슨 아담과 이브도 아니고, 나랑 소현이 둘이서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해?

나름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소현이도 눈을 멍하니 뜨고 상상에 푹 빠져있었다.

내가 쟤랑?

“적응과 진화라고 생각하면, 지금 아무 변화가 없는 너희들도 조금씩 어떤 능력이 생길지도 모르겠네.”

“뭔가 잘 상상이 안 돼요.”

“나도!”

아람이와 나영이는 아직 얼떨떨한 모양이고, 다영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모르니까 좀비 잡는 거 도와줄 수 있어요?”

“응.”

다른 사람도 아닌 다영이의 부탁이다.

자신감도 차올랐겠다 이 정도 부탁은 쉽지.

“그럼 나는 다른 방법 실험해볼래!”

사뭇 진지한 다영이와는 달리 언니란 년은 제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다.

“야. 이년아.”

“,,,혹시 모르잖아!”

“그래 뭐, 그래라….”

*

좀비 사냥은 석궁을 다 만들고 난 뒤.

연습까지 마칠 수 있는 일주일 뒤로 정했다.

다영이는 운동했던 탓인지 내 신체 능력을 보더니 유독 능력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육상을 했었다고 했으니, 달리기?

이미지로는 장대높이뛰기 이런 것도 어울리는데.

어느 것이든 신체에 대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는 운동이었다.

아직 삐진 건 여전한지 활을 가르쳐 주겠다는 내 제안도 단칼에 거절하고 혼자 활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검사해보고 싶은 종목이 사실 하나 더 남았다.

급한 건 아니라서 살짝 뒤로 미뤄두었지만.

이제 대충 상황판단은 끝났으니까 마지막 신체검사를 해야지.

“아람아?”

“...네?”

소현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속닥속닥, 자기들끼리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모양.

“운동해야지.”

“아 맞다... 죄송해요. 당장 준비할게요.”

“그냥 그대로 와도 돼.”

“네...? 네.”

의아한 듯 나를 따라오는 아람이.

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야 운동의 의미를 깨달은 모양이다.

“아... 운동...”

목선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서, 나를 살짝 올려다보는 아람이.

그 눈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나 또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과연 내 몸은 몇 연사를 할 수 있을까?

권총일지.

소총일지.

기관총일지.

“궁금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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