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좀비 사냥을 해보자
* * *
다영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사냥 준비를 한 지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멋들어진 석궁, 네 자루를 완성했다.
멋들어진 석궁들을 눈앞에 두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게 명검을 탄생시킨 장인의 마음인가….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벅차올랐다.
동시에 석궁을 만들며 겪었던 다사다난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장력이 부족해 결국 폐기처리 된 PVC 석궁.
명중률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스프링 석궁.
심지어 스프링 석궁은 나영이의 훈수를 해답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다.
“스프링 쓸 거면 그냥 스프링에 바로 걸면 안 돼?”
그땐 저 말이 왜 그리 그럴싸해 보였던지….
빡대가리년과 동급이라니.
동급이라니!
나영이와 동급 수준의 지능일 수 없다는 필사의 각오로 섹스까지 줄여가며 여러 석궁 사진들을 분석했다.
그 결과, 내 지능을 인증할 수 있을 정도의 멋들어진 석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 부품을 조립하는 형식이라 제작도 뚝딱!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지.
석궁은 컴파운드 보우의 동그란 바퀴처럼 생긴 캠. 그 캠을 고정한 두 막대를 스프링으로 이어 장력을 추가했다.
? 형태의 꼭짓점에 스프링이 연결되어, 시위를 당기면 11자 형태로 벌어지며 장력이 가해진다.
가장 강한 스프링을 사용하자 120파운드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정작 여자들이 당기지를 못하는 탓에 80파운드로 다운그레이드했다.
80파운드를 당기기 위해선 36kg 정도 되는 힘이 필요하다.
석궁치고는 조금 약한 것은 사실이나 어쩔 수 없지.
막상 작품을 만들어 뒀더니,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니!
운동이다 운동!
그렇게 우리 집에는 뒤늦은 운동 열풍이 불어닥쳤다.
*
“자자, 빨리 다시 노리쇠 후퇴 고정!”
“노리쇠 후퇴 고정!!!” X 5
내 말에 복명복창하며 네 명의 여자들이 쪼그려 앉는다.
뒤에서 지켜보는 내게 탱탱한 엉덩이를 내보이며 딥스쿼트.
다영이만 홀로 서, 활의 시위를 당겼다.
벨트에 연결된 고리를 석궁의 시위에 걸고 쭉 일어나 방아쇠에 건다.
“장전!”
“장전!!!” X 5
각자 허벅지에 매단 화살통에서 화살을 한 발 꺼내어 거치한 다음 조준을 마친다.
“발사!”
퓩퓩퓩!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과녁에 쏘아진 다섯 발의 화살.
정중앙을 맞힌 화살은 하나뿐이었지만 일단 전부 과녁에 명중했다.
연습 이틀 차.
아직 장전 속도는 조금 느리지만, 명중률만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공격은 힘들어도 방어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
“화살 회수!”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재빨리 달려가는 다섯 명의 여자들.
최선을 다해 뛰어가 각자 자신의 화살을 뽑아온다.
이번에도 꼴등은 유나였다.
꼴등은 항상 아람이일 걸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유나가 군살이 조금 있었던 모양.
그 증거처럼 배를 꽉 조인 허리띠 위아래로 뱃살이 귀엽게 튀어나왔다.
“유나는 스쿼트 10회 실시.”
“시...실시!!!”
허벅지를 바들바들 떨어가며 10번의 스쿼트를 마친다.
“꺄~!”
이 집에서 가장 팔자 좋은 세연이.
세연이는 카시트를 때다가 만들어준 전용 의자에 앉아 엄마를 응원하고 있었다.
어딘가 놀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응원하는 거 맞지?”
“끼야야!!”
내일이 좀비를 잡으러 가기로 한 날인데 아직도 체력적으로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
솔직히 다영이 빼고는 전부 다 불합격.
아무래도 나영이와 아람이는 자택 대기를 해야겠다.
위험하기도 하고 이호수를 감시할 사람도 필요하다.
이호수.
그 인간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다.
일단 남자인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그러면 노동력이라도 든든하던가.
일주일 동안 땅 몇 평도 제대로 갈지 못했다.
아무래도 자기 딸이랑 내가 좀 친해졌다고 안심한 모양인데….
나는 한 살 때의 기억이 없다.
그건 아마 세연이도 똑같을 텐데.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네.
“장전!”
“장전!” X 5
뒤로 쭉 빠지는 네 개의 탱탱한 엉덩이를 바라보며 심신의 안정을 취한다.
내 운동을 훔쳐보는 관객들의 심정이 이제 좀 이해가 되네.
아주 바람직해.
*
시간이 지나, 좀비 사냥 당일.
새벽부터 일어나 일찌감치 준비를 마쳐둔 다영이 덕분에 나는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무장을 하는 것으로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영아, 수고했어.”
“제가 부탁했으니까 제가 해야죠.”
우리 집 사람들이 전부 다영이 반만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전부는 필요 없으니까 같은 유전자를 공유한 한 년이라도.
“오빠! 올 때 부탁한 거 잊지 마!!!”
“...오냐.”
본인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엔 민망한 품목인 것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전에 화보를 찍고 싶다더니, 가능하다면 카메라와 조명을 가져와 달란다.
심지어 거기다 이쁜 옷도 있으면 옷까지.
부탁했을 때, 자지를 쪽쪽 빨아대고 있었던 탓에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기는 했으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스마트폰 카메라면 충분하지.
어딜 카메라야 카메라는.
마당 한쪽 편에서는 아람이가 소현이에게 깁스 갑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소현아, 자. 눈 꼭 감고.”
“응. 근데, 나 정말 그런 감이 있기는 한 걸까?”
“있는 거 확실하다니까? 자, 눈 감았지? 이제 상상하는 거야. 밖에 나갔어. 좀비들을 마주할 거야. 그래도 나가고 싶어?”
“...굳이 나가고 싶지는 않은데, 그래도 오빠가 같이 가자고 했으니까. 싫지는 않아.”
“확실하지?”
“으응...!”
아직도 자신의 능력에 대해 떨떠름해 보이는 소현이와, 반대로 확신을 가진 아람이가 최종 감각 점검을 마치고 있었다.
“다영아, 마지막으로 물자 점검 부탁할게.”
“네~! 믿고 맡겨주세요!”
다영이에게 마지막 점검을 맡긴 뒤, 목줄의 열쇠를 가져와 캠핑카의 문을 두드렸다.
좀비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무력이 없는 여자들이 굳이 내 뒤통수를 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남편이 있는 유나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남편의 꼬드김에 넘어갈지도 모르니, 목줄은 채워 놓아야겠지.
“출발해요?”
“어.”
“...몸 조심하세요.”
“어~ 고마워. 목줄 차야 하니까 목줄 가져와.”
유나는 목줄과 함께 세연이도 데려왔다.
“세연이도 오빠한테 인사해야지?”
“으뺘~!! 꺄아아~!”
“세연이도 고마워~”
목줄을 손에 들자, 알아서 뒤돌아 머리카락을 쓱 치워낸다.
가녀린 목에 채워진 목줄.
목줄을 팽하고 한번 당기자 내 손을 따라 쑥 끌려온다.
“으, 으아~!!! 너,넘어질 뻔했잖아요...”
“그게 다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오늘 아침도 빼먹지 말고 스쿼트 해.”
“...알겠어요.”
그때 유나의 뒤에서 이호수가 나타났다.
“어디 가십니까? 갑자기 목줄은 다시 왜...”
“예. 좀비 좀 잡아보러 갑니다.”
“오래 걸리나요? 혹시 오래 걸린다면 저라도 집 방어를 위해서 이 한몸….”
“당일치기니까 신경 끄세요.”
“아, 네….”
말을 뚝 끊어내자 언뜻 비친 노기.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던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진짜 거슬리네.
마음 같아서는 단둘이 오붓하게 좀비 사냥이라도 떠나고 싶다.
아무래도 아직은 다들 거부감이 심하겠지.
어쩔 수 없다.
이웃집 가족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내 옆자리에는 창 두 자루와 활.
뒷좌석에는 다영이와 소현이가 탔다.
“오빠 조심해!!!”
“조심해요. 주인님! 소현이도! 어딘가 찝찝하면 무조건 말해 알겠지?”
“알았어~! 언니 진짜 걱정이 너무 많아!”
“이제 간다~ 어차피 멀리 안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우웅.
여기저기 좀비 머리 자국이 잔뜩 났지만, 시원한 배기음을 터트리며 시동이 걸렸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부드럽게 나아간다.
오랜만의 외출은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했다.
좀비의 성장,
내 성장.
그 두 성장차가 얼마만큼 벌어졌을지.
혹은 좁혀졌을지….
“소현아, 너는 이호수 씨 목줄 풀어주는 거 어떻게 생각해?”
“목줄이요? 굳이 풀어줘야 해요...?”
“뭐, 불편할 수는 있잖아.”
“...편해 보이던데.”
슬쩍 백미러로 확인한 얼굴엔 옅은 불쾌함이 엿보였다.
다영이도 놀란 듯 소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오빠 돌아갈까요?”
“아니, 목줄은 잘 묶어뒀고. 괜찮아.”
아람이에게 신신당부를 해뒀으니, 목줄을 풀려는 시도라도 했다간 몸에 화살이 박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쫓아내는 건?”
“...그건 또 너무 불쌍하잖아요.”
애매하네.
이걸 감이라고 보아야 할까?
소현이의 능력은 애매한 점이 많다.
일단 ‘감’이 추구하는 것이 소현이의 욕망에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긍정적인 결과를 담보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더 나아가서, 단편적인 결과인지, 장기적인 결과인지도.
“소현아 지금 불안해?”
“아니요? 괜찮은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다.
말 자체도 모호하지만,
결국 이 말도 내가 있기에 좀비가 나타나도 괜찮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긴장을 풀 수는 없겠지.
“저번에 이쯤 왔을 때 좀비 나왔어. 다들 사방 경계해.”
“네!!!”
그러나 좁은 시골길을 내려가는 내내.
좀비라고는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매사에 조심스러운 다영이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불안한 듯 보였다.
“... 왜 한 마리도 없을까요?”
“원래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니까. 저번에 잡은 좀비가 전부였나 보지.”
강원도의 산골에 사람이 있을 턱이 있나.
담벼락을 두드렸던 좀비도 셋째 날의 한 마리뿐이었다.
산을 전부 내려와, 저번에 잡았던 좀비의 시체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저번에 확인했던 것 보다 살짝 더 뭉그러져 있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다행이네.”
“왜요???”
“아니, 혹시나 동족 포식이라도 할까 싶어서.”
“에이~ 설마요.”
소현이의 저 말도 감인가?
아닌가?
“그건 그런 느낌이 드는 거야?”
“그 감이란 게 솔직히 저는 별로 와닿지 않아요...! 잘 모르겠는데….”
“자세히 더 말해봐.”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한 기대감이 부담스러운지 소현이는 울상을 지으며 한탄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호수 씨 이야기도 남자고 혹시나 잘못될지 모르니까 걱정돼서 한 소리고…. 그리고 오빠 서울 간다고 했을 때 엄청 불안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굳이 따지자면 집에 여자가 한 명 더 늘기는 했다. 이웃집도….
아, 이건 음식을 넘겨준 게 소현이니까 아니겠지.
그러면 이호수에 대한 것도 진짜 그냥 일반적인 걱정인가?
가정에 가정에 가정에 가정에!!!!!
“아~~!!! 머리 아파!!! 몰라 그냥 넘어가!”
능력 확인을 위해 사냥에 데려왔는데 생각보다 막막하네.
*
점점 더 번화가로 나아가며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었다.
다영이의 눈동자도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오빠…. 이거 이상한 거 맞죠...?”
“응.”
밖을 돌아다니는 좀비가 없다.
“... 좆됐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