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07. 성장.
조물락-. 조물락-.
창가 너머의 달빛만이 어두컴컴한 방을 비춘다.
한 줄기 달빛은 유다희의 손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왜 안서는 거지?”
유다희는 달빛에 기대어 한 남자의 자지를 만지작거렸다.
발기조차 되지 않아 축 늘어져 있는 김진우의 자지가 유다희의 조잡한 손놀림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왜 안서는 거냐구우.”
김진우, 그는 의외로 잘 버텼다.
‘신성력’이 해독을 도와준 덕분에, 주인공 보정을 한껏 받은 유다희에게 취기가 무엇인지 맛보여주었다.
“왜 안서는 거니….”
세상이 달달해진 유다희는 아무리 흔들어도 서질 않는 김진우의 자지에 대고 울분을 토해냈다.
기껏 용기내서 이러고 있는데, 왜 세우질 못해…!
본방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유다희 자신의 의지로 자지를 쥔 것 자체가 그녀에겐 큰 도전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만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김진우는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스윽- 스윽-.
“아. 팔 아파.”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유다희는 계속해서 자지를 흔들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일어설 거라 생각해서.
하지만 반응조차 없었다.
알코올로 기절한 김진우는 뇌와 좆의 연결이 끊어진 듯했다.
‘졸려….’
잠이 몰려왔다.
곤히 자고 있는 김진우를 보니까, 더더욱 자고 싶어졌다.
술기운을 빌려 용기를 쥐어짜냈는데, 부질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아기 꼬추도 엄청 큰 것 같기는 한데. 흐음….”
유다희의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자지가 슥 훑고 지나갔다.
그녀가 실제로 본 자지는 단 두 개.
가면남과 김진우.
가면남의 것은 피가 쏠려 잔뜩 발기한 것만 봤고, 김진우의 것은 축 늘어진 상태로만 보았다.
인터넷이나 여러 얘기들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두 남자의 것 모두 평균 이상의 크기였다.
하지만 그 둘이 같은가에 대한 답은 섣불리 내리지 못했다.
발기 전후의 차이가 엄청 크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다음에 다시 보자….”
유다희는 김진우에 대한 의심을 살짝 덜어내기로 했다.
모든 정황은 그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아는 언니의 이야기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흘리듯 했을 때, 김진우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듯 안타까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 눈빛을 보여줬는데, 설마 가면남일까 싶었다.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유다희는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김진우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유다희에게 있어서 김진우는 구세주와도 같은 남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항상 그녀를 도와주었다.
물심양면으로.
‘다음 회차에선 내 성장을 우선해야겠어.’
강하나를 보면서 깨달았다.
더 강해져야 돼.
그래야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다.
일단은, 김진우에게 진실을 말해버리는 바람에 모든 것이 꼬였다.
새롭게 시작하는 게 맞다.
유다희는 ‘자결’의 가호를 사용했다.
[‘사망회귀’가 발동됩니다.]
* * *
술에 잔뜩 취한 상태로 자고 있었는데, 회귀에 휩쓸렸다.
회귀하는 경우는 딱 한 가지.
유다희가 죽었을 경우에만 회귀를 한다.
‘언제? 어디서?’
기억이 없다.
유다희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기절하듯 쓰러졌고, 침대에 누운 것만 기억에 남아있다.
일단 유다희부터 찾았다.
저 멀리서 멍하니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들킨 건가.
그럼 저렇게 평온할 수가 없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봐야 정상이다.
‘뭐지? 뭔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빌어먹을 술 때문에.
괜히 센치해진 유다희 맞춰주다가 이 꼴이 났다.
정보의 부재는 엄청난 불안감을 가지고 왔다.
솔직히, 너무 안일하게 움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걸리지 않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적당히 속여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 살아남아 필드보스를 토벌하십시오.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허용됩니다.
도우미 요정이 사라졌다.
콜로세움 광장은 플레이어들이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저 멀리 백선우가 광장 밖으로 나가고 있고, 히어로 슈트의 강하나가 어버버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코리안 파티가 하나둘 뭉치는 게 보였고, 유다희가 콜로세움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어…?”
좆 된 건가…?
감이 안 잡힌다.
유다희가 혼자 움직인 것은 2회차 단 한 번이다.
회귀를 깨닫고 지나치게 설쳤던 주인공병 걸린 회차.
근데 갑자기 취중진담 고해성사를 때려 박더니 솔로 플레이 하러 갔다.
‘스읍…. 그럼 나도…?’
“저기요.”
나는 정장녀를 무시하고 콜로세음 광장 밖으로 향했다.
이렇게 된 김에, 0층에서 구할 수 있는 히든피스를 다 먹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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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잡한 방패(1★)》
《조잡한 철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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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를 챙겨주고, 바로 남쪽 게이트로 향한다.
유다희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에게 스킬을 알려줄 희대의 도둑놈을 만나기 위해서.
‘대단한 새끼지.’
내가 만나려는 도둑놈은 신전의 성검을 훔쳐 달아난 전적을 가진 미친 새끼다.
성검 훔치는 건,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기본 개념이 있고 없고의 문제다.
물론 붙잡히고 말았지만, 죽기 직전에 ‘투쟁의 탑’에 소환되었고 거주민이 되었다.
그가 선택한 역할은 스킬 전수, ‘가벼운 발걸음’이란 아주 기초적인 스킬을 알려준다.
그에게서 스킬을 전수받을 수 있는 조건은….
“잡았다, 요놈.”
“어, 어떻게…!”
‘인벤토리’까지 털어가는 놈의 소매치기를 ‘간파’하는 것.
현재 내 인벤토리에는 900코인만 들어있었다.
놈이 내 100코인을 훔쳐간 것이다.
“야. 내 코인. 내놔라.”
“아잇, 이거 놔!”
희대의 도둑놈, 프싱은 내게 붙잡힌 팔을 버둥거리며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도둑질 빼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놈으로선, 탈출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옛다, 한 번만 봐준다.”
“아악…!”
프싱은 지가 당기는 힘에 못 이겨서 쓰러졌다.
엉덩이를 세게 찧고서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알려줄 게 있지 않아?”
“아이씨…. 웬 병신 같은 새끼인 줄 알았는데….”
“다 연기인 거지. 너 같은 새끼들 낚아먹으려고.”
프싱에게서 ‘가벼운 발걸음’을 익혔다.
가르쳐주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놈이 하는 움직임을 대강 따라하면 끝.
‘시스템’이 알아서 보정하여 내 ‘정보’에 입력해주었다.
[‘가벼운 발걸음Lv.1’ 획득!]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니가 내 코인 훔쳐가는 거?”
스킬 전수를 끝마치고, 프싱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내게 물었다.
“방금 막 소환된 거 아니야?”
“그렇지.”
“근데 어떻게 알고….”
“소매치기 눈치 까는 거 의외로 쉬워.”
나는 주위 풍경을 훑으면서 말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소매치기가 나오는 건, 여기저기서 쓰이는, 존나 흔한 클리셰거든.”
“클, 리셰…? 그게 뭐야. 기술 이름이야?”
“그런 게 있다.”
“아니 제대로 알려 달라고…!”
프싱을 무시하고, 남쪽 게이트로 향했다.
당장 쉽게 얻을 수 있는 ‘가벼운 발걸음’을 얻었으니 더 이상의 볼일은 없다.
남쪽 게이트를 지났다.
공기가 금방 싸늘해졌다.
홀로 안전지역 밖으로 나서는 이 느낌.
짜릿하다.
능력치를 성장시키기 위해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
‘투쟁의 탑’에서 한계를 뛰어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는 것이다.
죽음의 순간을 극복하고 이겨내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2레벨에서 3레벨 상승하곤 했다.
회귀라는 옵션에 업혀있는 나로선 불가능한 방법.
그렇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플레이어 킬, PK다.
PK는 성장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확실하게 사선을 넘을 수 있으며, 능력치나 스킬 레벨 경험치도 보통보다 많이 쌓인다.
다만, 모든 플레이어들의 적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성장한 만큼 죽을 위험이 크다.
‘회귀자에겐 전혀 아니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회귀자는 PK의 패널티가 아예 없다.
죽으면 새로 시작하고, 죽이면 성장하는 거니까.
회귀 구조만 잘 이해하면, 나 또한 회귀자 못지않게 ‘사망회귀’를 누릴 수 있다.
개꿀 빨 수 있다는 의미다.
나는 적당한 자리에서 플레이어들을 기다렸다.
몇 명이 오든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만 죽이고 죽어도, 내게는 이익이니까.
얼마나 기다렸을까.
“음산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공주님.”
“공주라고 부르지 말래도 그래요. 여긴 알브헤임이 아니잖아요?”
“아하하…. 단번에 바꾸는 게 어렵습니다. 천천히 적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엘프 세 명이 유유자적 걸어왔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직업 구성으론, 기사 하나에 책사 하나 그리고 공주 하나였다.
머리 위에 달고 있는 티아라는, 그녀가 제법 고귀한 피를 물려받았다는 근거였다.
‘흐음….’
방향을 비트는 게 낫겠지?
다크엘프가 아닌 평범한 엘프들은 타 종족과 적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순하고 선해서, 만물과 더불어 살려는 경향이 더 강하니까.
PK보다는 스며들 듯 꼽사리 껴서 스킬을 전수 받는 게 이익이다.
거주민이 아닌 플레이어라서 훨씬 더 어렵겠지만, 이번 회차를 갈아서 투자하면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부스럭-.
“웬 놈이냐!”
내가 그들의 앞으로 나가자, 갑옷의 엘프가 나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콜로세움 광장의 철검이라서 전혀 위협적인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던 플레이어일 뿐입니다.”
나는 두 손을 들고 전투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상대는 여전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