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56화 (56/681)

〈 56화 〉

#18. 기회.

소년의 의지는 굉장했다.

원래 세상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서,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라면 절대 못할 일.

소년은 불끈 쥔 주먹을 뻗었다.

호수를 불태울 듯 노려보며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팔을 보고 있으면, 개고생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수련하면 바다를 가를 수 있어?”

“네.”

“어떤 느낌으로? 마나는 몸 안에서 움직인다는 감각이라도 느낄 수 있거든. 근데 바다를 가르는 힘은 어떤 느낌으로 수련하는 거야?”

“어….”

소년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얘도 아는 게 없어서 그렇다.

“천사님이….”

“천사?”

“천사님이, 이렇게 열심히 수련하면 언젠가 호수를 가르고 바다를 가를 수 있게 될 거라고 했어요.”

천사가 툭 던지고 간 말 한 마디를 붙잡고 미련하게 수련할 뿐이었다.

“흐압!”

소년은 더욱 힘차게 팔을 뻗으며 기합을 넣었다.

호수는 미동조차 없었다.

‘당연한 거지만.’

소년이 원하는 힘은 ‘써드 시티’ 근처에서 찾을 수 있다.

‘써드 시티’ 근처에는 ‘바다의 신전’이 지어져 있는데, 그곳을 지키고 있는 엘리트 몬스터를 잡고 놈의 창을 얻어야 한다.

‘존나 센 결계가 있어서 쯥….’

결계 때문에 평범하게 몸으로 때우는 건 불가능.

결계를 뚫는 방법은 여럿 있지만, 소년과 함께 단계를 밟아가는 게 정석 루트다.

처음이기도 하니까 정석 루트를 따라갈 생각이다.

글로 읽는 것과 직접 보는 게 많이 달라서, 자세한 부분에 대해선 내 정보도 많이 퇴색될 듯싶다.

“천사님이 그렇게 말했구나. 흠….”

유다희는 중얼거리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 다음엔 어쩌라고, 그리 내게 묻는 듯했다.

“아이고, 안타까운 사연이네. 혹시, 우리가 도와줄 만한 게 없을까?”

“누나가 도와줄게.”

유다희가 황급히 뒷말을 덮어씌웠다.

소년은 인상을 찌푸리다말고 유다희에게 말했다.

“…딱히 도움이 필요하진 않는데요. 아. 천사님이 푸른 기둥을 찾으라고 했어요. 푸른 기둥을 찾으면 길이 열릴 거라고….”

“푸른 기둥?”

“네. 1층 곳곳에 총 다섯 개가 있다고 했거든요. 근데 저는 찾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수련을 하루도 빠지면 안 돼서요.”

“알았어. 이해해. 천사가 너한테 말해준 거면, 그 힘을 얻는데 필요한 걸 수도 있겠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알려준 건 아닐 거 같아요.”

소년은 푸른 기둥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수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푸른 기둥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존나 많으니까 그들에게 부탁하면 언젠가 찾을 수 있겠지, 그런 마인드였다.

애라고 나약하지 않다.

존나 약아빠진 이 놈은, 누구보다 플레이어를 잘 이용해먹고 있었다.

물론, 보상도 뭣도 없는 의뢰를 수행할 만큼 한가로운 플레이어는 없다.

시간이 넘쳐흐르는 회귀자만이 이 녀석을 도와준다.

윈-윈.

우리는 놈의 부탁을 들어주고, 놈은 우리가 원하는 힘을 얻어준다.

완벽한 거래인 것이다.

유다희는 흔쾌히 의뢰를 수락했다.

“좋아! 우리가 찾아봐줄게. 매일 여기서 수련하는 거야?”

“네.”

“푸른 기둥 찾으면 다시 찾아올게.”

소년은 대화가 끝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수련에 빠져들었다.

저 집중력으로 검을 쥐면 검성은 찜 쪄 먹을 않을까 싶었다.

물론 농담.

검성은 애새끼가 노력한다고 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해?”

“저 애가 바다를 가르고 싶어 하더라고. 그래서 얘기 좀 들어줬어.”

우리는 엘리샤 파티와 합체했다.

유다희는 은근하게 엘레나를 노려봤다.

유다희의 급발진을 보고 나니까, 묘하게 풍기는 적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낄 정도라면, 엘레나는 무조건 알고 있다.

유다희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근데 엘레나는 티조차 내지 않았다.

숨기는 데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

호수에서 벗어났다.

마저 사냥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코인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총 2만 코인을 벌었다.

토병 등장 횟수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이 이상 버는 건 불가능했다.

“다희! 슬슬 돌아가자!”

엘리샤가 사냥종료를 원했다.

파티 과반이 엘프라서, 더 이상 사냥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안전지역’ 근처에서 사냥하고 있었던 터라 금방 ‘퍼스트 시티’로 복귀.

마을 곳곳에 세워진 횃불이 가로등을 대신하고 있었다.

의외로 운치가 있었지만, 그 흔하디흔한 주점도 초대형 움집이라는 게 기분을 좆같게 만들었다.

우리는 상점에 들러 적당한 침구류를 구매했다.

바닥에 깔아둘 것 하나, 각자 쓸 것 하나.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상점 밖으로 나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엘리샤, 나는 진우랑 한 잔 할 생각인데.”

“예? 갑자기요?”

유다희가 내게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시선이 엘레나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엘리샤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아. 그래? 그럼 난 그냥 들어가서 쉴게. 엘로인, 엘바런, 둘 다 알아서 휴식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엘로인은 자신이 공주님을 지켜야 된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지 않았다.

엘리샤 뒤에 서있는 엘레나가 알아서 하리란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 파티는 뿔뿔이 흩어졌다.

“진짜 마시게? 여기서?”

“어. 왜? 마시기 싫어?”

달달한 눈빛을 보아하니, 한 판 하자는 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았다.

“아니. 마시기 싫은 건 아니고.”

“그럼 가면 되잖아. 왜 빼려고 하는 거야? 확 잡아먹고 싶어지게.”

양손으로 내 팔뚝을 붙잡고, 유다희는 입을 왁 벌리며 잡아먹는 시늉을 해댔다.

‘…존나 따먹고 싶네….’

저 앙증맞은 입에 강제로 자지를 쑤셔 넣고 싶다.

물론, 잘근잘근 씹어 먹힐까봐 실제로 그러진 못한다.

“들어갑시다. 오늘은 마시고 취하는 거야!”

대형 움집으로 당차게 들어가는 유다희.

아랫도리에 피 고이게 만드는 유다희의 뒤태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자위라도 하려나?

다른 남자를 찾아가진 않을 것 같고….

유다희가 다른 남자와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그 두려움, 유다희가 다른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라는 확률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다희는 남자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유다희가 다른 남자와 접점이 생기려면 그 남자를 필요로 해야 한다.

회귀를 통해 상대의 능력을 알게 되고, 진행하는데 그 남자가 필요로 해지면, 조금씩 관계가 트이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나, 킹진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있다.

소설 속 유다희와는 달리, 지금의 유다희는 막혀본 적이 없다.

다른 남자를 찾아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쓸모없어지면 안 돼.’

가면남이라고 의심받는 중에도 유다희와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유다희가 회귀를 하면서도 정보가 부족하지 않도록 내가 채워주고 있어서다.

내게 나름 말랑말랑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니까.

강하고, 똑똑하며, 잘 생기기까지 한 톱클래스 플레이어들….

“시바 새끼들….”

나는 대형 움집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지만, 분위기는 고대 원시인들이나 올 법한 느낌이었다.

돛과 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듯이, 잔과 술만 있으면 어디서든 취할 수 있는 건가?

“오, 되넹.”

눈 뜨고 보니, 내 위장이 알코올로 가득 차버렸다.

세상에 어질어질 뒤집히는 중이다.

“흐흐, 김진우 취했어?”

“아니? 안 취했는데?”

“취했잖아. 혀 꼬이는 것 좀 봐. 이게 어떻게 안 취한 거야.”

유다희는 팔팔해보였다.

“…안주도 없는데 입맛을 다시냐? 혀를 왜 날름거려? 너 뱀이야?”

유다희는 소름끼치는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가면 쓰고 따먹어야 하는데, 또 따먹히게 생겼다.

나는 엘레나를 떠올렸다.

‘취기 단번에 가라앉힐 수 있는 거 있으면 몰래 내 움집에 놓고 가. 없으면 어떻게든 구해. 안 그러면 진동 최상으로 간다.’

명령을 보내놨으니, 이제 알아서 구해올 것이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어서 충분히 구해오고도 남는다.

유다희는 술로 가득 찬 잔을 단번에 들이키고 말했다.

“적당히 취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나갈까?”

“벌썽…?”

“으흫. 너도 이미 취한 상태라서 굳이 더 마실 이유도 없잖아. 여기 남아있어서 뭐해?”

음흉하게 웃는 유다희.

뇌를 거치지 않고 발기하기 시작하는 쥬지.

그 때, 누군가 유다희 뒤로 다가왔다.

수인들이었다.

수인 네 마리가 우리 테이블로 넘어와 작업치기 시작했다.

뭘 바라는 건지는, 아래가 불룩 솟은 수컷 수인 놈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하체에 두른 가죽이 아니었다면, 제법 충격적인 것을 마주할 뻔했다.

그리고 토를 했겠지.

그들은 자연스럽게 유다희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아카데미에서 졸업했어요?”

“네.”

“조기졸업이죠? 오늘 졸업하는 날 아닌데.”

“네.”

유다희는 시큰둥하게 수인들을 대했다.

방해받아 짜증났다는 듯 눈살을 찡그렸다.

코를 막는 것을 보니 수인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수인은 고유의 냄새를 풍긴다.

근데 이 냄새가 취향존중이 불가능할 정도로 극호씹불호를 넘나든다.

잘 맞으면 뿅 가는데, 안 맞으면 옆에 오기만 해도 불쾌하다.

내 옆에서도 독특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많이 취했어?”

은근슬쩍 내 옆에 앉아있는 수인 하나.

상완을 보기 좋게 덮고 있는 복슬복슬해 보이는 털의 무늬나 꼬리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근본이 호랑이인 호족임이 틀림없다.

사람처럼 보이는 부위가 더 많은 것을 보니, 피가 제법 섞인 듯했다.

호족의 특징이 많이 옅었다.

‘나머지는….’

수컷 셋에 암컷 하나.

암컷이 호족인데 비해, 수컷들은 고양이에 토끼에 돼지….

순혈이어도 혼혈 호족보다 못한 근본.

‘얘가 왕노릇, 아니, 여왕노릇인가?’

수컷들이 암컷을 따먹는 게 아니라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코인 셔틀, 그 느낌.

‘아, 어지러워.’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유다희와 수인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일방적인 질문공세, 2차 제안, 그리고 철벽 유다희 선생.

“아, 나가서 한 잔 더 마시자니까…?”

“꺼져, 그냥. 냄새나니까.”

애원하듯 매달리는 수컷 수인들.

그들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여왕 맞네.’

암컷 호족 수인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돼지 수인이 유다희의 팔을 붙잡았다.

힘으로 끌고 갈 생각인 듯.

“야, 강제로 데리고 가자.”

“아, 씨발 만지지 말라고! 꺼지라 했잖아!”

“꾸엨!”

그 때, 유다희가 폭발하고 말았다.

돼지 수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

[안전지역입니다.]

[PK행위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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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의 행동은 금지였다.

유다희는 분에 겨워 발을 동동 굴렀다.

“진우야. 집에 가자.”

“어, 어….”

도저히 깨지 않는 술기운을 억지로 붙잡고, 나는 유다희의 뒤를 따랐다.

“야. 인간 암컷.”

“아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주점에서 나가니, 수인들이 따라 나왔다.

암컷 호족은 유다희를 불러 세웠고, 유다희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뒤로 돌았다.

“그 남자 나한테 넘겨.”

“하?”

“익숙한 냄새가 나. 우리 부족의 영웅, 흐고의 냄새가….”

흐고라면….

“지금 7층에 있을 텐데…?”

고대정령으로 ‘투쟁의 탑’ 공략파티에 속해있는 최강자 중 한 명.

비록 7층에 합류한 유다희에게 그냥 발리지만 말이다.

“흐고를 알아? 역시…. 뭔가 있는 거구나?!”

암컷 호족은 찾았다는 듯 나를 봤다.

“어…. 미스테잌….”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뇌가 입을 못 막네.

유다희의 고개가 끼긱끼긱 거리며 돌아가 나를 노려본다.

노려보는 느낌이 쌔하게 느껴진다.

“…김진우. 너, 아직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었냐?”

살벌하게 말하는 유다희, 술기운이 확 날아가는 기분.

나는 애써 외면하며 앞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다시 한 번 불을 질러주는 호족 친구.

유다희의 시선이 수인들에게로 향한다.

“인간 암컷! 그 남자를 나한테 넘겨!”

“입 닥쳐, 씨발련아!”

“뭐? 씨발련?”

“아. 김진우 노리는 년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짜증나게….”

---

[안전지역입니다.]

[PK행위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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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희야. 시스템이 욕하지 말래….”

“김진우 너, 나중에 죽었어.”

“요….”

내 귓가에 그리 속삭인 유다희가 저벅저벅 앞으로 걸어갔다.

“호랑이라고 내가 겁먹을 줄 알아? 덤벼, 이 씨발련아.”

“결투? 나야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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