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67화 (67/681)

〈 67화 〉

#20. 성장.

유다희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속이려 들지 말라는 듯.

빤히 쳐다보면서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포기해.’

유다희의 눈으로 내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집요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절로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변명은 통하지 않겠지.

유다희 입 꼬리가 더욱 위로 올라갔다.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적대심이나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용서해준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희? 왜 그래? 아파?”

“아니. 안 아파. 오히려 홀가분해진 기분이라서 몸이 가벼워.”

엘프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우릴 번갈아봤다.

저들 입장에선, 우리가 미친년, 미친놈으로 보이리라.

“흐흫, 갑시다.”

유다희는 엘프들의 시선을 피하며 앞장서서 걸었다.

나타나는 토병은 가뿐하게 부숴주었다.

1층에서 지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일반 토병 정도는 손쉬운 상대였다.

‘퍼스트 시티’에 도착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저 움집들이 숙소인 것 같아. 다희, 같이 쓰자.”

엘리샤는 다희를 부르면서 움집을 살펴본다.

움집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유다희가 스리슬쩍 내 옆에 붙었다.

“다희…?”

애타게 유다희를 부르는 엘리샤.

유다희는 그런 엘리샤에게 잠깐만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보내고, 내 옆에서 속삭였다.

“일단 엘프들이랑 헤어져야 돼. 알지?”

“왜?”

“호린인가? 걔랑 결투하고 능력치 먹어야지. 내가 호랑이 목 따고 2레벨 먹는 거 봤잖아.”

‘사망회귀’를 공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나까지 함께 회귀한다는 걸 알게 된 유다희는 결투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소설 유다희도 이런 식으로 성장한다.

초반부에는 다들 결투를 서슴없이 받아주기 때문에 이 타이밍에나 가능한 방법이었다.

제법 강해졌고 상위층까지 올라왔는데 인생 걸고 노예빵을 하는 미친 새끼, 있을 리가 없다.

“너, 지금 능력치 얼마야?”

“나? 근력이 6레벨, 민첩이 5레벨.”

“근력8레벨, 민첩7레벨까지만 올리자. 마력도 올리면 좋을 것 같은데, 거기까진 안 될 것 같아. 안 그래?”

아직 많은 걸 숨기고 있어서 말을 아꼈다.

“여기서 또 회귀하려고?”

“응. 얻을 수 있는 거 다 얻어야지. 다른 종족 따라가려면 이러는 수밖에 없어.”

유다희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려 했다.

가면남에 붙잡혀 있던 목적의 방향이 올바르게 돌아온 것이다.

“지금 네 수준으론 조금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니까. 어때? 괜찮지?”

유다희가 내 의견을 물어봤다.

나는 잠깐 고민하는 척 하다가 고갤 끄덕였다.

‘이게 맞는 방법이지.’

손쉽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 방법.

나중에는 검술이나 마법 따위를 배워서 테크닉을 익히겠지만, 지금 당장은 하드웨어를 성장시켜 숫자로 찍어 누르는 게 가장 편하다.

두 자리 숫자도 못 찍은 능력치론 기술을 배워도 효율이 많이 떨어지니까.

“그럼 나중에 봐, 다희!”

우리는 적당한 핑계로 엘프들과 떨어졌다.

엘리샤는 유다희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솔직히 엘리샤가 어떻게 되는지는 관심 없지만, 엘레나가 붙어있으니 위험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호린과의 결투에서 지는 순간 애초에 회귀할 운명이라서, 이후 엘리샤의 행적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저기 온다.”

엘프들이 사라지고, 얼마 안가 저 멀리에서 수인 파티가 다가왔다.

수인들, 정확히는 호린.

호린은 고대정령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정령 때문에 우릴 찾아온다.

왜 고대정령에 관심을 가지는지는 모른다.

“거기, 인간 수컷!”

“나가.”

호린이 나를 가리키자, 유다희가 내 등을 떠밀었다.

제법 힘이 실려 있어서 버틸 수가 없었다.

유다희에 의해 앞에 섰다.

호린은 나와 유다희를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너! 저 인간 암컷이랑 무슨 사이야?”

“아무 사이 아닌데엨!”

유다희는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근력 레벨이 나보다 훨씬 높은 건지, 살이 뜯어지는 줄 알았다.

뒤를 돌아보니, 유다희가 미간을 좁힌 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장래를 약속한 사이인가 보네? 상관없어. 너한테선 익숙한 냄새가 풍기고 있거든.”

“냄새? 나 잘 씻고 다녀서 냄새 안 나.”

“부족의 영웅, 흐고와 같은 냄새.”

호린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들먹였다.

흐고는 고대정령을 다룰 줄 안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고대정령술을 익히고 있다는 것.

익숙한 냄새란, 고대정령의 것이 틀림없다.

“인간 수컷, 그 암컷 버리고 나한테 와.”

“싫다면?”

“그럼 강제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지.”

“여기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비꼬았다.

“어떻게?”

“…이렇게.”

호린은 나를 노려보며 ‘결투’를 신청했다.

[플레이어 ‘호린’이 결투를 신청합니다.]

“내가 이기면, 넌 내 노예가 되는 거야.”

“…노예?”

“그래. 내 노예가 돼서, 고대정령에 대해 알려줘야 돼.”

[플레이어 ‘호린’이 ‘김진우’를 보상으로 요구합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보상.

패배하는 순간, 나는 호린의 노예가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서로를 보상으로 거는 경우가 많아진다.

능력치 따위보다 삶 자체를 빼앗는 것이다.

쫄려서 뒈지면, 그 이후론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

이런 면에서 ‘사망회귀’는 존나 지리는 권능이다.

유다희는 아무리 져도 노예가 되지 않으니까.

“노예라….”

“그래도 험하게 다루진 않을 거야. 귀여워해줄 거라고?”

뒷목이 서늘하다.

이번엔 뒤를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나는 근력 3레벨만 받을게.”

[플레이어 ‘김진우’가 ‘근력Lv.3’을 보상으로 요구합니다.]

나는 고민하는 척 하며 보상을 걸었다.

내가 유다희보다 조금 약하니까 이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해서.

애초에 저쪽은 내 인생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존나 적게 건 거다.

---

[결투]

[김진우 VS 호린]

[승리할 경우, 플레이어 ‘호린’의 ‘근력Lv.3’을 획득.]

---

반투명한 막이 펼쳐진다.

호린과 나를 중심으로 퍼진 반투명한 막이 결투장과 구경꾼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검과 방패를 꺼내들었다.

지는 순간, 유다희에 의해 회귀하게 된다.

호린을 잡을 때까지 계속 반복하겠지.

‘존나 귀찮겠다.’

호린을 최대한 빠르게 잡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제 겨우 ‘퍼스트 시티’인데, 언제 ‘세컨드 시티’ 가고 언제 ‘써드 시티’로 넘어가?

또 거기서 플레이어 구해서 ‘바다의 신전’ 공략해야 하는데, 대체 언제 가냐고.

장난은 끝났다.

이 소설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독자, 김진우로 돌아갈 때다.

[‘사망회귀’가 발동됩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앜!”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호랑이 당수.

이미 깨진 방패로 머리만 겨우 막을 뿐이었다.

때마침 유다희가 ‘자결의 가호’로 ‘사망회귀’를 발동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뚝배기가 터졌으리라.

“미쳤어요?”

나를 벌레 보듯 보는 엘리샤.

그런 엘리샤를 토닥거리며 어르고 달래는 건 유다희.

“…엘리샤, 가끔 저렇게 아플 때가 있어. 우리가 이해해야 돼.”

“저걸 이해해야 해…? 다희는 이해심이 너무 좋은 것 같아.”

둘이서 합이 쿵짝쿵짝 아주 잘 맞는다.

나는 유일한 내 편 엘레나를 바라봤다.

엘레나는 힘겹게 고개를 비틀어 내 시선을 피했다.

바이브레이터 ON.

엘레나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가랑이 사이를 꼼지락거렸다.

전원만 OFF일 뿐, 항문에 삽입되어 있는 상태였다.

엘리샤와 유다희가 시시덕거린 덕분에, 엘레나는 그 둘에게 걸리지 않고 진동을 켤 수 있었다.

“으읏…!”

엘레나는 이 처벌이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근데 뭐 어쩌라고.

아무 말 않고 있자, 엘레나가 인벤토리에서 장비들을 꺼냈다.

“저, 적당한 장비를…. 드리겠습니다. 이, 이것들을 착용하면, 덜 위험할 거예요…. 읏…!”

“엘레나 단장?”

“예, 엘리샤 공주님.”

“엘레나 단장, 어디 불편해보여요. 아픈 곳 있어요?”

엘리샤의 걱정, 엘리샤 뒤에는 유다희가 서있었다.

유다희는 평소와 다른 엘레나를 보며 갸웃거렸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은 수치심에 물들어 있었다.

누가 봐도 이상한 표정이었지만, 엘리샤는 묻고 가기로 한 듯했다.

“가자.”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호린은 내 생각보다 강했다.

그런 호린을 이긴 유다희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단 의미다.

어떤 ‘가호’를 들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 때문에 유다희의 행적 자체가 뒤틀린 상태라, 소다희와는 전혀 다른 세팅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퍼스트 시티’에 도착했다.

나는 엘레나에게 붙었다.

엘프들 중 가장 생명력이 넘치는 엘레나.

“힘 빼.”

“뭐?”

“긴장 풀어.”

엘레나는 ‘플루토의 노예’다.

신경 안 쓸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생명력을 뽑아먹으려고 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검은 기운이 머리 위에 생겨났다.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흐끕…!”

엘레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본다.

뭐하는 짓이냐고, 눈빛으로 시위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생명력을 빨아먹었다.

양질의 생명력이 내 체내에 차곡차곡 쌓였다.

‘역시 8성. 흐음, 딜리셔스.’

내가 먼저 지칠 것만 같았다.

몸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면서, 엘레나에게 꼽았던 빨대를 뽑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생명력 좀 빌렸어. 땡큐.”

“이, 이잇…!”

엘레나는 무어라 말도 못하고 억울해했다.

나 같아도 존나 분하긴 할 것 같아서, 따로 말을 길게 하진 않았다.

“야, 김진우.”

“엘레나 단장. 괜찮은 거 맞죠? 저 인간이, 이상한 짓 한 건 아니죠?”

엘리샤나 유다희가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이상한 짓을 가만히 당하고 있을 만큼 약하지 않아요. 걱정 감사드립니다.”

엘레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그녀의 똥구멍 안에선 여전히 바이브레이터가 진동하고 있다.

“아무튼,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움직이자.”

“그래. 다희가 좋다면야.”

휴식을 핑계로 엘프들을 멀리 보냈다.

“…너, 엘레나랑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냐고?”

“어. 저번에도 그렇고, 저 여자 눈빛이 이상해. 널 이상하게, 야릇하게 보고 있다고. 아, 짜증나.”

유다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의외로 집착이 센 편이었다.

‘소다희는 이런 느낌 아니었는데….’

소다희는 색에 관대했다.

하렘을 꾸리기는 했으나 잡은 물고기들이 바깥에서 씨를 뿌리든 말든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세상의 반은 남자, 수많은 차원의 반은 수컷,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어차피 중요한 건 배 아파 낳게 될 아들딸.

자신에게 씨를 뿌려 가족이 되어줄 남자는 단 하나면 되니까.

‘못 찾고 완결나지만.’

회귀를 반복해야 한다.

그 말은 매 회차 인연이 바뀐다는 의미.

아기를 낳았을 때, 다음 회차에서 그 아기를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아기를 낳아도 회귀하게 되면 사라질 인연이라서, 소다희는 임신을 ‘투쟁의 탑’ 클리어 이후로 미루었다.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나중에 걸리면, 자지에 정조대 채울 거니까 알아서 해.”

“어?”

뭔가 존나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거기, 인간 수컷!”

유다희에게 물어볼 시간 없이 자연스럽게 호린이 찾아왔고, 결투가 펼쳐진다.

---

[결투]

[김진우 VS 호린]

[승리할 경우, 플레이어 ‘호린’의 ‘근력Lv.4’을 획득.]

---

은근슬쩍 보상을 1레벨 올렸다.

그런데도 정정되지 않는 것을 보니, 이 정도는 공평한 수준이라 판단하는 듯했다.

‘하긴, 지면 노예가 되는 거니까.’

‘사망회귀’ 때문에 패배를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가.

상대가 내건 승리보상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다.

내 인생을 걸고 하는 결투인데, 근력 4레벨은 조금 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고 생각하자.’

이전 회차에선 ‘흑마술’을 쓰지 않았다.

생명력이 없어서 쓸 수가 없었다.

근데 이번엔 다르다.

엘레나의 생명력으로 가득 채워서 왔다.

[‘육신강화’를 발동합니다.]

“호오올리 쉐엣.”

효과가 차원이 다르다.

생명력이 쭉 빠져나가도 절반 이상 남았다.

[‘흑마술Lv.4’ ▶ ‘흑마술Lv.6’]

양질의 생명력에 환호라도 하듯 ‘흑마술’ 레벨까지 올랐다.

이 상태라면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나는 검을 쥐고 휘둘렀다.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이 검에 실렸다.

“어딜!”

호린이 허리를 비틀어 내 검을 피했다.

그리고 탁 튀어 오르듯 발을 굴러 나를 덮쳤다.

단순무식한 힘겨루기.

나는 밀리지 않았다.

[‘플루토의 손길’이 발동됩니다.]

보이지 않는 검은색 손이 솟아났다.

‘흑마술’ 레벨이 올라서 그런가.

아니면 생명력 품질이 좋아서 그런가.

‘플루토의 손길’은 무려 세 개의 손을 만들어냈다.

나는 주먹이 다섯 개가 되었다.

질 수가 없었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호린을 존나 팼다.

“하, 항복! 항복할게!”

그래도 예쁘장했던 얼굴은 더 이상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어있었다.

---

[플레이어 ‘김진우’ 승리]

[보상 ─ 근력Lv.4]

---

“돌아갈게, 김진우. 다음은 민첩이야.”

[‘사망회귀’가 발동됩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