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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80화 (80/681)

〈 80화 〉

#24. 푸른 기둥.

웨어울프들은 저돌적이었다.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를 느끼지 못하는 듯 달려들었다.

갑자기 시작된 전투에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받아쳤다.

[‘육신강화’가 발동됩니다.]

‘효과가 있다.’

엘레나에게 얻어맞은 시간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웨어울프의 공격은 엘레나보다 느려 터졌고 무뎠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촤악-!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웨어울프는 아가리를 벌리며 누런 이빨을 드러냈다.

회색빛 털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존나 쉽다.’

웨어울프 무리 속에서도 순위가 있을 것이다.

어떤 놈은 더 강하고, 어떤 놈은 더 약하고.

내가 잡고 있는 놈이 최약체일 수 있다.

하지만, 웨어울프는 웨어울프.

한 달 전엔 무력하게 당했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게 중요했다.

“아우우우우-! 인간!”

나를 공격하던 웨어울프가 침을 질질 흘러댔다.

존나 밀리니까, 분노에 몸을 맡긴 것이다.

쾅-!

방패에 꽂히는 힘이 제법 묵직하다.

아까 전과 전혀 다른 파워.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분노에 몸을 맡긴 순간, 놈의 정신력은 바닥을 치고 내려갔다.

“으어어어…!”

생명력을 뽑기 시작하자, 놈은 급격하게 말라갔다.

‘생명력 흡수’는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너무 미련하지 않았냐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차라리 이걸 연구해보는 게….’

유다희를 앞서기 위해선 유다희와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야 한다.

같은 방향으로 앞지르는 건 ‘집착의 가호’인가 뭔가 때문에 절대 불가능.

나와 유다희의 차이점은 ‘흑마술’, 플루토에게서 받은 흑마술 뿐이다.

흑마술을 주로 삼을지 보조로 남겨둘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중요한 점은, 스타팅 포인트가 바뀐 상태라 다시는 플루토를 만날 수 없다는 것.

흑마술에 관련된 것은 혼자서 헤쳐 나가야 했다.

플루토가 그리워진다.

털썩-.

[플레이어 ‘베로울’을 죽였습니다.]

[4,000코인 획득!]

[‘흑마술Lv.7’ ▶ ‘흑마술Lv.8’]

웨어울프 한 마리를 잡았다.

생명력 흡수로 죽여서, 잔뜩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웨어울프를 상대하고 있는 중.

내가 상대한 놈이 하필 가장 약한 놈이었던 것 같다.

도울까, 말까.

‘도와야지.’

정당한 PK만큼 쏠쏠한 건 없다.

웨어울프를 잡으면 잡을수록 코인도 얻고 강해지니까, 이럴 땐 ‘시스템’이란 게 존나 유용하다.

“흐랴아아아아압!”

엘로인에게 붙어있는 두 마리에게 견제 들어간다.

내가 상대한 놈보다 덩치도 크고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기합은 내게 용기를 주었고, 덕분에 놈들의 면상을 보고도 겁내지 않을 수 있었다.

[‘플루토의 손길’이 발동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가장 두려운 법.

다섯 개나 뻗어 나온 검은색 손은 웨어울프를 붙잡고 늘어졌다.

내 근력을 적용받은 탓에 제법 난폭한 손길이었다.

“이, 이게 뭔…!”

날뛰던 웨어울프들이 무언가를 뿌리치듯 움직였고, 찰나의 빈틈이 엘로인에겐 기회가 되었다.

“죽어라!”

촤악-!

검기는 웨어울프의 가죽을 너무도 쉽게 베었다.

팔 하나를 떨구지는 못했지만, 큰 관통상을 입혔다.

웨어울프는 상처부위를 팔로 누르며 뒤로 물러났다.

도망을 치려했다.

“어딜 도망가!”

“이 노오오오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검은빛 손이 웨어울프를 붙잡았다.

웨어울프는 꿈틀거리며 포효했다.

“안 무서워. 그러니까 아가리 닫아라. 냄새 나니까.”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피는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

인간이든 엘프든 웨어울프든, 피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 종족은 없다.

불안감에 의존한 흥분은 단단한 정신력에 틈을 만들고, 흑마술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생명력을 뽑아낸다.

“꺼흐, 흐윽! 인간…! 사악한 술수를 쓰다니…!”

“칭찬 고맙고.”

마치 ‘게임 좆같이 하네.’ 같은 느낌의 칭찬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면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다.

[플레이어 ‘가울’을 죽였습니다.]

[2,000코인 획득!]

엘로인이 양념한 것을 주워 먹은 수준이라서, 보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우우우우우우!”

내가 한 놈을 더 처리하는 사이에, 웨어울프들은 거의 정리가 됐다.

유다희가 한 놈을, 호린이 한 놈을, 그리고 엘로인과 엘리샤 엘바런이 한 놈을.

“내가 웨어울프를 잡을 수 있게 될 줄이야…. 나, 의외로 족장이 될 수 있을 지도…?”

“엘레나 씨가 엄청 강해서 그래. 그렇게 구르다보면 이 정도 쯤은…. 솔직히 얘들 엄청 약했어. 근데 만 코인이나 주고…. 혜자네, 혜자야.”

“혜자?”

유다희의 말에, 호린이 되물었다.

“혜자가 뭐야?”

“…어….”

도움을 구하는 듯 나를 쳐다보던 유다희가 대강 설명해버렸다.

“든든하다…?”

“혜자가 든든하다는 의미야?”

“어, 어….”

말 같지도 않은 설명에, 나는 속으로 이마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 몰라. 일단 가자.”

웨어울프라는 시련은 의외로 허무하게 넘어갔다.

내가 강해진 건지 웨어울프가 존나 약했던 건지.

“세컨드 시티다!”

세컨드 시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세컨드 시티는 퍼스트 시티와 약간 다르게 생겼다.

몬스터 부락과 비슷한 경관이지만, 전체적으로 개선된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예를 들어, 퍼스트 시티에선 씻는 것조차 힘들다.

거의 씻지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플레이어들이 여럿 뭉쳐서 샤워시설이 있는 움집을 대여해 돌아가며 씻는 게 최선.

엘프 파티의 경우, 우리가 빌린 움집에서 몸에 물을 적시곤 했다.

“와, 우물 있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물이 무한정 공급되는 기이한 우물이 곳곳에 존재한다.

자신 있다면 씻을 수 있다.

자신 있다면 말이다.

“오우 쉣.”

씻으려면 옷을 벗어야 한다.

아무리 출신 차원이 다르다곤 해도 옷을 입고 씻는 차원은 없다.

‘투쟁의 탑’도 마찬가지.

적어도 속옷은 입고 씻는다.

그게 국룰.

하지만 항상 비범한 새끼들이 있기 마련.

“처음 보는 얼굴이군. 방금 막 들어온 건가?”

한 우물에서 나체로 씻고 있는 새끼가 하나 있다.

그린스킨, 힘과 물량의 상징.

“오크.”

엘리샤가 눈살을 찌푸렸다.

흉악 그 자체인 물건을 덜렁거리며 물을 끼얹는 오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나는 놈을 안다.

놈은 나를 모르겠지만.

‘외팔이 오크.’

현재 세컨드 시티에서 가장 강한 놈이다.

‘먹었다’, 라고 표현하면 딱 알맞다.

“아무튼 지리네.”

저 좆은 도대체 누굴 위한 좆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압도적인 사이즈.

저것에 박혔다간 숨도 못 쉬고 죽고 말겠지.

몰래 흘겨볼 수밖에 없다.

마치 목욕탕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

외팔이 오크는 인벤토리에서 수건을 꺼내 물기를 닦았다.

덜렁거리는 좆이 아까 웨어울프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외팔이 오크가 우리를 흘기며 말했다.

“오늘이 처음이라면, 내가 충고 하나 해주도록 하지.”

우물에 걸쳐둔 거적때기를 허리에 둘렀다.

좋은 옷들이 많은데도, 이 새끼들은 원래 차원에서 입던 대로 입었다.

엘리샤, 호린, 외팔이 오크까지.

“이 우물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외팔이 오크는 당당하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놈의 눈은 나, 엘로인, 엘바런을 훑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말았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별에 별 놈들이 다 있네.”

유다희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회귀자 입장에선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일단 마을 구경이나 해볼까? 흩어졌다가 1시간 뒤에 만나자.”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다.

엘프 파티는 알아서 돌아다녔고, 호린과 토끼 수인도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갔다.

결국 남는 건 나와 유다희.

“아. 이런 느낌이구나.”

우물 근처에는 여러 플레이어들이 중요부위만 가리고 물을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 깨끗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종족들이었다.

인간, 님프, 페어리, 등등….

그들은 창피를 무릅쓰고 몸을 씻었다.

유다희는 세컨드 시티 안을 둘러보면서 우물의 존재가 어떻게 쓰이는지 눈치 챘다.

“움집도 한 번 보러 가자.”

널리고 널린 게 코인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백 만이 넘는 코인을 가진 건 우리뿐이다.

“가격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은데, 설마….”

외부에 우물이 있다.

물을 원하는 플레이어들은 퍼스트 시티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몇몇 플레이어 입장에선 무조건 안 좋다.

샤워시설이 설치된 움집에서 생활한 부르주아 플레이어들에겐 최악의 전개.

불안감은 현실이 된다.

“아. 이러면 샤워 못하잖아…!”

“할 수는 있지.”

“바깥에서 하라고? 말이 돼?”

바깥 우물을 이용해서 씻어야 한다는 사실에, 유다희가 질색했다.

맨몸을 남에게 보여줘야 된다는 게 찝찝한 것이다.

특히 유다희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구애를 받는 몸, 수컷들의 음흉한 눈빛이 좋을 리가 없다.

“김진우! 너, 내가 바깥에서 씻었으면 좋겠어?”

“아니.”

“…이건 진짜 아니야….”

소설로 읽을 때는 소다희가 헐벗고 샤워하는 것도 즐거웠다.

거기서 오는 여러 헤프닝이 재밌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이런 상황이 달갑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세컨드 시티까지 온 것은, 유다희에게 세컨드 시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돌아갈래. 퍼스트 시티에서 끝까지 가는 게 차라리 낫겠어.”

“원하는 대로 해.”

나는 유다희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생각이다.

어떻게 가든 2층만 올라가면 되니까.

퍼스트 시티에서 살든 세컨드 시티에서 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도 오늘 바로 돌아가진 말고. 주변에서 푸른 기둥 좀 찾아보고 가자.”

세컨드 시티와 써드 시티 사이쯤에 푸른 기둥이 하나 있다.

그것만 확인하면 회귀를 하든 걸어서 복귀하든, 무엇이든 괜찮다.

1시간을 대강 때우고 다시 모였다.

호린이나 토끼 수인은 무덤덤하지만, 엘리샤는 침울한 눈빛으로 유다희를 바라봤다.

“다희….”

“이해해.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

유다희는 처량한 엘리샤를 끌어안았다.

서로 토닥여주는 꼴이, 서로 그루밍 해주는 고양이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그냥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지 않을래?”

“응응! 갈래. 돌아갈래!”

엘리샤는 메시아라도 본 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안 되네.’

엘리샤가 입고 다녔던 엘프 전통 복장이나 우물 앞에서 속옷만 입은 플레이어들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호린은 어떻게 할 거야?”

“퍼스트 시티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 왜?”

“어….”

호린의 물음에, 유다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불편할 거 같아서 어쩔 수가 없어. 호린, 여기 남을 거면 남아도 돼.”

“아…. 그럼 헤어지는 거잖아.”

“그, 렇겠지…?”

호린은 토끼 수인을 흘겨봤다.

“그래! 그럼 나도 돌아갈래.”

“미안해.”

“아니야. 퍼스트 시티랑 세컨드 시티랑 별로 다른 것 같지도 않으니까.”

호린의 결정이 끝났다.

“나는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하기 때문이지.”

토끼 수인은 쿨하게 우리와의 작별을 선택했다.

아쉬움은 없었다.

“잘 가.”

유다희는 남기로 결정한 토끼 수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토끼 수인이 떠났다.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만 더 가보고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자. 괜찮지?”

유다희는 써드 시티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한 번 경험해보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 엄연히 차이가 있었다.

“그래.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까. 다희 말대로 하자.”

엘리샤의 투표권은 한 표가 아니라 네 표였다.

생각해보니, 엘프들만으로 과반수.

엘리샤는 민주주의를 박살내는 독재자인 것이다.

우리는 써드 시티 방향으로 움직였다.

은근슬쩍 방향을 살살 꺾었다.

직진하는 듯하지만, 하늘에서 보면 약간 꺾여있을 것이다.

스스슷-.

토병이 솟아났다.

갑옷을 걸치고 있는 기사 토병이 등장했다.

“다섯….”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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