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83화 (83/681)

〈 83화 〉

#25. 바다의 신전.

“나는….”

유다희는 침을 꼴깍 삼켰다.

새삼 진지해진 김진우를 바라보며 그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항상 궁금했다.

김진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사람이라면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엘리샤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런 쪽으로 얘기를 하곤 했다.

엘리샤는 김진우를 싫어했지만, 유다희의 사랑을 응원하기에 김진우를 험담하거나 하진 않았다.

─ 우리 엘프들은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면서 관계의 깊이를 느껴. 서로의 혈액을 섞기 전에 서로의 타액을 먼저 섞는 거지.

─ 그러니까 다희. 이거 먹어. 내가 먹여줄게.

─ 자, 아앙…. 맛있어? 의외로 맛 괜찮지? 내가 어릴 적에 어머님께 배운 요리야.

엘프는 성관계를 가장 마지막에 맺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다.

‘다른 종족들은 별 거 아닌 거에도 의미를 부여하는구나.’

유다희는 코웃음 쳤다.

음식 하나로 나눠먹는 게 뭐 대수라고.

“샌드위치 세 개 주세요.”

하나는 수련하고 있을 소년의 것.

하나는 자신이 먹을 것.

하나는 거절당했을 때, 김진우에게 줄 샌드위치.

샌드위치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으면서, 유다희는 묘한 상상을 했다.

자신이 먹던 샌드위치를 김진우가 대수롭지 않게 먹는 상상.

당연하게 받아 먹어주는 그런 상상.

샌드위치를 꺼내는 유다희의 손이 아주 미묘하게 떨렸다.

유다희는 되도 않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 둘이서 나눠먹으면 되잖아. 싫어?

유다희는 태연하게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김진우는 얌전히 샌드위치를 받아먹었다.

‘흐흫.’

불평불만하면서 우물우물 맛있게 먹는 김진우를 보며, 유다희는 속으로 웃었다.

‘직접 만들어주면 어떻게 반응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머릿속으로, 김진우의 이상형이 스쳐지나갔다.

‘키 작고 아담하고 귀여운 데 요리 잘하는 여자….’

유다희와 정반대인 여성상을, 뻔뻔하게 이상형이랍시고 읊던 김진우.

또 괜히 괘씸하게 느껴졌다.

‘대답 잘하면 봐줄게.’

유다희는 김진우를 빤히 바라봤다.

김진우의 눈빛은 바로 앞이 아닌 과거를 되짚고 있었다.

“다희를….”

한 소설이 있었다.

읽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소설.

김진우는 그 소설을 읽었다.

회귀자 본인이 쓴 듯 자세하게 묘사된 글이었다.

읽으면서, 회귀자 유다희의 희로애락에 이입하게 되었다.

그녀가 웃으면 행복했고, 그녀가 울면 하루가 힘들었다.

유다희가 끝을 보았을 때, 후련하면서도 아쉬웠다.

더 이상 함께 탑을 오르지 못한다는 생각에.

지금은 마냥 즐겁다.

그리고 너무 두렵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할 이 관계가.

에필로그에서 유다희는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김진우 또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지르고 다녔다.

어차피 사라질 세계니까.

‘사랑은…. 조금 그래….’

하나의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소설처럼, 김진우는 언젠가 원하지 않는 엔딩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많이 좋아해.”

그래도 이건 진심이었다.

이제까지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았지만.

유다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어, 어….”

평소라면, 유다희는 김진우에게 간파의 가호를 쓰지 않는다.

상대의 감정을 농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함께 회귀하는 김진우에게는 절대 쓰지 않았다.

[‘간파의 가호’가 발동 중입니다.]

지나치게 진지한 김진우의 눈빛에, 유다희는 자신도 모르게 간파의 가호를 발동해버렸다.

그리고 마주해선 안 되는 감정을 마주했다.

진실.

그 어떤 진실보다 투명한 진심이 유다희에게 전해졌다.

머릿속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유다희 눈에 보이는 거라곤, 김진우의 얼굴, 입술밖에 없었다.

‘아, 안 되겠어.’

“응읍…!”

유다희는 그대로 김진우의 머리를 잡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어떤 순간보다 끈적끈적하게 입술을 부딪쳤다.

* * *

추읍-.

“하아. 김진우…. 진짜, 그러는 거 반칙이야….”

유다희가 입술을 뗐다.

투명한 실처럼 길게 늘어진 침이 뚝 끊어졌다.

“갑자기 왜 이러는…! 얌마!”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다.

유다희는 나를 덮치듯 내 위에 올라타 앉았다.

“잠…깐…!”

유다희의 입술이 다시 한 번 내 입술을 막았다.

유다희는 양손으로 내 귀를 덮고 못 피하도록 붙잡았다.

“하아. 하아….”

“아니, 왜 이러는 건데…. 말을 좀 해….”

유다희는 침으로 범벅인 자신의 입가를 옷소매로 훔쳤다.

그러곤 내 입 주변도 손수건으로 슥슥 닦아주었다.

“나도 몰라. 그냥 너무 좋아서 참을 수가 없네.”

“이해가 안 돼….”

“그래도 여기서 할 순 없으니까, 참아야겠지…?”

섹스라도 하듯이 유다희가 내 바지 앞섶에 대고 둔부를 문질렀다.

삽입과는 또 다른 느낌, 하지만 아파서 버틸 수가 없다.

“야, 아프다. 아프다고.”

진심으로 고통을 호소하니, 그제야 유다희가 허리를 멈추고 일어섰다.

“…흠, 흠. 미안.”

유다희는 손을 뻗어 나를 일으켜주었다.

흙바닥에 누워서 그런가, 흙이 잔뜩 묻어 찝찝했다.

“오, 오옷….”

소년은 우리에게 엄지를 척 세우며 눈을 반짝였다.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유다희는 멋쩍은 듯 웃기만 했다.

“저도 고향에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누나랑 형처럼 되고 싶네요.”

어색한 분위기만 이어졌다.

소년이 무어라 떠들어도, 대답할 생각이 안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유다희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며, 유다희는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소년에게 악수를 건넸다.

“그래, 수련 열심히 하고.”

“왜 갑자기 끝내려고 해요? 형, 그냥 가는 거예요?”

“너무 오래 있었어. 다음에 보자.”

유다희를 끌고 호수를 벗어났다.

“형! 누나! 어디가요!”

소년을 외면했다.

가는 길에, 유다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왜 그런 거야?”

“나도 몰라.”

얼탱이가 없다.

갑자기 덮쳐놓고 이유를 모른단다.

“네가 그렇게, 어? 꼴리게 한 잘못이지. 그게 내 잘못이야?”

오히려 적반하장 내 잘못이라 말하며, 유다희 본인은 떳떳한 듯 턱을 치켜들었다.

“뭐. 왜. 불만 있어?”

“…아니. 그래, 내 잘못이다.”

나 때문에 꼴려서 그랬다고 하니까,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더 이상 물어본다고 이유를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럼 나머지 기둥이나 찾으러 가자. 두 개만 찾으면 되니까 오래 걸리진 않겠지.”

나는 위치를 알고 있다.

바다의 신전을 중심으로, 푸른 기둥은 오망성 구조를 이룬다.

기둥 세 개를 찾은 상태라서, 이미 찾은 세 개를 바탕으로 나머지 두 개를 어림짐작 할 수 있다.

호수도 미리 찾아두는 게 좋다.

히든피스가 잠겨있는 호수는 단 하나 뿐이니까.

퍼스트 시티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퍼스트 시티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토병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사 토병.

우리가 둘밖에 없어서 그런가, 둘 아니면 셋 정도가 최대치였다.

푼돈 수준인 코인을 벌어주면서 움직인다.

“공터…?”

이질적인 공터가 우리를 반겼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

엄청나게 넓은 공터였다.

바다의 신전이 있어야 할 터.

봉인을 해제하면 바다의 신전이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온 거리를 다시 가면 기둥 두 개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걸었다.

여기까지만 확인하면, 이제 거의 끝난다.

결국 나머지 기둥 두 개까지 찾았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큰일 난 것 같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는 않지.”

어둠이 숲을 집어삼켰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했다.

평범한 바람 소리도, 이제는 불길한 분위기로 다가왔다.

“위치 다 알았으니까, 회귀해서 바로 봉인이나 풀어볼래?”

“그것도 나쁘지 않네.”

복귀가 귀찮다.

차라리 다시 시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래서 우리는 회귀했다.

픽 쓰러지는 유다희.

[‘사망회귀’가 발동됩니다.]

돌아왔다.

익숙한 장면이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엘레나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일까.

우리는 장비를 챙겨 퍼스트 시티로 향했다.

그리고 호린을 만났고 코인을 뻥튀기시켰다.

최고급 움집을 대여한 후….

“바로 가면 이상하지 않나?”

“뭐가?”

유다희는 지금 당장 봉인을 해제하러 가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아카데미에서 막 나온 뉴비들이 봉인 따위를 해제하러 가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전개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또 멍하니 시간만 보내야 돼?”

“어쩔 수 없지 않을까?”

“…기다리기 싫은데.”

잠깐 고민 끝에, 유다희는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엘레나만 데리고, 세컨드 시티에서 사람 구하면 될 것 같지 않아?”

“나머지는?”

“여기 두고 가. 어차피 하루면 충분하니까. 복종서약으로 끌고 가서 봉인만 풀어보는 거지.”

“세컨드 시티에서 사람 구하게? 그럼 굳이 엘레나를 데리고 갈 필요가 있나?”

“어…. 그러네?”

생각해보면, 내 말이 맞다.

엘레나를 굳이 챙길 필요가 없다.

유다희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그럼 우리끼리 가자.”

“굳.”

나도 엘레나를 데리고 가는 게 편하다.

가지고 놀 장난감 같은 느낌이라 재밌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성장도 더딜뿐더러 긴장감이 줄어 스릴을 느낄 수 없다.

안 그래도 회귀자라서 매 전투가 시시한데, 8성 플레이어를 끌고 다니면 시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죽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는 대강 엘리샤에게 적당한 핑계를 댄 후, 세컨드 시티로 향했다.

가는 길에 나타난 웨어울프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주었다.

저번과 다르게 한 마리만 나타났는데, 왜 한 마리인진 모르겠다.

세컨드 시티에 도착했다.

우물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고, 퍼스트 시티보다 갈고 닦인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투쟁의 탑’에는 여러 종족들이 어우러져 산다.

아래층보다는 위층이 규칙 따위를 정해두고 각자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세상 살아가는데 법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엘프는….”

없다.

존재 자체가 희귀하다.

희귀를 뛰어넘어 유일한 존재였지만, 엘리샤의 등장으로 여성 엘프가 둘로 늘었다.

그 다음으로 선한 종족은 드워프, 님프, 페어리, 정령, 등등 의외로 많다.

‘드워프는 선하다기보단 미친 새끼들이지.’

여성을 씨받이 취급하는 미친 새끼들이지만, 절대 뒤통수치지 않는다는 점이 이 험한 세상에서 플러스 요소였다.

같은 인간보다 훨씬 괜찮은 종족들.

그 다음부턴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르니, 우리끼리 논할 가치가 없는 종족들이다.

“저기 드워프들 있네.”

“드워프? 굳이 드워프들을….”

“쟤들이 오히려 상남자라서 나쁘지 않아.”

유다희가 미간을 좁혔다.

사람보고 씨받이라고 하는데 좋을 리가 없었다.

“그냥 다른 사람 찾아보자. 응?”

진짜 싫어하는 유다희를 보니, 드워프는 선택지에서 제외해야 할 듯싶다.

‘마력이 10레벨 이상이어야 하니까.’

드워프는 마나보단 육체를 단련하는 쪽이다.

근육질 난쟁이, 드워프에게 이보다 어울리는 표현은 없다.

마력 10레벨 이상에 선한 종족.

선택지가 확 줄어든다.

지금 세컨드 시티에서 찾으려면….

“쟤들 어때?”

리자드맨 하나에 페어리 셋.

기이한 조합의 파티 하나가 움집에서 나오고 있다.

리자드맨은 이족보행 도마뱀, 페어리는 투명한 날개를 파닥거리는 소년소녀.

리자드맨이 아슬아슬하지만 페어리는 분명 마력 10레벨을 넘겼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유다희는 도마뱀 대가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이 완성되었으니, 멤버를 섭외할 타이밍이다.

나는 자연스럽게 리자드맨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흉부가 묘하게 부풀어있다.

리자드맨은 암컷이었다.

‘근데 왜 리자드맨 일까?’

병신 같은 의문을 뒤로 하고, 나는 리자드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리자드맨은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냥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다.

“쉬릭-. 인간 수컷? 날 왜 부른 거지?”

리자드맨 뒤로 페어리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를 무서워하는 기색에 비해, 내 뒤에 서있는 유다희에겐 무한한 애정의 눈빛을 보냈다.

‘시바, 외모지상주의.’

유다희는 모든 이에게 호의를 산다.

물론, 그 호의가 번식욕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매일 수많은 종족들에게 구애를 받는다.

“혹시 시간 좀 있습니까? 의뢰…. 비슷한 걸 맡기고 싶어서요.”

“무슨, 의뢰?”

리자드맨이 끝이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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