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26. 골렘.
“선택받은 일족의 피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쓸 수 있다라….”
선택받은 일족.
그냥 소년을 말하는 것이다.
선택받은 일족이고 나발이고, 삼지창을 쓸 수 있는 사람은 1층에서 소년 밖에 없다.
아무리 찾아봐도 소년 말고는 나오지 않는다.
소설 속 유다희는 수십 차례 반복하며 그 사실을 깨우쳤다.
“모세한테 가보면 되겠네.”
우리는 호수에서 수련하고 있을 소년에게로 갔다.
이번 회차에선 소년을 만나지 않았지만, 중간 과정을 클리어 했으니 알아서 다음 과정을 안내해주리라 믿는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를 듣고, 삼지창을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요?”
소년은 삼지창을 쥐고 물었다.
작은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삼지창.
하지만 삼지창을 드는데 크게 무리가 없어보였다.
‘선택받은 일족이니까.’
일반적으로 소년 체구인 모세가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창이 아니다.
“그걸로 호수를 갈라봐.”
“이걸로요?”
“어. 천사님이 푸른 기둥 찾으라고 알려줬다며? 푸른 기둥 다섯 개 찾았고 걸려있는 봉인도 해제했어. 그리고 가져온 게 그 창이야. 뭔가 쓰임새가 있다면, 바다를 가를 수 있는 힘 아닐까?”
바다를 가르고자 하는 소년에게 천사가 말을 걸었다.
천사의 말은 곧 바다를 가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해볼게요.”
소년은 창대를 꼭 쥐고 호수를 향해 창을 뻗었다.
평소처럼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기합을 주었다.
“흐아아아아아압!”
“오. 된다.”
삼지창에 푸른 기운이 뭉쳤다.
어느 정도 모인 푸른 기운이 호수로 쏘아졌고, 호수가 진동하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와….”
호수바닥이 보였다.
호수바닥 중앙에 있어야 할 수정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호수는 제외.
‘쯥….’
한 번에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회차에선 이 호수에 묻혀 있을 수도 있다.
수정구의 위치는 회귀 때마다 달라지는 기괴한 특징이 있어서, 매번 다섯 곳의 호수를 확인해주어야 한다.
‘신’ 위에 있는 작가 새끼가 벌여놓은 수작이라 어쩔 수가 없다.
“드, 드디어…!”
소년은 감동에 벅차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 외롭게 수련한 결과를 본 거니까, 울컥할 만도 하다.
물론 삼지창이 없으면 불가능한 기적.
소년은 수정구를 찾아 이 힘을 영구적으로 습득해야 된다.
“이제 도와줘야 할 일 있어? 천사가 따로 한 말은?”
“천사님은 제가 호수를 가를 수 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다를 가를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소다희가 알아서 챙겨줬으니,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20% 확률로 소년이 수련하는 호수에 수정구가 놓여 있는 것을 확인, 소다희는 그것을 본 후 새롭게 시작할 때마다 다른 호수들 전부를 갈라버린다.
그리고 다섯 호수 중 한 곳이 랜덤으로 정해진다는 걸 알아챈다.
“근데 많이 힘들어요. 바다를 가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소년의 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모조품 삼지창으론 호수를 가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루 정도 체력을 회복해야 내일 또 다른 호수를 갈라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년을 재촉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유다희는 부드럽게 말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 그럼 내일이나 모레 다시 올게. 다른 호수도 갈라보자. 어때?”
“전 좋아요. 천사님이 원래 세상으로 보내줄 때까지 힘을 갈고 닦아야 하니까요.”
소년은 씩씩하게 말했다.
희망을 눈으로 보아서 그런가, 의욕이 넘쳐흘렀다.
우리는 소년과 헤어지고 퍼스트 시티로 돌아왔다.
할 일을 마쳤는데도 아직 해가 떠있다.
지고 있어도, 엄청 빨리 복귀한 건 사실이었다.
원래라면 바다의 신전을 돌파하는데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목숨을 걸어줄 플레이어를 구해야 하고, 해룡인 석상에 비벼볼 만큼 성장도 해야 하니까.
하지만 엘레나 덕분에 꽤 많은 시간을 절약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유다희는 엘레나를 초대하는 것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써드 시티 구경, 골렘 레이드 맛보기 등등 해봤을 텐데.
아쉬울 따름.
“엘레나 씨.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빨리 끝낼 수 있었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다희 님께 고맙죠. 힘든 부탁도 들어주시고….”
유다희의 인사에, 엘레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서 힘든 부탁은 나와 유다희가 섹스 할 때 옆에서 자위하게 해준다는 약속.
유다희의 눈가가 힘차게 파르르 떨렸다.
“…금요일인 거 알죠?”
“네. 혹시 부탁할 거 더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아뇨…. 괜찮아요.”
이건 엘레나의 덫이다.
유다희 또한 그걸 모르지 않았다.
저 손을 붙잡는 순간, 얼마나 더 보여주게 될지 모른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변태 같은 말과는 달리, 엘레나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갔다.
취향만 이상할 뿐, 엘레나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똥구멍 안 건드린 지도 꽤 됐네.’
엘레나를 처음 만났을 때, 애널 조교를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썼다.
툭하면 진동을 켜고 약 올리듯 괴롭혔다.
근데 최근 들어 바이브레이터도 그렇고, 엘레나의 똥구멍도 그렇고, 아예 사용하지를 않았다.
‘스읍….’
유다희의 의심을 피하면서 작업해야 한다.
걸렸을 때를 위한 변명거리도 있어야 한다.
참 어려운 문제.
엘레나를 포기한다, 라는 선택지도 있다.
하지만 플루토의 노예라는 오지고 지리는, 하렘을 위한 시스템이 있는데 포기할 순 없잖아.
안 그래?
우리는 움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자연스럽게 서로 부둥켜안고 늘어져 있는데, 나도 모르게 발기하고 말았다.
이건 그저 생리현상.
유다희와 닿으면, 원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다지 섹스가 하고 싶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유다희는 아니었다.
“지, 진짜? 또 하려고?”
“해야지.”
발기한 자지를 쥐고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유다희를 향해 빌었다.
피가 쏠려서 해면체가 부풀어 올랐을 뿐, 내 머리는 그 어떤 순간보다 무욕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한 번만 봐줘라. 나 너무 힘들어.”
“안 돼. 발기했잖아.”
“이건 네가….”
무어라 말을 뱉기도 전에, 유다희가 옷을 벗었다.
평범한 속옷이 명품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몸매가 내 눈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삽입하고 싶진 않았다.
성적 매력이 아니라 순수한 아름다움.
그렇게 느껴졌다.
솔직히 진짜 농담이 아니라, 나는 유다희의 입과 보지가 무섭다.
“…내일. 내일 합시다. 예? 하루만 시간을 주세요.”
못 싸서 환장한 새끼도 아니고, 하루 안 한다고 발정하거나 그러진 않을 것이다.
내 진심이 어느 정도 통한 걸까.
유다희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그래. 하루걸러 하루. 격일로 하자. 그럼 되지?”
“가, 감사…! 압도적 감사…! 고추도 고맙다고 인사하네, 이거 봐.”
브라더도 유다희에게 감사인사를 표현했다.
까딱-. 까딱-.
유다희는 키득거리며 내 자지를 손으로 쥐었다.
훅 들어오는 손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불알도 잡힐까 싶어 최대한 벗어나려 했지만 역부족.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물었다.
“…왜?”
유다희는 입맛을 다시며 나를 쳐다봤다.
“안 되겠다. 내가 하고 싶어졌어.”
“예? 오늘 하루는 봐주겠다고 분명….”
“그래, 그렇게 말했지. 근데 이건 내 잘못 아니야. 내 앞에서 자지냄새 풍긴 네 잘못이지.”
아니, 시바….
“그냥 얌전히 누나한테 대주면 돼. 알겠니?”
“아, 아앗…!”
유다희가 손에 힘을 주고 잡아 당겼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갔더니, 그 앞에는 유다희의 입이 있었다.
츄릅-. 츄릅-.
유다희는 내 자지를 빨기 시작했다.
맛있는 사탕이라도 빨 듯 맛깔나게 빨았다.
입으로 맛보고 보지로 맛보고, 아무튼 쪽쪽 자지를 짜냈다.
더 이상 발기를 못하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풀려났다.
“잘 먹었습니다, 김진우 씨.”
찰싹-!
유다희가 내 엉덩이를 두드렸다.
토닥거리는 손길을 느끼며,
“으어어….”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지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다른 호수를 찾아서 갈라봐야 한다.
엘레나를 만났다.
엘레나는 엘리샤와 함께 있었다.
“다희 님, 좋은 아침입니다. 잘 쉬셨습니까?
“잘 쉬었어요. 엘레나 씨는요?”
“저는 뭐….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엘레나 뒤에 있던 엘리샤가 유다희를 유심히 보더니 한 마디 던졌다.
“다희! 얼굴색 많이 좋아 보여. 뽀송뽀송하네.”
“맛있는 거 먹고 푹 쉬어서 그런가 봐. 몸도 개운하고 어제보다 가볍고, 좋네.”
“그래? 뭐 먹었는데? 나도 주면 안 돼?”
“…아, 안 돼….”
평범한 만남에, 나는 끼어 들 수 없었다.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이대로는 안 돼….’
발정기를 어떻게 하든가, 아니면 정력을 성장시킬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발정기를 삭제하는 건 불가능하니, 정력을 성장시켜 유다희를 이기는 게 최선.
아쉽게도 흑마술에는 정력 관련 마술이 없다.
있어도, 전부 상대에게 최면을 걸고 감도를 조절하고 괴롭히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기는 건 무의미.
‘답은 색공이다.’
오크의 절륜한 정력이나 고블린의 지치지 않는 성욕, 그딴 것들은 내가 얻을 수 없는 힘.
하지만 색공은 얻을 수 있다.
스승만 있으면,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가보자.’
1층에는 무림 출신 인간이 없다.
2층에는 있을 수도 있다.
2층 구경도 갈 겸 둘러보고 오자.
나는 유다희를 따로 불러냈다.
엘프들과 조금 떨어져서, 유다희에게 속삭이듯 말을 전했다.
“오늘, 엘레나에게 부탁해서 2층에 올라가보자.”
“어? 벌써?”
유다희는 많이 이르다는 듯 낯선 반응을 보였다.
놀란 눈에선 부정적인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아직 1층에 남고 싶어 하는 듯했다.
“왜? 갔다가 오면 되잖아.”
“그게 좀…. 애매해.”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차피 1층 보스인 골렘은 잡아도 성(★)이 안 오른다.
대강 버스타서 올라가도 크게 상관이 없다.
별을 못 올렸다고 해도, 우리는 끝이 아니다.
1층으로 돌아와 다시 도전하면 된다.
유다희가 말했다.
“…2층에 올라가면 시작장소가 바뀌잖아. 그게 좀 그래.”
“아….”
유다희는 스타팅 포인트 때문에 올라가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스타팅 포인트가 바뀐다는 것은, 지나온 역사가 고정된다는 걸 의미한다.
‘스타팅 포인트 5층에서 바뀌는데….’
이걸 설명할 방법이 없다.
‘좆 됐네….’
준비되었다고 느낄 때까지, 유다희는 절대 1층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회귀자에게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바꾸지 못하는 과거니까.
‘어? 잠깐만?’
스타팅 포인트가 바뀔까봐 두려운 건 회귀자 입장에서나 그런 것이고.
회귀에 꼽사리.
유다희에게 업혀있을 뿐인 나란 존재에게, 스타팅 포인트고 나발이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다희야.”
“응?”
“…그럼 나만 2층을 보고 오는 건 어때?”
“뭐?”
스타팅 포인트가 누구를 기준으로 고정이 되는가.
리얼 회귀자인 유다희를 기준으로 고정이 된다.
유다희가 1층에 남아 있으면 스타팅 포인트는 그대로 유지.
김진우는 2층으로 올라가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너를 중심으로 회귀한다는 거 알지? 내 목숨이랑은 상관없이 네가 죽으면 내가 살아있든 말든 회귀가 돼. 그치?”
“그치….”
“회귀에 있어서 네가 더 중요하다고 가정하면, 스타팅 포인트도 네 위치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어.”
“…그러네….”
유다희는 이미 이해하고 있다.
누구보다 회귀에 대해 고민을 해봤을 테니까.
이해 못할 수가 없다.
“네가 1층에 남아있다면 내 위치는 어디든 상관없지 않을까? 어디에 있어도 1층에서 회귀하는 거지. 죽었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스타팅 포인트는 2층이 아니라 5층에서 갱신이 돼, 라는 병신 같은 설정보다 훨씬 그럴 듯한 논리다.
“…2층을 지금 꼭 봐야 해?”
“어?”
유다희는 침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축 늘어진 어깨가 왜인지 처량하게 보였다.
“나중에 같이 올라가면 되잖아. 굳이, 벌써…?”
“시간도 아낄 겸, 가능하면 해보는 게 낫지 않나?”
“…난 시간 안 아껴도 좋은데…. 느려도 상관없어.”
유다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너랑 떨어지는 게 더 싫단 말이야.”
“아….”
“하루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근데, 그래도….”
유다희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무슨 말을 삼켰는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독심술’을 사용해버렸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다.
‘너는 나 생각해서 이런 제안을 생각해낸 거겠지…?’
‘내가 견디는 게 맞아.’
‘애도 아닌데 떨어지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게 말이 돼?’
‘다희야, 쿨하게 보내! 그래야 투쟁의 탑도 빨리 클리어 할 수 있잖아?’
‘그래, 소원으로 내 옆에 붙잡아두면 돼.’
[‘독심술’이 해제됩니다.]
몰아치는 유다희의 생각.
앞을 보니, 생각정리를 마친 유다희가 멋쩍게 웃고 있었다.
“다녀와. 하루면 돼?”
“…….”
“이, 이틀? 삼일은 좀 힘들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