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90화 (90/681)

〈 90화 〉

#26. 골렘.

“이틀. 이틀 있다가 회귀해줘.”

“…알았어.”

유다희는 찝찝하게나마 허락해주었다.

보내기 싫다며 나를 붙잡으려고 하는 모습이, 내 심금을 울렸다.

나는 유다희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유다희는 반항하지 않고 품으로 쏙 들어와 안겼다.

“아, 다희야. 왜 이렇게 귀엽게 구냐.”

“몰라. 갈 거면 그냥 가. 괜히 마음 바뀌기 전에.”

소다희는 가는 남자 안 막는 성격이었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소다희의 주변엔 수많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 문제에 쿨 해야 할 유다희가 나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

이 얼마나 흐뭇한 광경인가.

“그럼, 다녀올게.”

“그래. 발정기 올 것 같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자살을 해. 알겠지?”

“…알았어.”

살벌한 말에, 불알이 마구 떨린다.

인사를 끝마치고 엘레나에게 다가갔다.

“우리 둘이서 따로 2층으로 올라갈 거야.”

“둘이서만?”

“어.”

엘레나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공주님과 떨어져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명령을 써서라도 데리고 갈 거라서 선택권은 없어.”

“…엘리샤 공주님을 놔두고 갈 순 없다.”

1층에서 잠깐 따로 다니는 것과 2층으로 올라가는 건 엄연히 다른 느낌인 것 같았다.

엘레나는 엘리샤와 떨어지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얌전히 따라올 생각은 있고?”

“엘리샤 공주님만 동행시켜준다면, 7층까지도 데려다줄 수 있어.”

“거기까진 안 바래.”

나는 유다희에게 다가갔다.

“엘레나가 엘리샤랑 떨어지기가 싫다네.”

“음…. 그럼 엘리샤도 올라가면 되잖아.”

유다희는 너무 손쉽게 결론을 내렸다.

“엘리샤, 혹시 2층으로 올라갈 생각 있어?”

“2층? 어떻게?”

“엘레나가 1층 보스 몬스터를 잡아주면, 그걸 이용해서 올라가려고.”

“응? 엘레나가?”

처음 시작할 때, 엘레나는 매번 비슷한 말을 던진다.

엘리샤의 성장을 위해 자신은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고.

엘레나가 보스몬스터를 잡아준다는 말은, 엘레나가 뱉은 말을 번복한다는 의미였다.

“난 상관없어.”

“상관없지?”

“응. 다희랑 함께라면, 몇 층이든 괜찮아.”

“어?”

엘리샤는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유다희의 동행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유다희는 미안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나는 1층에서 할 일이 있어서 못 올라갈 것 같은데….”

“그래? 그럼 나도 안 올라갈래.”

“…한 번만 엘레나랑 같이 올라가주면 안 돼? 엘레나가 너 없으면 안 도와주겠다고 해서….”

엘리샤는 미간을 좁혔다.

“다희가 안 올라가면 대체 누구 때문에 2층으로 올라가려는 거야? 김진우 밖에 없잖아.”

“으, 응…. 진우를 2층에 올려 보내려고…. 부탁할게. 한 번만 진우랑 엘레나랑 먼저 올라가주라.”

엘리샤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이…. 알았어. 다희 부탁이니까 올라갈게. 대신 다희도 금방 올라와야 돼.”

“엘레나가 있잖아. 걱정 마. 텔레포트 게이트로 나도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참고로 텔레포트 게이트는 이용료가 존나 비싸다.

엘레나조차 부담되는 가격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엘레나, 엘리샤, 나.

3인 파티가 완성됐다.

엘로인과 엘바런은 1층에 남기로 결정.

엘레나에게 명령해서, 둘을 강제로 남게 만들었다.

퍼스트 시티 밖으로 나섰다.

오늘 바로 써드 시티를 넘어 1층 보스몬스터 골렘을 잡고 2층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좋네.”

파티 분위기가 냉랭하다.

엘리샤는 나를 작정하고 무시하며 걸어갔다.

혼자 앞서 걸었다.

엘레나도 딱히 나한테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많이 풀어진 게 눈에 보였다.

오랜만에 외쳐본다, 바이브레이터 ON.

“흐긋…!”

엘레나는 화들짝 놀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작스런 내 명령에 당황한 듯했다.

“빨리 켜.”

“아, 알았어. 켤게…. 진동은 최상이면 되지…?”

“어? 그렇게까지 세게 켤 필요는 없는데. 그냥 중으로 해.”

“아….”

아쉽다는 듯 바지춤 아래로 엘레나의 손을 꼬물거린다.

아마 스위치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리라.

‘본격적인 건 올라가서 하면 되니까.’

즐길 생각에 불알이 떨린다.

유다희를 속인다, 라는 것에 대한 죄책감보다 속인다, 라는 것에 대한 배덕감이 더 컸다.

이 감정은 가면을 쓰고 강간했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었다.

이동속도가 제법 빨랐다.

세컨드 시티를 빠르게 넘기고, 써드 시티로 움직였다.

가끔 나타나는 기사 토병은 엘레나가 가뿐하게 슥삭 베어버렸다.

코인이나 성장 따위를 기대할 순 없지만, 그만큼 압도적인 속행을 얻었다.

“써드 시티….”

가공된 나무로 된 벽.

퍼스트나 세컨드에 비해 월등히 견고하게 보였다.

성벽이라 칭해도 될 만큼 우람한 기세를 뽐내고 있었다.

---

[‘안전지역’입니다.]

[PK행위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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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드 시티는 이전 마을에 비해 발전된 구색을 갖추었다.

움집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나무판자 고상가옥들이 불규칙적으로 지어져 있었다.

나무판자 따위로 구성되어 있어도, 움집 따위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움집에서 지내다가 판자촌 고상가옥?

바로 2년 군복무 뚝딱이다.

‘좀 그런가?’

플레이어들의 전체적인 수준도 나아졌다.

1층에서 그나마 강한 놈들이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이니까.

가지고 있는 장비, 풍기는 아우라, 넘치는 자신감 등등.

퍼스트 시티에 안주하고 있는 플레이어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사람들 모여 있네. 가보자.”

만들어진 광장에는 플레이어 여럿이 모여 있다.

아마 보스 몬스터에 도전하려는 플레이어들일 것이다.

총 인원은 스물 정도 되어보였다.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트롤 하나가 지팡이를 짚어가며 다가왔다.

그는 다리가 불편한 듯 심하게 절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 잡으러 갈 생각인가?”

“예.”

트롤이라고 마냥 흉악하거나 하진 않았다.

인간이라고 다 선하고 악한 것은 아니듯이.

“써드 시티에선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방금 막 넘어온 거겠지?”

“맞습니다.”

각 시티에는 고인물이 많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나가서 비슷한 시간에 돌아오니, 얼굴이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따로 조건 같은 건 없죠?”

“…인간이라면 조건을 볼지도 모르지. 하지만 괜찮을 걸세. 나 같은 늙은이도 받아주었으니 말이야.”

보스 레이드를 갈 때, 인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미끼로 쓰일 수 있으니 없는 것보단 낫다.

‘쯥.’

이 늙은 트롤의 역할은 정해져 있다.

아마 미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리라.

나라고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엘레나가 없었다면, 유다희와 함께 빌빌 기고 있었겠지.

“저기 보이는 자가 리더 일세.”

늙은 트롤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인간?’

겉보기에 인간을 쏙 빼닮은 남자.

인간이 ‘투쟁의 탑’에서 거만한 플레이어들을 이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속으로 던져봤다.

‘불가능한데….’

물론 가능한 인간들도 존재한다.

인간계에서 정점에 이른 괴물들은 인간임에도 다른 차원의 종족들에게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인간은 흔치 않다.

각 차원에 한둘 있는 인간을, ‘투쟁의 탑’에서 지금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못해 제로에 가깝다.

‘인간이 아닌가.’

결국 이 소설은 회귀자 유다희가 여러 남자를 즐기며 탑을 정복하는 이야기다.

유다희와 살을 맞대려면 적어도 인간형이어야 하니, 자연스레 인간형인 종족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창백한 피부, 미형의 얼굴, 핏빛 눈동자, 씨익 올라가는 입 꼬리 끝에 보이는 뾰족한 송곳니….

‘흡혈귀. 흡혈귀라면 가능하지.’

뱀파이어에도 급이 나뉜다.

정신계 매혹, 흡혈, 조건부지만 강력한 신체능력.

플레이어들 위에 설 정도로 강한 뱀파이어라면, 조금 더 순혈에 가까운 뱀파이어일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남자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보스 몬스터에 관심 있습니까?”

“예.”

남자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잘생긴 얼굴이었다.

‘좆은 작겠지.’

신이 있다면, 저 새끼 좆은 작아야 한다.

“완벽한 타이밍입니다. 이제 곧 출발하려고 했거든요. 뒤에 두 분도 일행인 겁니까?”

“예.”

남자의 시선이 엘리샤, 엘레나를 훑고 지나간다.

유다희와 함께 다니면서 어떻게든 좆 비벼보려는 수컷들의 눈빛에 익숙한데, 크게 관심을 가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출발까지 10분 정도 남았습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구해오는 게 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흡혈귀는 우리에게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챙겨올 게 없다.

여기 있는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방해다.

엘레나 하나만 있으면 골렘 따위는 0.3초면 충분하니까.

“엘리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엘레나 단장.”

“뱀파이어가 매혹을 뿌리며 다니고 있어요. 웬만하면 그의 눈을 마주보면 안 됩니다.”

엘리샤가 사랑에 빠진 여자 마냥 뱀파이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괜찮아졌어요.”

“매혹에 걸리면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게 되죠.”

고차원적인 마력운용은 상상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다.

엘레나는 뱀파이어의 매혹에 대한 처치를 해주는 중이었다.

“아마 이곳에 있는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매혹에 걸린 상태일 텐데.”

엘레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무난하게 파티에 섞여서 갈 거야?”

“얘들이 골렘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엘레나는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을 훑어봤다.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모인 플레이어들, 이들은 1층에서 구르고 굴러 성장했다.

“뱀파이어만 살아남을 것 같네.”

엘레나의 평가는 냉혹했다.

스물이 넘는 플레이어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 같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러면 그냥 다 죽여 버리는 게 맞지.”

나도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못 올라갈 애들이니까, 내 양분이 되어 나와 함께 올라가는 게 옳다.

“기습하자. 오케이? 네가 사지 병신으로 만들면 내가 주워먹을게.”

“쓰레기.”

나를 벌레 보듯 쳐다보는 엘레나.

명령.

“…진동 최상으로 올려.”

엘레나가 스위치를 조작했다.

“흐, 흐응…. 좋앗…!”

“뭐?”

몸을 파르르 떠는 엘레나.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플레이어들이 모였다.

보스 레이드를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의 매혹에 걸린 멍청한 플레이어들.

흐느적거리지 않고 자기 의식을 가진 듯 움직였다.

써드 시티 밖으로 나갔다.

한 시간 정도 걸어가니, 넓은 평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 몬스터 골렘은 평야 위에 멍청하게 서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본 골렘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골렘.

크기에서부터 압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시작해.”

“…쓰레기.”

엘레나는 그리 중얼거리곤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뭐해?”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엘레나의 검이 번쩍였다.

피가 흩뿌려졌다.

“기, 기습?!”

“뭐야!”

“엘프 년 검에 피가 묻어 있다! 엘프 년이 뒤통수…. 끄아아아악!”

엘레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최상위 플레이어라고 PK를 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알면서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엘레나 단장? 도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왜 다른 플레이어들을 공격하는 거죠?”

“죄송합니다, 공주님. 어쩔 수가 없어요.”

엘레나가 엘리샤를 설득한다.

복종서약에 대해,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럴 수가…. 저런 남자의 말을…. 그래서 최근 들어 이상한 행동들을 했던 거군요. 저 남자가 시켜서….”

“…예, 맞습니다.”

“이 쓰레기! 엘레나 단장한테 네 팬티로 대체 무슨 짓으, 읏읍!”

“공주님?! 조, 조용히 좀 해주십쇼!”

엘레나가 엘리샤의 입을 막았다.

엘리샤는 더욱 분에 겨워 악을 질러댔다.

“으으으으읍!”

“뭐라는 거야.”

나는 엘리샤를 무시하고, 반쯤 병신이 된 플레이어들을 살폈다.

숟가락 얹는 것 뿐이지만, 이보다 달달한 먹잇감이 어디 있을까.

“엘리샤도 먹을래?”

“프하! 흑마술사나 할 법한 역거운 짓은 하지 않아!”

“그래? 그럼 나 혼자 먹을게.”

나는 플레이어들의 생명력을 흡수했다.

하나, 둘, 셋….

흡수하면서 흑마술을 사용했다.

플레이어들은 죽어가며 내 양분이 되었다.

“어? 몇 명 모자란데?”

[‘흑마술Lv.8’ ▶ ‘흑마술Lv.10’]

스물이 넘어야 정상이다.

근데, 셋 정도가 모자라다.

“매혹이 안 통한다 싶었는데, 보통 플레이어가 아니었군요. 두 분 다.”

피웅덩이에서 뱀파이어가 불쑥 솟아나며 모습을 드러냈다.

옷은 어디로 가고, 왜 벌거벗은 모습인 걸까.

“흐흐.”

내 생각대로, 놈은 좆이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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