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242화 (207/681)

〈 242화 〉

#67. 독자 김진우.

정액을 먹이면 반에 반쪽짜리 회귀를 한다.

기억을 전송받을 뿐, 회귀라는 사실은 인지 못하는 회귀 아닌 회귀.

하지만 그 설정이 강화가 됐다.

어쩌면 원래부터 있었는데,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일 수도.

‘좆 됐네….’

내 정자로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시점이 회귀 포인트가 된다.

독심술로 샐리의 생각을 읽어서 알아낸 정보였다.

그 말은 즉, 오리히메와 샐리의 스타팅 포인트가 다르다는 의미.

시간상 하루에서 이틀 정도 차이가 난다.

“성자님, 너무 좋았어요.”

“그래, 푸시 여신에 대해 궁금하면 또 찾아오고.”

“넵!”

샐리를 돌려보냈다.

덕분에 이런 설정을 알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샐리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지켜보다가 내 방으로 올라갔다.

건물 복도에는 다양한 종족의 남성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내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갔다.

3층까지 올라가는 게 존나 귀찮았다.

내 침대 맞은편에, 처음 보는 남자가 누워 있었다.

훤히 드러낸 상반신은 힘의 상징인 근육으로 가득했다.

위협적인 용문신도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그쪽이 오늘 들어온 신입이야?”

남자는 태연하게 반말을 지껄였다.

거만한 자세로, 겁을 꽤나 상실한 듯싶다.

“그런데?”

“새롭게 들어왔으니까, 이제 잘 지내보자고.”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라버리는 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크리스티나의 영역이 아니었다면, 단번에 잘라버렸을 것이다.

아래층에선 그렇게 살아왔다.

애초에 ‘방’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자는 중에 기습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런 기숙사 같은 숙소는 보안 측면에서 쓰레기 수준에 가깝다.

‘차라리 오리히메의 노예수용소가 낫지.’

감옥이지만 독방이라서 훨씬 안전하다.

“그래.”

일을 벌여도 나중에 벌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놈을 내버려 두고, 보스몬스터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손을 마주잡았다.

남자와 악수하는 느낌, 최악에 가까웠다.

내 손을 자르든 놈의 손을 자르든, 뭐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었다.

탁-.

놈의 손을 밀치듯 뿌리치고, 내 침대로 가 누웠다.

허름한 침대가 삐걱,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

놈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무슨 짓을 꾸미진 못할 것이다.

이곳은 크리스티나의 영역이고, 크리스티나는 범죄자에 대해 엄벌을 가하니까.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냄새나는 남자와 같은 방에서 잘 수는 없지.

할 일 없는 그림자정령과 나를 바꿔칠 거다.

이곳에서 자는 건 그림자정령, 나는 바깥에 나가….

‘유다희 방이나 가볼까?’

안 걸릴 자신 있다.

마력운용을 이용해 나를 숨기면 된다.

나에겐 이제까지 써먹지 않은 ‘보호색’ 스킬 또한 있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 코볼트에게서 전해 받은 스킬….

쓸 때가 왔다.

“…….”

방안에선 삭막한 공기가 흘렀다.

놈도 나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 말이 없기도 한데, 따로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 슬쩍 일어나 방 화장실에서 그림자정령과 바꿔치기.

그림자정령은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말로 하지 않아도 의사전달이 가능했다.

‘그냥 여기서 얌전히 있으면 돼. 오케이?’

그림자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자정령을 내 침대로 돌려보내고, 마력을 퍼뜨렸다.

마력장막은 투명하게 펼쳐져, 문신남의 감각을 기만했다.

끼익-.

문을 열고 나왔다.

완벽한 탈출, 그림자정령이 내 알리바이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보호색을 발동한 채 건물 밖으로 나갔다.

몇몇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서로 모르는 사이니 괜찮다.

그대로 여자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아파트 단지처럼 남성 숙소 구역과 좀 떨어져 있었다.

“…….”

심장 떨린다.

마력운용으로 은신하고 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 말라는 거 할 때가 제일 꼴리는 법이지.’

꼴리고 떨리고.

그렇게 여자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로비와 휴게실이 갖추어져 있다.

남자 숙소보다 조금 더 화사한 분위기여서 색달랐다.

유다희가 몇 층에 있을지, 감으로 찍어야 한다.

잘못 들어가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다.

‘느낌이 와.’

유다희의 위치가 느껴진다.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듯 자지가 유다희를 찾아간다.

2층, 계단 바로 옆에 있는 방에 섰다.

문 앞에 서니까 확신이 더 강해졌다.

무조건이다.

‘들키지도 않았어.’

여자 플레이어들을 마주쳤지만, 그녀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허접했다.

내가 옆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보호색과 마력운용, 환상적이다.

나는 문 주변의 소음을 숨겼다.

마력을 이용하면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끼익-.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위에 누가 있든 방안에 누가 있든, 내가 여기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왔어?”

유다희 빼고.

유다희는 검은색 네글리제 속옷만 걸친 채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뽀얀 살결, 유려한 굴곡을 자랑했다.

“룸메이트는 재워놨어.”

유다희의 고개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는 여자에게로 향한다.

어떻게 재운 건지, 묻지 않았다.

‘가호 효과가 무슨….’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가호.

소름 끼칠 정도로 성능이 엄청났다.

나는 보호색을 풀고 유다희에게 다가갔다.

유다희는 평소와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뭐야?”

평소라면, 침대 위로 가도 모자라지 않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몸을 섞어도 자연스러운 관계였다.

“…….”

딱히 이유는 없다.

심심하니까, 같이 자고 싶기도 했고.

여성 숙소에서 장난치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냥 자러 온 거야?”

“…어, 음….”

“하아….”

유다희는 앞에 앉으라며 침대를 툭툭 두드렸다.

무언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는 듯했다.

“진우.”

유다희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장난기 하나 없이 담백한 표정, 유다희의 미모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떨리네.’

가슴이 마구 떨리고 있었다.

일탈 할 때의 떨림이 아니었다.

긴장, 유다희를 앞에 두고 긴장이 됐다.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보스몬스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물어보고…. 이래저래 알아봤단 말이야.”

“아.”

유다희는 보스몬스터 공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한 공략이 아니라 낯선 경험을 했으니까.

다음번을 위해 더욱 주의하려 했다.

“도전의 방은 도전자들의 평균을 매겨 도전과제를 던져준대. 거기까지는 알고 있지?”

고개를 끄덕였다.

4층 보스몬스터에 대해 물어보면, 엘레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답변이다.

“그런데 나랑 너 그리고 오리히메, 셋이서 들어갔을 때…. 그, 내가 소환됐잖아?”

“그랬지.”

“내가 소환됐는데, 처음 보는 모습이었단 말이지. 인상도 훨씬 사납고 장비도…. 썩 좋아보이진 않았어.”

나야 소다희에게 반항도 못하고 썰렸지만, 유다희는 제법 관찰할 시간이 있었을 거다.

‘존나 세니까.’

소환된 소다희의 무력은 셋의 평균.

그러나 오리히메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 결과로, 딱 한 가지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다.

현재 유다희의 힘은 상상이상이라는 것.

도저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원작 소설의 성장속도보다 월등히 빨랐다.

회귀 횟수도 적고 수련한 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데, 원작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분명 나인데, 나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려워. 그게 과연 내가 맞을까? 하필이면, 내가 소환된 이유가 뭘까?”

“셋의 평균….”

“평균, 그 말이 이상하더라고.”

유다희는 물로 입안을 적시고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잠깐 생긴 적막에, 나는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는 게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평균, 평균…. 그래, 보스몬스터의 무력이 셋의 평균으로 설정됐지. 다들 그렇게 말해주더라고. 그걸로 보스몬스터의 무력은 설명이 되잖아.”

“…….”

“그런데, 왜 내가 소환된 걸까? 우리 셋 중에, 하필이면 내가 나타난 이유는 뭐야?”

유다희의 의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뇌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신이 유다희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런 병신 같은 가설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가설에 대한 근거도 보잘 것 없다.

누군지 모를 존재가 유다희만 따로 구분해서 소다희의 섹스일기를 보여준 것.

그게 내가 세운 가설의 유일한 근거인데, 말하기가 애매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기 자신이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대. 본 적도 들은 적도…. 도전의 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들 ‘도전’해야 할 존재를 만나게 된다네?”

“…….”

드워프는 드래곤을, 다크엘프는 세계수를, 수인은 노예사냥꾼, 마족은 용사 일행을….

보통 적대적인 세력의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마주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도 그랬다.

소다희는 끊임없이 도전했고, 매번 새로운 인형을 만났다.

소다희가 강해질수록 인형도 강해졌지만, 결국에는 가볍게 쳐부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많은 레이드 중에서, 소다희 본인을 마주하는 경우는 없었다.

“계속해서 생각을 해봤어. 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봤지. 꽤 충격이었거든. 네 시체를 보는 게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서…. 그냥….”

“…….”

유다희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설을 세웠다.

가면남을 잡을 때처럼, 근거를 하나하나 모았다.

“일단은, 보스몬스터의 모습이 누군가의 승리욕구 때문에 형성된다고 가정해봤어. ‘도전’이란 게 그런 거잖아? 이겨내기 위해 해야 하는 게 ‘도전’이니까.”

“…….”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소환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오리히메가 있었으니까.”

오리히메의 승리욕구가 투영됐다, 그런 설정으로 납득이 가능했다.

“근데 약간 부족해.”

“뭐가?”

“소환된 내 모습이 난생 처음 보는 차림이었잖아.”

유다희가 팔짱을 꼈다.

골똘히 생각을 하느라,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어떤 표정이든 마냥 예쁘게 보였다.

“오리히메의 승리욕구 때문이라면, 좀 더 익숙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을까? 내가 입고 있던 장비가 더 어울렸을 텐데.”

유다희는 말했다.

보스몬스터 도전의 방을 겪고 나온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그리 낯설지 않은 모습의 상대가 나왔다고.

“익숙한 적이 나왔다고 했어. 크리스티나 씨는 잘못된 길에 들어선 소꿉친구, 엘레나 씨는 플루토라는 흑마술사…. 전부 알고 있는 적이었다고.”

그, 알싸한 감각이 목 끝에서 맴돌았다.

의외로 익숙한 감각, 언제 느껴봤는지 가물가물하지만, 낯설지 않았다.

“그럼 소환된 ‘나’는 누구의 욕구로 형성된 거지?”

유다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추궁하는 듯한, 노골적인 눈빛이었다.

섹스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런가.

다행히도, 내 불알을 인질로 잡히진 않았다.

“도대체 뭘까? 남들은 들은 적도 없는 현상을 겪고, 이상한 경험을 하고…. 그런데 도통 원인이 보이질 않아….”

“…….”

“그럴 때면 난 옆을 봐. 뭔가 이상한 일이 터질 때마다 원인이 하나뿐이었잖아.”

“…저요?”

회귀의 굴레에 직접 휘말리기 전까지는 회귀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힘들다.

내 스스로 내린 선택이, 사실은 회귀자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는 데, 그걸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활자에 불과한 소설 아래에 거대한 세계가 존재했고, 그 세계관 안에 본인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누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유다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 때문에, 온갖 기괴한 것들을 지켜봤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추론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끼워 맞추기야. 지금이다 싶어서, 묻고 싶은 질문을 그럴싸하게 꾸미는 것뿐이지.”

“…….”

“이 세상에는 회귀자가 있어. 회귀자는 시간을 되돌린다고. 말이 되니?”

유다희가 슬그머니 내 옆에 앉았다.

삐걱-.

허접한 침대가 요란하게 들썩였다.

“회귀를 깨닫고 나서, 착각을 많이 했어.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뭐 그런…. 자의식 과잉이지.”

“…….”

“그런데 말이야. 조금만 판을 키워봐.”

유다희가 실실 웃었다.

“회귀자가 있는데, 다른 존재가 없을까? 더 굉장한…. 회귀자 위에서 노는 초월적인 존재 말이야. ‘투쟁의 탑’을 만든 ‘신’이란 존재도 있다고 하잖아. 본 적은 없지만.”

“…….”

“그런 대단한 존재가 너라고 생각하면, 네 기행들을 설명할 수 있어. 보스몬스터 ‘도전의 방’에 소환된 ‘나’도….”

“…오….”

“회귀자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디선가 존재하는 ‘나’를 보고 온 게 아닐까?”

변명, 변명거리를….

“…진우야, 간파의 가호 써도 되지?”

“…….”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거에라도 기대야겠어.”

“…….”

“너, 도대체 뭐야?”

유다희의 눈 위로, 새파란 기운이 넘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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