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90. 빛의 신, 김진우(1)
키리스와 놀아주고 복귀했다.
발그레 달아오른 얼굴은 사랑에라도 빠진 것 같았다.
‘쯥….’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까.
키리스가 헤프다는 건 아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모종의 기운 때문이겠지.
원작 속 주인공인 유다희에게만 향하던 무조건적 호의.
주인공 버프.
왜 내가 이런 상황인지 대강은 알겠지만, 썩 달갑지 않았다.
이리 저리 따먹고 다니는 게 수월해졌어도, 관계가 깊어졌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어서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가?’
강간으로 시작해놓고 감정교류 따위를 바라다니, 분명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리 생각하니까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미친 새끼도 이런 미친 새끼가 없구나.
바라는 게 너무 많았다.
‘만족할 줄 알아야지.’
여복에 겨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엘레나.”
유다희와 엘레나가 여관에서 기다리고 있다.
한바탕 치른 후에, 잠깐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단다.
“…그, 상의한 건에 대해선 이번에 말고 나중에 해요. 엘레나 씨.”
“알겠습니다.”
유다희가 엘레나의 귓가에 속닥거렸고,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서 무슨 회의라도 한 듯한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유다희는 한 차례 주의를 준 후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엘레나의 손에 이끌려 다른 방으로 향했다.
“엘레나, 성과는 있었어?”
“당연하지. 회귀 덕분에 위험부담이 없어서,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어.”
엘레나는 자신감이 넘쳤다.
죽음을 무릅쓸 수 있게 되었으니,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옛날이었으면 죽음이 두려워 도전하지 않을 전투도 치르고 하니까.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8층은?”
“8층은 무리야. 나 혼자서 올라갈 순 없잖아.”
7층을 공략하는 건 엘레나 뿐만이 아니다.
7층에서 머물면서 최전선에서 사냥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
그들의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8층으로 넘어갈 수 있다.
물론, 실질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유다희든 소다희든, 7층에 도달할 때쯤에는 회귀자가 그들보다 훨씬 강해져있다.
“그래도 곧 있으면 8층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
“어?”
“…다희 님이 있잖아.”
엘레나가 유다희를 흘겨봤다.
“7층으로 올라와도 손색이 없어. 대련을 해봤는데 나한테 밀리지 않아.”
“…진짜? 그 정도라고?”
“회귀자니까, 평균 레벨보다 높게 판단하는 게 맞지. 죽음의 공포가 없다는 건 엄청난 이점이니…. 동 수준의 플레이어와 검을 마주했을 때, 마음가짐의 차이 때문에 질 수가 없어. 전체적으로 7층에서 활동해도 좋을 정도야.”
엘레나는 엘레나 나름 평가를 내렸다.
그 평가가 내 생각보다 후하다는 게 문제였다.
‘클리어 직전이란 소린데.’
당장 유다희 먼저 올려 보내면, 내가 7층 땅을 밟기도 전에 클리어 될 지도 모른다.
진짜 5층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신’의 존재에 대해 몰랐다면 ‘투쟁의 탑’ 등반을 포기했을 것 같다.
‘어떻게든 따먹는다.’
내 소원은 ‘신’을 범하는 것.
플레이어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 강간범의 정점이 되겠다.
“…….”
엘레나가 내게 다가왔다.
오늘 올라가지 않고 머뭇거리는 이유.
내게 볼일이 있는 것이다.
그 볼일은 다른 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자지에 인사하고 따먹기 위해.
“…옷 벗겨도 될까?”
“뭐, 마음대로.”
엘레나의 손길에 내 몸을 맡겼다.
알아서 내 옷을 벗기고 자지에 손을 얹었다.
이제까지 계속 싸질렀건만.
내 자지는 여전히 발기하고 있었다.
이거 하나만큼은 좋았다.
비록 스킬의 효과일지라도, 몸뚱어리가 들끓는 성욕을 뒤따라주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엘레나도 옷을 벗었다.
절그럭거리는 갑옷을 해제하고 아름다운 나신을 드러냈다.
탄탄한 몸매를 보니 자지가 더욱 단단해지는 기분이다.
분홍빛 젖꼭지에서 새하얀 모유가 주륵, 커다란 젖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직 아무 짓도 안했는데, 모유가 이렇게 많이 나와?”
“…7층에 동료가 있거든. 걔가 젖 물리는 모습을 보기만 하다 보니까….”
“오옹….”
“…목마르지 않아? 아앙…!”
쮸읍, 쮸읍-.
엘레나의 품안에 안겨 젖가슴을 물고 빨았다.
엘레나는 나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자지를 훑어주는 엘레나의 손길에, 나는 그만 위아래로 울부짖고 말았다.
엘레나와 뒹구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엘레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내 자지 냄새가 그리 좋나?
의문이 들 정도로, 마약이라도 흡입하듯 숨을 마셔댔다.
내가 엉덩이를 뒤로 빼려하자, 내 허리를 힘으로 붙잡아 얼굴을 문질렀고.
얼떨결에 발기한 채로 싸지도 못하고 자지를 대여해주었다.
덕분일까.
다음날, 엘레나는 스트레스가 확 해소된 듯 해맑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다음은 꽤 오래 걸릴 거야.”
“왜?”
우리엘 때문에 갑작스레 회귀하게 된 것이라서, 다음 회귀까지는 꽤 걸릴 거란 말도 전했다.
“…참으면 되지.”
엘레나는 참을 자신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참을수록 만났을 때, 더 기분이 좋거든. 뭔가 더 애틋하고….”
“그래?”
“응. 근데 그래도, 매일 붙어 있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기는 해.”
“…….”
“정 못 참겠다 싶으면 그냥 내려오면 돼. 끝까지 위에 있을 필요는 없잖아, 그치?”
“그것도 맞는 말이네.”
엘레나를 올려 보냈다.
선물이랍시고 제 젖을 짜놓고 갔다.
“…….”
젖병이 따뜻한 것을 보니, 방금 전에 열심히 짜낸 듯했다.
나는 그것을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나왔다.
제1고리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가자!”
마수림을 거쳐 제1고리에 도착했다.
마수 따위는 유다희가 단숨에 베어버렸다.
지금 내 수준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무예여서, 그리 대단하게 보이진 않았다.
절대 질투라거나 추잡한 열등감이 아니다.
제1고리, 케라우노스와의 추억이 인상 깊은 구역.
유다희 때문에 최악의 죽음을 맞이한 유피텔은 과연, 다시 유다희에게 찝쩍거릴 수 있을까.
“바로 마왕성으로 갈래? 어제 쉬었는데 또 쉬면 조금 그렇잖아.”
유다희는 정론을 펼쳤다.
굳이 오늘 또 쉬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다 박아주기도 했고, 더 이상의 휴식은 필요 없었다.
당당하게 마왕성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여러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하지만 의미는 없는 사람들.
회귀자가 클리어 하는 순간은 그녀가 5층에 올라온 직후의 시점이 된다.
마지막에 ‘신’을 마주한 유다희가 다시 한 번 회귀를 결심하고, 5층에서부터 10층까지 한 시간도 안 되어 돌파한다.
모든 플레이어들의 생활이 부질없어 지는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주인공과 엑스트라의 대우가 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왕성에 돌입.
음침한 마기가 전신을 감싼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몸이 가벼웠다.
‘신성력이 좋긴 하네.’
마기에 한정해서만큼은 최강의 힘이다.
자지에 봉인되어 있던 신성력이 해방되면서, 나는 진짜 성기사에 한 발 다가선 상태였다.
마왕성의 마기?
내겐 우스울 따름.
─ 절대 보낼 수 없다!
듀라한 중간보스를 단번에 썰어버렸다.
한 번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유다희가 먼저 나서서 정리했다.
‘대단하네….’
엘레나가 인정했다.
유다희는 7층에서 활동해도 된다고.
약간 무리는 있겠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유다희가 ‘투쟁의 탑’에 소환된 지 1년도 안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엄청난 성장속도다.
‘도대체 나에 관련된 가호가 뭐야?’
아마도 내가 모르는 가호일 것이다.
그 가호를 통해, 유다희는 소다희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성격이며 잠재력이며, 완전히 다른….
‘…….’
2층으로 올라갔다.
마기가 훨씬 짙어졌다.
그래도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도플갱어가 나와, 알고 있지?”
유다희는 2층에 올라오자마자 제안을 했다.
“도플갱어와 우리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암호가 필요해.”
초반부에는 필요가 없다.
도플갱어가 정확하게 분리된 상태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왕성 2층의 쉼터를 지나 더 깊게 들어가면 도플갱어들이 애매모호하게 등장하기 시작한다.
함정 따위도 많아져서 파티가 잘게 쪼개지기도 하는데, 쉼터 이후로는 암호가 필수적이게 된다.
“쉬운 암호는 도플갱어도 아는 거 알지?”
“우리만 알 수 있는 걸로 생각해두면 돼. 예를 들면….”
유다희가 씨익 웃었다.
“회귀, 라든가.”
우리만의 암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있었다.
‘회귀.’
다른 이들은 회귀를 인지할 수도 없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시스템’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대뜸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이 회귀자라고 말한다 생각해봐라.
믿을 수 있을까?
절대 믿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이 세상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회귀자가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암호는 따로 생각할 것도 없었네.”
모두가 회귀자인 파티라서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각자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쉼터를 향해 나아갔다.
“얼마나 머물 생각이에요, 주인님?”
“모르겠는데….”
어떤 상황에서든지 3개월은 거뜬히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인벤토리에 챙겨두고 다닌다.
그런 상황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고, 이것저것 찾으러 다니기가 귀찮아서 한 번에 구비해놓았다.
“후응….”
티타니아는 교태 섞인 숨결을 훅 내쉬며, 내 뒤에서 속삭였다.
“그러면 쉼터에 들어가서, 쿠폰 써도 돼요?”
“…….”
“주인님 자지 이용권, 아직 구십 장 넘게 남았어요.”
음탕하기 짝이 없는 명칭, 자지 이용권.
실패하리라 생각하고 내걸었던 보상인데….
티타니아는 그 보상을 쟁취해냈고, 제 맘대로 써재끼며 즐겨댔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내 자지를 가지고 놀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김진우,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야?”
그 때였다.
아이실리아가 티타니아를 밀어내며 내 뒤에 붙었다.
유다희가 앞장서서 걷고 있는 지금, 내 등은 내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왜 얘한테만 자지 이용권 주고, 나는 안 줘?”
“그건….”
“나도 자지 이용권 줘. 이용권 해줘! 고추 이용권, 아빠 고추 이용권!”
“지랄….”
뒤에서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실리아.
은근슬쩍 내 바지춤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흐잇…!”
차가운 손이 허리를 넘어 엉덩이까지 훅 들어오자, 찬물에 들어온 것처럼 불알이 쪼그라졌다.
“너, 너도 나중에 내기에서 이기면 줄게.”
“내기?”
“…….”
아이실리아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유다희가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눈치 챈 것 같은데.
“아휴…. 이용권 같은 거 뿌리면서 노는 거야? 가지가지 하네, 김진우.”
“…….”
쉼터에 도착했다.
* * *
“시간을…. 거슬렀어?”
우리엘은 탁자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바라봤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있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어!”
유피텔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데도, 우리엘은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이전 회차의 기억이 있다는 것.
회귀라는 것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 우리엘이여.
─ 나의 전사, 우리엘이여….
─ 나의 성스러운 전사, 우리엘 브릴리언스.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 다음에 만나게 될 때에 다시, 네가 나를 일깨워 주었으면 하는구나….
김진우에게서 익숙한 느낌이 풍겼다.
묵직하고 경건한 목소리, 분명 빛의 신이었다.
우리엘을 보듬어주었을 때, 계시를 내려주었을 때, 정화에 대해 명했을 때.
그 때마다 마주했던 빛의 신.
그의 존재가 김진우에게서 느껴졌다.
‘빛의 신이시여, 마지막에 남기신 말씀은 도대체….’
김진우, 빛의 신은 말했다.
다음에 만나게 될 때에는, 다시 자신을 깨워달라고.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는 것처럼….
‘설마….’
우리엘은 김진우를 떠올렸다.
그가 지닌 근원이 떠올랐다.
자신의 눈으로도 가늠할 수 없던 그 깊이.
빛의 신이 봉인되어 있는 몸이라 생각하니 설명이 된다.
이해할 수 있다.
‘빛의 신이시여, 설마 그 자의 몸에 잠들어계신 겁니까.’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봉인해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부탁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