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417화 (382/681)

〈 417화 〉 #111. 회귀자(2).

#111. 회귀자.

‘신’이 여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라는 인칭대명사를 통해 진즉에 알아차렸다.

하지만, ‘신’이 소다희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소설 속 유다희가 소원을 말하면서 소설은 끝이 나니까.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지. 유다희가 소원을 빌고 끝나는 게 맞나?’

에필로그가 올라오지도 않았다.

에필로그를 읽기 전에, 나는 ‘투쟁의 탑’에 소환됐다.

전역 당일 위병소를 나서기도 전의 이야기다.

‘유다희가 ‘신’을 향해 소원을 말하려다가 끝나.’

10층의 구조를 파악한 유다희.

단호하게 회귀를 결심하고 법규를 날리며 회귀한다.

그리고 홀로 ‘투쟁의 탑’을 오른다.

9층을 돌파한 이후, 유다희 앞에는 신이 나타나고.

유다희가 소원을 말한다.

입이 벌어지고 말을 뱉으려는 찰나에, 이 소설은 끝이 난다.

그 장면에서 선명하게 떠오른 完을 아직도 기억한다.

작가는 나에게 유다희의 소원을 알려주지 않았다.

‘…겁에 질릴 만하네.’

다희의 선택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신’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소다희를 보고, 다희는 이 이야기를 소설의 연장선이라 생각한 것이다.

나조차도 이런 의심을 할 정도인데, 처음 진실을 마주한 다희는 어땠을까.

‘그렇다고 해도, 어쩌라고.’

내가 서있는 이곳이 소설 속일 리가 없다.

엄연한 현실.

나로 인해 세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는 않지만, ‘신’이라 자칭한 소다희가 자신하지 않았는가.

나만 있으면 세상을 멀쩡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소다희 본인의 소멸도 걸려있는데, 농담할 리 없지.’

나는 이곳에 남고 싶다.

떠날 생각이 없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니까.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거다.

다희의 말대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하등 쓸모가 없다 해도 말이다.

나는 다희를 흘겨봤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당황하지 않고, 소다희를 겨누고 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이제는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애매하던 부분이 완전히 풀렸다.

이야기 전개를 멈추고 이야기 밖으로 내쫓으면, 이야기가 끝나 소멸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다희는 0.1퍼센트도 채 안 되는 불확실성에 겁을 먹고 외면했다.

100퍼센트의 확실한 방법을 선택했다.

그 대가가 자신의 목숨과 하나의 세계 그 자체라고 해도.

‘…하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남으려는 것과 다희가 무작정 나를 돌려보내려는 것.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는 짓들이었다.

‘뭐, 상관없어.’

이미 싸지른 게 너무 많다.

이제 와서 도망치기엔 정 들어버렸다.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평범한 삶을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주인공 역할만 하던 배우에게 엑스트라 역할을 맡으라고 하면, 누가 흔쾌히 맡을 수 있을까.

그것도 업계에서 톱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배우에게 말이다.

‘추락하고 난 이후라면 몰라도.’

나는 하늘을 날고 있다.

날개는 멀쩡하고, 추락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스스로 내려갈 이유가 없다.

“유다희…. ‘신’이 유다희였구나.”

“의외로 빨리 왔네. 김진우.”

소다희가 다리를 꼬았다.

도발적인 몸짓에 자지가 불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설 속 내용이 스쳐지나간다.

여자주인공이라는 후광 아래에서 벌이고 다녔던 행적들이 떠올랐다.

“씹걸레년.”

“?”

“아, 미안. 나도 모르게.”

소다희를 보며 실수로 진심을 내뱉고 말았다.

다희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똑같은 얼굴.

쌍둥이라 해도, 이 정도로 닮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보지도 똑같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호의 생보지와 인공보지를 비교하며 맛보았던 그 때의 경험이 파블로프의 개 마냥 내 자지를 발기시켰다.

수많은 남자를 따먹고 길들이며 돌아다닌 소다희, 나 때문에 다른 남자랑은 손도 못 잡아본 유다희.

두 보지를 비교 해보고 싶다…!

원래부터 ‘신’을 강간할 생각이었지만, 그 욕망이 더욱 불타오른다.

“…소설 속에서 있었던 내용이 계속 이어지고 있을 줄이야.”

나는 말을 돌렸다.

걸레라는 말에 구겨졌던 소다희의 얼굴이 펴질 생각을 않았다.

“…진짜 존나 너무하네. 보자마자 걸레라고나 하고….”

“…쏘리.”

“나, ‘신’이 되고 난 이후로 한 판도 못 했어. 계속 여기에 갇혀서 너네만 보고 있었다고.”

“…….”

“쟤가 나랑 똑같은 얼굴로 섹스 하는 거 보면서, 이걸로…. 이걸로 자위만 했단 말이야. 신좌가 얼마나 외로운 데….”

소다희는 품에서 딜도를 몇 개 꺼냈다.

크기가 각양각색이었다.

“…이게 뭔지 알아?”

“…뭔데.”

“김진우 어린 시절 사이즈야. 애기고추.”

“……?”

소다희가 딜도들을 보여주며 자랑하듯 말했다.

실물과 거의 흡사하다.

진짜 자지를 잘라서 박제한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건 막 2차 성징 시작했을 무렵…. 이건 다 큰 어른이 됐을 때인데, 생긴 거랑 다르게 존나 크고 딱딱하더라? 이게 제일 좋았어.”

따봉.

소다희는 엄지를 척 세워보였다.

내 자지를 칭찬해준 것이다.

“그리고 이건 신성력으로 자지 구조가 완전히 달라졌을 때….”

“그만!”

“나, 너희가 올라오는 동안 다른 남자 안 만났어. 너밖에 없다고, 김진우.”

주절주절 설명하는 소다희를, 다희가 막았다.

어째선지 시뻘게진 얼굴로 소다희를 노려보고 있었다.

“빨리…. 이제 진우를 돌려보내.”

“김진우가 소원을 빌어야 보내주지.”

다희의 말에, 소다희는 느긋하게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소원, 생각 해뒀어?”

마나의 맹세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곁에 서있는 다희가 소원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이대로 집에 갈 수 없다.

갈 생각도 없었지만.

‘갈 땐 가더라도, 소다희는 따먹고 가야지.’

진짜 소설 속 여자주인공이다.

프롤로그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숙한 여주가 아닌, 구를 만큼 구르고 에필로그에 도달하고만 여주.

“다희야, 유다희랑 한 번만 해봐도 돼?”

“뭐? 말을 좀…. 내 이름 쓰지 마.”

“유다희를 유다희라고 부르는데, 왜?”

다희가 인상을 찡그렸다.

돌아가지 않고 버티는 내 모습에, 짜증을 냈다.

“빨리 돌아가, 그냥! 네가 이럴수록 미련만 생겨. 제발, 제발 돌아가 줘…. 부탁이야.”

마나의 맹세가 빛을 뿜어댔다.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김진우, 가만히 있어.”

소다희는 다희를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계약서를 쓸 때에도 꼼꼼하게 확인해보고 쓰는데, 마나의 맹세는 더 확인을 했어야지. 아무리 급해도 그냥 사인해버리면 쓰나.”

“……?”

마나의 맹세가 깨졌다.

내 스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조건을 만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나의 맹세가 깨졌잖아. 그러면 진우는 내 말을….”

“그렇지. 내 말을 들어야지.”

다희가 제 손목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마나의 맹세는 이미 사라졌고, 이제 남은 것은 내가 대가를 치르는 것뿐.

“내 말을…. 진우야?”

“어.”

“집으로, 소원을 빌어. 돌려보내달라고….”

나는 유다희의 말을 따라야 한다.

마나의 맹세로 인해 부여된 벌이라서, 거부할 수가 없다.

다희는 확실한 조건을 내걸고 몸을 허락해준 것이다.

하지만, 그 조건이 유야무야 돼버렸다.

“아무런 느낌도 없네? 뭐여, 이거.”

“끄하하하핰.”

소다희는 다희를 향해 웃음을 터트렸다.

“바보야? 진짜 바보인 거 아니야? 유다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라는 항목을 보고도 왜 수정을 안 해?”

“……!”

“내가 유다희인 거 알고 있었잖아. 김진우는 몰랐지만, 유다희 너는 생각해볼 수 있는 변수 아닌가?”

“…….”

“너희들끼리 소다희, 소다희, 그렇게 부르니까…. 내가 진짜 소다희라고 생각한 거야? 아니면 은연중에 살고 싶었던 건가? 김진우가 죽을 수 있는 확률을 외면하고?”

“아니야! 나는, 진우를 살리고 싶어서….”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전개다.

‘유다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몸이 된다, 라는 대가를 ‘신’의 힘이 아닌 조건 만족으로 파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유다희야. 김진우가 읽은 소설 속 여자주인공, 회귀자 유다희라고.”

몸이 반응한다.

마나의 맹세가 새겨둔 대가를 이행하라는 듯 몸이 반응했다.

“유다희. 아니, 아니지. 너희가 나를 부르던 대로 똑같이 말해줄게.”

“…이게 왜, 이렇게…. 말이 안 되잖아. 진우는 분명히 나랑 마나의 맹세를….”

“네가 너라는 증거가 있어? 같은 공간에, 같은 존재가 둘이나 있는데. 마나의 맹세가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당사자의 인식에 맡기는 거지.”

“당사자의 인식?”

“김진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소다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다희는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희와 함께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어도, 내 머리는 소다희가 유다희라고 인식하는 듯했다.

비록 소설이었지만,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했으니까.

“내가 소다희를 진짜 유다희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금방 이해하네.”

소다희는 키득키득 웃어댔다.

다희를 비웃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마나의 맹세가 원래부터 개좆같은 거 몰랐어? 크흐흐,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프롤로그도 아니고 말이야.”

해석하기 나름이다.

나도 마나의 맹세를 요긴하게 써먹고 다녔으니까.

이런 결과가 나와도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야, 짭다희.”

소다희가 다희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짭다희.

가짜 유다희, 라고 불렀다.

다희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전부 다 가짜야. 알고 있지? 김진우가 왜 너를 도운 건지, 모르는 건 아니잖아. 그치?”

“…아니야.”

“나의 이야기를 읽고 왔어. 내가 겪은 이야기를 보며, 나와 함께 ‘투쟁의 탑’을 올랐어. 내가 끝까지 오를 수 있게 지탱해줬다고. 네가 뭔데 자꾸, 김진우를 돌려보내니 마니….”

“아니라니까!”

다희가 폭발적으로 뛰쳐나가, 소다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소다희의 손에서 검이 소환됐다.

에센셜 브레이커(9★), 그리고 칠흑 장검(5★)이 맞부딪쳤다.

소다희 쪽이 밀리고 있었다.

“크, 존나 세네. 이게 다 김진우 때문이야. 집착의 가호, 시발!”

다희의 눈이 광기에 젖었다.

나와 관련된 전투를 치를 때, 다희는 능력치에 엄청난 폭의 상승보정을 받는다.

‘신’조차 압도할 정도로.

콰앙-!

“아오, 시발…!”

팔다리가 날아간 소다희는 다희의 발아래에 깔려 욕지거릴 내뱉었다.

소다희를 완전 제압한 다희.

나를 서글프게 바라보며 부탁한다.

“진우야, 어서 집에 가야지. 이대로 남으면, 세계가 무너져서 죽게 될지도 몰라….”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나는 다희의 말을 거부하며 검을 꺼내들었다.

엘레나에게서 받은 칠흑 장검이었다.

다희가 이를 꽉 깨물며 나를 노려본다.

핏물이 입가에서 주륵, 흘러내렸다.

“…너, 나랑 약속한 건….”

순순히 돌아갔다면, 서로 싸울 일도 없는데.

다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주섬주섬 가면도 꺼냈다.

내 의지를 대변하기에, 이것만큼 효과적인 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한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니까.”

이 뒤틀린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

가면을 쓰고 다희를 바라봤다.

“…그래도 난, 내가 직접 아다를 뚫어준 유다희가 훨씬 더 좋다.”

“…….”

“죽게 내버려둘 순 없지.”

칠흑 장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일렁이며 피어나는 검기.

다희의 검 앞에선 보잘 것 없는 검기.

심장이 떨린다.

이제부터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잘 모르겠다.

마나의 맹세가 대가를 치르라며 나를 떠밀고 있다.

포기하고 싶어도, 이 마나의 맹세 때문에 포기할 수 없으리라.

“유다희! 시발 나한테 힘을 줘!”

“이 개 같은 년을 이기고, 애미 시발, 이 세계에 남아! 꽥!”

다희가 소다희의 얼굴을 짓밟고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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