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화 〉 #000.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
#000.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
몇 번이고 회귀를 했다.
언제 멈출지는 따로 정해두지 않았다.
그림자정령을 소환하고 녀석이 내 목을 벤다.
그러면 또 같은 장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실리아, 티타니아, 오리히메.
회귀를 거듭할수록 그녀들의 배가 부풀었다.
육안으로 임신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하게 커져갔다.
그 때, 나는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주인님.”
티타니아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제까지는 회귀하자마자 아이실리아와 오리히메를 데리고 자리를 떴는데.
지금은 말을 걸고 있었다.
‘무언가 달라졌다.’
회귀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다희가 이제 그만하재요.”
항복선언.
다희는 이들을 통해 항복의사를 내게 전달했다.
“다희도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게 된 것 같더라고요. 이제 그만하고 싶대요. 둘이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어요.”
시간은 모두의 것이다.
다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시간의 흐름을 피할 순 없다.
내가 죽어있는 동안, 다희를 겨냥하고 노린 무기가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임신한 사실을 깨달은 직후,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이다.
‘나 때문에 고집을 부리는 거라면, 그 방향을 바꿔주면 돼.’
나를 살리기 위해 세상이고 나발이고 다 버린다?
역으로 바꿔보자.
뱃속에 품은 아기를 위해 세상을 지켜야 한다, 라고.
‘다희가 나를 붙잡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지.’
100% 확률로 나를 살리는 길은 100% 확률로 아기를 죽이는 길이 되었다.
다희는 그 길을 걸을 수 없다.
내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희는 금방 나를 찾아왔다.
죽지 않고 1분 정도 기다렸다.
“…….”
다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겉으로는 티가 안 나는데,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랫배 쪽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 네가 이겼어.”
방 안으로 들어온 다희는 싸울 의사가 없음을 표명했다.
“네가…. 이겼다고.”
눈가에 물기가 그렁그렁 맺혔다.
내 입장에서는 몇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다희나 애들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다희는 내 시체만 봐왔으니까.
속에 담긴 응어리가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품을 열어주었다.
다희에게 품에 안기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아악, 아아아아악!”
다희는 내게 안기지 않았다.
내 머리채를 잡고 쥐어뜯었다.
“이, 이이! 나쁜 놈아! 네가 원하는 대로 되니까, 속이 시원해? 기분 좋아? 아오오!”
진심으로 탈모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워워, 컴다운. 컴다운…!”
“이잌…!”
다희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꽤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한다.
“다희 님?”
다행히, 엘레나가 등장하고 상황이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혹시 모르니까.”
다희는 아이를 낳은 이후에 이야기를 끝내자고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리 말하는 다희의 눈빛에서 불안감이 엿보였다.
터전을 5층 제1고리로 정했다.
내려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내려가지는 않았다.
제1고리 정도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는 정도였다.
안전지역도 있고 인프라도 나름 괜찮았다.
6층, 7층을 제외하면 최고 수준이었다.
5층에서 머물면서 다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끔 등산을 하고 온천에도 들르면서 유유자적 지냈다.
‘신성’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내 자식들, 라이언과 레오나가 나를 찾아오지 못했다.
라이언은 몰라도 레오나는 한 번 보고 싶었는데.
굳이 찾아갈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배가 많이 불렀네. 진짜 뭔가…. 죄책감이 어마어마한데…?”
엘레나를 비롯한 여자들의 배가 만삭에 가까워졌다.
온천여행 당시에 임신한 애들은 출산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내 씨로 임신한 여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스스로가 개새끼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좆을 놀리고 다닌 건지….
“나는 두 달이나 남았네.”
“…얼른 나와야 할 텐데.”
다희도 확실히 임신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보고 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다희야. 나….”
“하아. 또?”
다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자지를 손으로 잡았다.
익숙하게 위아래로 흔들며, 딸딸이를 쳐주었다.
안정기에 접어들면 섹스를 해도 된다고는 하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애가 있잖아.’
임신한 여자의 보지에 박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양심이 그건 아니라며 손짓했다.
내 새끼를 품고 있는 자궁에 삽입할 수는 없었다.
그 정도로 성욕에 지배당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라면 모를까.’
나중에 다른 임산부를 찾아서 해봐야겠다.
꽈악-.
“악, 아앜!”
그런 망상을 하던 중, 다희가 내 불알을 세게 쥐었다.
아주 뜯어버릴 기세로 말이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알았어.”
다희는 손에 힘을 풀고 자지를 훑어주었다.
완전히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상태로, 다희의 손길을 즐겼다.
이런 생활을 하루 종일 반복했다.
엘레나의 젖가슴을 빨고, 아이실리아의 입에 싸고, 티타니아에게 정액을 먹이고, 오리히메 품에 안겨 뒹구는 날들.
이제 곧 자식새끼들에게 빼앗길 자리를, 여한이 남지 않도록 마음껏 즐겨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김진우…. 김진우우우우우!”
“아빠, 아빠. 흡…!”
“하아…. 주인님…! 아파요…!”
“…다들 고생하네요, 서방님.”
거의 동시에, 네 사람의 진통이 시작됐다.
아이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산파를 미리 구해놨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종족이 다른데 같은 날에 나오는구나.’
신기했다.
산파는 여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힘주세요! 아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나만….”
나는 멀리 떨어져서 기다렸다.
고지식한 산파가 남자는 가까이에 있으면 안 된다며 나를 밀어냈었다.
‘가까이서 보고 싶었는데.’
오리히메를 제외하고, 아주 난리굿을 부려댔다.
“응애애애애! 응애!”
“서방님, 저희 아기에요.”
“어, 어.”
오니만의 특징인 건지는 몰라도, 오리히메는 정말 숨풍 낳아버렸다.
산파가 오리히메를 보조하기도 전에 낳아버린 것이다.
덕분에 내 품에는 물기를 닦은 오니 아이가 안겨 있었다.
우렁차게 울어재끼는 녀석을 어찌 해야 할까.
‘잘못하면 부서질 것 같아.’
너무 작고 소중해서 힘을 줄 수가 없다.
쳐다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을까 싶다.
“김진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악!”
엘레나가 포효했다.
고통을 호소하며 나를 불러댔다.
오리히메가 내게 팔을 뻗었다.
“서방님. 라이는 저한테 주시고 가보세요.”
라이, 오리히메가 직접 붙인 아이의 이름이었다.
라이 레도니즈.
나는 아이를 건네주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엘레나에게로 다가갔다.
산파의 만류는 더 이상 소용이 없었다.
“음?”
아이러니하게도 내 자지가 발기하고 말았다.
아이를 낳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는 티타니아가 문제였다.
티타니아 주위로 분홍빛 페로몬이 마구 흩날리고 있었는데, 이곳에 수컷이 나 하나뿐이라서 다행이었다.
“김진우…!”
“그래, 나 여기 있어.”
“너, 때문에…!”
엘레나는 울먹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얼마나 아프면, 천하의 엘레나가 눈물을 머금게 되는 걸까.
“열 명은 낳고 싶다며. 포기할 마음이 생겨?”
“으윽…! 여, 열 명은 무리…. 여, 여덟…! 아아아악!”
엘레나의 꿈이 열에서 여덟로 줄었다.
“아들입니다.”
엘레나가 아이를 낳았다.
근사한 물건을 달고 있었다.
“딸이에요.”
티타니아도 뒤이어서 해냈다.
서큐버스라 그런지, 딸을 낳았다.
“에…?”
마지막으로 아이실리아.
아이실리아는 알을 낳았다.
작은 알을 받은 산파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드래곤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응애애애애애애!”
“하아. 하아….”
“응애애애애애애!”
“어우…”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또 하나의 폭풍이 찾아왔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사방팔방으로 울어재끼기 시작했다.
방 안이 울음소리로 가득 차버렸다.
“아이실리아가 그나마 제일 편하네.”
쩌적-. 쩌적-!
내가 말을 뱉기가 무섭게, 알이 부서지고 아이가 태어났다.
남자 아이였다.
하아아암-.
“미친…!”
푸하아아아-!
아이실리아의 아기는 태어나마자마 브레스를 뿜었다.
덕분에 방이 새하얗게 얼어붙어버렸다.
히끅-.
아기들의 울음이 단번에 뚝 그쳤다.
시간이 흐른다.
키리스와 우리엘도 아이를 낳았다.
키리스는 아이에 대한 애착이 거대했다.
다희보다 아기용품을 더 사놓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리엘은 자신이 낳은 아기를 신처럼 모셨다.
내 ‘신성’을 이어받은 아기라서, 태초부터 격이 남달랐다.
“패륜 아닌가?”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유다희의 차례가 왔다.
“아아악…! 으윽!”
나는 다희의 곁에 붙어 자리를 지켰다.
다희는 내 손을 꽉 잡고서 힘을 주었다.
눈물이 찔끔 맺히고 잠깐 후회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집중.
“응애애애애애!”
아기가 태어나고 다희 품에 안겨진다.
“아들입니다.”
“진혁이…. 진혁아….”
다희가 진혁이를 품에 안고 힘겹게 웃었다.
힘 빠진 미소는 더없이 숭고하게 빛났다.
시간이 더 흘렀다.
아이를 키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애들을 보니, 시간을 붙잡고 싶어졌다.
물론 존나 힘들었지만.
“빠! 빠!”
“으아아아앙!”
푸하아아-!
그나마 얌전한 아이들은 진혁이와 엘런.
다희와 엘레나의 아이.
인간과 엘프라서 다행이었다.
나머지 셋은 종족이 종족인지라 감당이 안 된다.
“하아암…!”
“아이실리아! 또 쏜다!”
“우헤!”
“티타니아! 얘 데리고 가서 교육 좀 시켜!”
특히 티타니아의 딸, 베이비 서큐버스 퀸, 에리리가 답도 없었다.
“에리리? 주인님한테 그런 힘쓰면 못 써요. 떽!”
“듀잉닝?”
“아빠 말이에요, 아빠. 그 힘은 다른 남자한테 쓰는 거예요. 알았죠?”
“우헤!”
에리리는 티타니아의 말을 무시하고 내게 힘을 갈겼다.
분홍빛 페로몬 덕분에 자지가 발기했다.
“…….”
발기한 자지는 옆에 있던 오리히메에게 부탁했다.
오리히메의 아들, 라이는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도 않는다.
또 무언가를 부수고 있으리라.
한숨이 절로 나온다.
“슬슬….”
올라갈 때가 되었다.
콰아앙-!
다희가 9층 보스 몬스터 정령왕을 쓰러뜨렸다.
나 혼자서 혹은 다른 동료들과는 절대 올라올 수 없다.
무조건 다희의 힘이 필요했다.
나는 얌전히 버스에 올라탔다.
“진혁아, 아빠 갔다 올게.”
“우웅?”
품에 안고 있던 진혁이를 다희에게 넘겨주었다.
다희는 자연스럽게 진혁이를 품에 안고 토닥였다.
쪼옥-.
“밖에서…. 밖에서 보자, 다희야.”
“응….”
다희에게 입술을 맞추었다.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나는 진혁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후, 당당하게 포탈로 발을 내디뎠다.
세상이 바뀐다.
[‘투쟁의 탑’을 정복하였습니다.]
둥근 원판 위, 천장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
그 아래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신좌.
[‘신’이 등장합니다.]
“왔어? 좀 오래 걸렸네.”
신다희가 내 뒤에서 속삭였다.
뒤를 돌아보니, 옷차림이 아주 야릇하기 그지없다.
검은색 가터벨트를 하고서 이쪽을 유혹하듯 흘겨본다.
꿀꺽-.
머릿속에 수많은 활자들이 스쳐지나갔다.
신다희가 따먹었던 수많은 남자들, 그들과 벌였던 애정행각, 범접할 수 없는 페티시들까지.
‘할 수 있을까?’
‘신성’도 없이 저 걸레년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자.’
따먹는 게 아니라 따먹히는 게 되더라도.
물러설 순 없다.
나는 신다희에게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도발에 응하듯 옷을 한 겹씩 벗었다.
떨린다.
가슴이 떨린다.
이제까지 보냈던 시간이 떠오른다.
소설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소설 속에 소환되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신다희를 앞에 두고 있으니, 설레는 기분이 든다.
주인공, 내가 읽은 소설의 회귀자, 10년의 시간 동안 나를 즐겁게 해준 여자.
신다희가 도도하게 묻는다.
나는 그런 신다희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소원은?”
“…일단 너부터 따먹고 말하려고.”
“아하.”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소원 따위가 아닌, 소설 속 회귀자였던 그녀를 따먹는 일이었다.
─ 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