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 #002. 유다희(8).
#002. 유다희.
“우으응….”
다희가 내게 안겨온다.
아직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나는 그런 다희를 안아주며 유다혜를 반겼다.
느리게 손을 흔들면서 말이다.
“아오…. 짜증난다, 진짜.”
유다혜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착 달라붙어 있는 우리를, 혐오스런 벌레 바라보듯 바라봤다.
“안 한다며.”
“…….”
“네 입으로, 니들끼리 섹스 안 한다며!”
유다혜는 대낮부터 소리를 빼액 질러댔다.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질펀한 정사의 흔적을 살폈다.
유다희의 다리를 들어 보지를 확인했다.
“나 혼자 집에 두고, 둘이서 잔뜩 해댔잖아.”
희멀건 정액이 잔뜩 흘러내렸다.
자면서 찝찝할 법도 한데, 유다희는 개의치 않고 정액을 품고 있었다.
“설마, 애도 만들었어? 그 잘난 힘으로, 유다희 임신시켰냐고.”
“…….”
유다혜의 물음에, 나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되도록 여자 아이였으면 하고 바라면서 정액을 주입했다.
“네가 일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거고. 유다희가 만들자고 한 거지? 대학교는 어쩌려고?”
“…몰라. 대학생활 안 해도 된다던데…?”
“…….”
유다혜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인상을 팍 쓰고, 다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런 유다혜의 다리를 밀어냈다.
이유 모를 발길질에서 다희를 보호했다.
“야, 유다희. 일어나.”
“아이, 왜 이래?”
“…하.”
다희는 웅얼거리면서도 깨어나지 않았다.
꽤 피곤했는지, 오히려 내 품에 깊숙하게 파고들어와 잠을 청했다.
유다혜가 말했다.
“진짜 존나 뻔뻔하다. 지 계획 도와줬더니 지가 먼저 끝내려고 하네.”
“무슨 계획?”
“넌 아무것도 모르지? 이 년이 무슨 생각으로 대학에 가겠다고 한 건지 말이야.”
“…….”
성질 뻗친 유다혜가 부들부들 떨었다.
반응을 보아 하니, 대학생활이나 사회생활에 대한 제안을 다희가 한 듯했다.
나는 슬쩍 유다혜를 긁었다.
“대학생활 즐기려고 했는데, 다희도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나보지.”
“마음이 바뀌어? 개소리 하지 마. 그 씨발변태년이 무슨….”
“…욕이 좀 지나친데?”
다희를 감싸고 돌았다.
노골적인 차별이라 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몸을 하고 있어도, 유다혜보다는 다희가 더 소중했다.
유다혜가 실소를 흘렸다.
조금만 더 가면, 다희가 꾸미고 있던 계획을 발설할 것 같았다.
“하, 하하….”
유다혜에게 보란 듯이 다희를 안았다.
서로 엉켜있는 모습이 꼴불견이라는 듯 유다혜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조변태새끼들, 쌍으로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마조변태새끼, 들…?”
나는 슬쩍 다희를 흘겼다.
새끼들이라면, 나와 다희를 포함하는 말이다.
앞에 붙은 마조변태가 다희와 어울리는 단어인가.
‘…유다혜는 몰라도, 다희에겐 어울리지.’
네토라레, 네토라세 성향이 개화됐다.
유다혜에게는 없는 성벽 중 하나.
유다혜가 하렘을 허락하는 이유는 이 세상의 유지를 위해서다.
개인의 욕심으로 세계를 멸망시킬 수 없으니, 그냥 무분별한 번식을 용납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다희는 조금 다르다.
‘투쟁의 탑’에서 하렘 때문에 골치가 아팠는지는 몰라도, 다희는 하렘 내부 인원에게 패배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는 네토 성향이 생겼다.
엘레나를 통해 알게 됐는데, 그 성향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그러면 설명이 돼.’
약간 애매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다희의 행동 중 일부를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유다혜를 불러 세웠다.
“…자세히 말해봐.”
“…싫어. 길게 말하기 귀찮아. 그냥…. 네가 생각하고 있는 이유가 맞을 거야. 유다희 취향 알잖아.”
유다혜는 다희의 얼굴을 슥 살펴본 후, 단호하게 정보를 불었다.
그리고 침실을 벗어났다.
코오, 자고 있는 다희가 꼴 보기 싫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다희를 안고서 생각에 잠겼다.
네토 성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희는 그렇고 그런 판을 꾸렸다.
유다혜의 증언이 내 가설을 진실로 바꾸어주었다.
‘…….’
고민을 했다.
다희의 네토 성향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다른 여자와 뒹구는 게 좋을까.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까.
웬만하면 이 차원에서는 씨를 안 뿌릴 생각이었다.
이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도 충분히 홍익인간 김진우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으니까. 이 차원에선 유다혜까지만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희가 ‘투쟁의 탑’에서 생긴 성벽을 현대에까지 끌고 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플레이의 일환으로 써먹을 수 있다.
‘그럼 어제 그 표정은 철벽 치는 거 보고 흥분한 거네?’
다희의 계획을 눈치 채고, 이소영의 용도를 알게 되니, 어제 다희가 보여줬던 미소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만족스러운 듯 은은하게 피어난 승리자의 웃음.
네토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서로 좋아하는 감정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연인이 다른 이성과 관계를 맺는 장면에서, 일시적으로 패배감을 맛보고 쾌락을 느낄 뿐이다.
마음까지 넘어가게 되면 더 이상 쾌감이 아니게 되겠지만.
쾌감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어제 다희는 원초적인 성욕이 아닌 정신적 교감에서 흥분을 느꼈다는 말이다.
믿음에 대한 보답 같은 느낌일까.
정신적 교감의 질은 내가 이제까지 해온 행동에 비례해서 커진다.
싸가지 없는 새끼가 한 번 공손하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늘 예의바르던 사람이 한 번 화내면 왜 저러는 거냐는 듯 쳐다보듯이.
지랄 염병 하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내 손에 몸을 비비면 뿌듯해지듯이.
‘투쟁의 탑’에서 말 그대로 좆을 휘두르고 다녔으니까.
그만큼 내가 보인 단호한 철벽이 다희에게 묵직한 충격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쓰읍…. 이걸 어쩐다.’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인 판을 만들 정도라면, 네토 플레이를 어느 정도 원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다희 스스로가 나를 다른 여자에게 떠넘기고, 그 장면이나 상황을 통해 성욕을 해소하고 싶어 한다.
이건 조금 고민을 해봐야겠다.
내 생각이랑은 전혀 다른 상황이라서, 덥석 물기에도 애매했다.
* * *
보름이 지났다.
그 보름 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다.
유다희는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다.
경제학부에 묘한 기류가 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는데도 들이대는 새끼들이 있었다.
전부 기억해서 은근슬쩍 김진우에게 알려주었다.
얼마 안가서 사고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근데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김진우가 다른 여자들을 건드리도록 판을 만들었다.
학과 동기인 이소영을 비롯해 계속해서 김진우에게 여자들이 접근하게 했다.
돈까지 주고 고용한 사람까지 있었을 정도인데, 김진우는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다.
순애일변도.
유다혜를 제외하면 따로 교류를 가지는 여자가 없었다.
소설 주인공 효과가 사라진 김진우에겐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이성관계도 전부 유다희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그래서 유다희는 이해를 못했다.
‘투쟁의 탑에서는 어떻게든 혼자서 잘만 따먹고 다녔으면서.’
연인 간의 믿음이 주는 정신적 안정감과 감정은 이제 질린다.
다른 여자가 김진우와 뒹구는 모습, 그 배신의 현장에서 받을 수 있는 노골적인 배덕감이 고프다.
‘엘레나 씨가 그립다.’
적당한 타이밍에 김진우와 뒹굴었다.
유다희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온갖 도움을 주었다.
세상의 진실을 깨달은 이후로 조금 삭막해졌지만, 그 전까지는 서로 좋은 교류를 맺고 있었다고 자부한다.
유다희는 그 관계가 그리웠다.
‘이젠 섹스도 못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김진우가 안 해준다.
임신을 하는 순간, 절대 건드리지를 않는다.
뱃속의 아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나 뭐라나.
안정기여서 섹스해도 된다고, 매일 밤마다 요구해도 거의 발작하듯이 관계를 거부했다.
‘투쟁의 탑’에서도 진혁이를 낳기 전까지 쭉….
배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가끔은 안기고 싶단 말이지.’
이번에도 10개월을 참아야 하는 걸까.
절대 싫다.
김진우를 설득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안아주기만 하는 김진우 때문에라도, 꼭 보고 싶다.
김진우가 다른 여자에게 박아대는 모습을.
그러면 혼자 해소할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아래가 촉촉하게 젖어드는 게 느껴질 정도인데,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어떤 느낌일지.
‘배경도 다르니까.’
‘투쟁의 탑’과 현대.
느낄 수 있는 배덕감이 다르다.
김진우가 다른 여자에게 철벽을 칠 정도로, 배경이 주는 무게감이 달랐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눈앞에 놓여있는 산해진미를 맛볼 수가 없으니, 한숨만 절로 나왔다.
“에휴.”
뿌듯하기는 한데 어딘가 모자라고 아쉬운 상황.
그게 현재 유다희의 상태였다.
“왜? 남자친구랑 무슨 일 있어?”
학과 동기가 훅 들어왔다.
유다희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또 하루가 끝났다.
“다희야. 술 마시러 안 갈래?”
술자리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개강총회를 간 것도 김진우를 약 올리기 위해서였지, 따로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냥 집에 갈 거야.”
“아, 응….”
유다희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한남동 저택과 포탈로 연결되어 있어 편했다.
현관에 신발들이 놓여 있다.
유다혜와 김진우의 것.
이 말은 즉, 둘 다 집에 있다는 의미였다.
유다희가 포탈을 타고 저택으로 넘어갔다.
─ 추릅, 츄르르릅…!
유다혜의 침실에서 무언가 빠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실 문 앞에는 유다희의 분신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
분신 유다희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김진우와 유다혜의 관계를 관음하고 있었다.
부릅뜬 눈에서, 분신 유다희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그래봤자 김진우를 물고 빠는 모습일 것이다.
김진우는 임신한 상태인 유다혜와 유다희에게 절대 삽입해주지 않을 테니까.
“씁.”
물론, 유다희는 저 둘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무리 지리는 야동이어도 그것만 보면 질리듯이, 보름 동안 저 시추에이션에 대해 적응해버렸다.
분신 유다희는 이 순간만 즐길 뿐이니 흥분한 것이겠지만.
유다희는 아니었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네토 플레이 역치 때문에, 색다른 상황을 원했다.
유다희가 분신 유다희를 흡수했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오감을 통해 전달됐다.
그 중에는 김진우와 유다혜가 단 둘이서 속닥거리는 대화 내용도 있었다.
─ 언제쯤 갈 생각인데?
─ 슬슬 가야지.
─ 웬만하면 빨리 가.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니까? 다 따먹고 임신시켜야 세상이 안 무너진다고….
김진우가 다른 차원으로 가서 섹스를 한단다.
거기서 임신도 시키고 온갖 짓을 다 하겠단다.
자신과 유다혜는 이 차원에 남겨둔 상태로 말이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네토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유다희는 유다혜의 침실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유다혜의 보지에 머리를 파묻고 빨아주고 있는 김진우의 모습이 보였다.
유다희가 물었다.
“나도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어?”
이 차원에서 못하겠으면 다른 차원에서 하면 된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김진우가 철저히 구분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참을 수 없다.
들끓는 성욕은 더 이상 평범한 관계로 해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법을 깨달은 직후에 더욱 달아올라, 참기가 힘들었다.
“갈 수는 있는데….”
김진우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다른 차원에서 일을 벌이고 다니려 했는데, 따라가고 싶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유다희는 그에 대한 해답도 생각해두었다.
“나도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보다 더 알찬 경험이 되지 않을까?”
“…….”
김진우는 이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다.
유다희는 본인의 속내가 들켰다는 생각을 못했다.
서로 다른 감정이 유다혜의 방 안을 채웠다.
그 때, 날카롭게 치고 들어오는 유다혜의 서포트.
“…외관을 바꾸면 리얼하게 체험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문화에 녹아 들어서…. 유다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
“…….”
“어차피 김진우가 없는 차원은 시간이 멈추니까. 그냥 따라가서 유유자적 놀러 다닐래.”
“시간이 멈춰?”
김진우가 몰랐다는 듯 되물었다.
“응.”
유다혜의 대답에, 김진우는 결정을 내렸다.
“같이 가자. 대신….”
“서로 따로 다니자.”
김진우가 망설이던 말을 유다희가 대신 해주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통하고 있으니, 진행이 빨랐다.
그리고 다음날.
김진우는 한 차원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