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0화 〉 #003. 강하나(10).
#003. 강하나.
“어쩐 일이에요? 먼저 만나자고 말도 하고?”
“…그, 그냥…. 만나고 싶어서 연락했지. 왜…? 별로야…?”
“아뇨. 저야 좋죠.”
근처 역 앞에서 김진우를 만났다.
집에서부터 만날 수도 있었지만, 평소와 다른 느낌을 주고 싶어 역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진짜…. 너무 티 나잖아.’
한껏 꾸미고 온 김진우를 보며, 강하나는 간질간질한 만족감과 쓰라린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이렇게 좋아해주는 사람이 드디어 나타났는데.
매일 다른 남자에게 범해지는 중이라는 현실이 서글펐다.
‘이기적이야.’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자신이 못된 여자라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남자와 침대에서 살을 섞고 있으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상대에게 미련을 품다니.
그러나 강하나는 김진우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단호하게 밀어내지 않았다.
그가 건넨 위로는 화이트페이스의 농락을 견디는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으니까.
이제 와서는 혼자 화이트페이스를 버틸 자신이 없다.
곁에 김진우라도 있어야 이 순간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하나의 친동생 강하윤은 그런 강하나의 정곡을 찔렀다.
한 발 내디디면 달라질 관계 속에서, 괜히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꼴은 김진우에게도 본인에게도 민폐였다.
‘오늘은 꼭.’
지지부진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관계라고 해도.
그 끝이 파국이라 해도, 당장은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서.
강하나는 김진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오후 여섯 시에 만나 영화관으로 향했다.
강하나가 머리를 열심히 쥐어짜낸 결과였다.
“이거, 다들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꼭 그거 봐야 돼…? 다른 거 보면….”
“…….”
김진우가 고른 영화.
올 마이티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였다.
왜인지 부끄러워져서, 강하나는 다른 영화를 골랐다.
평범한 멜로 영화였는데 썩 재밌어 보이진 않았다.
김진우는 자신이 고른 영화를 포기했다.
“…알았어요. 그거 봐요.”
얼굴에는 아쉬움이 그득그득하게 묻어 있었다.
강하나의 눈빛이 마구 떨렸다.
‘그래도 내가 누나인데….’
고집대로 우길 게 아니라 상대 취향에 대해 포용적인 면모가 필요하지 않나?
어차피 모른다.
자신이 올 마이티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서 아는 사람은 화이트페이스 밖에 없다.
굳이 티내지 않으면 영화를 보면서도 크게 이상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아니다, 그냥 그거 보자.”
“아니에요. 누나가 보고 싶은 거 봐요.”
“아니야. 오늘은 내가 불렀으니까. 네가 원하는 거 보는 게 맞는 것 같아.”
강하나는 결심을 굳히고 냉큼 영화표를 예매했다.
그래도 연상다운 면이 김진우에게 전달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관람했다.
“의외로 재밌었어요. 그죠?”
김진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올 마이티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답게, 호쾌하게 부수고 다니는 액션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악인은 벌하고 사람들을 구하는 이타적인 영웅의 모습.
강하나는 대중매체로 접한 자신의 모습에 얼굴을 붉혔지만, 김진우는 그런 변화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김진우의 눈치를 살핀 강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진우와 함께 길거리를 걸었다.
곁에 있을 뿐인데 마음이 포근해졌다.
주변을 거닐고 있는 다른 커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모습, 우리 둘 사이의 거리.
그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했을 뿐인데,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하다.
“…늦었는데 집으로 가서 한 잔 할까요? 하윤이랑 먹을 야식 사서….”
“아니….”
강하나는 김진우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친해진 이후로 서로의 집을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기에, 오늘도 당연히 강하나의 집에서 술이라도 한 잔 할 줄 알았다.
김진우는 어색한 얼굴로 머릴 긁적였다.
“아, 조금 그래요?”
컨디션이 조금 그런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주워 담을 때.
“저기서…. 마시자.”
오늘, 강하윤의 존재는 무조건 방해다.
강하나는 장애물을 끼고 싶지 않았다.
김진우도 크게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강하나의 눈에는 움찔하는 모습이 다 보였지만.
김진우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댔다.
‘…경험, 없어보였지….’
한 달 동안 자주 부딪쳤다.
강하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마다 술을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이것도 강하윤 때문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그 난리를 부려대니.
‘하윤이가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김진우와 자신을 붙여두려 애썼다.
어쩌면 자신과 김진우를 엮어주기 위해 동생의 위치에서 있는 힘껏 밀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셋이서 작게 자리를 가질 때마다 강하윤은 야릇한 분위기로 몰아갔다.
못된 친구들이랑 다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듣기 민망한 얘기를 꺼내서 해댔다.
그럴 때마다 강하윤만 떠드는 모양새가 펼쳐졌다.
김진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기를 피했다.
멋쩍게 피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면 내가….’
빌어먹을 협박에 의한 강간이지만, 강하나는 실전을 겪어봤다.
연상인데다 경험까지 있으니까, 아마도 리드해야겠지.
묵직한 책임감이 강하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올 마이티로서 사람들을 구하고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책임감이었다.
분위기 좋은 가게다.
고급스러운 느낌보다는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마음에 드는 바.
강하나가 고심 끝에 고른 술집이었다.
‘여기서 마시고 근처 모텔로 가자. 후우…. 하나야, 할 수 있다…!’
강하나는 김진우와 대화하며 그에게 술을 권했다.
적당히 취하게 만들었다.
“누나, 술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요?”
“…싫어하진 않아. 조, 좋아하는 사람이랑 마시는 건….”
“…….”
강하나는 신체강화 덕분에 취하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됐다.
알코올에 취하지 않으니, 알코올의 쓴 맛만 혀끝에 맴돈다.
맛있을 리 없는 술을 마시는 게 썩 좋을 리가 없다.
이제까지 김진우와 마실 때, 취한 척만 했었다.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는 건 괜찮다.
그가 취해가는 모습을 보며, 자리를 즐길 수 있었다.
짧다면 짧은 데이트의 끝이 보인다.
이미 김진우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
강하나는 은근슬쩍 김진우의 손을 맞잡았다.
은은하게 풍기는 분위기에, 김진우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주고받는 신호가 분명한 목적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진우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시선을 피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 모습에, 강하나가 도리어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 갈까…?”
많은 단어가 생략되었다.
김진우도 모르지 않았다.
그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모텔로 향하고 있었다.
‘…화이트페이스….’
강하나는 모텔에 들어가며 화이트페이스를 떠올렸다.
가본 적도 없는 모텔을, 그 때문에 처음 들러봤으니까.
김진우와 어색하게 떨어진 상태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가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신체강화가 아니었다면 눈치 채지 못했을 미세한 떨림.
강하나는 막중한 책임을 느꼈다.
‘후우….’
시간이 지나면 다 부질 없어진다고, 첫 경험에 크게 의미부여 하지마라고 말들을 한다.
하지만, 강하나는 그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김진우는 기분 나쁘지 않은 첫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질적이게도, 그런 김진우의 처음을 자신이 도와주고 싶었다.
방에 들어가 키를 꼽았다.
어색한 분위기가 둘 사이를 감싼다.
“씨, 씻고 올게.”
뜨거운 스킨십도, 달콤한 대화도, 전혀 나누지 않았다.
숨 막히는 어색함을 버틸 수가 없었다.
강하나가 먼저 욕실로 도망쳤다.
예민한 기감이 욕실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파악하기 시작했다.
김진우는 여관 침대에 걸터앉았다.
초조하게 발을 굴렀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 모습에, 강하나는 용기를 냈다.
자신이 이 상황을 이끌어야 했다.
솨아아아-.
물줄기에 몸을 맡겼다.
김진우의 떨림도 어느 순간 멎었다.
서로의 감각이 서로에게 향하고 있었다.
강하나가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았다.
가운이 밖에 있어, 몸을 가릴 것이 마땅치 않았다.
“…….”
하지만, 강하나의 걱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욕실 문 앞에 서있는 김진우를 그녀의 감각이 알아차렸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고 있다.
나가야 할지, 들어가야 할지.
강하나는 먼저 문을 열었다.
마주한 김진우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뒤흔들리는 시선은 곧 아래로 향했고, 적당한 취기가 김진우의 등을 떠밀었다.
“읏…! 잠깐…!”
김진우가 강하나의 몸을 잡고 끌어안았다.
거칠게 목을 부여잡고 입술을 부딪쳤다.
키스가 아닌 박치기에 가까웠다.
강하나는 흥분한 김진우를 밀어냈다.
투명한 실타래가 서로의 입술에서 늘어졌다.
“잠깐만…! 누나가, 누나가 도와줄게…!”
“하나 누나.”
“침대로 가자.”
“저, 저…. 씻고 올게요.”
욕실로 들어가려는 김진우를 붙잡았다.
불룩한 고간을 보고,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냄새도 안 나.’
화이트페이스에 의해 온갖 플레이를 다 겪었다.
지독하고 역겨운 그의 냄새에 비하면, 김진우의 체향은 향긋하고 달콤했다.
뽀얀 살결을 홀로 드러내고 있는 강하나.
김진우는 그런 강하나를 바라보며, 급하게 옷을 벗어던졌다.
“천천히…. 안 도망가니까….”
강하나는 김진우의 옷을 한 겹씩 벗겨주었다.
가끔 부드럽게 들어오는 키스를 받아주고, 어설프게나마 서로의 혀를 섞었다.
‘…귀여워.’
추잡하게 키스하는 화이트페이스가 떠올랐다.
키스라고 부르기가 민망한 김진우의 뽀뽀.
귀여운 스킨십이 더러운 기억을 덧씌워주는 느낌이었다.
“하나 누나…. 저, 처음….”
“괜찮아. 누나가 도와줄 테니까….”
강하나는 김진우를 천천히 침대에 눕혔다.
속옷 하나만 걸친 김진우가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후우….”
강하나가 뜨거운 숨을 후욱 내쉬었다.
화이트페이스가 아닌 다른 남자, 김진우의 자지를 앞에 두고 심호흡을 했다.
“진우야, 긴장하지 마….”
본인이 더 긴장한 것을 모르는 강하나.
김진우의 팬티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벗겨냈다.
“아….”
감탄이 아니었다.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강하나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작아….’
화이트페이스의 자지보다 한참은 작은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단하게 발기하고 있으나,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이 한참이나 부족하다.
겨우 손가락 길이….
‘…아니야. 강하나,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강하나는 다급하게 감정을 숨겼다.
실망한 표정을 김진우가 느꼈을까봐, 놀란 표정을 지어냈다.
다행히도 김진우는 강하나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코, 콘돔 가져올게….”
강하나는 챙겨온 콘돔을 꺼내왔다.
김진우의 자지에 콘돔을 씌우고 그의 위에 올랐다.
수십 차례, 화이트페이스의 배에 올라타 허리를 흔들었다.
너무도 익숙한 전경에 낯선 김진우의 모습.
다시 한 번 이 상황이 상기된다.
“하나 누나…!”
강하나가 허리를 내린다.
찌륵, 야릇한 소리와 동시에 자지가 강하나의 보지로 사라진다.
김진우는 볼품없는 신음을 흘렸고, 뿌리까지 삽입되자마자 사정하기 시작했다.
뷰륵….
“아….”
강하나는 자신의 속에 사정하고 있는 김진우를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누나, 누나…. 너무 좋았어요.”
“그래…?”
“한 번 더 해도 돼요?”
“으, 응….”
김진우는 콘돔을 바꿔 끼우고 직접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요란하게 부딪치는 하반신.
하지만, 들락거리는 것은 아주 작은 자지.
‘그 남자의 것은 더 깊게 닿는데….’
화이트페이스의 자지와 비교하고 말았다.
순간, 자신의 생각에 역겨움을 느꼈다.
“아아…. 아….”
강하나는 최선을 다해 신음을 쥐어짜냈다.
김진우가 다시 사정할 때까지, 안타까운 보지를 애써 외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