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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회귀자를 따먹음-523화 (523/681)

〈 523화 〉 #011. 유다희(2).

* * *

#011. 유다희.

“흠, 학교라니.”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화요일 1교시, 말도 안 되는 시간표였다.

누가 짠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병신 같았다.

‘내가 미쳤지.’

아무 생각 없이 시간표를 채웠다.

신의 힘에 취해있을 때라서, 눈에 뵈는 것 없이 대충 만들었다.

그 결과,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시간표를 바꾸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세계에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싶다.

신의 힘을 막 휘두르고 다니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족했다.

자연 그대로의 차원.

다희나 진혁이가 지낼 장소니까, 내 의지를 최소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빡치는 건 어쩔 수가 없네.”

“학교도 나름 재밌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살짝만 덜어내면, 즐길 만한 것 같아.”

오피스텔과 단독주택이 포탈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포탈을 타고 단번에 오피스텔로 넘어와, 학교로 통학했다.

“유다혜는 1교시 없나?”

“화요일 공강 이래. 그래서 어제 잔뜩 마시고 들어왔잖아. 공강인 후배들이랑.”

“…잘 지내고 있나 보네.”

밤새 다희에게 시달렸다.

새벽 중에 들어온 유다혜와 마주칠 틈이 없었다.

내게 팔을 흔들며, 다희는 사회과학대 건물로 향했다.

“점심시간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 학교 앞에 맛있는 곳 알아뒀으니까.”

“그래. 그러자.”

어차피 친구가 없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지인은 최병훈이 전부였다.

첫날에 같이 피시방을 갔던 친구….

분신은 녀석과 함께 다녔다.

가끔 후배들이 붙었는데 특별한 기류는 없었다.

지갑 역할에 불과했다.

나는 수학과가 있는 자연과학대로 걸어갔다.

맨날 숲이나 산 따위만 돌아다니다보니, 적당한 정경이 어우러진 캠퍼스가 화사하게 느껴졌다.

걷는 재미가 있었다.

강의실까지 가는 길, 따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인사해주는 후배들은 꽤 있었지만.

담백하다 못해 말라비틀어진 인간관계를 자랑했다.

‘가관이군.’

50분, 강의 시작까지 10분 남았다.

나는 강의실에 앉아 교수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진우 오빠. 안녕하세요.”

“그래.”

이름은 잘 모르겠다.

분신의 기억을 되짚어봤는데도, 모르겠다.

분신 녀석도 여자 후배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크게 메리트 없는 후배였다.

통통한 축에 속하는 몸매, 특출한 것 없는 얼굴.

다희가 질척하게 짜낸 상태라서 감흥이 없다.

‘2학년인 것만 알겠네.’

분신이 오며 가며 본 기억이 남아 있다.

그 때, 2학년 애들과 함께 있었다.

“오늘 지영이 생일인데, 생일 파티 오실 거죠?”

“지영이?”

내가 아는 지영이는 김지영 밖에 없다.

햇살론 김지영 대리 아니면 82년 김지영.

둘 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시험공부는 안 해?”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무슨 소리예요. 오빠도 차암.”

꺄르륵, 꺄르륵.

인위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를 팡팡 쳤다.

묵직한 타격감, 팔뚝이 쓰리다.

‘이 년, 오니인가?’

다른 사람을 때리는 버릇, 아주 좋지 않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교정 작업에 들어가야겠다.

원래라면 교정을 할 때 자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친구는 자지가 아니라 주먹으로 해야 할 것 같다.

브라더가 나서기 싫다고 귀두를 저어서 어쩔 수가 없다.

“뭐, 내가 가도 된다고 하면 얼굴이나 비추러 갈게.”

“지영이한테 말해둘게요. 나중에 빼기 없기?”

“그래.”

적당히 비음이 섞이자마자, 괜히 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귀여운 척은 진짜 귀여운 애들만 해야 하는 것인데.

당장 몸을 풀고 주먹을 날리는 게 어땠을까.

그런 후회 아닌 후회가 남았다.

“김진우, 뭐냐? 너 지영이랑 아는 사이야?”

“…뭐여, 언제 왔어.”

내 대학교 듀오, 최병훈이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지영이에 대해 물었다.

‘지영이가 누군데.’

신의 힘으로 검색했다.

‘아, 1학년 신입생?’

신입생 중에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친구란다.

‘얼굴이….’

생각보다 괜찮다.

그런데 별로 관심은 안 간다.

“아는 사이이기는 하지.”

분신이 돈을 뿌리고 다닌 탓이다.

학과 동아리에 가입해서 온갖 술자리에 다 참석했다.

그리고 계산을 전부 하고 다녔다.

지영이 생일 파티에 부르는 것도, 아마 계산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돈 많아서 상관없기는 한데….’

돈을 부풀릴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코인.

그냥 아무 코인을 사서, 펌핑 한 번 해주면 돈이 복사가 된다.

“와…. 진짜 김진우 개부럽다. 신입생이랑 아는 것도 부러운 데, 신입생 톱인 김지영이야?”

“이름이 김지영이었어?”

내가 아는 김지영이 하나 또 늘었다.

최병훈은 내 말에 관심도 없다.

그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아까 걔가 관심이 있는 걸까. 아니면 김지영이가 관심이 있는 걸까.”

“뭐가?”

“너한테 말이야.”

“관심은 무슨.”

하품이 절로 나온다.

몸이 피곤해서, 뇌가 안 굴러간다.

이 상태로 강의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 사심 없이 지들 생일이라고 부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부를 수도 있지.”

흥청망청 돈 써재끼는 걸로 소문이 났는데,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안 친해도 한 번 찔러보는 것이 당연했다.

“지갑이라고 해도, 다 끝날 때 부르지. 생일 파티 한다고 미리 부르겠냐?”

“…그런가? 의외로 냉철하네?”

잘 모르겠다.

내가 직접 만나거나 저지른 것도 아니고.

분신의 경험을 흡수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누락되는 것들이 제법 많다.

영상을 스킵하면서 볼 때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듯이 분신의 경험도 어느 정도 필터링이 되었다.

다 확인하려면 할 수 있는데, 귀찮아서 내버려두었다.

크게 관심이 없었다.

강의실에, 교수가 들어왔다.

아침에 피곤한 것은 교수나 학생이나 다르지 않았다.

귀찮은 얼굴로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진우.”

“예.”

이름 탓에, 출석이 꽤 빠르게 불렸다.

지각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김 씨는 최악에 가까웠다.

“오늘은….”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전혀 모르는 내용이지만 배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문제마다 풀이와 답이 떠오르고 있는데, 대체 뭘 배운단 말인가.

강의실에 멍하니 앉아 학생들 구경이나 했다.

인간 구경.

쿠노이치가 아닌 인간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다들 풋풋하네.’

같은 나이라고 해도, 쿠노이치들이 훨씬 성숙하다.

아이를 낳은 여자에게서 풍기는 그 농익은 향기가 그리워졌다.

삶에서 투쟁하는 그 투기도 제법….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어 보니 비가 오네연.”

노트에 낙서를 해대면서 시간을 보냈다.

느긋한 시간의 흐름이 기분 좋았다.

휴식이라고 해야 할까.

이 여자, 저 여자, 찾아다니면서 섹스나 하고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휴식이다.

‘다들 집중하고 있는데 농땡이 부리는 게…. 생각보다 재밌네.’

문제 풀고 있는 학생들 사이, 곧게 솟은 머리 하나.

혼자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교수와 눈이 마주친다.

“벌써 다 푼 건가, 진우 학생?”

“예?”

무슨 좆같은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 노트에는 해골 하나가 그려져 있을 뿐인데 말이다.

“좋아, 그러면…. 진우 학생이 앞에 나와서 나를 대신해 이 문제를 풀어보도록 하자.”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군복무 후 복학한 것이라서, 대부분 2학년 학생들이었다.

21살 파릇파릇한 여대생 그리고 복학한 23살 남학생들….

그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된다.

‘아니, 시바….’

분신은 이런 시선들을 즐겼다.

내 무의식 속에 숨겨두었던 욕망을, 제 멋대로 즐기고 가버렸다.

관심.

놈은 관심이 고팠다.

그래서 신의 힘을 조금씩 사용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덕분에 나는 한국대학교 수학과….

킹갓제네럴엠퍼러천재지니어스슈퍼컴퓨터수학과전용계산기 김진우가 되어있었다.

나는 허벅지로 의자를 밀어내고 강의실 앞으로 나아갔다.

─ 답과 풀이를 띄워놓겠습니다.

‘굳.’

거대한 칠판에는 문제 하나가 띄워져 있다.

빔 프로젝터로 쏘아대고 있는 문제 아래에, 풀이와 답이 선명하게….

신의 힘으로 채워둔 풀이를 천천히 따라 써내려갔다.

샤프 사각거리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들이 집중됐다.

괜히 민망한데 멈출 수가 없었다.

“정확하군. 역시 진우 학생이야.”

답을 적고 마침표를 찍는 순간, 교수가 나를 가리키며 박수를 유도했다.

존나 쪽팔린다.

분신 이 새끼의 머리를 뜯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벌게진 얼굴을 애써 가리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평소에는 잘만 하더니, 오늘은 왜 그러냐?”

최병훈이 되도 않게 말을 걸었다.

그래서 더 민망했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걸로 관심을 받고 싶었냐.’

내 무의식 속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게 수치였다.

어차피 나 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자, 여기 공식을 봐라.”

교수는 강의를 진행했다.

내 노트에는 해골이 몇 개 더 그려졌다.

몇 분이 흐르고, 서로 싸우는 녀석들까지 생겼다.

“후우.”

나 스스로 뿌듯함을 느낄 때쯤 강의 시간이 다 되었다.

“72페이지 문제, 전부 풀어오도록 합시다. 그럼 다음 시간에.”

교수는 누구보다 빠르게 런­때렸다.

“진우야, 다음 강의 몇 시냐?”

“나?”

─ 15시입니다.

“3시.”

“……?”

최병훈이 나를 이상한 놈 보듯 바라본다.

“1교시 다음에 3시? 시간표가 왜 그래.”

“나야 모르지.”

그 때 대충 짜고 치웠는데, 내가 어떻게 알겠나.

넘치는 게 시간이니까 그냥 다니는 거지.

“난 바로 이어서 강의 하나 더 있는데. 그거 듣고 끝이거든? 나중에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최병훈은 급하게 짐을 챙겼다.

다른 대학 건물로 가야 하는 듯했다.

“나 다희랑 점심 먹어야 하는데.”

이미 소문이 다 난 상태다.

경제학부에서 시작된 열애 소식은 대나무숲과 알려드립니다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내 분신은 김진우라는 이름보다 유다희 남자친구라는 호칭이 더 익숙할 정도였다.

‘그래서 김지영이랑 아는 사이인 건가?’

나중에 알아봐야겠다.

“…나, 너 없으면 혼자 먹어야 해. 학식 혼자….”

“다희를 바람맞힐 순 없잖아.”

“…….”

최병훈은 무언가 바라는 듯한, 애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잠깐만. 물어볼게.”

다희와 유다혜는 거의 연예인에 가까울 정도로, 한국대학교 유명인사니까.

내 이름을 팔아 밥이라도 한 끼 먹고 싶은 듯했다.

─ 다희야

─ 나중에 점심 먹으러 갈 때 내 친구 하나 데려가도 돼?

마누라 다희♥

─ 그럼 나도 데려갈게

얼떨결에 식사자리가 만들어졌다.

“와, 유다희한테서 이렇게 빨리 답장이 와? 이름은 또 뭐야. 마누라 다희 하트, 라고 저장되어 있네…. 진짜, 진심, 존나 부럽다…. 아.”

최병훈은 금방 자살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흘겼다.

“12시에 정문으로 와.”

“…알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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