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6화 〉 #013. 공략12팀 유다희(2).
* * *
#013. 공략12팀 유다희.
헌터는 각각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 특성은 각성의 순간에 습득하게 되는데, 무엇을 얻을지 순수한 운으로 결정된다.
재능, 탤런트, 수저의 상징인 선천적인 것들과 차이가 없었다.
허나 두 번째 기회.
가진 것 없이 세상에 떨어진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실제 사례를 접하면서 그 간절함은 배가 되었다.
나도 제발 좋은 특성 하나만 주세요, 하고.
지능, 외모, 부모,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이들은 두 번째 뽑기 기회인 각성을 기다리며 헛된 꿈을 꾸었다.
‘나는 운이 좋았지.’
S랭크의 특성을 얻었다.
‘추방자’ 라고 명명된 나쁘지 않은 특성.
게이트 내부에서 주변에 인원이 없을 때, 내 능력치가 상승한다.
추방자 특성을 이용해, 빠르게 성장을 해나갔다.
그리고 운 좋게 ‘약점간파’라는 스킬을 획득했다.
내가 3년 만에 B랭크 헌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오직 행운.
적절한 순간에 운이 따라주었고, 나는 그 운을 놓지 않고 붙잡았다.
약점을 알려줄 뿐인 약점간파를 랭크업.
각성까지 시켜가면서 그 성능을 업그레이드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실선과 점선.
나를 A랭크 헌터로, 풍운 길드의 공략12팀장으로 만들어준 스킬.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빨간 선이 보인다고, 그 선을 베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했다.
벨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단련했다.
돈이 목표였다.
성공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예쁜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
남들이 보기에 떳떳할 수 있는 삶을 완성하고 싶었다.
내 지위가 높아질수록 주변 시선이 달라졌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기술이 성장했다.
실선을 노리기보다는 판정이 후한 점선을 노리고 끝장내는 방향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그러자 내 실적이 대폭 상승했다.
병신이 된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그레이토이는 이족보행을 한다.
그 말은 즉, 두 다리를 잘라내면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격돌하는 순간, 가속해서 한 놈을 쓰러뜨린다.
그렇게 되면 내 앞에는 셋만 남는다.
넷을 흘리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흐아압!”
이상진이 버티는 동안, 유다희가 나서서 처리한다.
검에 전류가 흐르고 그레이토이를 태워버린다.
뇌전 속성은 굉장히 희귀한 힘이다.
파괴력은 화염 못지않은데 그 속성에 담긴 부가효과가 빙결에 버금가기 때문에, 표기되는 랭크보다 두 단계는 높게 취급한다.
유다희는 대한민국에서 기대하는 유망주 헌터였다.
올해 안에 S랭크를 달성하고 대한민국 최초로 SSS랭크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차례로 그레이토이를 썰어낸다.
기어 다니는 녀석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멀쩡히 서있는 놈들부터 베어냈다.
하나둘, 셋, 넷.
모두 처리를 하고 나면 한 차례 사냥이 끝난다.
‘경험치 같은 건 안 보여. 그게 참 흠이란 말이지.’
헌터들이 각성하는 시스템은 게임과 비슷하다.
근력과 체력, 민첩이니 지력이니, 내구와 마력.
특성, 스킬들을 보고 있으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빠르게 적응했다.
게이트에서 사냥을 하면 무언가 힘이 쌓인다.
어느 수준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포인트가 분배된다.
능력치가 오르는 것이다.
─ ─ ─
김진우
【근력 A27】 【체력 A13】
【민첩 A99】 【내구 A07】
【지력 C01】 【마력 A99】
특성
【추방자(S)】
스킬
【약점간파+(S)】
【약자멸시(A)】
【바람장막(B)】
─ ─ ─
8년 동안 이 세계에서 구르면서 갈고 닦았다.
하지만, 이제 한계다.
더 이상 이 수치에서 변동이 없다.
최근 한 달, 1도 오르지 않았다.
내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많이도 올라왔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찍 닫힌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 오래 버틴 것에 가까웠다.
A랭크까지 올라오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까.
대한민국 헌터들 중에서도 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천외천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다희 씨 같은 사람….’
압도적인 재능, 피지컬, 행운까지.
세상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듯 모든 조건이 알맞게 떨어진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말해도 이해 될 정도로 말이다.
‘다희 씨가 주인공이면 나는…. 조연 정도는 되려나?’
국가 단위로 멸망할지도 모르는 천재지변, SS급 게이트가 생성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거기에서 내 역할은, 게이트 안에서 고작 시간 끄는 것밖에 안 될 것이다.
유다희가 SS급 게이트를 무사히 공략할 수 있도록 잡몹이나 잡는….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네.’
세상을 구하는데 힘을 보탰다.
국가에서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겨줄 것이다.
“슬슬 움직이자.”
이상진이 회복하기를 기다렸다.
잡다한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 정도 힘을 추슬렀다.
이제는 움직여도 될 듯했다.
이상진은 몸을 일으켜 방패를 들었다.
당장 전투가 벌어지진 않을 테니, 간격을 좁혀서 천천히 나아갔다.
우리가 진입한 A급 게이트, ‘회색빛 도시’는 무언가에 의해 초토화된 도시를 필드로 삼고 있다.
알려진 정보로는 인간 형태를 한 그레이토이가 끊임없이 쏟아진다는 것과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인형술사를 처치해야 한다는 것.
인형술사가 코어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전투가 필수였다.
미국에서 한 번 생성됐던 게이트라서 정보가 따로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게이트에 대한 정보는 그 자체로 무기였다.
국가 단위로 막 전해주고 할 만큼 무가치하지 않았다.
우리는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천천히 나아갔다.
사방이 회색빛이라 괜히 몸이 움츠려들었다.
“또 온다.”
그레이토이가 3층 건물 위에서 쏟아진다.
이번에는 열둘이나 되었다.
“상진 씨, 아까 넷 정도 상대할 만했어?”
“예, 괜찮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넷, 흘릴게.”
나는 좀 더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열둘 중 여덟을 내가 막고, 이상진에게 넷을 넘긴다.
‘한 번 해보자.’
그레이토이 자체는 파괴력이 그리 세지 않다.
내가 아는 정보에는, 그 물량을 조심하라고 적혀 있었다.
‘선 자체도 굵고.’
실선이나 점선이 조금 굵어졌다.
아까보다 선명하고 굵어졌다는 것은 놈의 수준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는 의미다.
한 마디로, 나보다 허접이라고 스킬이 알아서 판정을 내렸다는 뜻.
점선을 위주로 검을 그어내린다.
그러면서도, 실선을 노릴 수 있을 때는 확실하게 베어낸다.
파삭!
그레이토이가 흙으로 돌아간다.
가끔 몬스터의 시체에서 마석이 떨어졌다.
이게 제법 돈이 되어, 헌터들이 먹고 산다.
길드에 소속된 이들은 이 마석을 개인적으로 챙길 수 없다.
획득한 마석만큼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형식으로 계약을 한다.
랭크가 높아질수록 길드에 소속되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기에, 다들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편이다.
파지지직!
이상진이 막고 유다희가 벤다.
이 포메이션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레이토이를 정리하고 유다희에게로 다가갔다.
털썩 주저앉은 이상진의 뒤로, 유다희가 멀쩡하게 서있었다.
“다희 씨, 괜찮아?”
“예, 괜찮네요. 쉬워요.”
기진맥진하게 숨을 몰아쉬는 이상진과 달리, 유다희는 평온하게 내 말에 대답했다.
표정을 봐도 멀쩡해보였다.
그레이토이가 허접해보여도, 나름 A급 게이트의 몬스터다.
B랭크 헌터인 이상진에게는 버거운 게 당연했다.
“체력이 A랭크에 거의 근접했나봐?”
“…흐, 말해드릴 순 없어요.”
헌터끼리 능력치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다.
랭크 승급을 할 때에도 최소한의 확인을 받기 때문에 자세한 수치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근력이 A00인 경우에만 부술 수 있는 방패를 부수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민첩이 A00인 경우에만 피할 수 있는 화살을 피해야 한다든지.
그런 방식으로 랭크를 확인한다.
A01인지 A99인지,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상은 알아낼 수가 없다.
“다희 씨가 올해로 몇 살이라고 그랬지?”
“스물둘이요.”
“…언제 각성을 했다고?”
“스물하나요.”
유다희가 말을 뱉을 때마다, 공략12팀 멤버들 사이에선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B랭크라서, 유다희의 폭발적인 성장에 놀라는 것이다.
“…대단하네.”
“우리는 스물하나 때 뭐했더라?”
“전 F급 게이트에서 힐주고 있었어요. 그때 진짜 죽고 싶었는데.”
“대학 다니고 있었죠. 각성도 못 했을 때요.”
이런저런 내용으로 떠든다.
휴식 시간에도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름 실력에 자신이 있어서 사소한 대화 정도는 가능했다.
“팀장님은 제 나이 때 뭐하고 계셨어요?”
불쑥, 유다희가 내게 물었다.
본인 나이 때 무얼 하고 있었냐는 질문.
나는 곰곰이 그 당시를 되짚어봤다.
“각성을 일찍 했지. 스물?”
“팀장님 스물여덟이잖아요. 올해로 8년차?”
“각성하자마자 뛰어들어서, 겨우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씁, 뭔가 좌절하게 되네. 다희 씨를 보고 있으니까, 괜히 부럽고 그래.”
유다희는 제법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자기 팀장이니까, 사전 조사를 좀 해왔구나 싶었다.
그때, 팀원들이 끼어들었다.
이상진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다른 팀원들은 한 마디씩 거들었다.
“팀장님이 그런 마음을 느끼시면 어떡해요!”
“맞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좌절할 기회조차 없다고요.”
“저도 팀장님만큼만 올라갈 수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C랭크도 넘지 못해서 무너지는 헌터들이 많다.
그런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복 받은 사람이긴 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C랭크 헌터도 일반인보다는 많이 번다.
물론, 사람 욕심이란 게 끝도 없어서 의미가 없지만.
“자자, 출발하자. 오늘 안에 게이트 공략 마치려면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해. 잠은 집에 가서 자야지.”
“옙!”
헌터로 살다보면, 게이트 안에서 잠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노숙은 불편하기 때문에.
게이트 공략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심으로 나아갈수록 그레이토이가 많아지네.”
그레이토이가 무장을 한다.
처음에는 맨몸이었던 녀석들이, 무기를 쥐고 갑옷을 걸쳤다.
“팀장님…!”
이상진이 위태롭다.
그레이토이 나이트를 상대하면서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눈앞에 있는 그레이토이 나이트를 쳐내고, 이상진에게 쏠린 어그로를 끌어당긴다.
‘바람장막’은 그 어떤 스킬보다 확실한 도발수단이 되었다.
‘이상하단 말이지.’
이것만 보면, 몬스터들이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따로 툴팁에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철컥. 철컥.
“상진 씨 챙겨서 뒤로 좀 빠져.”
“네!”
그레이토이 나이트들이 내게 다가온다.
갑옷을 걸친 만큼 몸동작이 느렸다.
숫자가 많은 것은 아무런 제약도 되질 못했다.
“팀장님, 저도 도울게요.”
“…무리는 하지 마, 다희 씨.”
경력으로 따지면 이쪽이 한참 위다.
선배로서 후배를 지켜줘야지, 괜히 기댈 수는 없다.
카앙!
그레이토이 나이트의 검을 받아치고, 점선을 그었다.
느려터진 움직임을 무시하고 흘려내며, 놈들을 하나씩 부수었다.
추방자 특성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유다희라는 조력자가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파지지직!
유다희가 검을 휘두른다.
생각보다 빠른 검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다희 씨, 이제까지 힘을 숨겨두고 있었나?”
본래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진 선배님이 휩쓸릴 수도 있어서요.”
아무래도, 유다희는 B랭크 수준이 아닌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