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 3일 간의 행복 (5)
-나 : ▶∥――――[4:15] - 동영상 파일
-나 :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챰피? 스승님 : ㅇㅇ 재능 좋네
-나 : 고마워요. 챰피 스승님!
-챰피? 스승님 : 챰피 X 참피 O
-챰피? 스승님 : 야 내가 제대로 닉네임 바꾸라고 말 안 했냐? 챰피가 아니고 참피 새끼야 참피
-나 : 미안해요 ㅠㅠ
귀족이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커다란 방.
불이 전부 꺼져 있는 그곳에서 산수유는 검지 만으로 타자를 두드려 채팅을 했다.
-챰피? 스승님 : 야 근데…… 넌 왜 갤질-커뮤니티를 하는 행위-하냐?
-나 : 네?
-챰피? 스승님 : 집안 좋고 재능 좋은 애가 왜? 뭐 나처럼 좆밥 허접 때부터 갤질한 것도 아닌데
-나 : 친구가 안 놀아 ㅈㅝ서요.
-나 : 줘성ㅛ
-나 : 줘서요.
잠깐의 공백. 스승의 당황해 하는 문자가 올라온다.
-챰피? 스승님 : 아.... 그 귀족들은 파티 같은 거 안하냐? 인맥은 거기서 만들면 될 텐데
-나 : 요즘은 잘 없어요. 그래서 미호 조언 듣고 사회 공부하려고 츠리인사이드 보고 있어요.
-챰피? 스승님 : 츠리X 트리O.
-챰피? 스승님 : S급 헌터 된 뒤로 들은 말 중 가장 슬픈 말이다 미호? 누군데?
-나 : 지호가요. 비서에요.
-챰피? 스승님 : 지호는 뭐고. 걔 어지간하면 해고시켜라
다년간 커뮤니티에 거주하던 연륜이 묻어나오는 진정 어린 조언.
어쩌다 이 둘이 사제 관계가 되었는가.
여느 유저들이 그렇듯, 언제나 커뮤니티에 상주하던 참피나무가 검술 커뮤니티에 어울리지 못하는 산수유를 도왔을 때부터 그들의 관계는 이어졌다.
-챰피? 스승님 : 갤질 그만해
참피나무의 목적은 물론 산수유가 커뮤니티를 그만하게 만들기 위해서.
허구한 날 검술 대신 섹스를 외쳐대는, 그야말로 색목들이 판을 치는 이 정신병동에 산수유는 있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무구한 수유는 그조차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기에 딱히 시헌과 훈련이 잡히지 않는 날, 그녀는 이렇게 방 안에 틀어박혀 커뮤니티를 하곤 하는 것이다.
-드르륵, 드르륵.
채팅 화면에서 손을 떼고, 산수유는 마우스의 휠을 돌리며 화면 안에 있는 글자들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갤질은 즐거웠다.
어느 때는 만화.
어느 때는 서민의 잡담.
하나같이 생소한 이야기. 하물며 검열 없이 쓰인 글들은 그녀에게 있어 아주 큰 자극이 되었다.
―본인 야스할 예정
‘야스? 야스가 뭐지?’
뇌세포를 자극하는 새로운 단어들은 감정에 둔해진 산수유에게 미약한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본인 야스할 예정
(치킨 사진)
이거 먹으면서 올해 검드컵 볼 거임
야스 맞지?
-ㅇㅇ(12.34) : ㅗㅜㅑ
야스가 뭘까. 치킨을 야스라고 하는 걸 보니 나도 야스 좋아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바로 나타난 따끈따끈한 최신의 글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쏙쏙 한눈에 박히는 자극적인 제목들. 어디서 자격증이라도 딴 건지 모를 제목들이었다.
[도원향 백도 엉덩이 확대샷.jpg] - 추천21 비추천 54
백도.
‘아는 이름.’
반갑게 마우스 커서를 그 글에 가져다 대니 이윽고 화면이 바뀌며 본문의 사진이 튀어나왔다.
불쏘시개의 제목 안에 나온 한 장의 사진은…….
―도원향 백도 엉덩이 확대샷.jpg
[혐오를 조장하는 사진]
-ㅇㅇ(14.23) : 씨발아
-ㅇㅇ : 이게 왜 념글임? 미친놈들 진짜 좆같네
└ㅇㅇ(51.233) : 아ㅋㅋ 나만 뒤질 순 없지ㅋㅋ
-아니 : 꼴리긴 해 ㅇㅇ;
└이상성욕 : ?
└ㅇㅇ : ?
└ㅇㅇ(552.23) : 어딜 봐서 씨발
└ㅇㅇ(32.122) : 욕 박으러 왔다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선생님..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별다른 자극에도 감정이 일지 않는 그녀가 보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법한 사진.
눈을 동그랗게 뜬 산수유는 흠칫 등 뒤를 돌아봤다.
본능적으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곤, 커뮤니티로 돌아가 글을 작성했다.
―저런 글은 왜 쓰는 거예요?
작성자 : 말랑이산수유
잘 모르겠어요. 왜 저런 이상한 글 쓰는 거예요?
-참피나무 : 너 내가 갤질하지 말랬지.
글을 쓰기 무섭게 달리는 스승의 댓글에 산수유는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참피의 다그침에 굴하지 않았다.
저 글을 쓰는 자의 심리가 너무도 궁금했기에, 수유는 글을 지우고 도망치는 것을 무려 5분이나 유보하기로 했다.
-까톡!
-까톡!
참피나무의 부름을 애써 무시하며 산수유는 몇 초 주기로 새로 고침을 연달아 눌렀다.
-ㅇㅇ(52.13) : 고닉 달고 말투 왜 저래?
└신수 : 이 사람 원래 그럼
└ㅇㅇ(52.13) : ㅅㅂ 이젠 저런 놈이랑도 좆 비비는거임?
└신수 : 뭘 비벼 이 새끼야. 그냥 그렇다는 건데.
산수유가 글을 올릴 때면 언제나 달리곤 하는 시비들. 그러나 그녀가 바라는 대답은 아니었다.
-ㅇㅇ : 저 짤 싫음?
와중에 달린 댓글 하나. 주황색의 오밀조밀한 신기한 아이콘이 달린 그 모습에 산수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말랑이산수유 : 이상해요.
└ㅇㅇ : 받아.
‘받아? 뭘?’
그때 산수유의 커뮤니티 계정 오른편에 알림이 떠올랐다.
주황색 닉네임의 밑으로 스승의 여러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참피나무 : 야 이 미친놈아
└참피나무 : 갤 좆도 모르는 애를 ㅅㅂ
└ㅇㅇ : 꼬우면 주딱 하던가.
-웅! 우우웅!
핸드폰에 울려대는 진동. 산수유는 메일을 한 줄 한 줄 읽어 보더니, 곧 마우스 포인터를 한 곳으로 옮겼다.
-ㅇㅇ : 어어? 점마 왜 파래짐?
검술 갤러리.
그 누구보다 뛰어난 희대의 검술 재능을 가진 산수유. 그녀의 어깨에 당당히 완장이 박히는 순간이었다.
이시헌의 무관심이 부른 참사였다.
*****
“이 복숭아는 뭐냐.”
다음 날.
환기를 시키고 아침을 맞이하니, 천도가 협탁에 놓인 복숭아를 보며 이상한 듯이 나를 흘겼다.
“새벽 중에 사 왔습니다.”
“이 새벽에 갑자기 사 온다고? 이 많은걸?”
“복숭아가 먹고 싶더라고요.”
해도 적당히 했어야 했나.
청소 도중에 눈이 맞아 그대로 갖다 박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쾌락에 빠진 탓에 결국 복숭아는 우리 둘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범람하고야 말았고, 대충 말을 맞추기로 했다.
“……흠 먹고 싶다면 말을 하지 그랬나. 마법을 쓰면 되는데.”
나와 황도가 그런 짓을 했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도는 협탁의 복숭아를 들어 꾹 눌러보았다.
차마 들킬까, 제 발을 저린 내가 빠르게 복숭아가 맛있다며 극찬을 내놓았다.
“물복입니다. 깨물어 보면 알겠지만 달달 하더라고요.”
“보면 안다. 근데 좀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 아닙니까?”
“그러느냐?”
“제가 먹을 테니 냅두십쇼.”
천도의 손에서 복숭아를 빼앗듯이 가져간 한 입 크게 그것을 베어 물었다.
물렁한 복숭아의 과육을 씹자 달달한 과즙이 팡팡 터져 나왔다.
엄청 달아서 질릴 법도 하건만 아직 까지는 먹을만했다.
‘확실히 복숭아가 맛있긴 해.’
들키지 않은 걸 확신하곤 다 먹은 씨앗을 휴지통 안에 넣었다.
천도는 갸우뚱한 표정이었다.
“그래 뭐. 그건 그거고…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할 테니 이리 와 앉아라.”
천도는 제 옆 이불을 두드리며 내 팔을 잡고 끌어내렸다.
딱 옆에 달라붙듯이 앉으니, 천도는 짐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 안에 있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우우웅!
천도의 손이 내 어깨를 감쌌다.
“잘 보이게 더 가까이 붙어라. 더어. 더.”
어깨와 어깨가 맞닿자 영상이 겨우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경기장.
생소한 얼굴의 선수들이다. 어려 보이는데, 올림픽 비슷한 개념인가.
고개를 갸웃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뭡니까?”
“세계수 재단에서 개최하는 숲지기 선발전이다. 매번 전세계 아카데미의 1학년생을 모아 여는 하나의 Tv 프로그램이자 대회지.”
숲지기.
직업이라기 보단 명예가 마땅한 명칭일까.
세계를 수호할 정도로 재능이 있는 자라고 해석하면 된다. 물론 숲지기라는 명예를 딴다고 책임이나 의무가 따라오지는 않는다. 일종의 트로피 비슷한 개념이다.
저 선발전에 나가 최고가 되면 42대 숲지기가 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이번 중간시험이 끝나면 엘 아카데미에서도 수석과 차석, 유망한 생도들을 꾸려 선발전을 치르게 할 것이다.”
“그런가요.”
“아마 선발전은 시험이 끝난 날로부터 방학까지 이루어지겠지. 이시헌, 너는 이곳에 가야 한다.”
굳이?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잘 생각해보니 대충 천도가 말하는 말의 의중을 깨우칠 수 있었다.
숲지기 선발전은 이른바, 젊은 인재들의 광장이다.
차후 시대를 풍미할 이들이 미리 그곳에 모이면, 갖가지 재능을 가진 이들이 협력작용을 일으켜 서로의 실력을 증진 시킬 뿐만이 아니라 친분 역시 나눌 수 있다.
파벌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는 않지만 그건 어딜 가나 있는 문제점이었다.
“많은 인재가 모이겠지.”
“네.”
“벚나무, 은행나무… 아마 나라의 국격을 상징하는 가문의 자제들 역시 만나볼 수 있을 거다.”
일본의 벚나무.
중국의 은행과 매화.
나라의 기틀을 다진 국목(國木) 가문을 필두로, 강한 권력과 재능을 가진 목인들이 그 광장에 모습을 내밀 예정이니.
인재를 만나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권력이 될 것이 분명했다.
아니 비단 권력뿐일까? 인재가 있다면 돈이 굴러 들어오고 다른 인재 역시 탐할 기회를 가지 게 된다.
내가 살던 지구마저 그러했다. 인재가 되기 위해 책을 붙잡던 사회였다.
그럼 힘의 논리가 절대적인 이곳에서라면,
하물며 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회라면 어떠할까.
이곳은 제도가 갖춰져 있지만, 일신의 무력이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장소다.
이런 불안한 세계에 힘을 가진 인재나 인맥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이었다.
친목을 도모하여 미래를 꾸며나가기 위해서는 그 자리의 참석이 필수나 다름없었다.
“그럼 최대한 순위를 올려야겠네요.”
지금 내 순위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입학 순위는 언제까지나 입학 순위. 현 순위는 중간 평가나 기말 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앞으로의 성적대로 결정될 터. 천도는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말대로 이번 시험에서 한 번 크게 판을 뒤엎어보자꾸나.”
딱 달라 붙은 어깨, 천도의 올곧은 시선이 나와 부딪혔다.
“네가 누구의 제자인지, 이번 선발전으로 세상에 공표하지.”
불안한 일들이 없지는 않았다.
세계수와의 연결점이 끊어졌으니 아마 몇몇 세계수는 나를 눈여겨볼 것이다.
물론 원망의 세계수는 물리적인 수단을 가리지 않으리라.
“훈련은 계속하고.”
저번처럼 암살자를 보내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왜인지 그닥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천도와 황도, 이 사람들이라면 언제든지 금방 해결책을 내놓을 테니까.
만약 천도가 해결책을 꺼내놓지 못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그때대로 내가 방법을 짜내면 된다.
“소천마의 탄생을 알리는 거다.”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기특한 생각을 하는 천도가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하지만 뭐, 딱히 우리 둘이 그런 관계로 발전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도는 이성을 전혀 이성으로 보지 못하는 듯하니까.
‘차라리 그게 다행이지.’
너무 주위에 여자가 많지 않나. 생각하는 요즘이다.
이세영에 별, 거기에 황도까지.
지금까지는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그래서 애써 내색하지 않았는데.
‘잘 모르겠다.’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또 자느냐?”
“아뇨 금방 일어나긴 할 건데. 지금은 좀 눕고 싶습니다.”
황도랑 관계를 나누고 이성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질 필요성을 느꼈다.
애초에 사귀자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내가 매력이 없나?
만약 사귀자는 사람이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긴 했다.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지금의 관계를 청산해야 했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였다.
이성 관계가 깨끗해야 하는 것은 애초에 연인 관계의 예의이니.
“…….”
-일부다처 되는데?
그러나 아주 간사하게도, 가슴 한켠에서는 별이 내뱉은 말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