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 가면남 (3)
화장실에 다녀온 황도의 차림은 왜인지 한 꺼풀 가벼워 보였다.
“크, 크흠. 일단 텔레포트 말이지?”
헛기침을 한 황도는 오른 손으로 손가락을 튕기더니, 이내 공중에서 캔 음료를 하나 내밀었다.
“텔레포트의 이론은 간단해. 슉, 휭~ 짠! 이 감각만 대충 이해하면 되거든. 처음이 어렵지만 한 번만 해보면 감각은 알 거야.”
텔레포트는 공간 마법의 일종.
하지만 공간 마법 자체가 어지간한 천재가 아니라면 연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감각에 극에 달하면…….”
황도는 잇달아 설명을 하다가,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목소리가 마치 블랙홀에 빨려나가 듯 사라지더니 곧 뒤에서 미세한 바람과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마저 들려왔다.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돼.”
점멸.
“압축, 전이, 공정…… 일단 동상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성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마법식 밖에 없을 거야. 맞지?”
“네.”
“동상은 감각파가 아니니까 아마 나처럼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시간 좀 걸려도 괜찮지?”
공간에 관한 마법이야 어디가서 배울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은 황도는 침대에 앉아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혹시 몰라 시바를 끌어안고 옆에 앉으니 그녀의 손에서 서류철이 나타났다.
“공간.”
그것은 상하, 사방에 널리 퍼져 있는 것.
“그건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현상이 생기는 장이자,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되어있는 것이야. 그러나 그렇기에 파고들 수 없는 것이지.”
예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마법 하나만큼은 진지하다고 해야할까. 항상 장난끼 많았던 모습과 달리 이 부분에서만큼은 유식하고 멋이 있었다.
“알 수 없기에 감이 중요해. 과거의 산물을 빌려다, 겨우 만든 아티펙트를 베껴 대충 좌표 수신만 이루는 마법은… 실효성이 거의 없거든.”
내 마법은 현재 수많은 아카데미 생도들의 경험을 흡수한 것을 사용하는 정도다.
가끔 훈련이 있을 때, 그리고 교관의 마법 시연이 있을 때.
마법들을 얼핏 보고 그것을 직접 구상하여 발현시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내 마법이었다.
던전에서 사용했던 고난도의 마법도 사실 완전한 파괴력을 보였다고는 하기 힘들다.
순전히 내가 발동했다기보다는 도토리의 덕을 많이 본 것이니까. 물론 그조차도 재능이 없었다면 말이 안되는 일이다.
“아마 동상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들을 수 없는 가르침을 받게 될 거야. 저번에 말했지? 누나가 누구라고?”
기세등등하게 어깨를 올린 황도가 입꼬리를 길게 늘였다.
대마법사 황도. 공간마법의 대가.
“이건 나랑 내 스승님밖에 모르는 거야. 앗 이거 비밀이다? 나 들키면 엄청 혼나.”
손바닥 아래로 갖은 서류를 쏟아낸 황도는 샐쭉 웃었다.
“어때 대단하지?”
콧대가 아주 에베레스트산이다. 그럴만한 업적이 있으니 뭐라 하지도 못하겠고. 또 귀여워서 그냠 냅두기로 했다.
나는 종이 중 하나를 뽑아 그것을 눈대중으로 읽어내렸다.
“이야.”
“내 말 맞지. 대단하지?”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확실히 황도가 왜 천재 소리를 듣고, 공간 마법의 대가이며 천도마저도 한 수 접어주는 지 알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요.”
“……엥.”
아무래도 배우는데 좀 걸릴 듯 했다.
*****
-일단 읽어! 외워! 아이참! 여기서는 이케이케! 알았어?
-동상! 거기선 식을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다음날 시바를 어린이집에 배웅해주고 아카데미에 오니, 눈은 침침하고 귀는 염증이 난 듯 지끈대는 느낌이 들었다.
밤새 논문 해석하는 기분을 여기서 다시 느낄 줄이야. 이세계나 여기나 학생이 사는 건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배운 거라곤 수식 지문 몇 개, 그리고 마법 이론.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고등 지식을 활용해도 이해가 어려운 영역이었다.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쥐뿔도 없는 상태로 처음부터 배우는 탓에 외울 것들이 상당히 많아서 골을 많이 앓았다.
‘그래도…… 덕분에 문제는 잘 풀리네.’
한동안 못 다한 과제들을 아침에 처리하며 나는 하품을 했다.
평소에 공부를 단단히 해두어서 그런지 문제자체는 쑥쑥 풀렸다.
암기야 적당히 하면 되고, 잘하면 순위권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랜만에 상태창을 불러들여 지령을 확인했다.
▶당신에게 할당된 과제의 수는 [2]입니다.
-한국 순위 20위권 이내로 진입.
-필기 1위
보상은 최상급 포션. 어찌 보면 예비 목숨과도 맞먹는 것들이다.
세계수가 주는 것이니 남자의 정이나 여자의 액이 안 들어가지 않을까.
‘그럼 거의 필수나 다름없는데.’
최상급 포션이면 시중에도 팔리는 게 적으니 팔면 꽤 짭짤하게 돈을 만질 수 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 세상에 돈이 가지는 가치는 상당하다. 내가 사업을 하지는 않더라도 사업 쪽으로 발을 넓힐 필요는 있었다.
게다가 굳이 사업이 아니더라도 장비같은 걸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머릿속으로 행복회로를 굴리고 있었을까.
-툭툭.
갑작스레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활짝 편 손바닥이 코앞에 들이밀어졌다.
“요! 너 소문 대단하더라?”
자리에 앉으며 실실 웃는 구슬.
“가면 속에 가면이라도 썼어?”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뱉어오는 그 말이, 참 여러 가지를 담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나더러 알아주십쇼 하는 건데 그냥 한 번 대놓고 너 뭐냐고 물어볼까?’
…아니. 얘가 사실대로 밝힐 리가 있나.
고작 그걸로 밝혔으면 지금까지 이렇게 친구 행세를 할 리가 없다.
“너무 대놓고 묻는 거 아니야?”
적당히 답해주자 구슬은 히죽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기했다.
그 미형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은 쓸데없이 마음을 풀어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나는 그녀를 무어라 정확히 통칭할 수 있었다.
“프히히히.”
알 수 없는 년, 이라고.
…뭐 그건 별개로 저번 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도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가 정도야 지금 기웃대는 몇몇 생도들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오는 시선은 부담스럽지만, 앞으로 더 많아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발판이 되어줄 사건이 하나 필요했다.
‘산수유, 임종현, 정시우, 진달래.’
그 네 명의 소문은 잘 들어 알고 있었다.
설령 붙어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슈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주일 뒤 중간고사의 토너먼트, 그때가 결전이었다.
등수를 챙김과 동시에 숲지기 선발전에 나갈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최대한 등수를 챙기려면 당연히 수석인 정시우와 상대를 해야만 했다.
‘이길 수 있을까?’
나 혼자 생각하며 등받이에 등을 쭉 밀 듯이 맡겼다.
정시우. 상태창을 떨쳐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진짜?
그때 생도들이 모여 있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 걔 입원했다는데?
……걔는 갑자기 또 왜 입원해?
*****
“금방 퇴원한다고?”
“응.”
“그래도 다행이네. 히히. 그럼 이만 가볼게? 푹 쉬고 있어~!”
떠나가는 여생도를 향해 손을 몇 번 흔든 시우는 씁쓸하게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졌다.
핏줄처럼 길게 퍼진 푸른 흉터가 기분 나쁘게 한쪽 팔에 퍼져 있었다.
장기간의 마력 폭주로 인한 상흔.
헌터에겐 흔한 병이었기에 삼 일이면 퇴원이 가능했지만, 그에게 삼 일의 공백은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너무 오버했나. 훈련 강도를 조금 낮춰야겠어.’
평소였다면 이렇게 급박하게 발버둥치듯 운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번 중간고사에 걸린 것이 그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었기에. 이번 시험 딱 한 번만큼은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나 뿐인 여동생의 위치.
그 힌트만 알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했다. 그것이 한계에 달해도 훈련을 했던 이유이다.
-피식.
‘안 그래도 많은 마력을 순식간에 내뿜어댔으니 몸에 무리가 안 갈 리 있나.’
이대로 임종현, 그 불같은 남자를 이길 수 있을까. 아마 아직도 이를 갈고 있을 것 같은데.
흔한 병이지만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 재발할 확률도 높아서 장기적으로 관리를 해줄 필요가 있었다.
-똑, 똑, 똑.
정확히 세 번 떨어지는 노크 소리.
“들어 오세요.”
큼지막한 철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한 손에 비타민 음료 박스를 들고 있는, 가면을 쓴 남자.
예상 외의 인물에 시우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헌이?”
“병문안 왔다.”
오다 주웠다는 듯 내밀어오는 비타민 음료를 받은 시우는 조금 놀랍다는 얼굴로 시헌에게 물었다.
“네가 올 줄은 진짜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아. 여기 앉아.”
“그냥 오는 거지 뭘, 반갑고 자시고. 시험은 제대로 치를 수 있겠어?”
자리에 앉은 시헌의 물음은 지극히 노골적이었지만. 그의 사정을 모르는 시우에게는 그저 걱정으로 들릴 뿐이었다.
“무리는 없을 거야. 삼 일이면 퇴원하고 좀 진정하면…….”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상당히 무리를 했겠구나.
시헌은 곁눈질로 시우의 변색된 팔 한쪽을 바라봤다. 척 보면 척, 그것 만으로 대강 상태를 예상할 수 있었다.
‘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무리하는 건지. 쟤도 목숨 담보로 잡혔나?’
세계수가 그 지랄을 떠는 거라면 저렇게 노력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그리 생각하니 왜인지 시헌은 동질감을 느꼈다.
‘얘도 모진 풍파를 다 맞고 살아왔겠구나.’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어, 어? 그렇지.”
세계수와는 별개로 인간적으로 호감이 있었던지라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럼 뭐, 이번 시험에서 결과 좀 내야겠네?”
“그렇지…무조건 내야지”
“세계수야?”
나름 직설적인 화법이었지만, 그럼에도 시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잘 아네.”
“남편감이래놓고 참 궂은 일 다 시킨다. 그치?”
“……그래도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해.”
세계수의 남편 후보들이기에 할 수 있는 대화. 시우는 모르지만 시헌은 잘 알고 있었다.
“성장은 개뿔.”
세계수 고놈들의 속이 얼마나 새까만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헌도 하나만 알고 둘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었다.
남편 후보의 대우는 사람마다 다르고 정시우는 페널티에 있어 누구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 남자라는 걸.
시헌은 살짝 경탄을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대단하네, 여간 힘든 거 아닐텐데.”
그 말에 잠깐 시우는 숨을 멈추었다. 입이 벌린 채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윽고 피식 웃어보였다.
세계수의 남편후보라 고생한다. 그런 말은 또 처음 들어봤으니까.
확실히 그 대접이 다르다 한들, 시우의 지난 노력이 빛이 바래지는 것은 아니었다.
-저새끼 다 뽀록이잖아.
-어쩌다가 선택받아서 강해진 게, 어휴 시발 나도 어디서 선택 안 받나?
지금껏 사방에서 들려왔던, 그리고 커뮤니티 등지에서 보아왔던 말들이 문득 그의 머리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이 동병상련이라는 것은 시헌만이 알고 있겠지만, 심심한 위로는 분명히 되어주었다.
“아 나 슬슬 가본다?”
“응. 고마워. 아 시헌아. 근데 뭐 실패해도 훈련이나 좀 하는 거니까… 괜찮아.”
시우는 애써 밝게 웃으며 뒷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어? 후, 훈련?”
“응, 그래도 진짜 고맙다 야.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어서 들어가 봐.”
“…….”
시헌은 잠깐 벙이 쪄선 그를 쳐다보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훈련? 아니 뭐 목숨까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훈련?’
어느 정도 차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병실을 떠나는 시헌의 얼굴은 약간, 얼이 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