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세계수를 따먹다-195화 (195/657)

< 195화 > 동거 (5)

동거 3일째.

휴일도 끝이고 아카데미도 가는데, 진달래가 졸라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앗, 앙. 아앙.”

보란 듯이 혀를 쭉 내밀면서, 나에게 박혀 허리를 흔드는 진달래.

새빨간 그녀의 혀가 개처럼 입안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히흐… 흐응. 흥…. 앙. 히히.”

박히면서 행복하게 웃는다.

무섭다.

3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빠지지 않고 새벽 내내 섹스를 하니, 몸뚱아리가 야해지지 않을 수가 있나.

그것도 목령왕이라는 힘을 이어받은 나랑 하는 관계다.

아무리 진달래라도 이렇게 섹스를 하니 몸이 버틸 수 없었는지, 마지막에 이르러선 허리가 삐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그 피로를 조금이나마 치료해주었다.

격렬한 섹스가 끝나면 서로 부둥켜안고 잔다.

저녁이라면 자지를 박은 채로 잠에 들고.

점심이라면… 섹스 때문에 피곤해서 시바와 함께 낮잠에 든다.

그러한 생활 패턴이 지속되는 와중이었다.

“……아파.”

“무슨 애가 허리 삔 것도 모르고… 계속 박아 달라고 하냐.”

허리에 파스를 뿌려주자, 진달래가 허리를 가볍게 떨었다.

진통에 눈을 찌푸린 진달래.

새하얗게 노출한 엉덩이를 씰룩인다.

“…저 또 꿀 나와요.”

음부에 맺힌 한 방울의 꿀.

먹어달라는 걸까.

처음에는 그렇게 싫어했던 녀석이 3일째가 지나고 나서부턴, 전혀 가리질 않는다.

입에 대고 질내를 쭉 빨아 그 안의 꿀을 벌처럼 훔쳐 가도 오히려 좋아한다.

“너 되게 변태다.”

“…….”

“왜 말이 없어?”

“…이렇게 만든게 누군데.”

베개에 얼굴을 품고 그리 중얼거리는 진달래.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있는지, 나를 째려보기까지 한다.

새빨개진 볼은 또 장관이다.

“처녀 잃고… 바로 다음 섹스에서 뺨 때려 달라는 애가 할 말인가.”

“……우으.”

“농담이야 농담.”

“당신은 뭐, 변태 아닌 줄 알아요? 밤마다… 그, 실한 거 계속 박아넣으면서.”

네가 날 놓아줘야 내가 어떻게 관계를 안하고 넘어가지.

말은 안했지만 음란마귀 때문에 사실상 나는 상시 발정제를 먹은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다.

지금까지는 그냥 정신력으로 버텨왔던 거고.

그래서 요즘 여자랑 관계를 늘리니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랑도 이렇게 해요?”

물어오는 진달래.

“그렇지.”

“……그렇구나.”

약간의 침묵이 인다.

“……혹시, 그냥 저랑만 할 생각은 없어요?”

“그건 힘들겠네.”

“그럴 줄 알았어요. 남자는… 무조건 여자 두 명씩은 껴야한다죠?”

“누가 그래?”

“몰라요. 옛날부터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피. 혀를 내미는 진달래.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를 끌어안았다. 슬렌더한 몸이 내 안에 들어온다.

가벼워서 들기도 쉽고 들박도 쉽다.

들어 올려서 공중에서 쳐박아대면 그렇게 좋아하더라.

“…또 야한생각해요?”

“들켰어?”

“푸흐, 왜 이렇게 솔직해요. 아무튼… 정말이죠?”

진달래의 되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독점욕이 많고, 그래서 나랑 비슷하게 일부일처제를 바라는 사람.

소수이긴 하지만 진달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럼 최소한 나랑 할 땐. 내 생각만 해요. 이거 어기면 진짜 화낼 거야.”

“이미 그러고 있어.”

“어어. 지금 말했어요? 계약서까지 쓸까요? 성목의 맹세해요 빨리. 세계수의 이름을 걸고.”

헐벗은 알몸으로 나한테 달라붙고, 볼을 부비적대며 내 목 아래에 키스마크를 남기는 진달래.

기업인인 진달래가 성목의 맹세를 입에 담으니 전혀 농담 같지가 않게 느껴졌다.

“세, 세계수의 이름을 걸고.”

어차피 세계수의 이름에 맹세해도, 나는 세계수의 부모까지 죽는다한들 눈 깜짝 안 할 자신이 있다.

그래도 뭐, 계약을 어길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우웅!

[벼리]

여자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긴 하지만.

*****

[본인, 소원권 사용을 희망합니다.]

집을 나와 전화를 받자 뜬금없이 별이 선서를 해왔다.

나는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가, 적당히 커피를 하나 사면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원. 아 맞네. 무슨 소원이요?”

[얼마 안가 동창회가 있습니다.]

그 이상한 사무식 극존칭은 왜 하는 걸까?

성우같은 목소리 때문에 듣기 좋아서, 꼭 영화에서 볼 법한 비서의 얼굴을 떠올리고 만다.

나는 커피를 쓸어담듯 바구니에 집어 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동창회요? 벌써 나이가 그만큼 드셨나.”

[아잇. 나이 이야긴 꺼내지 마!]

가볍게 쨍알쨍알 소리를 지른 별이.

그리곤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구체적인 희망과, 설명을 구차하게 이어가기 시작했다.

[……나 그거 해보고 싶단 말야.]

“어떤거요?”

[그런 거 있잖아! 나 항상 동창회 가면 풀 죽는다고….]

동창회.

나는 가본 적이 없다.

그래도 드라마같은 곳에서 보면, 다시 만난 학생들이 서로 사회에서의 출세 정도와 여친이나 남친 자랑으로 은근히 기싸움을 하지 않는가.

별이 말하는 건 아무래도 자기 기 좀 세워달라는 것 같았다.

“근데 별이 누나 정도면 충분히 성공한 거 아닌가. 존나 당당해도 될 것 같은데.”

[그때 별이, 찐따. 지금 별이, 트라우마. 거기가면 말도 제대로 못 한다.]

“…말투가 뭐에요 그게.”

[몰라! 이상하게 옛날 애들만 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걸 어떻게 해.]

“그래도 성공하셨는데. 기죽을 필요는 없지 않나.”

[……그 새끼들 이상하단 말야. 내가 성공을 한 게 배 아픈지. 막 연인같은거 물어본다니까?]

나랑 만나기 전의 별이는 연인같은 게 없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으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어버버.

열등감을 느끼는 몇몇 잘못 큰 어른들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소리인가.

내 물음에 별은 바로 그거라며 격렬히 동의했다.

[막… ‘부협회장씩이나 되면 되게 바쁘겠다~’ ‘남자 만날 시간은 있어?’ ‘에이 당연하지. 매일 헌터들 보는데…’ 이런식으로 존나… 끄아앙!]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카드를 내밀며 볼을 긁었다.

별이가 자신의 과거사나 그런 쪽에서 좀 자신감이 없는 듯했다.

그래도 ‘그’ 별이니까. 막 PC방이나 그런 곳에 가는 걸로 소원권을 때울줄 알았는데.

설마하는 동창회라.

나는 커피가 잔뜩 담긴 비닐봉투를 들며 속으로 생각했다.

‘차나 하나 뽑아야겠네.’

그것도 으리으리하고 보기만 해도 재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걸로.

그거만 슬쩍 보여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착각할 것임이 분명했다.

“언제에요?”

[……일주일 뒤.]

“주소만 찍어줘요.”

별은 주소와 함께 모임 시간을 말했고, 적당히 계산을 해보니 중간에나 갈 수 있을 법했다.

“아카데미 끝나고, 마법 쓰고 간다 하더라도 좀 걸리겠네요.”

[그래?]

“네. 꼭 갈게요. 소원이라는데 가야지.”

[히힝! 시헌이 최고! 아 물론 소원 코스에 섹스도 있는 거 잊지 마!]

섹스.

그 단어가 핸드폰 바깥으로 울리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움찔했다.

나는 애써 무시한 채 편의점을 나왔다.

[아 맞아.]

이윽고 말하는 별이.

[…그거 들켰어.]

“네?”

[세영이한테 시헌이 네가 플라워랑 싸운다는 거….]

선생님이야 워낙 눈치가 빠르니 언젠간 알아채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던 별이 때문에 들킬 줄이야.

“아이고.”

나는 절로 튀어나오는 탄성을 참아내지 못했다.

그 점은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별이가 솔직하고 어수룩하고, 손만 잡아도 얼굴을 붉혀 너드미가 폴폴 풍기는 여자라지만 사업적인 면모만은 빼어나서 포커페이스에 뛰어나다.

당연히 뭔가를 속이는 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사업적인 관계’라는 선에서 말이다.

“누나가 들킬 줄은 몰랐는데.”

[진짜 실수였어….]

친구 사이라 척 보기만해도 아는 게 있는 걸까.

그렇다면 내가 너무 이세영을 물로 봤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알면 길길이 날뛰지 않았으려나.”

[…으응. 그건 아니야. 내가 잘 달랬어. 술이나 한 잔 하면서 속 터놓고 말해보라고. 세영이도 인정하더라.]

둘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갔다.

별은 그것을 풀어주며 설명했다.

세영이가 나에게만 연관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내가 플라워에 싸우려 든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알았을 때, 걱정이 도를 넘어서 그걸 숨긴 별에게 화까지 내려 했다는 것.

[……시헌이 너도 사실 비슷하잖아.]

비슷하다.

근데 나는 다르다.

내가 이대로 플라워랑 싸운다한들 죽는다는 미래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세영은 다르잖아.

내 눈앞에서 실제로 죽었다고.

그 차이가 얼마나 심한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세영이 나랑 연관되면 병적으로 예민해지는 것처럼, 나에게도 이세영은 하나의 스위치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냥 다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때까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나는 솔직한 심정을 별에게 털어놓았다.

물론 이세영이 죽었다는 미래시만큼은 쏙 빼놓고, 적당히 당위성을 부여해가며 말하니 별은 이해를 하면서도 어딘가 비어있는 구멍에 의문을 가지는 듯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중에 이야기는 해봐야죠.”

[에휴 진짜… 시헌이 삶을 내가 모르니 생각 구조도 알 수가 있냐.]

별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시헌아]

“네.”

[……너한테만 말해주는 거야. 원래 이런 말 잘 안 해.]

전화기를 타고 느껴지는 진중한 말투.

정색했다는 것이 목소리로도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싶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세영의 절친인 별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세영이 옛날 이야기야.]

*****

“안하겠다고?”

남자의 싸늘한 목소리가, 어린 소녀의 안을 파고든다.

열 둘. 기껏해야 중학교도 아직 들어가지 않은 나이.

세영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씩씩대며 소리쳤다.

“안해!”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는 듯한 시선.

당연하게 이루어지곤 하는 가문의 약혼을, 세영이 소리를 떽떽 질러가며 거절했을 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던 아버지도 점점 험악해지고.

이제는 세영을 벌레 보는 눈으로 보게 되었다.

“네가 그대로 크면 뭐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버지가 해야할 말이 있고, 절대 해선 안되는 말이 있다.

평생 몇 번 보지도 못한 아버지가 자신의 핏줄을 이렇게 경시해도 되는가.

어린 세영도 그 말이 가족끼리 절대 내뱉어서는 안된다는 말인 것을 알고 있었다.

“……싫어. 절대 안 해.”

“그럼 나가라.”

“못 나갈 줄 알아?”

초등학생이 집을 나갈 수나 있겠는가.

하지만 치기 어린 오기가 들었던 세영은 정말 가문을 나올 작정이었다.

“개새끼.”

어쩔 줄 몰라하는 비서들 사이에서, 눈을 부릅 뜨던 이세영의 눈.

그러나 그런 이세영의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넘기는 그녀의 아버지.

세영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복도를 의젓하게 걷다가.

결국 중간에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덜컥.

회사를 나와도 그녀에게 마중을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가 이세영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을 한듯 싶었다.

아무 것도 없다.

주머니에 돈도, 집도, 뭣도.

중학생도 채 되지 않은 이세영은 아직 마력조차 깨우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도 별게 없었다.

그나마 막노동.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것.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증명만 하면… 어찌저찌 빌어서 상하차라도 뛸 수 있었다.

본래라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 정상이지만.

자신의 사정을 토로하며 솔직히 말하니……. 그 사람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해주었다.

집은 컨테이너를 사용했다. 남아있는 컨테이너에서 헤진 이불로 버티며 살았다.

자라난 과정에 가족의 사랑을 받은 적은 없으니.

점점 마음에는 모가 나고.

눈은 날카로워지고, 또래의 아이들도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학교에서도 친구 하나 없이 혼자 다닐 뿐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얻어온 빵같은 것을 얻어먹으며, 흘린 눈물.

먼지 묻은 우유팩에서 그 내용물을 게걸스럽게 마시던 추억.

아마 그때 눈물샘이 전부 말라버려서 지금 울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린 세영은 사회의 물을 몰랐고.

그 과정에서 나쁜 짓도 많이 당했다.

몸을 매만지려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까스로 주변 어른의 도움을 받아 피했지만- , 얼굴에 음습한 기운을 가득 낀 채 같이 살자는 말을 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기에, 인연에 더 목을 매는 것일 수도 있었다.

헌터의 몸은 갈수록 강해졌다.

본격적으로 헌터의 일을 병행하기 시작하니,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저지르고 말았다.

갈수록 무감정해지는 게 느껴졌다.

필요한 건 그때그때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능적으로 새겨진 탓에 무언갈 베푸는 행위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모은다.

돈도 명예도. 심지어는 의뢰를 받아 죽인 그 사람의 이름조차도.

고등학교에 막 올랐을까.

이세영을 찾아낸 다른 오크 가문의 이가 그녀를 초대했다.

사업적인 일을 좀 도와달라.

평생 죽었는지 모를 그녀에게서 그런 부탁을 하는 게, 얼마나 우습게 보였을까.

“하.”

알고 있음에도 받아들였다.

이미 원한 관계를 생각하기엔 너무 돌아왔으니.

가족의 따스한 품 한 번 안아보지 못한 세영은, 그렇게 가문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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